기도 PRAYER - 모든 것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법 A. W. 토저 인사이트 시리즈 1
A. W. 토저 지음, W. L. 시버 엮음, 유정희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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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들의 강력한 영적 무기인 기도에 대해 다각면으로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 기도가 더욱 빛을 발하도록 활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기도가 순종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면서 기도를 할 것(그냥 받는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은혜 말고), 어린아이라 해도 쓸데없이 소원을 비는 행위는 아무 유익이 없음을 일찍 깨워쳐 줘야 한다는 점, 아직 기도할 것이 많은데 기도 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멈췄던 것, 기도는 솔직하게 해야 한다는 점, 그 무엇보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기도하는 자들이라는 점,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지 알려고 해야 한다는 점 등 기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별점: ★★★★★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수정하시고, 우리가 더욱더 그분의 아들을 닮게 만드시며 그분의 거룩하심과 자비와 사랑과 영광이 크게 드러나도록 우리가 기도했던 문제를 종결시키시는 영적인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우리의 일상생활이 분주하고 무의미한 일들로 가득하며, 진심으로 기도하려는 절박함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좀 더 친밀하게 알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1/ 기도를 배우라

​온 삶으로 기도하라
가장 좋은 기도는 그 사람의 삶 전체로 드리는 것이다. 그러한 기도는 오직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의 결과로 주어진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는 기도가 되고, 온 삶이 찬양과 예배의 거룩한 제사가 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탁월함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지속적으로 교제하지 않고, 세상을 많이 따랐으며, 기도를 힘든 순간이나 중요한 응급 상황의 비상탈출구로만 여기는 신자에게 기도는 의무이자 무거운 부담이다. 그러나 모든 삶이 기도가 될 때 기도에 대한 부담이나 율법적 속박은 사라진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구애에 응답한다면, 그의 주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도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바로 거룩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설득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기도를 포함한 여러 가지 면에서 징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실 수밖에 없다(히 12:10). 그렇게 되면 그 여정은 더 힘들고 복잡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는가? 달리 말하면, 우리의 기도는 응급 상황의 기도들로 가득한가, 아니면 온종일 기도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가? 기도가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지려면 야고보서 4장 7,8절, 베도로전서 5장 6-10절, 열왕기하 22장 18-20절에서 도움을 얻으라.

성(聖)과 속(俗)의 심리학
그리스도인의 내적 평안을 방해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삶을 두 영역, 즉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으로 나누는 습관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오랫동안 힘들게 일해야 하고, 이 세상의 것들에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거기서 우리는 더 고차원적인 삶을 누리며, 하늘나라의 지위를 보유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즐긴다.
성과 속의 딜레마에서 오는 어려움을 피하려면 진리가 우리의 피 속에 흘러 우리의 생각 전체를 좌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단호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의 삶은 능력과 기도로 가득했다.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려면 거룩하지 않은 행위는 없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마당의 잔디를 깎는 일, 설거지, 창고 정리, 운동, 선반 정리, 보고서 작성, 그 외에 수백 가지 세속적인 행위들이 우리에게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기도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성과 속의 심리학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는 기도할 때나 일상의 생각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실제적으로 단호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해 묵상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이 거기서 벗어나게 해주실 때 당신의 기도 생활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주목해보라 하나님은 당신이 주변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 기도하게 하실 것이다.

묵은 악습에서 벗어나라
‘성과 속의 심리학’에서 온전히 벗어나려면 지적인 생각과 경건의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직 적극적인 믿음을 발휘함으로써만 이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분이 그것들을 받으신다고 믿는 것이다. 개인적인 기도 시간에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계속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그리고 생업에 힘쓸 때에도 생각 속의 기도로 그 시간들을 보충하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3,24). 얼마 후 바울이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고기는 깨끗하며, 모든 날은 거룩하고, 모든 장소는 신성하며,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교회는 날과 절기와 시간들을 다시 지키게 되었다. 특정한 장소들이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표시되었고, 특정한 날이나 장소, 사람에 차이가 생겼다. 처음에 두 가지였던 성례는 서너 가지로 늘어나더니 로마 가톨릭이 승리하면서 일곱 가지로 정해졌다.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논리적 결론에 도달한 성-속의 이단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겠다. 그것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종교와 삶의 완전 분리다.
날과 때를 지키는 것이 우리 사이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과 ‘성금요일‘은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점점 더 자주 들려오는 단어들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부름받은 사명 안에 거하게 하자. 그러면 그의 일은 사역자의 일만큼 성스러울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일이 성스러운 것인지 세속적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이유다.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주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갈 때 그의 행동은 이전처럼 평범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선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제사장의 직무가 될 것이다.
모든 일이 제사장의 사역이 되게 하는 훌륭한 기술을 연마하자. 토저는 이 과정에 속한 네 단계를 지적한다. 1)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믿음 2) 우리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께 내어드림 3) 개인적인 기도 4) 일상의 생각 속의 기도

​올바른 생각이 올바른 기도를 이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악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더럽힌다고 가르치셨으며, 심지어 생각과 행동을 동일시하기까지 하셨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와 같은 말씀을 보라. 바울도 빛나는 미덕들의 목록을 나열한 후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명령했다(빌 4:8). 물론 우리는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고, 우리의 죄들을 없애거나 타고난 성품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감화를 받은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꺼이 거하시는 깨끗한 성소로 만드는 걸 도울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그 마음을 받아 즉시 다스리실 것이며, 영적인 것들을 생각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질 것이다. 특히 우리가 오랜 시간을 두고 날마다 기도로 우리의 생각을 단련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훈련(즉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오랫동안 해나가면 거룩한 생각의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올바른 생각이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진다. 올바른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사탄은 하나님과 전쟁을 하고 있다. 거기엔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장악하는 것이다.˝ 토저는 지난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자유롭게 했던 생각을 우리의 참된 영적 상태를 알아보 시금석으로 사용하라고 말한다. 그 생각들의 성향이 내적인 마음의 방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기도는 순종을 대신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려 해야 한다. 나는 우리의 문제가 기도로 순종을 대신하려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유일한 약점이 기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정말 중요한 순종의 문제에서 여러모로 부족했던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성 15:22). 기도는 결코 순종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통치자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들로부터 순종이 동반되지 않은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면 죄의 형벌을 면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쁨으로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순종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를 순종의 대체물로 사용하기를 멈출 때, 기도는 효력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 대신 드리는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것을 대신하려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밖에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과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매일 순종과 기도 생활에 대한 열정을 회복시켜 주셔서 매일의 도전과 기회들에 대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기도와 순종에 대해 율법적인 속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가 더 많이 순종할수록 하나님이 기도를 더 많이 들어주신다고 생각하기 쉽다. 신자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며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보여주시는 것에 대해 더 많이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에 기도로 동참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인간적인 은사나 재능으로도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사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고백할 것을 주장하며 ‘교만한 육신‘을 그토록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영적인 삶과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만일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이루려 하셨던 일들을 달성하려 하신다면, 그러한 기도와 하나님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세 번째 조건일 것이다.

부흥은 자정 후에 탄생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거룩하고 성령 충만해진다고 할 수 있다.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점을 분명히 하셨다. 문제는 우리를 충만케 해달라고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실 만큼 우리가 충분히 하나님을 원해야 한다는 데 있다.
개인적인 부흥과 승리하는 삶의 교리를 배우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버리는 어둡고 험난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부름받은 사람들은 많고, 택함 받은 사람들은 적다. 실제로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잠시 멈춰 서서 동경하는 눈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다가 비교적 안전하게 보였던 옛 삶의 폐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흥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온다. 그들은 마음의 갈망들이 모두 하나로 축소된 사람들, 즉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길 갈망하여(골 1:10-18) 모든 일에 그리스도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들이다.

조건 없이 기도하라
노리치의 줄리안이 놀라운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구세주께 기도를 드린 후 이런 지혜로운 말을 덧붙였다. ˝또한 저는 아무 조건 없이 이것을 구합니다.˝ 그 마지막 문장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에 능력을 부여했고, 해가 갈수록 홍수처럼 넘치는 응답을 험하게 해주었다.
성공적인 기도는 조건이 없는 기도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해치실 수 없고 반드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 그다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을 담대히 구하며, 대가는 개의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인자하심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

침묵의 힘
가장 고차원적인 기도는 요청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거룩한 순간의 기도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거룩한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기적들이 평범해 보이고 놀라운 기도 응답들이 별로 놀랍지 않게 보일 만큼 거룩한 연합이다.

오랜 기도에도 응답이 없을 때
만일 우리가 계속 기도함에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 마음의 자연적인 불신을 확고하게 굳혀버릴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불신으로 가득했다.
가장 나쁜 것은 우리가 기도에 실패함으로써 원수가 현장을 장악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일 것이다. 마귀는 항상 승산 없는 싸움을 하며 도망 다녀야 한다. 그런데 이 불경스러운 원수가 잘난체하고 경멸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해보자. 그때 하나님의 일이 매우 지체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도가 계속 응답되지 않을 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응답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성경적인 기도가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주시도록 도우려는 자신의 노력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응답되지 않은 우리의 많은 기도들이 잘못된 동기로 구한 결과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또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의 다른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처리하지 않은 죄(개인적인 죄나 공동의 죄, 또는 둘 다) 때문일 수 있다(시 66:1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가 기도 응답을 받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우리는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또는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한다. 이 믿음과 불신의 문제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께 성령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달라고 간구하라.


2/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의 유익
기도에는 어떤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이 행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믿음으로 할 수 있고,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기도로 할 수 있다. 단, 믿음으로 기도를 드렸을 때 그렇다.
조지 뮬러는 믿음은 사용할수록 성장한다고 말했다. 큰 믿음을 가지려면 이미 가지고 있는 작음 믿음을 사용하기 시작해야 한다. 경건하고 신실한 기도를 실천하면, 그것이 자라서 날마다 더 강해질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구하기 때문에 받고 혹은 구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데 많은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 아니겠는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법
중요한 것은 소원을 비는 일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나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소원을 빌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일찍부터 배워야 한다.
갈망하는 대상이 타당하고 무고한 것이라면, 그것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 둘째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가능성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으나,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 안에 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가 직접적인 답이다.
어떤 것들은 단순한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전반적인 기도의 개념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갈망의 대상들로 구성된 범주가 있다. 이것은 결국 노력과 기도로 귀결되며, 우리가 바라는 대상과 목표들이 대부분 이 범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며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한다.
신자가 기도에 헌신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에서 비롯되며, 숨 쉬는 것만큼 일상적인 일이다. 기도와 노력이 거룩한 균형을 이루고 시기적절하여 하나님이 항상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 있다. 소원은 하나님을 제외하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을 방정식과 해답에 포함시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하는 단순한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과 늘 연결되어 있길 원하신다!

​기도는 사람과 상황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모든 기도에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의 말에 따라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내내 하고자 하셨던 일들을 행하실 수 있도록 그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상황을 변화시키실 수 있게 한다.
습관적으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과정 속에서 기도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상황들(‘하나님께서 물질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드셨으므로‘)을 변화시킬 것이다.

​기도의 씨름
기도를 평가할 때 우리는 그 기도를 누가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즉 우리의 단호한 마음인가, 성령인가? 기도가 성령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 씨름은 아름답고 놀라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열된 열망의 희생자라면, 우리의 기도는 다른 행위와 마찬가지로 육적인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단호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때에 기도 응답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 뜻대로 되길 원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를 갈망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탈출구나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 둘러싸이도록 하실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할 때 성령으로부터 기도가 시작된다(약 4:7,8).

기도할 때까지 기도하라
우리가 진실로 기도하기 전에 기도를 중단하는 습관은 불행히도 흔한 일이다. 종종 마지막 10분이 처음 30분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효과적으로 기도하기 위해 적절한 분위기로 들어가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세상에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로 흐트러진 생각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씨름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도하러 갈 때 우리 마음이 냉담하고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 느껴진다면 우리 스스로 그 상태에서 나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 토저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정직하고,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히 7:25) 분께 다시 초점을 맞추라고 제안한다.

하나님의 자아와 기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주실 것이다. 단, 그것이 그분의 뜻 안에 있다면 말이다. 당신이 ‘나는(I am)‘이라고 말할 때 언제나 ‘am‘을 소문자로 쓴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는(I AM)‘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가 어디에서 파생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 존중은 잘못이 아니며, ‘나는 -이다‘, ‘나는 -할 것이다‘, ‘나는 -을 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신 본래 하나님의 메아리로서 소문자로 말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말이다.
죄의 정의는 타락한 자아이다. 죄는 위로 올라가 하나님의 자아를 취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이 자아가 될 거야.” 그리고 하나님은 배제되었다.
당신은 온순하고 경건하게 “오, 하나님, 당신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때 대문자로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라고 말해왔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탄생이 의미하는 바다. 그것이 곧 회개이고 믿음이다.
당신은 기도 제목들을 하나님께 다 말씀드리고 나와서, 당신이 그 목록을 잊지 않고 다 기도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과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 앞에서 당신의 기도 제목 중 일부가 수정되고 재구성되는 느낌,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평안을 느끼는가?(빌 4:6,7)

​진리의 두 날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균형을 잃는 것은 종종 선호하는 특정 본문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관련된 본문은 덜 강조함으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이다. 진리를 부인하는 것만이 진리를 헛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강조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똑같이 해를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이론상으로는 진리를 고수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무시함으로 아무 효력이 없게 만드는 이상한 입장에 있게 한다.
그는 캠벨 몰간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진리는 ‘기록되어 있다’라는 말에 있지 않다.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다시 기록되어 있다’라는 말속에 온전한 진리가 있다. 새가 균형을 잡고 날 수 있으려면 오른쪽 날개가 왼쪽 날개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균형과 대칭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두 번째 본문을 첫 번째 본문과 대조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도의 균형에 초점을 둔 매우 강력한 성경 구절이 야고보서 4장 1-10 절이다.

​정직한 기도의 능력
비상한 통찰을 가진 또 다른 영적 작가는 기도할 때 완전히 무례해 보일 정도로 솔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면 고상한 척하지 말고 하나님께 그대로 말하라고 한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일들이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라. 이 조언은 일부 예민한 성도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타당한 말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영혼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곧 그의 무지함을 고쳐주실 수 있으나 위선에 대한 치료책은 알려진 바가 없다.
꾸밈없는 어린아이는 여전히 우리 모두를 위한 거룩한 모델이다. 우리가 모든 가식을 거부하고 사람들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완전히 정직하기를 배울 때 기도는 더 능력 있고 실제적인 것이 될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주교, 프랑소와 페넬롱(Francois Fenelon)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에 대해 몇 가지 강력한 발언을 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모두 하나님께 말씀드려라. 친한 친구에게 마음속 기쁨과 아픔을 모두 털어놓듯이. 하나님께 당신의 어려움을 말씀드리면 그분이 당신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 당신의 열망들을 말씀드리면 그것을 정결케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당신이 싫어하는 것들을 말씀드리면 그것을 정복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당신을 유혹하는 것들을 말씀드리면 그것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선한 일에 대한 무관심과 악을 선호하는 부패한 마음, 당신의 불안정한 상태를 다 털어놓으라. 당신의 자기애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하게 만드는지, 당신의 허영심이 어떻게 가식을 부추기는지, 당신의 교만이 어떻게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숨기는지 다 말씀드려라.
당신이 이렇게 자신의 모든 약함과 필요와 어려움들을 털어놓으면 결코 할 말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제가 계속 갱신되기 때문에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대화의 주제가 부족하지 않다. 그들은 감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할 말을 찾지도 않는다. 그들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 고민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 하나님과의 그런 친숙하고 거리낌 없는 대화에 도달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토저는 “우리가 모든 가식을 거부하고 사람들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완전히 정직하기를 배울 때 기도는 더 능력 있고 실제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정직한 기도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란다.

기도의 영성을 드러내는 공적 기도
기도는 듣는 사람들을 향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하는 것이기에 솔직히 그것을 염두에 두고 기도해야 한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못했다. 그 사람의 기도는 자아의식이 부풀려져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의식은 축소되었으며, 가치에 대한 의식은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체적인 기도는 ‘나’ 중심적이었지 ‘하나님 중심’이 아니었다.
세리의 기도에서 반복되는 말에 어떤 마법 공식이 있었던 것은 확실히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세리의 마음, 즉 죄에 대해 민감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기도한다면 공적으로도 그와 같이 기도할 것이다.
가끔씩이라도 우리의 기도를 글로 기록하여 그것이 ‘나’ 중심적인지 ‘하나님’ 중심인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기도를 하나님 앞에 놓고 당신의 마음과 기도의 말들을 살펴주시길 간구하라.
구약 성경들의 기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을 두 달에 한 번은 꼭 공부하도록 하라. 기도에 관한 연구를 할수록 당신의 기도에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라!
공적 기도와 사적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감을 나타내야 한다. 그것은 매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더 강력해진다. 예를 들면, 당신과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만큼 풍부한가?

가장 좋은 것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이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하며, 때로는 금식과 기도로, 말로 다 못할 만큼 피곤하게 싸워야 한다. 모든 사람은 독창적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모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마치 자기 혼자만 기도할 수 있는 것처럼 기도해야 하며, 그의 접근법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성경 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들의 깊은 필요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신 후에, 최후의 만찬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아버지께 드린 기도가 예수님의 삶에 배여 있었다.
리더십의 영적 자격을 갖추라
리더십은 비전을 요구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면 어디서 비전이 오겠는가?
로마서 12장 12절은 모든 신자들이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말하며, 유다서 1장 20절은 신자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려면 하나님의 말씀(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행하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모든 신자들은 ‘기도에 힘쓰라‘라는 권면을 받으나,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기도여야 한다.
E. M. 바운즈는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기계나 새로운 조직이나 방법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즉 기도하는 사람들, 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령은 방법이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분은 계획이 아니라 사람들, 즉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하나님은 언제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들과 정반대되는 것을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려면, 자신이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그분의 넓은 뜻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또는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간청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를 갖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직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의 기도만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해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일 3:21,22; 요 15:7).
하나님이 언제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궤변은 기도하는 사람이 훈련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 이 부드러운 궤변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이 세상에서 진지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할 필요성을 무시한다.
자신에게 참된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도 모른다. 자신의 요청이 수락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꾸셨고 그에게 다른 것을 주셨다고 선언하는 단순한 책략으로 그 결과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이 짧은 문장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구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응답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실 때가 있음을 배운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제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믿음에 현혹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세속적인 신자는 응답이 거절당할 때 경건하게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하나님이 언제나 기도에 응답해신다는 생각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성경으로부터 오는 단단한 음식은 신자의 삶 속에서 성령의 능력 주심과 역사를 동반하며, 그것이 성경의 진리를 사실로 만든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단단한 음식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젖으로 만족하며 말씀의 기본 원리들을 반복해서 배우는 것에 머물러 있다(히 5:11-13). 또한 그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해주고 그들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스승들을 많이 두었다(딤후 4:3). 그 최종 결과는 세상과 벗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며, 그 증거가 자신의 불순종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멘토인가? 그런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께 적어도 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라.
개인적으로 나는 때때로 나의 죄나 바쁜 일정, 또는 잘못된 우선순위로 인해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최선을 거부하게 될까 걱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손해는 내가 우주의 무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협력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손실을 느끼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계속 기도하기를 바란다.


3/ 믿음의 기도로 나아가라

​목표를 명중시키는 기도
기도에 있어 가장 큰 함정 중 하나가 막연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하여지기 원하는 당신은 ˝난 지금 그걸 받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시험하시게 하고, 그분이 당신의 기도에 응답을 주셨는지 안 주셨는지 알려고 하라.
막연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을 받았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런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킬 수 있다.

​모든 일에 기도로 나아가라
마음의 평안은 문제를 부인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데서 온다는 걸 명심하라. 믿음으로 당신은 당신의 형제요, 인간의 아들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께 부탁할 권리가 있다. 또한 하나님이 당신을 보살펴주실 거라면 왜 염려해야 하는가!
모세, 여호수아, 다윗이 경건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든 것을 기도로 하지는 않았고, 그 결과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를 통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이나 힘으로 결정 내리기로 할 때, 우리는 그들처럼 엘리트 그룹에 속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을 내릴 때,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가장 해로운 결과들은 우리의 믿음과 미래의 순종, 우리의 구세주이자 주님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신자들과 불신자들 앞에서 우리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훼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기도로‘ 하기를 부지런히 힘쓰자.

우리의 중재자,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에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구하심이라˝(히 7:25).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신다. 그러므로 힘을 내라!
예수님이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과 관련하여, 성경은 그분이 구체적인 영역에서 기도하신다고 말한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시련이나 폭풍우를 지나더라도 우리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둘째,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이런 폭풍우가 삶을 무너뜨리고 우리로 길을 잃게 만들 수 있지만 또한 우리의 믿음을 정결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신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시련을 대할 때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보기를 원하신다. 셋째, 주님은 이런 폭풍우나 시련들이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형제와 자매들을 강하게 해주는 배경이 되길 원하신다.

​기도로 준비하라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제자들에게 커다란 반지에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 같은 말씀을 주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가오고 있는 일을 예상하고 기도하셨으며, 그에 대비하셨다. 내가 당신의 양심에 새겨두기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싸움을 싸우기 전에 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예측하고 앞서가는 기도를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날마다 앞서가는 기도를 연습할 수 있을까?

언제나 기도가 이긴다
˝곤경에 빠지는 사람은 힘이 약한 사람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의 힘이 약한 이유는 기도가 거의 사라지고 침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고 강건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고난이 와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며 ˝기차를 놓치겠어˝라고 말하면서 황급히 뛰어나가지 말라. 당신이 급히 가야 한다면 신약성경을 가지고 가라. 출근길에 뉴스나 뉴스를 읽는 대신 신약성경을 읽고, 그다음에 고개 숙여 하나님과 대화하라. 싸울 준비를 하라! 아침에 기도를 아예 건너뛰기보다는 어딘가에서 기도를 부여잡으라.
절대 기도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고, 기도하면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물론 그것이 참된 기도이고 말로만 하는 기도가 아니며, 당신의 삶이 당신의 기도와 조화를 이룬다면 말이다. 기도하면 실패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기도하라
복음주의적 합리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상태로 축소시킬 것을 주장하며, 따라서 합리적인 신앙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간 이성의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그런가 하면, 복음주의적 신비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과 믿음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위에 있다. 우리가 신자가 되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작은 이성을 무한히 초월하는 영역이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화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믿음은 결코 이성과 반대로 가지 않는다. 믿음은 단지 이성을 무시하고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믿음은 가장 높은 종류의 이성이다. 믿음은 우리를 곧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고, 우리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가신 휘장 뒤로 들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이 이루시는 일들에 다가간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는 장기간에 걸쳐 성도들 안에 다섯 가지 일을 행한다. 첫째, 기도하는 사람들을 낙심시킨다. 둘째, 자연적인 마음의 불신을 확인해 준다. 셋째,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부추긴다. 넷째, 원수에게 신성 모독할 기회를 준다. 다섯째, 원수가 영역을 장악하게 한다. 당신의 환경에서 원수가 장악한 영역을 되찾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신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응답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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