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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ㅣ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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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리뷰

마조히즘 [masochism]

이성으로부터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학대를 받고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상태. 사디즘(sadism)에 대응하는 뜻을 지녔다.

말 그대로 사전적의미다. 흔히 일본문화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SM, 즉 새디스트 마조키스트를 문학으로 접하긴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다. 많은 평범한 여성들은 아마도 이런 성행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정말 힘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누군가에게 임의로 상처를 내고 상처를 입는 그런 행위들이 일종의 행복이 된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의 최대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평소에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자허마조흐의 작품을 통해서 작정하고 이해해 보기로 하고 또 그만큼 열심히 책을 읽었다.


예전에 영화 '싱글맨'에서 대학교수인 조지는 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동성애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데 그를 지켜 본 유일한 여자친구인 찰리는 그에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자 조지는 '찰리. 지금 네가 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고 난 아무것도 아닌거야? 지금의 네 남자친구는 너를 떠났지만 난 16년동안 한번도 짐(남자친구)을 떠난 적이 없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성간의 사랑을 하고 있는 나는 정말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는게 맞는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나에게 던졌다.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동명의 소설을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싱글맨'을 통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어느정도 수그러진 나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문학의 힘을 느꼈는데 이 작품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힘을 느꼈다

소설 속에서 세브린은 반다에게 두 가지의 여성상을 제시하고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성실하고 신실한 아내가 되어주거나, 아니면 그가 그리는 이상적 여성상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되어 자신을 지배해 줄 것을 바라는데,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세브린이 순결과 도발의 이미지로 나눈 것이 아니라,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상대와 내가 보살펴 줘야 하는 존재로 인지하고 구분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를 하고 안 하고의 구분은 자신을 축소하고 타자에 대한 의존성을 과장하여 나타내는 매저키즘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상대방을 이미지화 하고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점점 노예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브린은 왜 완다를 쉽게 떠나지 못할까?
세브린은 반다가 점점 폭력의 강도가 세지고, 정부를 두려고 함으로써 버림받을까봐 항상 두려워한다.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워 하다가 결국 자신과 완다가 맺은 계약서에 의해 자살을 하기 위해 강에도 뛰어들지만 그는 다시 처참한 몰골로 반다에게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런 세브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브린은 완다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점점 세질수록 처음에 느꼈던 희열과 쾌락은 잊은 채 점점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러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다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비록 계약서가 있긴 하지만 자신이 정말 원했다면 헤어질 수 있었을 텐데 과연 왜 그랬을까? 우리는 '엄마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그 해답점을 찾았다. 사춘기가 되어 정신적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어린 아이는 엄마가 혹 자신을 혼내고, 때려도 엄마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엄마의 곁을 떠나지 못할 정도이다. 세브린의 심리도 이런 것이 아닐까. 점점 반다가 무관심해지고 밑바닥의 취급을 받으면서 세브린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비하한다거나 자신을 축소시키는 단계까지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자신을 신경써 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반다가 가끔씩 자신에게 보여주는 관심으로 인해 세브린은 완다에게 자기 존재 자체를 의지해 버리고, 그로 인해 절대적 존재인 반다에게 버려지면 자신은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세브린과 반다는 왜 끊임없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할까?
세브린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반다에게 내맡겼음에도 중간 중간 끊임없이 완다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서 반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반다에 대한 세브린의 불안한 심리의 표출인 것 같다. 처음에 자신이 원했던 모습의 반다에서는 만족을 느꼈지만, 반다가 자신이 바랬던 것 이상으로 행동하며 자신을 학대 하는 것에서 불안함을 느낌 세브린의 심리가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반다에게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과 동시에 반다에게서 버림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자기 존재를 스스로도 확인하려고 하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순진했던 반다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세브린이 아닌 다른 애인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세브린은 반다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반다를 떠나지 못하고 결국엔 반다에게 버림을 받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릴적 폭력적인 경험을 통해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세브린은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버림을 받는 상황이 와서야 반다를 떠나게 되는데 글의 마지막에 와서야 평온한 삶을 체험하고 난 뒤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난 마지막의 장면이 뭐랄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왜 그런 장면을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런 평범한 삶은 아마도 작가가 꿈꾸는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작가의 경험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라는 점과 작가 자신은 끝내 그런 삶을 벗어나지 못했던 점을 보면 아마도 작가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해피엔딩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그려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일이 어렵다는 걸 잘 안다. 나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면서 이런 나의 행동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곤 하는데 역시나 답은 어렵고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는 금기시하고 대화 자체를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까지도 법적인 제도화를 시켜 사회의 적으로 모는 대부분이 이성애자들이지만 성을 상품화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성애자들 이라는 점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보면서 무슨 사랑이 되었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한다면 더이상 서로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일들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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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ㅣ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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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명성으로만 들어왔던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만나게 된건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나의 독서성향에 의하면 아마도 그냥 알고만 지나칠 작가 였을지 모른다 체호프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글에서 자신과 자신의 와이프는 체호프의 [개를 다니고 다니는 여인]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을 정도 였는데 다들 그렇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한번쯤은 보고 싶어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나에게 있어 체호프가 딱 그런 작가였다.

언제나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스타일인 성격인지 몰라도 이번 단편집에서 나를 가장 끌었던 작품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검은 수사], [사랑에 관하여]이다

[검은 수사]의 코브린은 스스로 자신의 삶이 굉장히 평탄하다 여기고 평범한 삶을 원하지만 그런 삶은 처음부터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코브린은 정말 천재가 아니었을까?! 너무 시대를 앞서 간 코브린이 죽는 장면에서는 적지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물론 [검은 수사]에서 검은 수사는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만 나에겐 그냥 자신의 '또다른 자아'와의 대화였다.  하지만 그 수사에게서 일종의 피드백?!을 받는 주인공 코브린이 신선했다 나에게 검은 수사는 [뷰티풀 마인드]에 나오는 러셀 크로우를 따라 다니는 친구들?!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나였다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치지 않았을까? 또다른 자아와의 대화를? 문외한 이긴 하지만 러시아 문학이 딱딱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소재를 흥미롭게 다룬다는 측면에서 체호프의 글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는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키의 작품에서도 만났었지만 작품을 검색하다 보니 잊고 지냈지만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던 영화 [더 리더]에서도 비중있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더 리더에서 남자 주인공 미하엘이 연상의 여자주인공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나는 강아지를 미하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한나로 생각하게 하는 그 책이 궁금했다. 나에게도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검은 수사]도 그렇지만 작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그리고 막심 고리끼는 체호프의 이 작품에 대해서 말하기를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고 나니 다른 사람의 작품은 모두 펜이 아닌 막대기로 쓴 것 처럼 여겨진다. 라고 말했다니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 작품인가 보다 단순히 나에겐 흥미로운 작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정독을 하고 숙독을 하면 그 고전속에 담겨져 있는 깊은 뜻을 더 잘 잡아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에 관하여] 중, 기억에 제일 남은 구절은... ‘사랑에 관해 지금껏 내려진 정의 중 논쟁할 수 없는 진리는 딱 하나예요. 그건 바로 ‘사랑의 비밀은 위대하다.’는 거죠 이외에 사람들이 말하고 쓴 모든 정의는 해답이 아니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는 문제들을 제기한 데 불과한 거였죠. 어떤 경우에는 유용해 보이는 설명이 다른 수십 가지 경우에는 소용이 없는 겁니다'..였다.
체호프의 작품을 하나만 보고서 그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느낌은 정말 명품 단편을 접한 느낌이다 보통 단편은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작가도 그의 작품도 뭐랄까 한층 고급스럽게 다가온 느낌이다.하지만 나는 체호프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톨스토이의 작품도 아직 접하지 못했는데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란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나 일상의 조각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느낌들은 충분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작가의 작품치고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짧아서 더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너무 힘들고 심지어 한 인물의 호칭이 3가지나 되는게 정말 익숙해지기 힘들다. 영미작가 위주의 작품들만 접해오던 차에 이렇게 따듯하고 재밌는 작품을 써나가는 체호프를 만나게 됐으니 이젠 그전에 호기심만 가졌던 톨스토이, 고골, 푸쉬킨의 책들도 용기를 내서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읽다가 실패했던 ‘빈 서판’의 서문에서 작가인 스티븐 핑커는 체호프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면 인간은 한결 나은 존재가 될 것이다” … 어쩌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인간, 사랑 이런 주제들의 해답을 체호프가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의 희곡작품들도 접해보고 싶다.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들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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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와 준 ㅣ 펭귄클래식 57
아나이스 닌 지음, 홍성영 옮김 / 펭귄클래식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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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와 준을 읽고 싶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책의 표지 였다. 책의 이미지가 대단한 회화도 아니였고 유명한 작가의 사진은 더더욱 아니었지민 눈을 가린채 가슴에 꽃을 꽂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굉장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시나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표지를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열정적이고 뜨거운 성격의 작가 아나이스와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사실 책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작가에 대한 정보도 없었기에 궁금한 마음에 작가와 책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지만 그다지 많은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대신 처음 접하는 책과 작가로 인해 아무런 편견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접할수록 동성애적인 내용과 남편을 뒤로하고 성적인 쾌락을 갈구하는 아나이스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 미혼인 내가 어쩐지 자극적이고 대담한 그녀의 삶을, 그것도 일기 형식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불편해서 몇 번이고 책을 내려놓았다. 나중에는 지나칠 정도로 섹스에만 집착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이혼률이 점점 높아져가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평생 한 사람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건 정말 힘든일인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해한다기 보다 누군가 참으면 그 생활은 유지가 되지만 어느 순간 참지 못하면 외도를 하거나 이혼을 하는건가, 라고 말이다.
1930년대의 아나이스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으면서 까지  가장 힘들어했던 건 남편에 대한 욕구 불만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남편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이나 경제적 안정감은 포기 하지 않았던 그녀가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떠오른 영화 한 편이 있었는데 최근에 보았던 아이 엠 러브 란 영화였다. 상류층 재벌가의 며느리이자 자상한 엄마이고 어느하나 나무랄거 없는 완벽한 삶을 누리지만 그녀의 내면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고독으로 드리워져 있다. 그러던 중 아들의 친구를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모습을 되찾으면서 모든걸 포기하고 오로지 사랑만을 선택하며 끝이 난다. 아나이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둘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풍요롭지만 단조로운 생활속에서 더 새로운 걸 찾는 과정이 어쩐지 닮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이 훗 날 경제적으로 궁핍해진다면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처음부터 아나이스가 헨리를 사랑했다면 그 둘의 사이는 어떻게 되었을지. 어딘가 금기 된 사랑, 은밀해 보이는 사랑이여서 그녀에게 더 흥미로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한 사람을 택해야했다면 과연 모든걸 버리고 헨리를 택했을까.
아나이스의 사랑은 모두 불완전하다. 그녀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녀가 누구를 만나든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글 자체는 섬세하고 내면의 감정 표현력이 뛰어나서 좋았지만 그녀가 살아오면서 겪은 아픔 때문에 평생을 불완전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았다고 한들 나는 그녀를 동정하고 싶진 않다.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함께 몇 년을 산 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그 땐 어떤 감정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모든걸 다 가지려하는 순간 삶은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아나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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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아이 ㅣ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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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가끔 미국이나 영국 영화에 등장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작품을 접해보진 못했지만 항상 언젠간 읽어야만 한다는 약간의 숙제와도 같은 느낌이 있었다. 역시나 아직 그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정말 뜻하지 않게 갑자기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그게  '별에서 온 아이'였다


다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책을 집어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책의 뒷편에 짧게 적혀있는 추천사를 읽어보는 일이다. 그런데 유독 눈에 들어왔던 문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나로써는 최근에 접한 미루야마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 생각나서 마침 비교도 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좀 놀랬다. 어른들의 동화라는 이야기는 듣고 시작을 했지만 어른들을 위한 건 알겠는데 동화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뭐랄까 험상궂은 어른이 몸에 맞지 않는 아동복을 입고 있는듯한 느낌이 영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 불편했다. 얕은 나의 지식으로 이것저것 생각도 해보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시대적 배경이 어떻게 되는것인지 계속 생각하면서 정말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말 오스카 와일드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글들을 남겼을까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이후에 내용을 돌이켜 보면 진정성이라고 해야하나? 진심이 느껴지진 않았다. 이 작품이 고전이라 불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스카 와일드가 대단한 작가라 이야기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뭐랄까 '고전같지 않은 고전' 같았다. 그리고 실수 아닌 실수 였던게 책의 앞 부분에서 오스카와일드의 인생에 대한 짧은 글을 읽었던게 글을 읽는 내내 내 생각을 지배해서 글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상류사회로의 진출을 꿈꿨던 부유했던 집안의 그가 과연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가 있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 무신론자이면서 인본주의자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책속에 등장해서 모든걸 나눠주고 초라하게 끝이 나지만 결국엔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는 '행복한 왕자'의 이야기나 정말 손발에 못자국이 난 예수의 삶을 비유한 '자기만아는 거인'과 철모르는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렸지만 뒤늦게 이를 깨달은 '어린왕'에게 예수께서 옷을 입히셨다는 이야기..그리고 자신은 보잘것 없는 작은 '새'이기에 인간을 위한 장미꽃 한송이 때문에 처절하게 죽어가는 '나이팅게일과 장미꽃'같은 에피소드들은 무슨 성경구절을 읽는것만 같아서 한편으로는 좀 거북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모든것을 친구에게 내어주고 마지막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되지만 그 모든걸 다 받은 친구는 쓸모없는 수레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만 신경을 쓰지, 정작 친구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헌신적인 친구'같은 작품을 읽었을때는 정말 가난한 사람만 고통을 받는 우리나라 전래동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지만 권선징악적인 교훈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있어 한없이 못된 역할로만 나오는 그 친구가 아무런 벌을 받지도 않는다는 내용에 한스의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안타까웠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한없이 종교적이라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그 작가의 시대 그리고 유신론자의 인생에 있어서 종교는 한없이 커서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에 녹아드는게 어떻게 보면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본주의사상에 많은 부분 영향을 받은 나로써는 인간이 모든걸 해결하는게 아니라 위대한 그 분이 모든걸 해결해주신다는 설정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최근에 접했던 미루야마 겐지의 인생...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보장된 삶을 버리고 농사를 지으며 밤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동화들을 써내려 간 이야기들을 접했다. 반면 상류사회의 진출을 꿈꿨던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 상반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과연 책이란 무엇이며 작가와 책은 비슷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고 다시 한번 글을 쓴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던거 같다.


평소 좋아했던 감독의 말처럼 책 한권에는 한 사람이 들어있다라는 면에서 나에게 '별에서 온 아이'는 단편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 보다는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가 과연 어떤사람일까? 라는 의문에 더 강했던 거 같다. 그는 유일신을 믿는 관점에서 책을 썼고 난 무신론자의 시선으로 그 책을 바라봤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의 독서라는 관점에서 좋은 읽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끔은 딱딱한것을 먹어줘야 위가 건강해진다는 말이 있듯이ㅎ...


세상의 모든 일은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맘속에 새기게 되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종교계의 소통의 단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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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미치광이 ㅣ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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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아를트/7인의 미치광이






아르헨티나, 그리고 로베르토 아를트라는 생소한 작가의 이름과 7인의 미치광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이 무료했던 내 일상에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고전을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그게 어떤 나라든, 어떤 인종이든 말이다.
우리가 매 순간 겪어내야 하는 ‘삶’이라는 혹독하고도 냉혹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을 환상을 갈구하면서 살아간다. 현실에서 꿈꾸는 미화된 비현실의 절대적인 가치 말이다. 하지만 모순 투성이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것 만을 꿈꾼다는건 어쩐지 서글프고 돌아서면 피곤해 지는 일이다.
 
1900년대 초 아르헨티나는 경제적,문화적 격동기의 변화를 경험하며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시기 경제적 부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이면에 숨겨진 소외된 계층의 빈곤함은 더 커져만 갔다. 아를트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유일한 진리는 돈과 정치라는 조악한 자본주의를 더욱 극대화 시켜 미치광이라는 현실적인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물론 우리 조직의 궁금적인 목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말한건 바로


우리 조직의 사업적 측면으로, 매춘 조직은 우리 비밀 조직을 점진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을 책임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산악 지대에 혁명군 훈련 캠프를 설치해서 전임 대원들


에게 아나키스트 전술이나 혁명 선전. 선동 전술, 무기 조작법과 산업 계획 등을 집중적으로 학습


시킬 겁니다. 훈련을 마친 이들은 어디에서든 우리의 세포조직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당신도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곧 우리 요원들을 양성할 전문적인 교육기간을 설립할 겁니다. 이름


은....아, 그게 좋겠군! '혁명가 양성소' 로 정합시다."
p)49


어쨌든 우리 비밀 조직은 불쌍한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놀라운 사건이, 기적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도록 만들 겁니다.
P)129


 
오래된 굶주림과 소외. 소통의 부재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무모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미치광이들의 진지함은 어리석음을 지나처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실행에 옮기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루어 질거라 믿는 그들의 계획은 시간이 지날수록 광적인 환상으로 치닫는다.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전 인류의 행복을 꿈꾼다고 말하지만 그  세상은 자신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만이 지배할 수 있다는 정치적 야망만 가득할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혁명이 성공한다면 그건 또다른 억압이고 독재가 될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보면 농장의 주인인 존슨씨는 모든 동물을 통제하고 사육하는 영리한 인간으로 나오지만 반면 그로 인해 오랜 시간 동물들이 받은 학대외  핍박으로 인해 혁명의 발단을 제공하게 된다.
결국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돼지(나폴레옹)도 동물들을 선동해서 주인을 몰아내지만 그도 권력이라는 유혹 앞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간을 비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돼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동물들의 마음이 마지막 점성술사에게 던진 " 어떻게 보면 당신은 꼭 레닌 같네요." 갈고 말하는 에르도사인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했던 과거를 가진 에르도사인은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점성술사가 이루어 줄 것만 같았는데 점성술사가 말하는 그릇된 혁명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로인해 에르도사인은 더욱 좌절한 채 자살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만 그 안에 속해있는 국민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에르도사인이 꿈꾸던 세상은 처음부터 점성술가가 이루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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