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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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제목에서 못생긴 서울이란 어떤 모습의 서울을 뜻하는 것일까? 아마도 강남이나 일산처럼 정비된 구역에 맞춰 설계된 반듯하고 깨끗한 도시를 일컫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못생긴 서울은 구도시, 그것도 산동네처럼 허름하고 올망졸망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볼품없고 위생적이지 못한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생긴 서울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터를 잡고 거주하던 원주민들은 더 나쁜 주거환경으로 옮겨지는등 삶의 하부구조가 흔들려야 했다. 이 책은 그 과정들에 대해서 소개해 주면서 바람직한 재개발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노원구 중계동에 백사마을이 있다.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산동네다. 이렇게까지 남게 된 것은 서울시가 2018년 이곳을 재개발을 하되 주거지보전사업을 통해 원래 동네의 지형, 터, 골목길은 그대로 보존한채 개발을 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산동네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서 보존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재정착률도 높여서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면 개발과 보존의 장점들을 잘 흡수한 좋은 결정 같아 보이지만 이 계획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역시 문제는 비용에서 발생한다.

재개발의 핵심은 최대한 고층의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용적률을 한층 끌어 올려 집을 지으면 건설사뿐 아니라 원래 거주하던 원주민들도 헌집이 새집으로 바뀌고 여분의 돈도 벌게 된다. 하지만 산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새집으로 이주할 분담금을 마련할만큼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은 결국 더 허름한 곳으로 이사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재개발이나 뉴타운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이들중 상당수는 반지하방이나 고시원, 옥탑방으로 이사를 했다는 정황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책에서는 우리가 못생긴 곳이라고 말하는 곳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 즉 그만한 가치들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재개발로 쫒겨난 한 할머니는 근방에 있는 더 허름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더 외곽의 값싼 방을 구할 수도 있지만 종이박스등 폐지를 고물상에 팔아 남기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할머니 입장에서 전혀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뿌리내린 생활터전을 쉽게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개발 과정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려고 했으나 이러한 혜택을 받은 사람은 소수일뿐 상당수는 근처의 고시원등으로 옮겼다고 한다. 외곽의 임대주택으로 터전을 옮기면 생계수단인 새벽 인력시장과 거리가 멀어져서 일감을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란다. 우리 모두는 그곳에 거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 생긴 도시에도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개발을 할 때는 원래 살던 사람들이 왜 그곳에 살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만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도시에서 일정한 못생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때는 못생긴 도시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집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2022년 여름 폭우속에서 일어난 신림동 반지하 참사로 인해 40대 여성과 10대딸, 10대 여성의 언니가 물에 잠겨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사건후 서울시는 반지하 집을 모두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거주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 유형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면서......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 살 곳을 제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이들이 반지하게 거주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당시 비극을 맞은 그 가정은 우리 도시에 반지하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반지하지만 도심에 있고, 반지하이지만 자녀에게 따로 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반지하이지만 세 들어 살지 않고 저렴하게 구입한 ‘내 집’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반지하에 살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무조건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성급하다. 물론 반지하는 차츰 없애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겠지만 먼저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왜 그곳에 거주하는지 들여다보고 대안을 같이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고 대안이 없을 수도 있지만..... 무조건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제거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게 된다.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한다.



종로구에 있는 창신동은 달동네지만 산업 측면에서는 의류산업의 중요한 생산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창신동과 인접한 동대문 일대에는 평화시장, 굿모닝시티, APM쇼핑몰, 두타몰등 의류 도소매업이 밀집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창신동에는 옷을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공정별로 분업하는 소규모 가내수공업 행태의 봉제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곳 봉제공장에서는 옷을 디자인한대로 본뜨는 패턴, 재단, 재봉, 마도메, 시야게등을 전문으로 하는 공장들이 골목에 포진되어 있다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들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고 이곳을 재개발하면 봉제 생태계는 줄줄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재개발에 부정적이다.

재개발이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자생적으로 키워온 활력마저 꺼트린다면 과연 누가 그 재개발을 옹호할 수 있을까요? 창신동에는 여전히 똘똘 뭉쳐 재개발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온통 용적률을 얼마나 더 받을 수 있는지에 쏠려 있지, 봉제 산업 생태계의 존립 따위에는 없습니다. 수천수만 명의 삶이 엮인 생태계쯤은 일소해도 괜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무모한 시도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산동네등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함인가? 시대가 변하면서 못생긴 서울을 갈아엎고 잘생긴 서울로 탈바꿈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재개발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선행조건이 있지 않을까? 원래 살던 원주민들의 삶의 질이 더 추락하지 않도록 최대한 대책을 세운후에 추진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본의 논리에만 얽매여 기득권층의 이득만 추구하는 재개발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법의 논리만 내세운채 옹호하는 정부라면 그 정부가 존립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사라져가는 것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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