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를 입은 비너스 ㅣ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모피를 입은 비너스 리뷰

마조히즘 [masochism]

이성으로부터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학대를 받고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상태. 사디즘(sadism)에 대응하는 뜻을 지녔다.

말 그대로 사전적의미다. 흔히 일본문화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SM, 즉 새디스트 마조키스트를 문학으로 접하긴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다. 많은 평범한 여성들은 아마도 이런 성행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정말 힘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누군가에게 임의로 상처를 내고 상처를 입는 그런 행위들이 일종의 행복이 된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의 최대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평소에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자허마조흐의 작품을 통해서 작정하고 이해해 보기로 하고 또 그만큼 열심히 책을 읽었다.


예전에 영화 '싱글맨'에서 대학교수인 조지는 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동성애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데 그를 지켜 본 유일한 여자친구인 찰리는 그에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자 조지는 '찰리. 지금 네가 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고 난 아무것도 아닌거야? 지금의 네 남자친구는 너를 떠났지만 난 16년동안 한번도 짐(남자친구)을 떠난 적이 없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성간의 사랑을 하고 있는 나는 정말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는게 맞는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나에게 던졌다.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동명의 소설을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싱글맨'을 통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어느정도 수그러진 나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문학의 힘을 느꼈는데 이 작품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힘을 느꼈다

소설 속에서 세브린은 반다에게 두 가지의 여성상을 제시하고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성실하고 신실한 아내가 되어주거나, 아니면 그가 그리는 이상적 여성상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되어 자신을 지배해 줄 것을 바라는데,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세브린이 순결과 도발의 이미지로 나눈 것이 아니라,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상대와 내가 보살펴 줘야 하는 존재로 인지하고 구분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를 하고 안 하고의 구분은 자신을 축소하고 타자에 대한 의존성을 과장하여 나타내는 매저키즘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상대방을 이미지화 하고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점점 노예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브린은 왜 완다를 쉽게 떠나지 못할까?
세브린은 반다가 점점 폭력의 강도가 세지고, 정부를 두려고 함으로써 버림받을까봐 항상 두려워한다.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워 하다가 결국 자신과 완다가 맺은 계약서에 의해 자살을 하기 위해 강에도 뛰어들지만 그는 다시 처참한 몰골로 반다에게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런 세브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브린은 완다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점점 세질수록 처음에 느꼈던 희열과 쾌락은 잊은 채 점점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러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다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비록 계약서가 있긴 하지만 자신이 정말 원했다면 헤어질 수 있었을 텐데 과연 왜 그랬을까? 우리는 '엄마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그 해답점을 찾았다. 사춘기가 되어 정신적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어린 아이는 엄마가 혹 자신을 혼내고, 때려도 엄마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엄마의 곁을 떠나지 못할 정도이다. 세브린의 심리도 이런 것이 아닐까. 점점 반다가 무관심해지고 밑바닥의 취급을 받으면서 세브린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비하한다거나 자신을 축소시키는 단계까지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자신을 신경써 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반다가 가끔씩 자신에게 보여주는 관심으로 인해 세브린은 완다에게 자기 존재 자체를 의지해 버리고, 그로 인해 절대적 존재인 반다에게 버려지면 자신은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세브린과 반다는 왜 끊임없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할까?
세브린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반다에게 내맡겼음에도 중간 중간 끊임없이 완다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서 반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반다에 대한 세브린의 불안한 심리의 표출인 것 같다. 처음에 자신이 원했던 모습의 반다에서는 만족을 느꼈지만, 반다가 자신이 바랬던 것 이상으로 행동하며 자신을 학대 하는 것에서 불안함을 느낌 세브린의 심리가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반다에게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과 동시에 반다에게서 버림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자기 존재를 스스로도 확인하려고 하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순진했던 반다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세브린이 아닌 다른 애인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세브린은 반다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반다를 떠나지 못하고 결국엔 반다에게 버림을 받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릴적 폭력적인 경험을 통해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세브린은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버림을 받는 상황이 와서야 반다를 떠나게 되는데 글의 마지막에 와서야 평온한 삶을 체험하고 난 뒤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난 마지막의 장면이 뭐랄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왜 그런 장면을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런 평범한 삶은 아마도 작가가 꿈꾸는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작가의 경험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라는 점과 작가 자신은 끝내 그런 삶을 벗어나지 못했던 점을 보면 아마도 작가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해피엔딩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그려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일이 어렵다는 걸 잘 안다. 나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면서 이런 나의 행동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곤 하는데 역시나 답은 어렵고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는 금기시하고 대화 자체를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까지도 법적인 제도화를 시켜 사회의 적으로 모는 대부분이 이성애자들이지만 성을 상품화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성애자들 이라는 점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보면서 무슨 사랑이 되었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한다면 더이상 서로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일들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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