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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을 읽는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6년 4월
평점 :
한마디로 말해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다가 언제가는 분명한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책을 구입한 날로부터 일상적인 독서의 양태와 달리 이 책에는 손 자국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신주단지 모시듯 며칠에 걸쳐 야금야금 읽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책을 다 읽었다는 그 느낌에. 그런 뒤 그 느낌으로 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들 가운데..과연 이 '최근'이라는 말의 시간적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하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인문서로 최고의 압권이라 생각한다면서 적극 권해 읽어보라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만 책을 만들어 준다면 내가 발벗고 나설 정도로 영업해 주겠다고 하면서..ㅎㅎㅎ(언중유골처럼).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의 한 부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사족이지만 한마디 덧붙인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로 설명하거나 데리다의 차연 개념을 빌려 와 '대상을 포착했다 싶으면 대상은 그 순간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야단스럽게 해석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는 망발이다. 식자우환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한문 문리도 부족하고, 문맥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생각도 짧고,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이를 메우기 위해 함부로 외국의 권위에 기대고 있으나(첨언하면 박희병 선생님께서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한 '호가호위'식의 글쓰기나, 모방은 모방일뿐 결국 창조는 아니라는 말과 연계시켜 생각해 볼 때),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형국이라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이러니 우리 학문이 여전히 식민성을 못 벗어났다는 게 아닌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불러 모아본다....열하일기,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등을
그리고 내 스스로를 되돌아 보면서 어느 책!?의 부분을 빠르게 뒤져본다.....그리고 웃는다...꽃비가 내리던 밤에.....
이 책 '연암을 읽는다'의 첫구절로 돌아가 보자.
'고' 古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이며, 그 점에서 하나의 '지속'이다. 우리는 이 지속성 속에서 잃었던 자기 자신을 환기하고, 소중한 자신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으면, 자신의 오랜 기억과 대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는 진정한 자기회귀의 본질적 계기가 된다. 진정한 자기 회귀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를 긍정하되 자기에 갇히지 않고, 잃어버린 것을 통해 자기를 재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이 점에서 '고'는 한갓 복원이나 찬탄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찾아 나가는 심오한 정신의 어떤 행로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의미의 '고'에 대한 탐구이다.
눈을 현혹하거나, 그럴싸하게 포장만한 책더미들 속에서 찾아낸 보석같은 책을 꽃비가 내리는 사월의 며칠 밤에 읽을 수 있었던 나는 정말로 행복한 책읽기였다. 이런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군더더기가 하나 없는 정말 깔끔한 편집에 하나 하나 씹어 읽는(혹은 책을 먹는) 그 맛을 나 뿐만 아니라 정말로 책읽기의 참맛을 느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아직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므로......450쪽에 달하지만, 정말로 이 봄날에 달콤한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 어느 곳으로 소풍를 떠나 다시 이 책을 집어들고 싶다(소풍 가는 날 나는 이 책과 따스한 커피만 갖고 간다)...그런 뒤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렇게 몇번째 읽었다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