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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3년 12월
평점 :
나는 심리학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영역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가끔 신문사회면을 장식하는 패륜범죄나 뉴스, 인터넷보도로 접하게 되는 감동적인 사연등을 보며 일차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움, 존경심 외에 학문적으로 그것들을 파헤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곤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른 행동을 하게 되는 사람의 심리, 배경, 사회적 지위등의 수많은 조건화가 끼치는 영향을 실험을 통해 알아보고 도덕성에 관련된 우리의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아 주는 교정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도덕성을 깨우치기 시작하는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이상하리만치 타인보다 본인에 대해 도덕적으로 관대한 면이 있다. 상황적으로 그럴수밖에 없었다거나 상대방의 의도가 처음부터 나빴다거나 하는 이유를 대며 종종 나는 다른사람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또한 외모나 말씨, 학벌과 지위에 따라 어떤 사람을 표면적으로 좋고 나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투명사회'라고 불리는 요즘, 자신의 모든 신상이나 인터넷에 남긴 흔적등이 맘만 먹으면 네티즌수사대에 의해 털릴 수 있는 감시체제에서 우리는 항시도 맘의 고삐를 풀지 않고 도덕적으로 신중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에 직면해 있다. 과거 지하철막말녀나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땅콩회항', '갑질논란'등의 사건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 사람이 윤리적으로 어긋난 행동을 하는 순간 다수의 악플과 논란을 피해갈 길이 없는 것만 봐도 연예인, 공인이라서 몸을 사리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이젠 일반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 늘 지켜보고 있다는 이런 감시효과는 확실히 사람들이 도덕적 규칙을 위반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걸 막을 수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규칙을 준수하고 법을 어기지 않는 이유가 개인의 선함, 도덕적 평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것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러한 선의를 가장해 악행을 저지르는 사회악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의 고정관념인 착한 사람의 이미지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윤리적인 사람이라 해도 어느 집단에 속하여 그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리란 예측은 하기 어렵다. 과거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했던 총지휘자나 수많은 전쟁에 투입됐던 군인들은 개개인으로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거나 오히려 선한 이미지에 가까웠다고 학자들은 전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의 보수보다 다섯배를 준다며 한달만 일해달라고 당신을 유혹하는 사업대표자가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 사업체는 유령회사이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약물을 취급하고 탈세혐의를 받고 있다고 하면 선뜻 그 제안에 응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개인의 소신이나 성격에 다르겠지만 누구라도 들킬 위험이 매우 적고 보상이 큰 이런 파격적적 제안에 맘이 동요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 피해자에게 '그런 옷을 입고 다니니 그런 일을 당했지'라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어느 정도 도덕적 책임을 묻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질병이나 사고에 의해 몸져 누웠을 때에도 '통제 가능한 상황이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을 쏟는 관심도는 달라진다. 대구 지하철 참사, 최근의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 모두가 사건의 원인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느 정도 윗사람에 의해 피해를 최소화 할수 있었던 통제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법적인 처벌과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헬기조종사가 촌각을 다투는 추락 직전에도 인파가 적은 곳으로 이동해 죽음을 맞이하고 대참사를 면한 사건은 그 의미가 특별하고 안타깝기 그지 없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나라면 그 상황에서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성급한 예상 또한 '권위에 대한 복종'현상이나 상황의 가변성등이 그러한 가정을 무력하게 만드는 대표적 요인이다. 관객이 많은 상황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거나 도박판의 판돈이 커지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도덕적 규범위반에 대해 관대해지는 사람을 발견할 때,우리는 한치앞을 예측할 수 없고 내일의 일 또한 알 수 없기에 도덕적 사유와 행동을 요구하는 약속은 언제나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것이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악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의 사람의 심리를 매우 궁금해한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싶다>와 같은 시사교양 프로가 매주 적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떠오르는 사건마다 영화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것은 때로는 불편하고 꺼림칙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론 나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를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이러한 습관은 사회에 정의를 실현시키는 대의 만큼이나 중요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