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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ㅣ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평점 :
연어들은 다음에 태어날 생명을 위해, 그렇게 희생을 하고 돌아간다. 이 책에서는 그런 연어의 입장이 되어서, 연어들의 일생을 보여준다. 이로써, 이 책을 읽은 우리들은 연어를 옆에서 볼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이제는 연어를 옆에서 볼 수 있다. 누구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연어를 옆에서 보게 될 것이다.
연어는 모천회귀성 물고기이다. 연어들에게는 그렇게 끝나는 인생이 당연한 생명의 순리이지만, 나는 처음에 연어들의 이 인생이 너무나 불쌍했고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은빛연어와 눈맑은 연어의 이야기로서 마음속으로 이야기 하는 법을 배우고 연어들이 어떻게 알을 낳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는 힘을 가지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이들도 이 책을 본다면 무언가 생각에 잠기길 바란다. 짧지만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니까 말이다.
자주적인 독서노트를 쓰기로 결심!한 중학생입니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길래-_-하하
[인상깊은 구절]
#연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연어를 옆에서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등굽은 연어는 비틀어진 등으로 어떻게든 헤엄을 치려고 한다. 그 고통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그 상처가 왜 아름다운 것인지 선생님은 모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그가 짓밟히면서도 즐거워하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야. 징검다리는 물의 흐름을 막지도 않으면서 의연하게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구나. 나는 저 징검다리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지...... 출처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연어’를 떠올리면 그 일생에 대해 대부분 연민이 솟거나 마음이 사무친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연어’를 읽기 전의 나는, 연어라는 물고기에 대해 그렇게 동정심 가득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태어나자 모천을 떠난 치어들은 저 먼 알래스카까지 헤엄쳐 가고 또 산란기가 되면 모천으로 돌아와 알을 산란한다. 그야말로 모천 회귀성 물고기인 연어. 나는 어쩌면 그들의 삶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모천으로 회귀하여 알을 낳는 것을 그들의 삶의 이유로 여기고 사력을 다하여 본능과 싸워 이겨내는 연어들. 그들의 성스러운 행동을 나는 그저 무엇에 홀린 듯 부질없고 가치 없는 짓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연어들에게 있어서는 ‘옆에서 바라보는 눈’이었기보다는 ‘위에서 바라보는 눈’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아름답게 여길 줄 몰랐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아름답게 여기며 바라본다면 위에서가 아니라 옆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위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연어의 행동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연어’를 원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연어들은 위에서 바라보는 눈보다는 옆에서 바라보는 눈에 목말라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연어들의 모천으로 회귀하여 산란하는 행위는 그저 본능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인 줄 만 알았다. 그에 따라 그들의 모천회귀를 그다지 연민이 담긴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안도현’님의 ‘연어’에서는 모든 연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은빛 연어’는 모천으로 회귀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본능적으로 모천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은빛 연어’는 그 이유를 찾고 더 나아가 산란이 자기 삶의 이유라는 것까지 깨닫게 된다.
시험의 연속인 삶에서 연어들에게 삶이 내린 커다란 시험은 바로 폭포였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폭포를 뛰어넘는 것이 삶의 이유를 산란으로 여기고 있는 연어들에게는 굉장히 무모하고 쓸데없는 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어들은 기어코 폭포를 뛰어넘는다. 뱃속의 알들에게 뛰어오를 때의 그 기쁨과 환희를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삶의 목표를 보다 완벽히 이루기 위해, 즉 산란이 삶의 목표이나 보다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기 위해 쉬운 길을 마다하고 폭포를 뛰어오르는 연어들의 모습에서 나는 여태까지 느낄 수 없던 그 무언가를 느꼈다.
솔직히 ‘연어’를 읽고 나서는 나도 다른 사람처럼 연어의 일생에 마음이 사무치거나 보다 동정어린 눈빛으로 연어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 전에 오히려 부러움 비슷한 것을 느꼈다.
보다 완벽한, 보다 훌륭한 알을 낳기 위해 끝없이 도전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삶의 완벽한 목표 달성에 집착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연어의 삶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그리고 모든 삶은 시험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험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험은 지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시험이 눈앞에 닥쳐온다. 그런 시험에서 보다 쉬운 길이 있다면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쉬운 길을 마다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쉬운 길을 마다할 이유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탄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험난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험난한 삶 뒤에 얻어지는, 결코 순탄한 삶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교훈의 가치에 대해 사람들은 그다지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험난한 삶을 살고 나서도 잘 느끼지 못하는 교훈의 가치를, 순탄한 삶과 험난한 삶의 선택의 갈래에 놓였을 때 느끼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험난한 길보다는 보다 순탄한 길만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인 나에게 있어 당당하게 험난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연어들의 삶은 부러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연어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일생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는 것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인간들보다도 당당한 선택을 하는 자신들에게 동정심을 갖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삶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 대해 ‘삶의 이유’와 ‘삶의 목표’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삶의 이유가 삶의 목표라면, 삶의 목표는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하겠다.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야말로 삶을 지속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며,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삶의 목표 역시 달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이유를 찾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삶은 그 때부터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삶의 목표를 보다 훌륭하게 이루기 위해 보다 쉬운 길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험난한 길을 택하는 연어의 일생에서 앞으로도 내가 연민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시험의 연속일 나의 삶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리보다는 선택 뒤에 내게 얻어질 것들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