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본 백제사 순간들 - 히스토리텔러 이기환 記者의
이기환 지음 / 주류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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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톺아보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샅샅이 훓어 가며 살피다라고 나온다. 저자는 <톺아본 백제사 순간들>이라는 책을 통해 690년동안 이어져 온 백제의 역사를 왕성이나 유물의 발굴을 통해 독자들에게 마치 당시에 서 있는듯한 느낌이 들도록 설명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아주 먼 과거의 일들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알아내고 해석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백제의 웅장하고 화려한 문화에 대해 찬탄하게 되었다. 사실 백제는 만주벌판을 차지한 고구려만큼 대영토를 지닌 강대국도 아니었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만큼 인상에 남는 국가도 아니다. 그래서 두 나라에 비하면 조명되지 않은 역사, 그저 조용히 존재하다가 사라진 역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이나 백제 예술의 정수라고 하는 금동대향로의 정교하고 복잡 기묘한 조각을 보면 백제의 높은 문화 수준과 위세가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저자인 이기환은 원래 스포츠를 담당하는 기자였다. 어느날 난데없이 편집국장으로부터 문화부로 발령을 받게 된 후,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관련된 여러 권의 책도 출판했다. 우연으로 바뀌게 된 저자의 인생 여정은 문화재 발굴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은 곳에서 뜻밖에 왕릉이나 보물급 유물을 발굴하는 우연의 순간들이 모여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층층이 쌓아 올린다. 1992년 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주차시설 확충공사를 위해 사전 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별다른 유구, 유물이 나오지 않았고 주차장공사는 강행될 태세였다. 그럼에도 아무래도 찜찜하니 한 번 더 파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발굴구덩이에서 국보중의 국보라 불리는 백제금동대향이 발굴되었다. 무령왕릉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돌덩어리를 치우고 들어가보았더니 그곳이 백제 무령왕이 잠든 고분이라니,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워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 순간은 고고학자로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무령왕릉 발굴과정을 시간대별로 자세히 기록한다. 발굴자들이 너무 놀라고 전국의 기자들이 총출동하여 주변이 난리가 난 현장은 마치 재난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송을 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무려 1,450년동안 잠들어 있던 무령왕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그날 하루 11시간동안 무려 1083,000여점의 유물을 수습했다. 무령왕릉 발굴현장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제대로 현장을 보존하고 관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당시는 1971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해될 만 하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노력한 고고학자 및 관계자들이었다.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등 백제의 주요 문화재는 아파트등 개발과정을 통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 개발논리에 막혀 우리의 옛 역사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을 막아선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찬란한 백제의 유물들을 박물관에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백제의 유물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살펴보고 주변국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세세하게 분석하는 이 책은 자칫 따분해보일 수도 있었지만, 여러 유물들을 발굴하게 된 계기와 현장의 분위기, 그리고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버무려 흥미진진한 책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발굴현장과 유물등 다양한 사진을 통해 천년이 넘는 옛일을 상상하면서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아래에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고대의 유물들이 아직도 많이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한편 일제 감정기에 귀중한 백제의 유물들을 마구 훼손한 가루베라는 일본인이 있다. 아마추어 도굴범이었던 가루베는 백제의 고분들을 여기 저기 들쑤셔 훼손하는가하면 일본이 패망하자 무려 1톤 분량의 유물을 가지고 도망을 쳤고 그중 상당분은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책을 통해 나타나는 가루베에 대한 적개심(?)은 저자가 백제의 유물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통해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알게 된다.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 이 땅에는 우리 조상들이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살아갔다. 그리고는 모두 죽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무덤과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고서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적 위인들이나 당대 사람들도 한때는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를 지닌 채 한반도 곳곳에서 실제로 살았었음을 느끼게 된다. 100년 의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잊힌 존재일 것이고, 200년 후의 사람들에게는 전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유한한 한계성으로 먼 과거나 미래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책을 통해 당대 사람들, 생각들, 역사들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라진 고리들은 상상을 통해 메꾸는 즐거움도 좋았다. 백제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는 이 책은 역사가 단지 고서속에 묻힌 고리타분한 활자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조상들을 우리들과 연결시켜주는 소중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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