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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일하는 기요세는 연인인 마쓰키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한다. 사실 마쓰키는 난독증인 친구 잇짱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숨겨왔다. 확실히 마쓰키는 기요세에게 의심받을 행동을 했다. 그렇다고 기요세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쓰키가 잇짱과의 일을 털어놓으려 했을 때, 기요세는 상점에 쓰인 악필을 보고 비웃는다. 이 모습을 본 마쓰키는 기요세가 자신의 친구인 잇짱도 비웃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말문을 열지 못한다. 이 둘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려던 마쓰키를 오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 결국 이들은 의절하기에 이른다. 기요세는 ADHD인줄도 모르고 시나가와를 일도 제대로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마오를 변화시키려 하지만 이것은 교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이 책은 고의는 아니지만 각자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 서로간에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가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을 만드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진정으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잘 알고 있으며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더라도 그 말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강 기슭에 아래에 깔려 있는 돌들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서로가 서로의 돌을 꺼내 상대방에게 보여준다면? 저자는 등장인물 각자의 돌을 끄집어내어 서로를 이해시킴으로써 화해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 화해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시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억지로 마오의 마음을 열 수는 없다. 마오가 가진 돌이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무겁고 크기 때문일수도 있고 아니면 마오 자체가 그러한 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태도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상대에 대한 가장 큰 배려일 수도 있다. 책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책을 통해 마음속의 편견이 조금은 가신 듯하고, 내 자신이 조금은 더 성숙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