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자리에 종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아직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세상만사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바로 그곳에 종교의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도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없어.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안심입명 安心立命 일 것입니다. 저는 안심입명이야말 로종교의 정의라고 봅니다. 종교는 안심입명을 주는 것이라고말입니다. ‘안심‘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고, ‘명‘은 인생관을 정립하여 생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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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이여-
김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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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야.”

수습 점원 하치베에는 크게 놀랐다. 창고 벽에 매달린 신도 있나.

“신이라면 왜 그런 곳에 매달려 있어요?”

“여기가 좋으니까. 게다가 달리 있을 데도 없고.”

“그쪽은 무슨 신이에요?”

“흐음, 점원의 신이다.”





“하치베에 씨가 그러더구나. 어느 가게 창고의 쇠고리에나 점원의 신이 하나 매달려 있다고. 그러니 힘들어도 꾹 참고 일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신인데도 그렇게 목을 매고 있는 까닭은 점원의 괴로움을 직접 겪어 보기 위해서고, 창고에 있는 까닭은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신이니까 창고 말고는 있을 자리가 없어서일 거라고.”



목맨 본존님
신이 없는 달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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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욕심과 손때로 범벅이 된 물건을 다루는 장사꾼 아니냐. 내 물건에 온갖 사연이 깃드는 게 당연하지. 그런 사연을 기분 나빠한다면 그 물건한테 미안하지 않겠느냐? 나는 그것이 고물점 주인의 근성이라고 생각한단다.

춘화추등

신이 없는 달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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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메이 자네, 부탁이니 그런 식으로 나를 놀리지 좀 말게. 나는 가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 말일세.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만단 말이야. 나는 세이메이 자네를 좋아하네. 설령 자네가 요물이라고 해도.
그러니 자네에게 칼을 겨누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갑자기 지금처럼 나오면, 어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손이 칼로 뻗어 버린단 말일세.˝

˝그러니 세이메이, 자네가 요물이라고 해도 내게 정체를 밝힐 때는 천천히, 놀라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네. 그리 해 준다면, 나는 괜찮을 것이야.˝

음양사
224
유메마쿠라 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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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학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을 혼동하는 오랜 착각을 정리하고 그 둘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로 하자. 학식 있는 사람은 주로 앉아서 홀로 집중하는 열성가이고, 책을 통해 자신이 갈망하는 특정한 진실의 알갱이를 발견하고자 한다. 만일 그가 독서에 대한 열정에 압도된다면, 그가 거둘 수확은 줄어들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이다. 반면에 독서가는 처음부터 학식에 대한 열망을 억제해야 한다. 지식이 어쩔 수 없이 달라붙더라도, 지식을 추구하고 체계적으로 독서하며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한다면 사심 없는 순수한 독서에 대한 인간적 열정이라고 여겨도 좋은 것이 파괴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책벌레를 묘사하고 그를 조롱함으로써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실내복 차림의 창백하고 수척한 사람이 떠오른다. 사색에 빠져 있고, 벽난로 시렁에서 주전자를 들어 올릴 힘도 없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는 여자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매일의 뉴스를 모르고, 그러면서도 중고 서적상의 도서 목록에는 정통하며 어둠침침한 서점에서 햇빛이 찬란한 시간을 보낸다. 물론 괴팍하고 단순하다는 면에서 재미있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다른 유형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참된 독서가는 본질적으로 젊기 때문이다. 그는 호기심이 강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에게 독서는 세상을 등지고 연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활기찬 야외 산책에 가깝다. 그는 대로에서 터벅터벅 걷고, 공기가 너무 희박해서 숨 쉬기 힘들 때까지 점점 더 높이 언덕을 오른다. 그에게 독서는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서재에서의 시간
런던 거리 헤매기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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