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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 서양 고전과 역사 속의 여성 주체들, 역사도서관 007 ㅣ 역사도서관 7
한정숙 지음 / 길(도서출판) / 2008년 3월
평점 :
독자 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늘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 땅의 인문학적 현실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밉지 않은 출판사 가운데 하나로 생각되는 곳에서 또 하나의 출판 역량을 드러내는 책이 나왔다. 혹자는 이러한 형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간서치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볼 때, 책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언제나 큰 즐거움이었다. 독자에게 블로크의 봉건사회의 번역자로 기억되고 있는(당연히 교학상장하는 스승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 믿음을 주는) 저자의 단독 저서라는 타이틀로 나온 두툼한 이 책을 책상 옆에 두면서......주석을 빼고 718쪽에 이르는 두툼한 연구 저작물.....생각날 때마다, 한 꼭지씩 읽어보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주로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여성의 발언과 글들을 시대에 따른 주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고전 시대 그리스비극에서 등장하는 여성들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이 세계의 주인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떻게 말을 했고, 자신을 글로 표현했는지에 관하여....비록 연구 성과물을 집적한 것이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단지 연구성과물로서 자신의 연구 업적을 드러내기 위한 허섭한 그런 류의 책하고는 분명히 대별되는.....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그것들을 드러내어 밝히고자 하였다. 아직 저자의 서문과 엘로이즈를 다룬 부분밖에 읽지는 않았지만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를 다룬 부분을 읽으면서 책에 대한 신뢰는 더 굳어졌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입에서는 한번쯤 언급되었을 만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가난한 이보다 재산 많은 이를 좋아하여 결혼하는 여자, 사람 자체보다 재물을 보고 남편을 구하는 여자는 자기를 파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결혼하는 여자는 보수를 지급받을 가치는 있을지언정 사랑을 받을 가치는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여자는 남편의 사람됨이 아니라 부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고, 단지 기회를 엿보다가 더 돈 많은 사람에게 자기 몸을 팔려고만 할게 틀림없으니까요"
점점더 창부/창남들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특히 중전마님을 위해 침통함을 참지 못하고 있는 삼성맨들의 형태를 보면서, 이들의 머슴기질이나 2MB(2메가바이트) 정권에서 하는 '머슴'이 되라는 그 말(당연히 주인(/시민)도 어찌할 수 없는 큰 머슴들은 마치 자신이 주인된 것 같은 착각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이들은 대운하라는 큰 강물속에 빠져 허부적거리는 미친개이므로 그 미친개가 대운하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뜨거운 몽둥이 찜질을 해야만 한다. 만약에 그 미친개가 대운하에서 빠져 나온 뒤에는 오히려 당신을 물어뜯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미친개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만 한다)속에 담긴 그 맹랑한 노예기질에 비한다면, 엘로이즈의 이 말은 自省과 自贖과 自救의 길을 가르쳐주는 지침같이 느껴졌다.
1940년 경성제국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도쿠야마 신이치라는 이름으로 조교 생활을 했고 이후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 판검사를 지낸 뒤 이승만 정권에서 한일회담 한국대표,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3.15부정 선거 당시에는 내부부 장관 선거를 총괄했고 4.19혁명기에 발포 책임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이후 사면되어 동양방송, 중앙일보 사장을 지낸 유진 홍진기 씨의 큰 딸인 삼성의 중전마님(중앙일보 회장은 당연히 그의 큰 아들이고)께서 오늘 검찰에 출두한 장면을 보면서(...당연히 그 판세는 어찌 돌아갈지 묻지 않아도 다 알수 있듯이...)김지하의 '오적'이 왜 떠오는 것일까?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를 하나의 기호로서만 기억하고 있던 독자에게 다시 한번 그 기호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 이 책은 또 하나의 새로운 눈을 제공해주는 미덕이 넘치는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이신 한정숙 선생님께서 다음번 작업으로 생각하고 계신 그 작업들을 머지 않은 시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