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터 : 라스트 미션 - Transporter 3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트랜스포터>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

<트랜스포터-라스트미션>을 보기 전까지 케이블 방송에서 가끔 마주치는 트랜스포터를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트랜스포터-라스트미션>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슨 바람이 불어 극장으로 달려가 <트랜스포터-라스트미션>을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

먼저 완벽한 운전 솜씨에 반해버렸다. 우와, 와, 햐, 감탄사를 연신 쏟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악당을 혼내주는 장면도 폼이 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물 속에 차가 빠졌을 때의 장면이다. 차 위에 앉아서 물 밖으로 나올 때의 표정,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ㅋㅋ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주인공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싶었었는데, 그것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트랜스포터-라스트미션>의 전체적인 느낌이 좋았기에 모든 게 허락되는 모양이다. ^^

이 영화 덕분에 주인공이 출연했던 다른 영화들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인질링 - Changel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A true story 라는 세 단어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었다. 그리고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존 말코비치가 등장한다. 제목 <체인질링>의 의미에서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지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진지하다. 진지한 영화가 가끔 저지르는 실수는 스토리 전개가 너무 지루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를 연기하는 안젤리나 졸리와 약자를 도와주고자 하는 존 말코비치의 연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전사 그리고 섹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는 이 영화에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리고 악역에만 어울리는 외모라고 생각해 왔던 존 말코비치 또한 이 영화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더불어 이 영화를 더 빛나게 하는 또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OST.
잔잔하면서도 희망이 느껴지는 듯한 음악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더 좋아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먼자들의 도시 - Blindn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올 초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눈먼자들의 도시>가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동안 책장에 얌전히 모셔두었던 책을 꺼내들었었다. 운전을 하다, 길을 걷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가상이기에 정말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로 두렵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단지 인간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또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성급하게 판단할 때는 없었는지,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쫓은 적인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래 기다리던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가 개봉했다.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자신의 소설로 만든 이 영화를 본 후, 참 잘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 기대가 컸었다. 소설에서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을 영화에서 디테일하게 그린 장면 (예 : 모두 눈이 멀어서 누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호텔 직원이었던 사람이 벌거벗고, 검은 안경을 쓴 여자가 눈이 멀었다며 소동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할 때, 슬그머니 선글라스를 빼는 장면)을 만날 때면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의사의 아내가 홀로 져야만 했던 짊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소설 보다는 영화에서 더 크게 와 닿았다. 의사의 아내를 연기한 줄리안 무어의 표정과 몸짓에 묻어있는 절박함과 두려움이 비주얼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화에서 더 강렬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분명 참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품으로의 접근에 욕심이 있는 분이라면 영화보다는 소설을 먼저 접하는 게 좋을 듯싶다. 그러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못 찾겠다, 꾀꼬리~

 

 

내게는 문학작품을 구분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하나는 한없이 슬픈 작품, 또 하나는 한없이 즐거운 작품, 나머지 하나는 한없이 고통스러운 작품, 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작품,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단순하지만 기억하기 쉬운 구분법이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내게 행복을 준다.  하루는 배꼽이 빠질 듯 웃고 또 다른 하루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펑펑 울고 어느 날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내 감정이 백퍼센트 이입되어 일어나는 반응이기에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들이 사라지면서 내 마음은 한층 더 가벼워지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기쁘게 받아들인다.

 

나는 소설 <완득이>를 읽은 후 나의 구분 방식 중 어느 부분에 포함시켜야할 지를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득이>를 '이도 저도 아닌 작품'에 포함시켜야겠다고 결정했다.  <완득이>는 큰 소리로 웃을 만큼 재미있는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물샘을 자극해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소설도 아닐 뿐더러 힘겹고 고통스런 주인공의 삶 때문에 나 역시 힘들고 고통스러워지는 소설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득이>를 '이도 저도 아닌 작품'에 포함시키려니 뭔가 개운치가 않다.   내가 말한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란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을 말하는 것인데, <완득이>는 시원한 웃음이나 뜨거운 눈물은 없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글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은 아니란 말이다.  지금까지 지켜오던 네 가지로만 문학작품을 구분하는 건 역시 무리인가.  <완득이> 때문에 일이 복잡하게 되어 버렸다.

 

완득이 아버지는 장애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난장이이다.  타인의 관심과 시선이 반갑지 않은 완득이와 완득이 아버지는 숨은 듯,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삶에 한 사람이 끼어든다.  그는 완득이의 담임선생님, 똥주이다.  어느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었던 완득이 식구에게 똥주는 넉살좋게 다가간다.  그리고 똥주와 가까워지면서 완득이 가족에게는 지금까지 시도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변화가 일어난다.  완득이는 그동안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어머니와 만나게 되고 친구를 사귀게 되며 킥복싱을 좋아하게 되면서 목표를 갖게 된다.  그리고 빛이 없는 지하에서 춤을 추던 완득이 아버지는 지상으로 옮겨 다시 춤을 춘다.

 

소설 <완득이>에서 주인공 완득이보다 더 눈길이 가는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완득이의 담임선생님 똥주가 그이다.  그의 입은 걸쭉하다.  그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비호감 선생님이다.  완득이가 똥주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이해될 만큼.  그러나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감춰져있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걸쭉한 입은 정 많고 따뜻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연막전술이었을 뿐이다.  똥주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완득이 부자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용기를 주는 인물이다.  나는 똥주를 보면서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임창정이 연기한 필제가 떠올랐다.  툭툭 던지는 무심한 말투와 귀찮아하면서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약자 편에 서는 마음 약한 필제는 똥주와는 조금 다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럽고 외로운 세상에서 나를 알아봐주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 필제는 1번가에 기적, 즉 희망을 가져다 준 인물이기에 완득이 가족을 그늘에서 햇볕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준 똥주의 모습에서 필제를 떠올렸던 것 같다.



 

세상 밖으로 첫발을 내딛은 완득이의 밝고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맺고 있다.  상처를 회복하고 한층 성숙해진 완득이가 대견하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응원해 주고 싶다.  완득이는 싫어하겠지만, 옥상에서 완득아~ 크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완득이가 좋아졌다.

 

 

 

이 동네 집들 진짜 따닥따닥 붙어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 하고 외쳤다.  술래에 재미를 붙였는지 오밤중에도 찾아댔다.  그래도 똥주가 순진하기는 하다.  나를 찾았으면 자기가 숨을 차례인데, 내가 또 숨어도 꼬박꼬박 찾아줬다.  좋다.  숨었다 걸렸으니 이제는 내가 술래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찾을 생각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찾아 힘들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 쉬엄쉬엄 찾고 싶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  p2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가까운 곳에 작가 이청준님과 동일한 이름을 쓰시는 신부님이 계셔서 간혹 헷갈리는 분, 영화 서편제와 천년의 학의 원작자로 유명한 분, 그 분의 소설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2008년 1월 초에  읽을 기회를 얻었다.  주위를 둘러 볼 줄 모르는 성격이 독서에까지 미쳐 다양한 분야, 많은 작가를 만나지 못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이청준님의 소설을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춘기 때 고민했을 법한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에 대해 아직 계속 생각 중이며 지금도 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그에 대해 섣부른 평가를 내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 평가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하물며 이청준님에 대해서는 귀동냥한 지식 뿐 그 분의 글을 직접 접하여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만나기 전 미리 어떠한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큰 기대감에 많이 설레었지만 반대로 그 분의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지레짐작하여 겁을 먹기도 하였다.  나는 이렇게 이청준님의 소설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맞이하였다.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에는 총 7편의 단편소설과 총 4편의 에세이 소설이 담겨 있다.  이 소설에는 가슴에 사연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사연은 시대와 운명 탓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내 피부로 직접 느껴보지는 않았지만 숨을 쉬기 시작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서 익숙해져버린 감정이다.  고국과 고향, 그리고 어머니로 대신할 수 있는 그것, 그것은 바로 '정한'이다.

 

여러 단편들 중 책 제목이 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에서는 지금의 우즈베크 공화국 수도 타쉬켄트 시에서 정착하기 위해, 즉 살아남기 위해 고국과 고향, 고려인 그리고 이름까지 모두 잊어야 했던 유일승 씨가 주인공이다.  유일승 씨는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고국을 방문하여 혈육을 찾을 결심을 하며 드디어 2002 월드컵 때 고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일승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치 않다.  함께 온 일행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동생 재승 씨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끝내 홀로 고국을 떠난다. 

 

자네, 내가 어렸을 적 고국을 떠난 뒤로 그 조국을 두 번씩이나 잊어야 했다고 한 말 기억하는가.  처음 한 번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조국과 조국의 전쟁을 용서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런데 이제 나는 다시 세 번째로 조국을 잊어야 했고, 잊어가고 있는 참일세.  이번엔 여기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종생까지 살아가야 하는 내 삶을 용서하기 위해서 말이네.  (p78-79)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는 역사와 이념의 피해자인 주인공의 한을 담고 있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주인공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다.  이제 그만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이제는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냐고, 주인공에게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상처는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칠 수도 없이 마지막까지 짊어지고 갈 자신의 짐이다.  너무도 쉽게, 아니 죽을힘을 다해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낸 것에 대해 참고 또 참아 스스로 용서하는 길 뿐.  

 

어떠한 원인으로 피해자가 되었든 상처 입은 자의 마음은 모두 같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잊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다시 또 떠오르는,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펼친 이 소설은 처음에는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이청준님의 문체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우리 정서인 '한'으로 통해서 일까.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떨림, 먹먹함을 느끼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