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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한 사랑 노래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
박혜경.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평점 :
긴 인용이다. 마찬가지로 긴 호흡으로 읽으시라.
'남은 일생 내내 나에게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신 어머니, 이제 나는 당신께 나 나름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그 부정적 힘의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를 느끼게 한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그것을 향유하는 자에게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에 대한 부끄러움을, 한 편의 침통한 시는 그것을 읽는 자에게 인간을 억합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문학의 위상|김현|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1977년 이래 28년 만에 300호 시집을 출간했다'고 한다. 그리고 '300호 기념 시선집 『쨍한 사랑 노래』는 201호부터 299호까지의 시집에서 ‘사랑’을 테마로 한 시 한 편씩을 선정하여 엮은 ‘사랑 시집’이라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28년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랑'뿐인 것을.
당최 써먹지도 못하는 시와 소설과 문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인 것을.
문지시인선에 얽힌 이야기가 왜 없겠는가. 이제는 서점에서도 한구석에 초라하게 자리잡은 시집 서가 앞에서 문지시인선을 읽고 사고 한두권 씩 늘어나는 책장의 문지시인선의 번호를 보며 흐믓해하는 분들에게 나름의 사연이 왜 없겠는가. 그러니 내가 굳이 대학 때 처음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을 읽고 '길 위에서 중얼거리'던 것을, 군대 GOP 시절 황동규, 오규원, 마종기의 시집을 북한 초소를 앞에 두고 후레쉬를 켜고 읽었던 일들을, 어떻게 연애시절 술 취한 척 이성복과 최승자와 허수경의 싯구를 외워 여자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 지를, 작년 1월 남해금산에서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로 시작하는 시를 떠올렸던 것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지시인선의 무게를 지닌 시집들로 400호(!!!)를 맞을 수 있을 지 아무래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사랑은 시작되었는 것을.
그 누구도 걸어 들어 온 적 없는 폐허에서
'뼈아픈 후회'를 할 지라도
기다리는 수밖에......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