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대해서 생각함.

대학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은 하나같이 자신의 전공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 그들이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역사를 전공한 한 선생님께서는 항상 "제가 이 부분은 잘 모르지만..."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좋아하셨다. 그분은 송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개론적인 지식만을 얘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전공만 해도 여러 의견이 있는데, 자신의 전공 이외 다른 부분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니 확신은 대개 게으름과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워본다. 한 현상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성실히 여러 의견을 접하고 그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의견을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이성과 감성을 최대한 동원하여 탐구한다. 그러나 게을러 한 현상의 단면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게으름은 스스로를 근시안적 시야에 가둬 무지와 배제를 낳는다. 그는 자신의 시야가 갇혀 있는지도 모른 채, 성급하게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확신하고 다른 의견을 틀린 것으로 손쉽게 판단한다. 한편 종교적 의제와 연관된 경우에 확신은 더욱 골치아픈데, 이 때의 확신은 신앙이라는 성스러운 덮개(sacred canopy)로 절대성을 획득하게 된다. 절대성을 획득한 확신은 곧이어 배제를 넘어 심판하고 공격하는 칼이 된다.

손쉬운 확신과 달리 진리 탐구의 여정은 지난한 자기성찰과 자기객관화의 과정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접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기존의 생각이 깨지거나 심화되어 사유의 지평은 넓혀나간다. 특히 신앙의 여정은 끊임없이 절대적인 신 앞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하며 삶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9:12).'

확신으로 가득한 한 기독교인에게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 장로교, 침례교, 오순절파, 성공회, 콥트교회, 칼데아 그리스도교, 에티오피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를 비롯한 여러 종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