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은 억울하다. 이 땅의 모든 말은 사투리이고 서울에도 사투리가 있는데 사람들은 서울말이 곧 표준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토박이말도 서울말이고 토박이는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 혹은 스스로 서울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의 말도 모두 서울말인데 말이다. 표준어가 서울말을 바탕으로 제정되었지만 표준어가 곧 서울말인 것도 아니고 서울말이 곧표준어인 것도 아니다. 서울에서는 표준어가 아닌 ‘서울말이 쓰이고 있고, 서울말과 표준어는 다르니 서울말도 다른 지역의 말과 마찬가지로 사투리다.
날씨가 가물으면 비 좀 오시라구사직단에서 지사 지내구 그랬에여. 한성우,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국립국어원, 1997)
이 기쁨을 노느지 못하는 것이무한히 섭섭합니다. 심훈, 상록수』(1936)
솥에 물을 붓고 시루를 올려 놓은 후에시루본을 바르고 뜨겁게 쪄서뜸을 들인 후 시루를 내려 놓고「추석음식 만들기」 『동아일보』 1959년 9월 12일 자
짱아짱아 고촌짱아 그리 가면 죽느니라이리 오면 사느니라신체시 「쌈자리」 「조선일보」 1920년 7월 26일 자
방방이 먹자판에 닐리리야 판이었고우리네 세 식구가 사랑채를 비워 주고아랫집 여주댁 건넌방으로 쫓겨가지않을 수 없었던 건 한꺼번에 밀어닥친그 집 일가붙이 때문이었다. 박영한, 「왕룽일가』(민음사, 1988)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김정신 작사. 이정석 노래, 「첫눈이 온다구요」(1986)
너만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걸랑양준일 작사 · 양준일 노래, 「가나다라마바사」(1992)
얼굴이 동그랗구, 눈이 옴팡 들어가구김영수, 장편 「파도」 「경향신문』, 1949년 발표.
그 도적도 자동차에서 나려 행길로슬슬 걸어나려 갔었다. 아서 벤저민 리브, 추리소설 「엘렌의 공(功)」(김동성 옮김)『동아일보』, 1921년 연재.
아아니, 요새 웬 비웃이 그리 비싸우. 박태원, 「천변풍경」(박문서관, 1938)
냄새를 가지고 서로 속삭인다는버마재비, 더듬이가 멋있게 생겼지요? 「몇십 리 밖의 꽃도 냄새로」 「경향신문 1962년 11월 16일 자
초저녁 별이 떠오를 때면 생각이 나는숱한 사연들 이제 또 다시 그리워지면가위 바위 가위 바위 보이정식 작사. 이정희 노래, 「가위 바위 보」(1982)
궝이 잡으만 도망가지 말라고송두리에 넣어. 한성우, 「강화 토박이말 연구」 (보고사, 2016)
밖에 나갔다가 헐떡거리고 집에들어서니 마당에 놓인 수돗물은한소끔 때서 더운물이 되다 말았고『동아일보』 1953년 7월 10일 자
아내에게 줄 색경을 사러 나온박 서방은 길가에 붙어 있는 방을발견했다. 이성욱, 「쇼쇼쇼 (생각의나무, 2004)
님 가신 곳을 알아야 알아야지나막신 우산 보내지 보내 드리지탁소연 작사· 김정애 노래, 「닐니리 맘보」(1959)
이 순간에 오늘 지낸 일이불현듯 생각이 난다. 현진건, 단편 「빈처」(1921)
무계획적으로 휘뚜루마뚜루돌아다니고 싶다. 이희승, 먹추의 말참견』(일조각, 1975)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정호승, 「눈부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비채, 2020)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윤석중 작사·정순철 곡 「졸업식 노래」(1946)
옵바...... 저는요 저는요잘 알았어요임화, 시 「우리 옵바와 화로」 「조선지광」, 1929년 발표.
제절로 피는 ‘사구라‘도 격이 맞지 않는느낌이 있거든 억지로 만들어 붙일필요야 업지가 않을까? 그러지 맙소사, 남무아비타불! 「자명종」 「조선일보」 1927년 4월 27일 자
시굴은 굴묵이 좁잖아여, 서울은 넓은데한성우,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 (국립국어원, 1997)
특히 반탕같은 것은일종곡다로서 그 구수한풍미가 반드시 고삽한 박다薄에비하야 양보할 바 아닌즉문일평, 「다고사(故事)『조선일보』 1936년 12월 6일 자
명옥이만 하더라도 툭하면 떠세가, 제 남편 덕에 출세하게 된 것이아니냐는 것이다. 염상섭, 단편 「돌아온 어머니」(1957)
오늘은 몇 켤레나 깁고 고쳤나텁석부리 할아버지 신기료장수어효선, 시 「신기료장수」 「소년소녀 세계의 문학』 한국편4(태극출판사, 1975)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없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닷컴, 1992)
싱건지며 짠지며 겅거니 많응께얼릉 오기나 하셔김유선, 시 「용인 전상서」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서정시학, 2007)
더구나 새로 글을 깨친 아이들이어느틈에 분필과 연필로 예방당안팎에다가 괴발개발 글씨도 쓰고지저분하게 환도 친다. 심훈, 「상록수』(1936)
웃을 던져 말을 쓰다 보니 말 두 개가겹치잖어? 그럼 그걸 두동무니라 해. 한성우,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 (국립국어원, 1997)
청계천 피복업계의 노사분쟁의 해결은이러한 폭발 위험성이 있는 오늘의노사 문제의 순리적 해결에 일종의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해서 과언이아니다. 「노사문제의 전망」 「조선일보」 1980년 4월 20일자
그렇다면 우리끼리 만난 김에아퀴를 지어 두는 것이 좋지를 않소. 현진건, 장편 「무영탑」 『동아일보』, 1939년 발표.
도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소와 같이부위가 많지 아니하나 뒤넙적다리와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三枚라 하는)이제일 맛이 있다하고. 「조선요리-3」 「동아일보』 1934년 11월 3일 자
어이며느리 명을 잣고 있다가 물레돌리던 손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봤다. 한무숙, 단편 「돌」 「문학예술」, 1955년 발표.
아마 애최 최서방이 그 애한테 말을전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않아요? 박태원, 「천변풍경」(박문서관, 1938)
그놈의 수매가라는 게 백줴 거저 뺏는것과 다름없으니. 박완서, 「미망』(문학사상, 1990)
서울만은 자방틀이 있었어. 그래, 우리시어모님이 메누리 얻으문 준다고그래시구는 자방틀 사 농구 3년이되도록 다른 사람은 못 만지게 허셨대요. 이규숙 구술·김연옥 편집, 「이 ‘계동 마님‘이 먹은 여든살(뿌리깊은나무, 1984)
만약에 노마 아버지가 돌부리에발을 차이고 화를 냈다 하여도 노파는역 제 잘못으로 안심찮아 하리라. 현덕, 단편 「남생이」(1938)
양심도 의리도 인정도 똥 대가리도다 집어치운, 째마리만 모인 쓰레기통이아닌가? 염상섭, 무화과」 (동아출판사, 1995)「조선일보」, 1931~1932년 연재.
못 쓰기야 왜? 그만 못한 것도 끼고젠체 대활보하는 친구가 얼마라구, 저이 형에게 비교허니 그렇지. 이태준, 「딸 삼형제』(1940)
엄마가 동생을 배문 형한테는소홀허잖어. 그럼 얼굴이 여위구 그래. 그런 걸 아우본다고 했어. 한성우,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 (국립국어원, 1997)
누구더러 반말이야. 그래 네 눈엔내가 너의 집 안잠이나 부엌데기로뵌단 말이냐? 심훈, 장편 「영원의 미소」 「중앙일보」, 1933년 발표.
보기에 미상불 예쁘고 소담스러운좋은 열매언마는, 눈비음뿐이지 먹는소용은 못 됨이 가석도 하되, 최남선, 백두산근참기』 (한성도서주식회사, 1927)
굳이 널 시켜 네 집보다나은 집을 살 테다. 네깟 놈이천생 가쾌지 별거냐. 이태준, 단편 「복덕방」 「단편집 복덕방』 (을유문화사, 1947)
열여섯 살이면 벌써 남녀를 구별하여알기 시작할 나쎄다. 박종화, 「임진왜란 (을유문화사, 1958~1961)
열여섯 살이면 벌써 남녀를 구별하여알기 시작할 나쎄다. 박종화, 「임진왜란 (을유문화사, 1958~1961)
여보 젊으신네, 젊은이 고집이어떻게 그렇게 세단 말이오. 현진건, 장편 「무영탑」 「동아일보』, 1939년 발표.
남과 시비하는 일은새로에, 골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이희승, 「먹추의 말참견』(일조각, 1975)
어려서부터 남의 굄만 받고 곱게 자란진수는 진지는 하되 끈기가 부족하였다. 한무숙, 중편 「어둠에 갇힌 불꽃들』(문학사상,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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