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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못 찾겠다, 꾀꼬리~
내게는 문학작품을 구분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하나는 한없이 슬픈 작품, 또 하나는 한없이 즐거운 작품, 나머지 하나는 한없이 고통스러운 작품, 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작품,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단순하지만 기억하기 쉬운 구분법이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내게 행복을 준다. 하루는 배꼽이 빠질 듯 웃고 또 다른 하루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펑펑 울고 어느 날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내 감정이 백퍼센트 이입되어 일어나는 반응이기에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들이 사라지면서 내 마음은 한층 더 가벼워지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기쁘게 받아들인다.
나는 소설 <완득이>를 읽은 후 나의 구분 방식 중 어느 부분에 포함시켜야할 지를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득이>를 '이도 저도 아닌 작품'에 포함시켜야겠다고 결정했다. <완득이>는 큰 소리로 웃을 만큼 재미있는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물샘을 자극해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소설도 아닐 뿐더러 힘겹고 고통스런 주인공의 삶 때문에 나 역시 힘들고 고통스러워지는 소설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득이>를 '이도 저도 아닌 작품'에 포함시키려니 뭔가 개운치가 않다. 내가 말한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란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을 말하는 것인데, <완득이>는 시원한 웃음이나 뜨거운 눈물은 없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글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은 아니란 말이다. 지금까지 지켜오던 네 가지로만 문학작품을 구분하는 건 역시 무리인가. <완득이> 때문에 일이 복잡하게 되어 버렸다.
완득이 아버지는 장애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난장이이다. 타인의 관심과 시선이 반갑지 않은 완득이와 완득이 아버지는 숨은 듯,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삶에 한 사람이 끼어든다. 그는 완득이의 담임선생님, 똥주이다. 어느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었던 완득이 식구에게 똥주는 넉살좋게 다가간다. 그리고 똥주와 가까워지면서 완득이 가족에게는 지금까지 시도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변화가 일어난다. 완득이는 그동안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어머니와 만나게 되고 친구를 사귀게 되며 킥복싱을 좋아하게 되면서 목표를 갖게 된다. 그리고 빛이 없는 지하에서 춤을 추던 완득이 아버지는 지상으로 옮겨 다시 춤을 춘다.
소설 <완득이>에서 주인공 완득이보다 더 눈길이 가는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완득이의 담임선생님 똥주가 그이다. 그의 입은 걸쭉하다. 그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비호감 선생님이다. 완득이가 똥주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이해될 만큼. 그러나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감춰져있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걸쭉한 입은 정 많고 따뜻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연막전술이었을 뿐이다. 똥주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완득이 부자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용기를 주는 인물이다. 나는 똥주를 보면서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임창정이 연기한 필제가 떠올랐다. 툭툭 던지는 무심한 말투와 귀찮아하면서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약자 편에 서는 마음 약한 필제는 똥주와는 조금 다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럽고 외로운 세상에서 나를 알아봐주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 필제는 1번가에 기적, 즉 희망을 가져다 준 인물이기에 완득이 가족을 그늘에서 햇볕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준 똥주의 모습에서 필제를 떠올렸던 것 같다.
세상 밖으로 첫발을 내딛은 완득이의 밝고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맺고 있다. 상처를 회복하고 한층 성숙해진 완득이가 대견하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응원해 주고 싶다. 완득이는 싫어하겠지만, 옥상에서 완득아~ 크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완득이가 좋아졌다.
이 동네 집들 진짜 따닥따닥 붙어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 하고 외쳤다. 술래에 재미를 붙였는지 오밤중에도 찾아댔다. 그래도 똥주가 순진하기는 하다. 나를 찾았으면 자기가 숨을 차례인데, 내가 또 숨어도 꼬박꼬박 찾아줬다. 좋다. 숨었다 걸렸으니 이제는 내가 술래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찾을 생각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찾아 힘들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 쉬엄쉬엄 찾고 싶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 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