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상에서 겪는 오역은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화낼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아요."
이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다. 더군다나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다. 입시, 취업, 승진, 결혼, 육아, 심지어 가난까지 줄을 세우는 나라 아닌가. 삶의 모든 장면이 마치 전쟁터 같다.
일본엔 ‘혼네보사‘와 ‘다테마에‘라는 개념이 있다. 혼네는 본심, 다테마에는 겉치레를 뜻한다. 그들에겐 본심과겉으로 드러내는 태도를 구분하는 문화가 있다. 한국에도비슷한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경계가 아주흐릿하다. 좋은 말로는 비교적 솔직한 민족이다. 그래서 더 ‘화를 낼 준비‘가 티 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엔 ‘화병‘이라는 게 있다. 화를 많이 내는 병이 아니라 적절히 표현되어야 할 울화와 억울함 등을 오래 억압하면서 생기는 정신적·신체적 장애다.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증상은 있으나 형태적 맥락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병은오로지 한국에만 있다. 글로만 존재하는 병 같지만 실제로심각한 병이어서 후유증으로 다신 일어서지 못하기도 하고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선 화병을 ‘Hwa-byung‘이라고 음역하며 한국인이 자주 겪는 일종의 분노 증후군이자 문화 관련 증후군으로 분류한다. 단어에서 느껴지는 세월감만큼이나 한국인에겐 오래된 병이라 어쩌면 화병은 민족 특질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너무 딱하지 않나. 화를 못 내서 병에 걸리는 민족이라니. 결국 터지지도 못하는휴화산이면서 기저에선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다. 이런 화산이 터지면 그야말로 대참사다.
화낼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나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먼저 화를 내야 상처받지 않는다는 착각, 먼저 공격해야 방어에 유리하다는 계산.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도 모르는 새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다.
한국어의 포용력은 언어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번역투든 신조어든 쉽게 받아들이고녹여내 언중에 금세 익숙해진다. 하지만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 이미 존재한다면굳이 부자연스러운 번역체를 쓸 이유가 없다.
조금은 비워도 된다. 내겐 이제 동료가 있다.
"He who loves the most regrets the most. Let‘s not live in a fantasy."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후회하는 거야. 환상 속에 살지 말자.-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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