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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파도 ㅣ 트리플 35
이서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3월
평점 :
장편소설만 읽던 심한 편식 독서가이던 나는, 몇 해 전부터 시공간을 공유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떼어 풀어내는 연작소설의 매력에 빠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뜻 시시해 보이고 평범해 보이는 삶도 그 각자에게는 특별한 생이고 모두가 자기 삶에서는 유일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방랑, 파도>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가는 혹은 살다 간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마음을 담고 있다.
‘나’는 이전의 생활을 떠나 무작정 이 마을로 찾아왔다. 마을에서 백반집을 하는 지애와 지환 남매의 집에 머물며 그들에게 가끔 서핑을 배우고, 마을의 요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삶과 죽음이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는 곳.
요양원에서 만난 향자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며 할머니와 산책을 하고, 할머니에게 화투를 배우고, 그녀의 책을 읽었다.
향자 할머니는 수십 년 단짝 미자 할머니가 떠나고 자발적으로 요양원 생활을 시작했다. 미자는 타인의 말과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생을 씩씩하게 살아 나가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누구의 삶도 티끌 없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미자는 곱게 자라다 돈 많은 노총각에게 시집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향자를 언니처럼 가족처럼 따뜻하게 챙겨주었다. 향자의 비밀과 고민을 알고도 평생 내색하지 않았다. 요리도, 옷 만드는 법도, 살아가는 법도 모두 가르쳐 준 제일 소중했던 친구였다.
향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며 나에게 반지 하나와 책들을 남겼다. 할머니에게도 남은 가족이 있을 텐데, 이것들을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 향자 할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셨을까.
나는 그저 가벼운 드라이브인 줄 알고 남매를 따라나선 날, 지애 언니에게 딸이 있었고 그 딸을 자전거 사고로 잃었다는 걸 알게 된다.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더 좋은 자전거를 사줬다면 아이가 여전히 자기 옆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지애, 조카가 떠난 건 누나의 탓이 아니라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누나를 위로하는 지환. 부모를 일찍 잃고 돌고 돌아 결국 서로에게 유일한 기댈 곳이 되어 살아가는 남매는 속에 자신의 슬픔이 있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받아들였나 보다.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감정은 ‘죄책감’과 ‘슬픔’이 아닐까. 누구나 상실을 겪고, 누구나 슬픔을 안고서 그래도 살아간다.
책을 읽고 나에게 남은 것은, 모두에게는 생의 사건과 감정을 희석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큰 일이 아니니 덜 아등바등하고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관대해지자는 다짐.
출판사(자음과모음)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