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속으로 - 영국 UCL 정신 건강 연구소 소장 앤서니 데이비드의 임상 사례 연구 노트
앤서니 데이비드 지음, 서지희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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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깊숙한 심연의 세계를 다룬 책이다. 흥미롭고 조금은 신기한 증상을 앓는 환자들을 통해서 마음속의 신념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처등이 신체적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심인성 질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몸과 마음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었다는 심신일원론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에마는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하루종일 침대에 누운채로 지낸다. 아무 의식이 없는 듯이 마치 식물인간처럼 말이다. 의사나 주변의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에마는 중등학교로의 진학을 하던 시기부터 두통과 구토감 피로등을 호소하면서 병세가 악화 되었다. 그렇게 병원 침실에 누운채로만 생활하던 에마에게 저자는 전기경련요법을 시행한다. 뇌에 전기적 충격을 주어서 뇌부위를 활성화시키는 요법이다.

 

몇차례 시행 후 에마는 기적처럼 말을 하고 심지어 다른 것에 의지해 걸으려고도 한다. 하지만 몸속에 바이러스가 신경계에 침투해 자신이 식물인간처럼 지내야 한다는 믿음에 빠져 있던 엠마는 의사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원래 식물상태로 돌아간다. 이 부분에서 사람의 믿음과 신념이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극단적인 사례지만 잘 알 수 있다. 엠마는 불우했던 시절과 아버지의 과보호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도 있었겠지만, 원인이야 무엇이었든 스스로가 식물인간처럼 지내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한 선택이었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며 두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첫 번째는 머릿속에 있는 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며 먹고 걷고 일하는등 모든 행위들의 첫 출발은 로부터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질환 역시 에서 비롯된다. 뇌에 도파민이 과잉으로 많으면 조현병이 발병하고, ‘에 도파민이 적으면 파킨스병이 일어날 확률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현병과 파킨스병은 일반적으로 양립할 수 없지만 제니퍼는 조현병을 치료하면서 치료제로 쓰였던 약으로 인해 조현병까지 생기게 되었다.

 

교통사고 후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패트릭은 자신과 세상이 모두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는 증상을 얻게 되었다. 여행중 만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케이틀린은 왜곡된 신체상을 가졌고 이는 섭식장애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기대와 자폐동생, 학교라는 스트레스의 압박에 시달렸던 크리스토퍼는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감정적 갈등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전환장애환자다. 요추천자검사도중 완전히 몸이 마비가 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경두개 자기 자극을 통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후 급속히 회복되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가 있다. 고작해야 주먹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가 이 모든 세상을 만들어 낸다. 또한 에 흠집이 나는등 오류가 생기면 오작동을 일으켜 각종 질환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사실은 정말 신비롭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 의 창작물인 것이다.

 

두 번째로 느낀점은 책의 사례에 소개된 환자들은 모두 부유한 영국이라는 나라의 의료시스템덕에 의료혜택을 보았다는 것이다. 신체적인 외상도 아닌, 정신적인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생활수준이 높지 않은 나라였다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채로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고 나름 잘 사는 나라기에 많은 의료혜택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계층간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또한 취업난등으로 헬조선이라고 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북한이나 가난한 아프리카국에 태어나길 희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뽑기의 행운을 타고 나야만 잘사는 나라에 태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천운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책을 읽으며 별 관련도 없을 것 같은 이런 생각이 왜 갑자기 들었는지 나도 모르지만 나름 괜찮은 나라에서 태어나 이런 책도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현실에 작은 행복감을 느낀다. 이것도 모두 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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