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자본론 -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모종린 지음 / 다산3.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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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자본론? 너무 거창한 제목 아니야?

골목길하면 좁은 길목, 작은 가게들이 생각난다. 구멍가게, 문방구와 더불어 후미진 곳에서 나쁜 친구들을 만나면 사건 사고에 휘말리기도 한 다소 위험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엄마는 늘 "큰 길로 다니라"는 말을 하곤 하셨다. 이런 골목길의 느낌을 생각한다면 '자본론'이라는 개념은 사실 거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처럼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말이 달라진다. 분위기 좋고, 아기자기한 여러 종류의 상점이 모여 길을 형성하고, 그 길 자체가 브랜드화 되어가고 있다. 이태원 경리단길, 홍대, 연남동 등 다양하게 늘고 있다.


골목길에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알쓸신잡2에서 건축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전해준 유현준 교수님은 골목길 상권의 매력은 '골목길의 밀도와 우연성'이라고 설명하였다. 똑같은 건물들과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대로변과는 달리 골목길 상점에는 각기 다른 매력과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유니크함, 그리고 어떤 것을 만날지 모르는 우연함이 가득해서 골목길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홍대의 인디문화, 문래 창작촌 같은 문화를 형성하면서 골목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골목이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 '차이나는 클라스 : 조정구 편'에서 조정구 건축가님의 골목에 대한 시선을 볼 수 있었다. <골목길 자본론>을 읽는 독자로서 골목이라는 같은 주제에 관심이 가득했다. 조정구 건축가는 사람과 동네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동네가 낡았다는 이유로 건물을 부시고 밀어서 아파트 단지로 만드는 현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동네가 사라짐은 또다른 의미로 골목길도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재개발 한 후에 다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재개발 이전의 조건과는 전혀 다른 높은 월세, 정형화된 문화권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즉, 골목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조정구 건축가는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골목길 자본론> 모종린 교수님은 상업의 자본으로 이야기하지만 두분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골목의 의미는 같다. 바로 '추억' 과 '문화'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 가면 정겨운 이유는 골목마다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마다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어떤 동네는 집앞마다 의자가 있는 동네도 있었다. 잠시 쉬었다갈 수도 있고 집에 계신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태원 경리단길에는 다양한 이국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솔직히 그런 것들이 없다면 그 골목 골목 비탈길을 누가 올라갈까? 문래동 창작촌은 문닫은 철강촌을 예술인 마을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공방문화로 길목을 장식한다. 


유명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 집 주인들은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 자신이 소유한 집의 가치가 올라가게 될 것이고, 새집으로 이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반수의 찬성으로 어쩔수없이 나가야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 새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돈의 분담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점도 마찬가지이다. 유명해지면 가게 주인은 더 높은 월세를 원할 것이고, 처음과 다른 조건에 다른 골목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명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힘쓴 주역들이 내몰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가능성과 위기가 함께하는 골목길을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모종린 교수님은 'C-READI모델'을 주장한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도시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6가지 조건을 충족한다.(p329) 이러한 요건들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었다. 

기억에 남으면서도 의문점이 생겼던 부분은 '건물주도 장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에서 나온 말이다. 골목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장기적인 정책이라는 말과 함께 남겼다. 이 부분은 내가 가진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이런 문제점의 가장 큰 대안은 '법에 의한 규제'라고 생각했다. 책에서도, 건축가님도 법에 의한 규제를 큰 대안으로 말하지 않는다. 조정구 건축가의 "서로의 욕망을 양보하면서 조화로운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엔딩멘트를 듣고몇번이고 무릎을 쳤다. 아마도 임차인과 건물주의 공동체 형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정구 건축가는 말했다. "건축은 사람과 사람 시간과 시간을 이어야 한다." 이는 건축 뿐만이 아니다. 골목도 마찬가지이다. 사람과 사람 시간과 시간을 연결하는 골목이어야 역사이고,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무한 가능성을 가진 자본으로서의 작은 골목길 하나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씨앗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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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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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3종류


 신년 초 tvN 어쩌다 어른에서는 2주에 걸쳐 철학자 강신주 님을 모시고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한주도 빼지 않고 열심히 시청하는 시청자이자, 강신주 철학자님의 팬으로 2주의 시간은 생각할 거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죽음'과 '늙음'에 관한 것은 마주하기 어려운 주제였는데 강한 직면과 재미있는 입담으로 한걸음 마주하도록 하였다. 

 죽음에는 3종류가 있다고 했다.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 사람들은 나의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지만, 사실 가장 슬픈 것은 '너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고 했다.  


 패드라 패트릭의 소설 <아서 페퍼>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아서의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아내가 죽은지 1년이 되었지만, 아내가 살아있던 때처럼 같은 패턴으로 살고 있었고, 아내의 유품조차 정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세상과 단절한 채, 잠을 깨기 싫을 정도로 아서는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강신주 철학자님이 말한 너의 죽음이 아서에게는 아내 미리엄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계속 지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아서 페퍼는 미리엄의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아내의 털부츠 속에서 8개의 장식이 달린 팔찌를 발견하며 아서의 생활은 180도 변한다.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 사실 그냥 아내의 것이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아서 페퍼는 그녀의 생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고, 자세히 보니 코끼리에는 번호도 적혀 있어 전화를 걸고, 찾아가보면서 그의 여행은 시작된다. 그의 하루 생활의 패턴은 여행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고, 여행은 진전될수록 자신이 알지 못했던 또다른 아내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서 이전의 삶은 스펙타클한 모험가였다. 자유분방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질투를 하기도 하지만 미리엄이 답답하지는 않았을지 걱정을 하는 아서의 모습에서 정말 사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험가였던 그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아서에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말 괜찮은 남자라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었다.


"아서는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고 더 속 깊은 사람이었고,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마음에 들었다." -p226


 아서의 여행은 사랑하는 아내가 남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자 시작했지만, 여행을 통해 아서는 자기 자신을 치유했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무언가를 갈망함을 느꼈고, 성장했다. 처음에 미리엄이 왜 이런 팔찌를 남겼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그녀는 이런 큰 그림을 미리 그리고 그에게 남겼던 것일까?


세대간의 회복


 아서와 자녀들은 경직되어 있는 관계를 볼 수 있었다. 루시는 종종 아서를 돌아보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늙어가는 모습에 책임감이 앞서는 모습을 보았다. 철학자 강신주는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을 '무상'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다 어른 강의에서는 자본주의가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한다고 하였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냥 조금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에서의 거리감, 그냥 큰 장벽이 있는 것 같았다. 아내가 있을 때에는 아내가 중간에서 관계를 잘 유지했지만, 아내가 없으니 자식들까지 모두 잃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루시는 아서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에 요양병원을 알아봐야 하는지 걱정했고, 댄은 무관심했다. 


 철학자 강신주는 말했다. 세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어준 것 같은 친밀감의 경험이라고. 하지만 현대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교류와 소통이 단절되어 가고 있다고 무섭게 말했다. 이렇게 분열되어 가는 사이에 더 커진 것은 권력과 자본이라고 말하며 사회적 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했다.


 아서와 자녀들과의 큰 장벽을 허물어 준 것도 '추억'이었다. 아서가 루시와 댄을 슈퍼맨처럼 구해준 추억, 어머니가 좋아했던 그 장소 등등을 함께하며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아서 페퍼>와 '어쩌다 어른 강신주 편'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오버랩되었다. 그래서 함께 읽는 내내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서 페퍼의 부제는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일 뿐, 아서페퍼는 그만의 자신의 삶의 여행자로 거듭났음을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느꼈다. 연초를 <아서 페퍼> 덕분에 행복하게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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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영어, 놀이가 답이다 - 집에서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초등교사의 영어 교육법
이규도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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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이나 책을 보면 아이 교육을 엄마가 집에서 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사교육비는 비싸지고 부모님이 스마트해지면서 아이를 가르칠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딸이 4살에서 5살로 넘어갈 때쯤이었다. 책에서 보면 한글을 떼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아빠 친구 아들은 읽고 쓰고를 다한다고 하니 직장 끝나고 집에서 아이와 함께 엄마표 한글을 했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나중에 지나고 생각해보니, 조금 빨리 시작한 것도 있었고, 엄마인 내가 조급했음을 알 수 있었다. 6살이 되니 어린이집에서 몇달 한글 공부를 하더니 이제는 혼자서 책도 잘 읽는다. 나에게 엄마표 교육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을 좋아할까?

1. 잘 놀아주는 선생님

2. 재미있게 공부 가르쳐주는 선생님

3. 칭찬해 주는 선생님

'선생님'자리에 '부모님'을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p36)

 

 사실 11년차 초등교사의 영어공부법이라 나와 맞을까? 라는 고민이 더 컸다. 학교에서의 아이들은 공부를 하러 간 아이들이기 때문에 집에서의 교육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이기 이전에 이규도 저자도 한 여자이고, 엄마였다.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었던 기억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아이 때문에 우울증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대한민국 '엄마'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초등교사의 이미지보다는 같은 학부모의 위치에서 엄마표 영어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표 영어, 놀이가 답이다>라는 책도 사실 엄마표 교육보다도 어떻게 놀아줄까?라는 생각으로 처음 읽게 되었다. 외동이다 보니 심심하다고, TV 틀어달라고 많이 말을 하다 보니, 영어를 어떻게 가르칠까 보다는 어떻게 같이 놀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컸다. 같이 놀면서 아이와 더 친해지고 싶었다. 관계도 잘 형성되고, 공부까지 가르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있을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놀이를 좋아한다. 가끔 "방청소하자" 라고 하면 싫어하지만, "누가누가 깨끗하게 하나?" 놀자고 하면 좋아할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재미이고, 재미를 느끼면 잘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엄마표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영어를 장난감 가지고 노는 방법'에 대한 공부한 필요한 것이다. 


 영어 동요를 들려주는 것이 눈에 띠었다. 딸은 집이 조용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꼭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영어 동요를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틀어주면서, 가사를 바꿔서 같이 부르면 좋다고 하셨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실생활에 쓸 수 있도록 동요나 책을 난이도 별로 추천을 해준 것이다. 사실 영어 동요 하면 Twinkle Twinkle 밖에 몰라서 잘 못해주었는데, 하나하나 유튜브에서 찾아보면서 함께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텔레비전을 무지 좋아하는 우리 아이를 위한 방법도 있었다. DVD로 보는 방법이었는데, 보고 듣기와 보고 듣고 말하기로 방법으로 그 세부에서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다.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들을 고려하여 한다면 서로 인상 찌푸리지 않고 재미있게 놀 수 있어서 더 즐거운 저녁이 될 것 같다.


 엄마표 영어 습관화 전략도 키포인트이다. 구체적인 활동을 꾸준히 반드시 실천하는 것이다. 


1. 달력에 표시한다.

2. 타이머를 활용한다.

3. 학습한 것을 기록한다.

4. 작은 보상을 활용한다.

5. 적어서 게시한다. 

 

 앞에서 엄마와 경쟁하며 게임 식으로 하는 전략도 있었는데 습관화 전략과 함께 쓰면 좋을 것 같다. 조금 있으면 새 달력도 나오는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습관화 전략을 해도 좋을 것 같다. 꼭 영어 습관화 뿐만이 아니라 좋은 습관은 몸에 익히고 나쁜 습관은 버리면서 아이와 부모가 모두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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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인문학 - 조선 최고 지성에게 사람다움의 길을 묻다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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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력이 한 두장 남으면 생각하는 것이 있다. '벌써 연말이네. 올해는 잘 살았나?' 연초에는 파이팅하는 의지로 목표를 세우지만, 연말이 되면 그 뜻은 달력 종이와 함께 사라지고 후회만 남는 것 같다. 채우지 못한 안타까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등 살고 또 살아도 늘 씁쓸한 이유는 내가 사는 방법을 잘 몰라서가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한 문장이 <율곡 인문학> 책을 펼친 이유이다. 평생에 걸쳐 '사람다움의 길'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하며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 율곡 선생님께 묻고자 한다. 


 율곡 이이는 그가 20세에 쓴 <자경문>으로 대답했다. <자경문>은 어른 시절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고 4년간 좌절과 방황을 한 다음 더 이상은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지은 글이다. <자경문>의 원문은 이 책의 부록에도 나오는데 11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짧지만 뜬 구름 잡지 않고, 허황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문장이었다. 한정주 작가님은 <자경문>을 해체한 후 7개의 핵심 주제로 다시 통합하는 방식으로 저술했다. 7개의 핵심주제는 평생의 큰 뜻을 세우고 굳세게 지키는 일인 입지, 말을 다스리는 치언, 마음을 다스려 안정시키는 정심, 홀로 있는 동안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근독, 평생 배우고 익히는 공부, 성실과 정성 진성, 사람이 지켜야 할 정의이다.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면, 독서는 여행에 앞서 지도를 살펴보는 것과 같고 

실천은 말과 수레를 준비해 실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 <율곡 인문학> p188 -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첫 번째는 입지라고 강조했다. 입지는 평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인데, 율곡 선생님은 이를 삶을 완성하는 열쇠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그가 <자경문>을 쓸 때에도 입지가 매우 절실했다. 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강력한 철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이 책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없었던 부분이 '입지'였다. 내가 흔들리고 불안해 하는 이유도 사람다움의 철학이 없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다. 항상 목표를 세울 때 시험에 합격하겠다, 자격증을 취득하겠다와 같은 사소한 것에만 매달렸던 것같다. 율곡 선생님은 나에게 한마디로 일침을 가했다. 


남을 위한다는 것은 남에게 알려지길 원하는 것이다. 

남에게 알려지길 원하는 사람은 명예와 이익을 원하는 것이므로, 

공부를 하는 근저에 사심이 깔려 있다. 

율곡은 이렇게 명예와 이익을 원하는 마음은 이미 

그 근본(큰뜻)을 잃은 것과 같다고 했다. 

명예와 이익을 원하는 사람은 배움의 길을 갈 때도 

다른 사람의 눈에 드는 것만 선택하고 그것만을 말하려 하는 법이다.

- <율곡 인문학> p38 -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아홉번 장원급제하신 율곡 선생님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이런 자세로 4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또 선생님께 호되게 혼나는 서당아이처럼 부끄러워졌다. 사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분야가 있어서 이 많은 부분을 어떻게 빨리 하지라는 고민과 함께 읽었다. 율곡 선생님은 나에게 요령을 피우지 말고 숙독을 하며 배운 것을 쓸모있게 활용하라고 말씀하셨다. 


 <율곡 인문학>을 읽고 나니 잠시 조선시대에서 성균관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는 <자경문> 외에도 <격몽요결>, <성학집요>, <율곡전서> 등 다양한 율곡 선생님의 책과 조선시대의 필독서들의 부분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한 수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 준 작가님이 누군가 보았더니 낯익은 분이 계셨다. 지난 번 다산카페에서 저자 강연회 때 만난 한정주 작가님이셨다. 고전 연구가로 역사와 고전을 현대인들이 읽기 좋게 잘 해석해 다양한 책을 쓰신 작가님이라고 소개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마천의 <사기> 강연을 들을 때에도 재미있고 현대 사람들에게 공감할 만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율곡 인문학>도 그랬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표해야 겠다.


 2017년 씁쓸한 마음이 달래졌다. 그리고 더 희망차졌다. "사람다움이란 인간의 도리를 배워서 깨닫고 실천하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끊임없이 배우고 깨달아 평생을 실천하는 삶. 나도 율곡 선생님의 뒤를 걷는 현대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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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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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선생님은 앞으로 이 땅에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이 없을 수 있도록 전쟁이 일어나기 전 상황부터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세세하게 적어놓았다. 역사를 경계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역사의 어느 단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서로 얽혀서 문제가 생기고 힘들어 한다. 비슷한 조짐이 있을 때, 역사를 되돌아보고 문제점을 낱낱히 파헤쳐본다면 그 때처럼 참혹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

- <시경> 중에서 -


 스타경제학자 하노 벡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책을 통해 세계적으로 통화량을 늘리고 있는 정책들을 향해 경고하고 있다. 돈의 역사는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이다. 세계적으로 겪었던 인플레이션을 돌아보며 현재를 보고 미래를 대비한다. 내가 감히 하노 벡의 <인플레이션>을 '경제계의 징비록'이라고 칭하고 싶은 이유이다.


 '화폐'의 탄생과 함께 인플레이션도 세상에 나왔다. 화폐가 생기기 전에는 물물교환 형식으로 경제가 운영되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가볍고 소지하기 쉬워 경제를 일으키는 수단 '화폐'가 생기면서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장난질을 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원인인 화폐가치의 하락은 정치와 연관이 있었다. 왕, 대통령과 같은 한 사회의 엘리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화폐 조작을 한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주머니에 챙기기 위해, 채무의 짐을 덜기 위해 화폐의 가치를 하락시킨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됐다. 


 경제시간에 '인플레이션'에 대해 배울 때에는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때는 그냥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웠었는데, 사회에 나와 직접 마주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실 마주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장을 보러 대형마트에 갔다가 몇개 넣지도 않았는데 20만원이 훌쩍 넘는 것을 보니, 내 월급 빼고는 다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리는 화폐의 가치이다. 요즘 은행에 가서 정기적금을 하든, 일반 저축을 하든 금리는 1%대이다.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전문가들은 요즘을 저물가 시대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히려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종종 뉴스에서 본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잘못된 방식의 인플레이션은 잠깐의 경기 활성화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버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데 10가지 일정한 패턴을 정리해 놓았다.


1. 돈은 그 자체로 신뢰다. 

2. 화폐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초창기에는 국가나 통치자가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3. 대개 인플레이션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킬 뿐이다. 

4. 20세기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초인플레이션이었고, 

   대개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격동기에 발생했다.

5. 경제학파들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다.

6.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율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 

7. 2000년부터 '금융위기 발생과 통화 대량 투입' 주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8. 인플레이션은 물가에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9. 인플레이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빈곤 계층이다.

10. 지금까지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조장해 부채를 없애려고 해왔다. 


 이런 패턴들을 보았을 때 인플레이션의 종말은 없다. 더이상 안정된 미래는 없고, 수익도 일정 나이가 되고 나서는 줄어들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인플레이션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이때 현재를 살아가며, 자녀를 키우며,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대안 중 하나인 '바퀴벌레 포트폴리오' 짜기를 소개했다. 가늘고 길게 끈질기게 이 지구를 살아가듯, 생명력이 질긴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고 했다. 주식에 4분의 1, 금 4분의 1, 국채 4분의 1, 은행계좌 현금 4분의 1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소시민들에게는 항상 인플레이션이 주변에서 언제 덮칠지 도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닥쳤을 때 눈 뜨고 당하기 보다는 경제가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현명하게 돈 관리를 하여 더이상 희생당하지 않도록 일깨워주는 '경제계의 징비록' <인플레이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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