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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 왜 지금 노무현인가
이장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좌우진영에 따라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18년동안 장기집권을 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전과 독재라는 양극단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공과 과,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공은 공으로 인정하고, 과는 과대로 반성을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자신의 논리에만 사로잡혀 특정 대통령에 대해 찬양일색이거나 비난일색인 경우가 많다. 바야흐로 지금은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주관적 잣대가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고 인물을 평가하고 거기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뽑아 국민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점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돌아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만큼 존경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참여정부였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일어났던 커다란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당시 대통령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관련된 주변 정치인들과 정당들의 역학관계, 경제상황, 그리고 요동치는 국제정세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한 주제의 마무리는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정치인들의 대담을 통해 그 시대에 내린 결정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많은 정치인들중에 일부는 오늘날까지 정치판에서 오르내리는 인물들인지라 그들의 과거행적을 통해 정치는 정권에 따라 단절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연속적인 흐름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치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그 시대가 정확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다수의 정치인들이 꾸려 나가는 것이므로 정치인 하나 하나의 의식이 시대흐름을 만든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책에서 눈에 띄었던 부분은 노무현의 개혁에 대한 생각이었다. 과대해진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한다. 당정을 분리해 대통령의 당무개입을 금지한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일을 맞추고 국회의원은 중선거구제를 통해 선출한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의의 중심에 있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십년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되었더라면 오늘날 정치판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양당체제속에서 비생산적인 소모전만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제3당이 살아남아 극단적인 갈등을 줄이고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계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버리더라도 정치판을 바꿔 보고자 하는 노무현의 시도는 결국 무위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책을 읽으면서 신념은 있지만 그것을 구체화시켜나가는 노련한 기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내편으로 만드는 인고의 마음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당정분리를 통해 하향식, 수직적 정치문화를 타파하고 돈 안드는 투명한 선거를 만들고자 했지만 노무현 자신은 정작 당정분리로 인해 당정이 유리되고 고립무원에 빠지는 처지가 되었다.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정치상황에서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세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던지고 보는 정치를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노무현 자신의 성정과 더불어 대통령 자리에 대해 공부가 부족했던 이유도 있다. 저자는 실제로 노무현은 인권 변호사로 시작한 정치 여정에서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지만 국제,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연유로 미국이나 기업, 노사에 대한 생각들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많이 변화되었는데 이러한 부분은 상대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채 링에 오른 권투선수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재조명해 볼 때 한미FTA, 깨끗한 선거, 행정 전산화등은 시비의 여지가 없는 노무현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노무현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고졸이라는 한계를 끊임없는 독서와 토론으로 극복해 나갔다. 잘 해보고자 하는 열정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다.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여유롭게 살 수도 있었지만 부림사건으로 인권변호사로 전향한 이후에는 없는자의 편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삶은 극단에서 극단을 오갔다. YS의 추천으로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판에 들어섰지만 명분과 대의를 기치로 여겼고 소신정치를 이어나갔다. 5공화국을 청산하는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국회의원으로 주목받았다. 국회의원 당선에 따놓은 지역을 스스로 던져 버리고 험지로 가서 낙선했다. 그리고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극적으로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 노무현은 명분과 도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를 실천하지 못할때는 고뇌하기도 했다. 이처럼 도덕성과 명분을 중요시 여긴 노무현의 말로가 가족의 비리로 인해 비극적으로 끝났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노무현 정신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은 자신을 내던지더라도 정치를 바꿔보고자 했던 마음,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순수한 이상, 그리고 소탈했던 행적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렀다. 오늘 노무현을 다시 소환해보는 것은 대의를 생각하지 않고 너나없이 정파의 이익과 진영의 논리를 가지고 싸움박질이나 하는 정치판에 국민들이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도 많지만 서툴고 과도 많은 대통령이었다. 이제는 공과 과를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노무현이 가졌던 정치에 대한 대의를 기성정치인이나 국민들이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정권의 미래를 열어가려는 즈음에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