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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베로니카가 일기장을 주지 않는다. 대신 수수께끼 같은 일부분의 기록만 보낸다. 에이드리언답게 복잡한 사유가 논리적인 형태로 기술된 메모다. 일기는 책임의 연쇄 고리를 배분하려는 타이밍에서 끊긴다. 토니는 뒤의 말을 추측하며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지만 금세 그만둔다. 자신이 그 가정 속에 들어가 책임을 배분 받아야 하는 이유와 그 가정으로 바뀌게 될 ‘결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말한다. 여전히 감을 못 잡는군. 그녀는 만취된 구역질로 갈겨놓은 편지를 던져준다. 토니는 낯 뜨겁고 치기어린 저주의 향연에 사과의 메일을 보내지만, 답장은 같다.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하네. 그녀는 토니에게 정신이 불편한 사람 하나를 보여준다. 그제 서야 토니는 그 저주가 단순한 모욕에 그치지 않았음을 감 잡게 된다. 그리고 다시 진심어린 죄책감과 함께 사과를 하지만 베로니카는 말한다. 여전히 감을 못 잡는 군. 토니는 뒤늦게 펍에서 진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래서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의 가정으로 바뀌어야 할 비극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책임이 있고 혼란이 있었다.
그들의 역사를 멀리서 바라본다면 그들 주위에 어떤 수많은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개인(베로니카와 토니)이 상정하는 한 개인(에이드리언)의 역사는 한정되고 치우친 시야로 수집된 자료에 의해 조립된다. 협소한 자료를 통한 해석은 중요치 않은 원인의 몫을 왜곡하거나 부풀어내기 쉽다. 100개의 원인이 있으나 눈에 띄는 것이 5개라면, 그리고 그 중에 그토록 증오하는 ‘토니의 저주’가 포함되었다면 과녁은 그쪽을 향해 쏠리는 것이다. 또한, 토니 역시 책임분배의 첫 번째 가정으로 자신이 지명된 글귀를 받음으로써, 책임의 사슬 속에 박힌 커다란 이니셜을 읽어낸다. 토니의 죄의식은 베로니카의 의도와 불충분한 자료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사라가 남긴 편지는 오히려 토니를 위로하고 있으며, 사라가 전하고자 했던 일기장 역시 의도가 같을 거란 ‘예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에이드리언과 사라는 논리적이지 못한 운명 아래 쓸데없는 죄책감을 가지게 될 토니를 우려해 네 책임은 아주 미미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삭제된 일기에서 그는 이런 식의 가정을 펼치지 않았을까.
만약 토니가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S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S를 만난 것이 토니 때문인가. 그 행위에 토니의 조언만이 크게 작용한 것인가. 아니다. 나를 시험하듯 사라와 같은 자리에 나를 내버려 둔 V가 있었고, 윤리적인 선을 넘은 내가 있었다. 책임의 정확한 배분이란 없다. 롭슨을 떠올려보자. 여자는 임신을 했고, 그는 왜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증언이 없기에 그 역사에 원인과 결과는 확증할 수 없다. 진실은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뿐이다. 나는 이 일의 당사자이며, 이것만큼은 확증할 수 있다. b가 태어난 것은 토니와 아무 관련이 없다. 나의 이 말과 V가 그를 증오하는 것은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 각자의 사고방식의 반영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나의 역사에 토니를 악인으로 집어넣어 그의 역사를 망가트려놓는다면 거부할 것이다.
베로니카는 이 의견을 거부했을 것이다. 이 일기장으로 인해 토니가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이 끔찍해 일기장을 불태웠다. 토니는 분명 책임이 있어. 개똥같은 철학으로 네가 멋대로 면죄부를 줄 일이 아니야. 그러나 따지고 보면,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을 만나지 않았다면’의 가정이 토니의 가정보다 먼저다. 그녀는 토니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모든 비극으로부터 회피하려 한 것이 아닐까. 추측 컨데, 애초부터 토니의 편지는 에이드리언과 사라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을지 모른다. 토니가 서술한 에이드리언은 친구가 분에 못 이겨 휘갈긴 편지에 적힌 ‘어머니를 만나보도록 해’라는 조언을 곧이곧대로 따를 만큼 순종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무엇도 확실치 않다. 불충분한 자료와 부정확한 기억만이 가득한 이 책에서 모든 예감은 틀릴 수밖에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