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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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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드.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전쟁 시절, 뉴어크의 우리 동네에서 스위드는 마법의 이름이었다.

 

 


위대한 스위드에서 살인자의 아버지로 


 스위드는 신이었다. 모두가 그를 사랑했다. 그를 연호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가진 마법 같은 우월함이 자신에게 전해지기라도 하듯이 그를 숭배했다. 유대인에게는 희망이었고 위로가 되는 존재였던 그는 유대인이 아닌 미국인, 그것도 뉴저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스 뉴저지’와 결혼한다. 유대인이었지만 미국의 무리를 대표하는 운동선수이자 기업가였던 그의 인생은 불공평할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1부 ‘기억 속의 낙원’일 뿐이다.

 

 딸이 미국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 그는 추락했다. 삶의 모든 아이러니가 비켜가던 '신'은 이제 보잘 것 없는 보통의 인간으로 곤두박질쳤다. 어쩌면 신이어서 가지는 그 특별함은,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특별하고 지독한 비극 속에 색을 달리 해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위대한 스위드’가 아니다. 살인자의 아버지다.

 

 <미국의 목가>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스위드'의 극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그의 삶은 미국적인 것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성공을 이뤘지만, 결국 미국적인 것에 가로막혀 무너진다. 진짜 미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던, 진짜 미국 해병대, 미국 합중국 속에서 살고자했던 그는 딸 메리를 통해 미국이 가지고 있는 끔찍한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미국의 이면은 곧 자신이 품고 있는 이면과도 같았다. <미국의 목가>는 이처럼 스위드의 인생에 폭탄을 던짐으로써 그 부서진 환상 속의 폐허를 그리고 있다.

 

 

환상 속의 폐허와 마주하는 법 

 

 <미국의 목가>는 꽤 흥미로운 액자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화자인 주커먼은 스위드를 '신'처럼 여기며 찬양하던 무리 중 하나였다. 그의 기억을 토대로 '스위드'라는 인물의 신비로움과 위대함이 1부 내내 이어지지만, 중간 중간 그의 환상은 '내가 잘못 생각했다' 라는 말로 가로 막힌다. 자신에게 개인적인 편지와 부탁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벅차오를만큼 그를 '팬'으로서 지극히 사랑하던 주커먼은 너무도 평범하고 약해진 스위드의 무기력 속에 실망하게 된다.   

 

 

유치하게도 그의 신같은 모습에 감탄하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가 철저하게 평범한 인간적인 모습과 마주하고 말았던 것이다. 신 대접을 받을 때 치러야 할 한가지 대가는 모여드는 신자들의 줄어들 줄 모르는 환상과 마주해야한다는 것이다. (118)

 

 주커먼은 제리를 통해 스위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스위드를 철저하게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었던 끔찍한 비극의 전말을 알게 된다. 주커먼은 고등학생 때부터 품고있던 스위드의 진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현재의 스위드와 함께 교차시키며 그의 인생을 다시 한 번 회상하기 시작한다. 주커먼만의 상상과 해석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스위드의 이야기는 새로이 시작된다. 그 안에는 어떠한 환상도 없다. 주커먼은 스위드를 '소설'을 통해 다시 만나는 것이다. 

 

 스위드의 우월함은 진실이었다. 스위드는 정말로 훌륭한 운동선수였고, 아름다운 아내를 지니고 깔끔한 경영을 해내는 존경받는 엘리트였다. 그의 아내 돈은 미스 뉴저지로 뉴저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다. 둘에게 지나친 환상과 기대 혹은 잘못된 선입견을 주입시킨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제 3자들이었다. 스위드를 신으로 추대하고, 돈을 아름다움을 팔아 '돈'을 버는 골빈 여편네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들의 속내와 본질을 보다는 겉모습만으로 판단한 것들이었다. 그런 환상이 가지는 위험 또한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메리'였다.

 

 

메리는 아버지를 증오해요

 

 대체 메리는 왜 그렇게 된 걸까. 그 누구보다 가정적인 아버지와 아름답지만 진취적인 어머니를 두고도 메리는 파괴적인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메리의 부모는 너무도 완벽했기 때문에, 혹은 너무도 완벽하게 보였기 때문에 메리는 그 견고한 틀을 깨고싶은 반항이 들었을지 모른다. 똑똑하고 예민하고 외로움을 품고 있던 메리는 -의사의 말로는- 관심을 받고 자기 위주로 상황을 돌리기 위해 말을 더듬고, 아버지에게 키스를 해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애정'에 강박적인 욕구와 본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 폭발적인 욕구는 한 대상에 대한 집착(천문학, 오드리 햅번, H4클럽)으로 표출되었다. 아름다움이 가지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축농에 매진하던 엄마, 합리적이고 균형있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늘 미국적인 틀에 얽매여있던 아버지는 메리가 키워내는 파괴성을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메리는 폭발하고 말았다.

 

 

"미스 아메리카를 원했어? 그래, 형은 미스 아메리카를 얻었네, 말 그대로 말이야- 형 딸이 미스 아메리카잖아! 진짜 미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고, 진짜 미국 해병대가 되고 싶었고, 아름다운 이방인 아가씨를 품에 안은 진짜 미국 거물이 되고 싶었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미합중국에 속하기를 갈망했어? 그래, 이제 그렇게 됐네, 형, 딸 덕분에 말이야. 이곳의 현실이 바로 형 입안에 있어. 딸 덕분에 형은 그 똥더미, 진짜 미국의 미친 똥더미 속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한 깊이 내려가있단 말이야. 미친듯이 날뛰는 미국에! 길길이 날뛰는 미국에!" (73)

 

 

 메리가 가진 정치적인 신념이 정말 '메리의 신념'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신념을 아주 무대포로 배워나가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기 시작한다. '미국'에 대한 증오는 여태껏 저를 외롭게 만든 부모에 대한 증오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상류층에 속한 아버지, 공장을 운영하며 노동자를 부리는 아버지.너희들이 말하는 '위대한 부부'는 그저 위선적인 똥덩어리일뿐이다. 그렇게 메리는 미국을 향해, 그리고 스위드와 돈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스위드는 제 인생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왜 요모양 요꼴이 된 거지?" 라는 질문을 자신이 메리에게 했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서 답을 구하려 한다. 그럴수록 그는 자괴감과 분노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메리가 바랐던 바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그러나 스위드 부부는 메리가 말한 것 처럼 그렇게 증오적인 인물인가.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들이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못하는 딸을 낳을만큼 도가 지나쳤었나. 그렇지 않다. 스위드 부부는 조금 더 잘나고 아름다웠을뿐,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보내는 그 환상의 기대치가 너무 커 그들의 '평범함'을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코 살인자를 키워낼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맞서고 있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288)

 

 그렇다고해서 스위드 부부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스위드 부부는 개인이 아니라, 위선적인 미국의 사회 구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오대수 역시 그가 아무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로 혹독한 죗값을 치룬다. 오대수가 받은 잔혹한 복수는 결코 오대수의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었다. 오대수의 말이 품은 사회적 정언명령에 대한 복수였다. 작가는 이처럼 겉으로 봐서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스위드 부부'를 내세워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미국의 비판적인 지점을 말하고자 했을거라 생각한다.

 

 <미국의 목가>는 함부로 스위드를 신으로 만들었던 환상도, 스위드가 지닌 합리적이라는 명목 하의 위선도, 메리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신념도,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비꼬는 이웃들 모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목가. 농촌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또는 그런 것은 모두 똥덩어리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책을 덮으며 <한국의 목가>라는 제목으로 된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미국의 목가>는 읽기 꽤 어려웠던 소설이다. 미국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나 역사를 알지 못한 상태로 읽어낸 <미국의 목가>는 그야말로 겉핥기 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점이 가장 아쉽지만, 그렇게해서라도 조금이나마 미국을 맛보게 되었다는 건 꽤 유익한 경험이었다. 필립 로스의 소설은 <에브리맨>을 먼저 읽었다. 그의 작품이 가진 매력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인물'과 '문장'들로 나와 같은 모든 '에브리맨'의 뇌리와 가슴을 탁- 탁- 때린다는 점이다. 사실 초반은 늘 지루하기 짝이 없어, 몇번이고 앞과 뒤를 들추게 되지만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돌직구를 날려주는 그 탁월한 묘사와 센스가 부럽다. 그는 이제 은퇴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출간되길 바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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