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펑유란 - 소설가 딸이 그려낸 한 철인의 인간적 초상
펑종푸 지음, 은미영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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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끌고 다닌지 아주 오래 되었다. 그 가방이 지금은 나를 옥죄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가방 속에서 아직도 꺼내 보는 한 장면을 생각하면 여전히 스승이 생각난다. 

아주 오랜 가방 놀이에서 만난 자칭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 하지만, 수박(겉은 파랗고 속은 시뻘건)  같았던  스승의 얼굴은 왜 이리 또렷한지........... 

 언제가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정치적으로 어떤 평가를 내리든, 아버지의 상실로 이어진 절망감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 유일한 책,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이 바로 펑유란이 쓴 중국철학사라고 말한 어떤 여성 정치인의 말이 떠오른다. 

분명 중국철학사를 읽고서 그런 느낌까지 받았을까 하는 회의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만약 그 여성 정치인이 펑유란 선생의 삶까지도 알고 있었다면....당시에는 중국이 아닌 중공이라고 불리던 상황이었음에도 최고 권좌에 오른 사람의 자식에게 부여될 수 있는, 혹은 주어질 수 있는 상황까지 고려한다면...여성 정치인의 말이 허언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이 얇은 분량이지만 두툼한 행간을 남겨 둔 원서를 다 읽고 나서 난 이렇게 썼다.  

애증의 펑유란 

왜 애증이었을까?  

분명 직접 경험하지 않고 문자로만 본 중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펑유란이 보인, 혹은 보였다고 하는 그 행위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건 500쪽에 이르는 펑유란전을 꼼꼼히 읽으면서 그 행간에 보인 것은 바로 중국현대사가 이 펑유란의 한 몸에 오롯하게 각인되 있음을 느낀 뒤엔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었다.  

이 책 <나의 아버지 펑유란>을 새벽녘까지 모두 읽으면서 아버지의 사랑하는 막내 딸의 다음과 같은 표현에 나도 모르는 전율이 일어났다. 

"장자는 삶이란 살에 덧나는 사마귀와 같은 군더더기로 여겼고, 죽음은 곪은 곳이 터진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장재는 '살아 있는 동안 (하늘과 땅을) 섬기고 죽으면 편히 쉴 것이다'라고 했다. 샤오뉘야, 내 일을 아직 마치지 못햇구나. 그러나 병을 고쳐다오. 책을 다 쓰고 나면 병이 나도 치료하지 말거라"(펑유란의 말) 

나는 이 말을 듣고 울컥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오요? 책이 완성되면 병을 치료하지 말라니요!"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미소만 짓고 계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 병실을 뛰쳐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차오르더니 쉼 없이 흘러내렸다. 차에 타고 나서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끝없이 내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엄습하는 예감을 억지로 떨쳐내려 애썼다. 정말 아버지와 이별을 준비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펑종푸의 말).....번역서 115쪽 

오늘 어머니를 뵙고 왔다. 이젠 몇 해 지나면 미수에 이르실 나이가 되셨다. 예전 같은 기력이 없으시다. 늘 걱정이 앞선다. 내 스스로 생활인으로 삶을 핑개로 삼아 자위하고 있지만, 자주 전화를 드린다. 예전과 달라진 나의 모습이다.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든 일을 천천히, 그리고 자주.......... 

평생을 아버지 옆에서 함께 한 정말 귀엽고 예븐 막내딸 종푸 여사에게 아버지의 존재감이 상실되었을 때, 그 느낌이란 바로 위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과연 나와 당신에게 부모남의 존재감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남아 있을 것인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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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샤오밍 2011-02-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젠가 박근혜 씨가 "풍우란의 중국철학사가 내 정신의 등불이 돼주었다고" 한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네요... 종푸 여사가 예쁘다는 건 좀... 그건...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