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끼의 재판 ㅣ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21
홍성찬 글.그림 / 보림 / 2012년 5월
평점 :
내가 어린 시절에도 토끼의 재판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림책으로는 아니였지만, 호랑이를 구해준 어리석은 나그네를 토끼가 구해준다는 내용으로..
토끼의 지혜로움이 더 부각되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러면서 모든 동물들이 사람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내용에서는
사람이 그렇게 잘못하는건가, 공공의적으로 몰리는 것에 마냥 유쾌하지 않은.
그저 토끼의 지혜로움에 감탄하고 나그네의 어리석음에 투덜댔던 기억이 있던 옛이야기.
그 촌스럽다 여겼던 이야기가 새롭게 그림책으로 나왔다.
그것도 팔순이 넘은 고령의 노작가의 손길에서...
요즘 옛이야기 그림책들은 내용은 옛이야기이지만, 그림체는 전통적이지 않고 현대적인 그림이 많다.
작가의 그림체가 보여지는.
그런데 이번 토끼의 재판은 표지부터 어둡다. 왜 아니 그럴까.
바로 나그네가 허방다리에 빠진 호랑이에게 통나무를 건네주어
호랑이가 허방다리를 빠져나오는 운명의 순간인것을.
바로 이 순간 때문에 토끼의 재판,이 일어난 것이니...
이 책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홍성찬 작가...(사실 나도 이번에 처음 찾아봤다.) 1929년 생이시면 우리 나이로 83!
게다가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셔서 2년이 넘는 작업기간으로 이번 책이 나오게 되었다.
근래의 책에서 보기 힘든 공들여 그린 그림은 그림만 보고도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작가의 눈 탓인지 몰라도 전반적으로 밝은 느낌보다 아늑한 느낌
어린시절 깜깜한 밤, 할머니집에 모여앉아 어두운 불아래서 옛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내가 어리석다 여겼던 나그네는...정말 나그네였기 때문에, 동네 사정이 밝지 못했던 것!
나그네 이야기가 등장하며 제목이 나오기 전,
사람과 짐승을 해치는 난폭한 호랑이 때문에 고통받던 동네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허방다리를 만드는데
나그네는 그 사실을 모르고 호랑이를 구해주게 된거다.
그리고 토끼말고도 지혜로웠던 꿩은 나그네가 호랑이를 구하기 전에 말리기도 하는데....
분명 호랑이의 괴롭힘을 당할거라고. (그러게 꿩의 말을 들었으면 좋으련만, 사람은 이럴때 참 미련하다.)
허방다리안에서는 나그네님~이라 말하던 호랑이녀석
나오자마자 사람인 너의 죄를 물어 잡아먹겠다라니...
그래서 9번의 재판이 진행된다.
나무, 멧돼지, 닭, 소, 염소, 곰, 여우, 사슴, 토끼...
토끼가 나오기전까지 소와 사슴을 제외하고 모든 동물들은 호랑이의 손을 들어준다.
그런데, 어릴때 보던 것과 다른 느낌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동물을 먹고 입던 것들은 당연한 일이 아니지 않았을까.
역지사지. 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일의 중요함도 생각하게 하고,
사람이 사는 데 있어 많은 동물들의 희생이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호랑이를 구해준 나그네의 마음...(사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기보다 동물을 역지사지해 생각하는 사람이었을게다) 각 동물들의 마음... 들이 생각거리를 많게한다.
어린 아이들에겐 그저 밤에 옛이야기를 듣는 재미로 읽어줄 수 있겠지만,
점점 자라는 아이들과는 여러 이야기를 할만한 거리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말 이 작품의 미덕은 노작가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글이 필요없을만치 이야기가 온전히 담긴 그림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