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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어사 - 지옥에서 온 심판자
설민석.원더스 지음 / 단꿈아이 / 2023년 4월
평점 :
우리는 대부분 영미문화권의 판타지에 익숙해져 있고, 생각보다 우리 고유의 신비로운 존재들, 요괴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요괴어사'는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억울한 영혼들을 구하고 죄 지은 영혼을 염라대왕에게 보내는 이야기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요괴와 처음 접하는 요괴를 적절히 섞어 스릴 넘치는 판타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영혼들이 원한을 가진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범죄, 재판, 공정성, 한이 서린 피해자 등의 문제와 마주하게 되어, 선과 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원한은 왜 생기는지, 원한이 모여서 얼마나 큰 비극을 만들고 부정적인 존재에게 힘을 부여하게 되는지(분노, 복수심, 폭력 등) 도 느끼게 된다.
정조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해치에 대해 매우 남다른 해석을 한 점이 기억에 남는다. 원혼을 성불시키고 악한 혼이나 요괴에게는 벌을 내리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픽션이지만, 똑똑하고 추진력 넘치는 왕 정조의 이미지 덕에 그런 조직을 만드는 것이 수긍이 가고 잘 해낼거라는 기대감까지도 생긴다.
해치는 물을 잘 쓰는 것은 물론 인간으로 둔갑도 하지만 방울을 울릴 수 있는 정조와 요괴어사의 리더 벼리에게는 꼼짝 못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장벽이 느껴졌던 기존 신수들의 무서운 모습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친근감을 가질 수 있게, 인간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 작가의 의도가 잘 보였다.
무술에 능한 백원과 축지법의 신 광탈 듀오의 활약, 옆에 두고 싶을 만큼 탐나는 전술가 벼리, 모든 귀신으로부터 날 지켜줄 것 같은 무령의 금줄 실력 등. 영화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 앞에 그려지는 요괴어사 멤버들의 액션 장면이 화려했다.
귀신들이 구천을 떠돌다가 요괴가 되어버리는 이유가 한이 맺혀서인 만큼, 그들이 한을 품게 되기까지 괴롭힌 사람들의 악행을 보고 있자면 나도 이입되어 화가 나고, 성불하지 못하는 이유에 공감하게 된다. 더불어 원한에 사무친 귀신이 복수를 하는 것이 왜 나쁜 것인지 끊임없이 반문하게 된다.
동생을 구하려다 죽었는데 자신의 무덤을 돌봐주지도 않는 부모를 원망하며 사는 처녀귀신, 형에게 핍박받고 얼굴의 반이 날아가버린 반쪽이, 자신을 살해해 놓고도 멀쩡히 진사로 살아가는 남자를 죽이려는 홍련 등... 원혼이 생겨난 자리에는 그들을 괴롭힌 악한 사람이 있었고, 악은 그렇게 선한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판다. 이 소설은 그 악의 근원을 없애고자 한다. 직접 복수하는 것보다 요괴어사의 재판을 통해 더욱 확실한 형벌을 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신수의 존재를 통해 신들이 생각보다 인간을 지키려 애쓰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들을 믿고 마음껏 선하게 살아가도 됨을 확인 받는 기분이다. 요괴는 왜 탄생했는지, 그 설화들이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생각해볼 만 하다. 무엇이 절대적인 선이고 악인가? 우리는 단면만 보고 구분해낼 수 있을까? 진정한 선이라는 것은 악으로 넘어갈 충분한 계기가 있음에도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일까? 요괴들의 이야기로 선과 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요즘 웹툰,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요괴에 관한 콘텐츠가 많이 공개되며 사람들이 점차 우리의 요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요괴어사 같은 소설도 그런 흐름의 한 축으로써 다양한 요괴들의 존재를 알리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란다.
아침드라마를 끊듯, 주인공 중 한 명인 무령의 처분을 궁금해하는 상황에서 2권을 기다려야 한다니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