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회를 구성하고 연결하는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 사물에 대해 쓰려던 것이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기분이다. 작가는 가족들과 함께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사람이고, 영국에서의 특별한 커뮤니티, 연대, 이웃간의 정을 경험하며 그 가치를 독자들에게 알린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되는 시대지만 정말 사람들은 개인주의만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개인의 시간을 중요시하면서도 연결고리가 될 사람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펍 문화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펍을 기준으로 동네 사람들이 연결되고, 안부를 묻고, 나아가 기부금 모금 파티를 하는 등 동네 '허브'로 기능하기까지 한다. 이것이야말로 동네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아닐까. 이웃 간에도 서로 챙기며 나누는 일상 대화들이 모여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이해'에 도달하는 참된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념관, 기념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병사들을 추모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 참전용사들은 그 전쟁이 뭐였는지도,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도 나눠보지 못한 채 쓸쓸히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누군가의 기록, 그리고 공개를 통해 다시 역사 속 고생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달하는 과정을 보며 기록의 중요성 또한 실감하게 된다. 코로나 시기 동네 주민들을 위한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코로나 이후에도 네트워킹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이웃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진심으로 연결되고 서로 돕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누군가의 단체 대화방 오픈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동네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연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쑥스러운 게 아니라 어색한 거야 - 여전히 삶이 어색한 마흔 살의 여물지 않은 이야기
소재웅 지음 / 훈훈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경험하고 그것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며 헤쳐나가는 한 남자의 에세이. 글은 참 담백했지만 저자가 감당했어야 할 상실감은 잔잔하게 글 전반에 깔려 있었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살아가며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깨달아갔던 사실들, 인정하고 나면 그저 다름일 뿐이고 이해할만 한 것들 투성이인 생각보다 여유로운 삶들,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그래서 선입견과 고집 속에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다름도 알고 남의 다름도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을 권한다.

작가가 겪은 상실감은 분명히 어두운 색의 감정이었겠지만, 주변인들이 보기에 작가가 그것을 생각보다 밝은 모습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양지로 나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어두운 감정을 희석하고,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소통이라는 것은 나를 지탱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일지도. 내가 그것을 자발적으로 끊고 한없이 어두운 내면으로 파고들어간다면 마치 혈관이 끊어진 것처럼 죽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작가는 가족들과, 지인들과, 친구들과 과하지 않지만 잔잔한 대화를 지속하면서 뜯겨져 나갔을 빈 공간을 채워넣고 잘 다듬어 가는 과정을 걷는 것 같다. 이외에도 다양한 통찰의 결과들을 보여주는데, 가장 와닿았던 것은 종교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떤 종교든 상관없지만, 우리가 종교를 믿는 이유, 성직자들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다. 작가는 종교라는 것을 '뭘 더 하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옳은 방향으로만 살고 싶지만 그건 생각보다 어렵고, 종교를 통해 끝없이 반성하고 회개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려고 애쓴다. 종교는 말과 행동을 통해 옳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나침반을 구하고 싶어서 기도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육아를 통해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은 딸들과의 흥의 결과 맞지 않지만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말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친근함을 표시하는 것, 동반자와 서로 격려하고 마음을 이해하며 육아를 해나가는 것 등, 일반적이고 소소한 인생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변화를 일으키고 의미를 찾는 과정이 멋지게 느껴진다. 일상에서 감사함을 알고 이해가 생각보다 쉬운 일임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 주 업인 만큼 글쓰는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것을 하나씩 실천한다면 작가처럼 현재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좀더 잘 알게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하나의 나, 감정에게 - 적는 즉시 감정이 정리되는 Q&A 다이어리북
김민경 지음 / 호우야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정이라는 것은 참 복합적이다. 누구든 스스로에 대해 마음만 먹으면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눈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 감정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여유가 없다보니 심연을 바라보지 못하고 계속 수면 위에서 방황하게 된다. 책에서는 감정을 마트료시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왜 느꼈는지 이유를 알기까지는 꽤 많은 수의 껍데기를 까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수치심을 느끼거나 갑작스럽게 눈물이 차오라는 이우가 어떤 기억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게 된다. 신체화 증상에 대해서도 꽤나 많은 옛말들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배가 꼬이는 것, 엄마 손이 약손인 것 모두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고 한다. 불안감에 위장이 요동치는 경험은 모두 해봤을 것이다. 신기한 건 피부를 쓰다듬는 감각은 안정감을 준다는 것. 그래서 엄마가 배를 쓸어주거나, 반려견의 털을 쓰다듬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실제로 줄여준다고 볼 수 있다. 감정과 신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정보들을 모은다면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 상태와 기억, 감정 변화에 대해 글을 써보며 스스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때 불안감을 느끼는가? 외로움을 나눌 존재가 있는가? 등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현 상태를 짚고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들이 감정마다 몇 페이지씩 들어있다. 정말로 내 감정을 알고 날 흔들어놓는 무언가로부터 빠져나오고 싶다면, 기억을 끄집어내 어떤 상황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은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질문지를 얻기는 쉽지 않다. 내가 어떻게 대답을 쓸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폭탄처럼 터지기 전에 내 감정을 되돌아볼 수 있고, 그것이 감정을 추스르고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자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 중에서 자기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주변을 신경쓰고, 눈치를 보며, 때론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선택의 구렁텅이로 빠지기도 한다. 그러고선 되돌아오지 않는 선의에 분노하기도, 외로워하기도, 슬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일어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면 어떨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옭아맸던 어두운 기억, 과거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 독자는 책의 소원대로 잘 변한 것이다. 감정은 괴로운 것이지만 여유를 갖고 마음껏 느끼고 발산한다면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에피소드가 재미있었지만 좀더 인상적으로 뇌리에 박힌 에피소드는 이유리 작가의 <치즈 달과 비스코티>, 그리고 김사과 작가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이다.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는 살짝 광기어린 느낌이었는데, 주인공이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었던 계기가 보헤미안 친구로부터 받은 이상한 기운 때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친구와 일원이 되고 싶다는 강력한 소망이 예술성을 발현시킨 것일까? 결과가 어떻든, 예술성이라는 것은 생각지 못한 계기로 풍성해지기도, 죽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예술성이 발현된 이후에 그녀의 목적지가 막연해졌기 때문에 연기속에서 예술성도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언젠가 또 다른 계기로 그것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치즈 달과 비스코티는 우리도 잘 아는 윌레스와 그로밋을 모티브로 독특한 스토리를 전개한다. 돌과 대화할 수 있다는 주인공은 학창시절 돌이 자신을 던지라는 말을 듣고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쫓아온 학생의 이마에 돌을 던져버린다. 그의 어머니는 심리상담가를 불러가며 그를 고치려 하지만 어쨌든 돌과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고, 혼자서 돌과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이 크게 민폐가 되는 일도 아니었다. 어느 날 너무나 외향적인 친구(라고 강조하는) 쿠커의 텐션에 떠밀려 함께 여행을 가는데, 물 속에 애착 돌 스콧을 빠뜨리고 잠수부를 불러 그 돌을 기어이 찾아낸다. 쿠커는 돌에 애정을 느끼는 그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윌레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치즈의 방을 향해 날아갔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던 부모는 그를 정신병자 취급했다. 주인공과 애착돌 스콧은 그가 완전히 미친 것 같다며 수군대지만, 그날 밤 보름달을 향해 쿠커가 정말로 로켓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스콧은 심리적인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의 프라이데이 같은 존재일까? 쿠커는 치즈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의 상상은 현실이고, 그 아름다운 현실을 잊지 못한 어른들은 다른 어른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게 아닐까? 그가 윌레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모든 치즈를 맛볼 수 있어 다행이고 그의 행복을 주인공이(많이 충격 받았겠지만) 이해하게 되어 참 기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독특한 문체였는데 대체적으로 푸르거나 황토빛 필터를 깔고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현실이지만 묘하게 현실이 아니며, 인물들의 끊임없이 움직이는 심리를 제대로 표현한 단편 모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짧은 단편 소설들이 이어지는 형태로 각 작가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유대감과 애정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각자 가진 온도로 서로를 끌어안는 가족들의 모습들. 이혼 후 귀향해 어머니와 사는 주인공은 생각지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머니의 과거를 떠올리며 공감한다. 그리고 의외로 엄마와 나를 잘 지켜보고 관찰하던 오빠의 티나지 않지만 은근했던 세심함을 느끼며 자신의 과거를 함께 돌아본다. 이해와 공감, 인정을 통해 편안한 가족애를 그려낸다. 


장의 이야기는 조금 충격이었다. 공연의 앞자리를 예매해 아버지와 아들이 기쁘게 공연을 보는 모습. 첫 곡이 끝나기도 전에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아버지. 그 아들이 가지고 있던 담요를 한시도 떼지 못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담요와 작별은 고하는 과정. 그것들이 모여 상실감이 얼마나 큰 슬픔을 불러일으키는지, 삶이라는 것은 어떠한 한 사건으로 끝나버리게 되는,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 알게 된다. 총기난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면 적어도 아이가 공연을 끝까지 본 후여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아이도 노래를 되뇌이며 즐거운 기억을 함께 천국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독특했던 이야기는 아버지가 모자가 되는 이야기였다. 툭 하면 모자로 변해버리는 아버지, 그 모자를 찾아나서는 자식들. 왜 모자가 되는 걸까? 모자는 무슨 의미일까. 모자가 됨으로써 사람도 동물도 아닌 무생물이 되는 것인데, 그 순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실에서 몇 분만 도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동물로 변신하는것보다 모자로 변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인지는 작가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참 신선한 전개가 다 있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그 가족의 이야기가 이질감없이 풀려나가는 게 신기하다. 


잘 씌어진 문학작품은 내가 그 작품을 창문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마치 해리포터에서 기억 속을 돌아다니게 해주는 팬시브처럼 내가 그 작품 안을 돌아다니며(주인공의 집 등) 주인공을 관찰하는 기분이 든다. 이 책도 주제는 가족에 관한 것이고 특정한 사고가 아니면 거의 잔잔하게 스토리가 전개되는데도, 묘하게 현실적이고 실화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엔 가볍게 들었다가 점점 빠져들게 되는 신기한 단편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