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누구도 더 이상 신앙을 강요받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 또는 종교개혁 시대의 사람들처럼 믿지는 못한다.(5p)

비의적 해석이나 말라빠진 교의적 해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해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누가 보아도 뻔한 반이성적 강변을 내세울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나 순수이성의 경계 저편의 실재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논증을 제시하고자 한다.(6p)

이 사도신경 해설을 이끌어온 확신인즉 바로 이것이다: 저무는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한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신뢰를 지니고서 ˝믿나이다˝Credo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의 삶을 위한 지표와 자신의 죽음을 위한 희망으로서 사도신경의 항목들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다.(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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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이슬람 근본주의 저항세력을 이 지역으로 불러들였다. 파키스탄의 지지를 받고 있던 이 세력은 소련을 전쟁의늪으로 빠뜨렸다. 미국의 원조는 이런 경향을 한층 더 강화하여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을 급속하게 군사적으로 강화했던 것이다. 미국이 소련과 싸우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 깊숙이 관여하고, 무자헤딘 세력을지원했던 것이, 뒤에 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의 운명적인 대립을 키운 것이었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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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기억과 그 반대편에 있는 배제된 기억 간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있다..역사는 말끔하게 완결된 이야기일 수 없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의 큰 이야기(대문자 H의 역사)가 아닌 여러 이야기들이 필요한(발굴되어야할) 이유이겠다.


실증주의도 이데올로기다. 기억 전쟁에서 실증주의는 특히‘아래로부터의 기억이란 과장되고 부정확하며, 정치적으로 왜곡되었거나 심지어는 조작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힘있는 가해자가 관련 문서와 역사적 서사를 독점한 상황에서 힘없는 희생자들이 가진 것은 대개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뿐이다. 그런데 중언은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부정확하다. 그러므로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자들의 풀뿌리 기억은 실증주의라는 전선에서는 문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실증주의로 무장한 부정론자들이 증인을 취조하듯이 압박하고 증언과 증언 사이의 모순을 끄집어내 증언의 역사적 가치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거짓말‘, ‘혐오스러운 조작‘, ‘진실의 왜곡‘, 사실의 날조, 전적으로 날조에 의존한 싸구려 픽션‘, ‘각주가 있는 소설‘, ‘수백 가지 거짓말‘ 등과 같은 언어폭력이 역사적 비극의 생존자 증인들에게 가해지고, 이는 ‘실증‘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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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지성사,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이경식 옮김, 종로서적1981, pp130-132


6장 러시아 공산주의와 혁명 중 일부 발췌.

  

 혁명의 의미는 역사 철학 중에서도 종교적인 기초를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이 때에 혁명의 의미는 역사에 깊숙이 내재된 묵시록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묵시록이란 역사 그 자체의 내부에서 내려지는 심판의 계시역사의 실패의 폭로이기도 한 것이다아무런 방해가 없는 진보란 불가능하다어떠한 창조적 힘도 없을 때 그 사회 위에 내려지는 심판을 피할 길은 없다이 때 불가피한 혁명은 하늘이 명하는 바일 것이며거기서 시간의 단절이 생긴다하나의 중절(中絶)이 생기게 되며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모든 힘이 개가를 울리게 된다이들 모든 힘은만일 우리가 아래에서부터가 아니라 위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무의미한 것에 내려진 의미의 심판암흑 속에서의 섭리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은 역사의 작은 묵시록이며 역사에 있어서의 심판이다. 혁명은 죽음과도 흡사한 것이다. 그것은 죄의 불가피한 결과인 죽음을 통과하고 있다. 전체로서의 역사의 종말은 마치 세계가 죽음을 통과해서 신생(新生)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 안에서 인간의 개인 생활 가운데서, 하나의 종말은 주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또한 신생에의 부활을 위해 죽음은 찾아오게 될 것이다. 혁명에다 공포와 음산함, 죽음과 유혈의 빛깔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혁명이 죄가 되고 죄의 확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전쟁이 죄가 되고 죄의 확인이 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혁명은 역사의 운명이 되고 있으며 역사적 존재의 불가피한 숙명이기도 하다. 혁명에 있어서 심판은 부정을 가져왔던 악의 힘 위에 내려지겠으나, 심판을 내리는 모든 힘이 또한 스스로 악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혁명에 있어서 선 그 자체가 악의 힘에 의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선의 힘은 역사 속에서 선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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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신앙 - “내 상처를 보고 만져라.”
토마시 할리크 지음, 오민환 옮김 / 분도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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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지니고 있었던 상처를 통한 묵상. 그분의 상처와 토마스 사도의 불신앙이 많은 위로가 된다.

나의 신앙과 나에게 신앙으로 제시된 것은 ‘마르티노 성인의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피흘린 적도, 상처 자국도, 흉터도 없는, 상처 입지 않은신, 이 세상에서 내내 춤만 추는 신들관 종교들을 믿지 않는다. 그것들은 시장에서 그들의 휘황찬란한 매력만 보여 주고 싶어 한다.
나의 신앙은 가파른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상처 입은 그리스도의 좁은 문을 지나 하느님께 나아갈 때, 가난한 자들의 문, 상처 입은자들의 문을 지날 때 의심의 짐을 내려놓고 내적 확신과 고향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부자, 배부른 자,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자, 아는 자보는 자‘, ‘건강한 자‘, ‘경건한 자‘, 지혜롭고 신중한 자‘는 그 문을 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8,25 참조).
- P16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이 외침에서 토마스 사도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어떤 형이상학적 정의도 제공하지 않는다. 어쩌면 요한복음서에서 묘사된 이 기쁨의 외침은, 그리스 고전 희곡이 ‘신‘이라는 단어를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다. "사랑하는 이를 안다면, 그것은 신을 아는 것이다!" 친구를 만날 때, 거기에 신이 있다! 신은 발생한다!

그렇다. 성경에서, 바로 그에게서 하느님이 발생한다. 하느님은 그렇게 발생하는 하느님이다. 토마스 사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분과의 만남에서 하느님이 발생하는 것을 경험한다. 하느님은 여기 있고, 그분을 만질 수 있다. 유일한 중개자(1 티모 2,5)와 하느님의 관계는 직접적이며 둘 사이에는 간극이 없다.
- P32

온 세상이 ‘신의 죽음‘이라는 그림자 아래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살아 있는 하느님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하나 있다. 그리스도 안, 나자렛 예수 안이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았고 그분에 대해 말했던 모든 것은 죽을 수 있고, 죽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외에는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안다. 예수가 오래전 이 세상에서 거니셨기 때문에 이 세상은 의미가있다. 본회퍼는 바오로와 루터를 떠올린다. 바오로는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이 나에게는 쓰레기, 오물처럼 보인다‘라고 했으며, 십자가에 처형된 그 분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기로 작정했다(참조: 필리 3,8; 1 코린 2,2).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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