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펜터의 위대한 여행
김호경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카펜터의 위대한 여행, 이라는 제목을 읽고 처음에는 두 가지 착각을 했다. 하나는 이 책이 외국저자의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카펜터 라는 이국적인 이름 때문이었다. 그러나 웬걸, 실은 얼마 전 영화관에서 눈물콧물을 줄줄 흘리며 보았던 <국제시장>의 원작자 김호경 작가의 신작이었다. 제목의 이름이 외국 사람 이름이라고 외국작품이라고 생각하다니. 고정관념이 무섭다. 그리고 또 다른 착각은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알라딘에서 분류를 보니 자기계발서로 적혀 있었다. 이 두 가지 착각이 책을 읽는 데 있어 크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의외다'라고 느끼게 한 부분이기도 했다. 평소에 서양식 소설도 좋아하지 않고 자기계발서도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는데 '의외로'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다. 아마 한국 작가가 쓴 소설 같은 자기계발서였기에 기존 자기계발서들과는 달리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데이비트 카펜터를 기리는 카펜터 기념관이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카펜터의 유품들을 파는 자선 바자회에서 존은 <야망의 계절>이라는 책 한 권을 구입하지만, 이 책이 실수로 바자회에 출품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존과 친구 마이클은 사례금을 두둑히 받을 생각에 들떠 헨리 카펜터와 만나게 된다. 헨리 카펜터는 책 속에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낡은 메모지 한 장을 꺼내고 그로부터 카펜터 부자의 특별했던 여행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도유망한 농구스타 헨리 카펜터는 경기 중 상대편의 반칙에 분개하여 주먹을 휘두른다. 그 일로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팀은 패배에 농구 출전 금지까지 당하고 헨리는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유명인사인 아버지 데이비드는 그에게 있어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되려 아들 일로 사업이 어려워질까 걱정할 뿐 헨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작은 위로의 말 조차 건네지 않는다. 헨리 또한 바깥 일에 바빠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거리감을 느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시작된 아버지와의 여행. 헨리는 그 여행이 기껍지 않으면서도 그동안 사고 싶던 차를 사준다는 말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데이비드를 따라나선다.


어디로, 왜,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 건지도 잘 알지 못한 채 따라나선 여행에서 헨리는 아버지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그가 과거의 고마웠던 사람, 그리고 미안했던 사람을 찾아 감사와 사과를 전하기 위해 이 여행을 시작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들로서 가족으로서 아버지의 그 결정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헨리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계속하고 그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과거에 얽혀 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밝혀준 고마운 사람을, 때로는 비겁하게 약속을 어겨 상처를 준 사람을... 그리고 때로는 과거의 과오를 생각나게 하는 첫사랑을. 


데이비드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사람은 데이비드가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상관이었던 더글라스 미치너 상사와 월남전에 돌아온 직후 다툼을 벌였던 벤슨 매그너스였다. '미시시피의 보물을 찾겠다'는 데이비드의, 남들은 허황된 꿈이라며 웃어넘겼던 바로 그 꿈을 지지해준 은사 알렉산더도 그렇지만 더글라스 미치너는 보다 구체적으로 데이비드의 인생을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아마 데이비드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그가 좌절해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준 가장 큰 은인일 것이다. 비록 데이비드는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에게 은혜를 갚고 이미 고인이 된 더글라스를 기리며 추억에 잠긴다. 한편 데이비드의 메달을 업신여기는 발언으로 크게 다툼을 벌였던 벤슨 매그너스... 사과해야 할 사람이라며 데이비드가 그를 만났을 때 벤슨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데이비드의 메달을 꺼내 돌려준다. 언젠가는 꼭 돌려주려고 보관하고 있었다면서. 젊은 날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 메달을 데이비드가 오랜 친구로부터 돌려받는 순간은 독자인 나 마저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헨리는 아버지와 보낸 이러한 여정들을 따라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가깝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가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여행의 시작은 아버지가 사준 자동차 때문이었지만 여행이 중반으로 접어들며 헨리에게 더 이상 그 차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책에서 데이비드의 여정은 끝내 끝을 맺지 못하고 알래스카에서 중단된다. 배에서 쓰러져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가 눈을 감은 데이비드. 그는 금고의 비밀번호에 대해 헨리에게 유언을 하고 장례식 후 데이비드의 금고 비밀번호를 맞춰보던 헨리는 어머니도 알지 못했던 비밀번호의 부분이 자신의 생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카펜터의 위대한 여행은 그 자신이 스스로 끝맺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들인 헨리가 그 뜻을 이어 나머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어쩌면 고마운 사람과 미안한 사람을 찾아 떠나는 그 여정이 데이비드가 헨리에게 남겨준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순간 순간들, 그 페이지를 장식한 주변 사람들을 찾아 미처 전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과를 전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마침내 헨리가 깨달았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데이비드와 헨리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고맙고 미안한, 또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다. 나는 인생의 어디쯤에서 이들을 만나 짧지만 전하기 어려웠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의 무엇을 움직이게 만들까... 어찌보면 데이비드의 여행은 무모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는 동안 언제나 갑작스러운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고 마지막 순간을 전혀 연고도 없는 타향에서 맞이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며 떠난 여정에서 데이비드는 가슴 속에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것들을 일부에게나마 전할 수 있었고 때문에 다 전하지 못했어도 아마 안심하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여행의 동반자로 택했던 맏아들이 자신의 뜻을 이어 대신이나마 마음을 전할 거라고 믿었을 것이기에...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단 5음절로 되어 있는 이 말들은 어찌 보면 매우 쉽고 어찌 보면 너무 하기 어려운 말이다. 입 밖으로 내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런 말들을 사람들이 잘 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 속에 담긴 무게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그때그때 감사하고 미안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굳이 긴긴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인생에서 행복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 속의 한 마디.


48p.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은 힘든 시기를 겪는다. 모든 게 맘대로 안 되고, 꿈꿨던 것이 무너지는 그런 때 말이야. 그 시기는 어렵지만 한 번 겪고 나면 그전과는 다르게 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단다.


92p.

저는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떤 꿈을 꾸든 어떤 미래를 갖든 그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을요.


123p.

데이비드. 평생 고기를 잡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네. 우선 눈앞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보게. 그걸 발판으로 다음 일을 해 보고 또 시도해보고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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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요리법 - 식객 음식감독 김수진의
김수진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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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 식사는 거의 대부분 엄마가 차려주시는 따끈한 집밥과, 외출했을 때 밖에서 사 먹는 (그리고 집에서는 해 먹기 번거로운) 요리들, 그리고 아주 가~끔 직접 만드는 음식들로 이루어져 왔다. 사실 직접 만드는 음식이래야 라면이라든가 라면이라든가 (엄마가 육수를 내어놓은 국물에 면만 퐁당 빠뜨리면 되는) 우동이라든가 TV에서 본 인스턴트식 요리들 정도였지만. 결국 인생의 90%쯤은 그저 남이 해주는 음식들을 맛나게 먹기만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나도 내가 만든 요리를 누군가에게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싹트기 시작했다. 사실 다 먹고 난 뒤의 설거지와 뒷정리가 귀찮아서 그렇지 몇 번 해 본 (매우 간단한) 요리 자체는 꽤 재미가 있었다. 재료의 양과 배합에 따라 미묘하게 맛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고도 즐거웠던 것이다. 어쩌다 한 번 한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면 내심 뿌듯하기도 했고. 


아무튼 요리는 분명히 즐거웠다. 다만 그 관심과 즐거움이 손끝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함정! 그래서 나는 드디어 요리책을 하나 사 보기로 했다. 거창하지 않고, 재료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뒷마당의 바질 이런 거 안 된다...), 맛있는 요리들을 하고 싶어서. 그래서 고른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소문난 요리법.



소문난 요리법의 저자는 요리연구가 김수진 선생님으로 방송에서 몇 번 본 듯도 한 익숙한 인상이었다. 표지를 보니 몇 년 전 영화관에 가서 봤던 영화 <식객>의 음식감독을 맡으셨었다고. 오호, <식객>! 당시 영화의 얼개를 따라가면서 나오는 정갈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보고 침을 꼴깍꼴깍 삼켰던 맛있는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명한 요리연구가 분이 쓰신 책이다 보니 요리를 하는 기준이 높아서 요리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요리들만 나오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왜, 예전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그램의 밥 아저씨가 쓱싹쓱싹 명화를 그려놓고 ‘참~ 쉽죠?’했던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구매하기 전에 목차를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콩나물무침, 시금치된장국, 무나물, 고등어조림, 순두부찌개 등등 평소에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요리들이 많아서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책을 받아보니 재료와 테마에 따라 크게 7파트로 나뉘어 다양한 요리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일단 파트1에 나오는 맛 내기 비법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기본적인 양념과 계량법, 양념장 만드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요리를 하려고 들면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요리를 검색해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곳저곳에 유용하게 쓰이는 양념장이나 육수 내는 법은 요리지식이 없는 이상 뭘 검색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디에 쓰이는지도 잘 몰라 검색하기가 은근히 쉽지만은 않다. 그저 블로그를 뒤져보다가 얻어걸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래도 어렵다’라는 생각부터 들곤 한다. 그런데 책에서는 본격적인 요리법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뒤에 나올 요리법들에서 유용하게 쓰일 양념장, 즙, 육수 등등을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어서 기본적인 재료배합을 익히면서 좀 더 요리를 쉽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등장하는 채소, 해산물, 고기, 콩과 달걀, 견과류, 가공식품 등등 재료에 따라 나뉘어진 목차를 따라가다 보면 매일 매일 차리고 먹는 우리 가정식을 쉽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전 처음 접하는 낯선 음식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즐겨 먹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백반류나 손님이 왔을 때 정갈하게 차려 대접할 수 있는 한식류이기 때문에, 사 놓고 몇 번 뒤적여보다가 책장 한 켠에 처박아둔 채 차츰 먼지만 쌓여갈 것 같은 거창하고 화려한 레시피들보다는 훨씬 유용하게 요리책 그 자체의 기능을 발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각각의 요리법을 상세히 들여다 보면 (위의 사진은 표고버섯전의 요리법이다!) 우선 요리가 몇인분 기준인지가 나와있다. 4인가족이 일반적이어서인지 대부분의 요리가 4인분을 기준으로 제시되지만 간혹 2인분인 것도 있다. 식성과 기호에 따라서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적게 조절해가면서 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아래로는 필수재료와 선택재료가 나오는데 표고버섯전은 선택재료가 따로 없이 필수재료만 나와있지만,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재료들이 포함된 경우에는 이러한 재료들을 따로 선택재료로 묶어서 소개한다. 이런 재료들은 말 그대로, 있으면 넣지만 없으면 생략하거나 다른 재료들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들인 셈이다. 그리고 앞에 소개된 계량법으로 간단히 양을 가늠할 수 있도록 밑간이나 양념장의 배합이 소개된다. 나같이 요리법을 옆에 끼고 중간중간 봐가면서 요리를 하는 레시피신봉자(!)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래로는 실제 조리과정을 담은 사진과 함께 차근차근 단계별로 요리를 알려준다. 대부분 무리없이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간혹 적당량 이라든가 적절히, 빠르게 정도로 나오는 부분은 좀 아리송하긴 하다. (사실 나는 초보 중에서도 쌩초보라 그런지 끓이거나 굽는 시간도 모두 분 단위로 표시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진이 함께 나와 있어서 '아, 이쯤이면 이번 단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거구나'하며 단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마지막으로 팁. 팁은 있는 부분도 있고 없는 부분도 있는데 요리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이나 요리의 맛을 좀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 혹은 완성(혹은 진행중인) 요리의 최적의 보관법 등이 소개된다. 요리법도 요리법이지만 이런 자잘하고 중요한 팁들이 진짜 요리를 배우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삶는가에 따라서 조금씩 담백해기도 하고 질겨지기도 하고 진해지기도 하는... 그야말로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부분이니 말이다. 


아래로는 내가 해 보고 싶은 요리들이나 맛보고 싶은 요리들을 따로 정리해 보았다. 평소에 즐겨먹기 때문에 직접 해 먹어보고 싶은 음식도 있었고 반대로 좀처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맛일까 궁금해지는 음식도 있었다. 그리고 어렵기만 한 줄 알고 집에서는 해 먹어볼 엄두조차 내지 않았는데 의외로 간단한 조리과정 덕분에 다소 용기가 생기는 음식도 있었고 친숙한 재료를 색다른 요리법으로 소개한 음식도 있었다. 다양한 요리들이 각각의 맛과 빛깔, 냄새 만큼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콩나물 냉채)

일상적인 식사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재료인 콩나물로 만드는 색다른 요리. 냉채 하면 오이나 해파리를 주재료로 한 것이 먼저 떠오르는데 콩나물로 만든 냉채는 좀 낯설긴 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그동안 이 생각을 못했지? 싶게 조화롭다. 일단 콩나물로 냉채를 만든다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달까. 담백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아서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반찬이었던 콩나물의 색다른 변신이 꽤 매력적이다. 가장 먼저 도전해 보고 싶은 음식 중에 하나!



오이 갑장과)

위의 콩나물 냉채처럼 친숙한 재료지만 음식 이름 자체는 낯선. 갑자기 만들어졌다 해서 '갑장과'란다. 재미있는 이름이다. 오이는 '차다'는 느낌이 강한 채소여서 평소엔 따뜻한 음식과는 같이 먹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오이 위에 얹힌 짭쪼롬한 쇠고기볶음과 어떤 맛의 조화를 이룰지 궁금하다. 왠지 밥 반찬으로 한 입 두 입 집어먹다 보면 어느새 다 없어질 것 같은 느낌.



가지볶음)

내가 좋아하는 가지! 형태나 모양이 그리 예쁘다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먹다 보면 한 그릇 뚝딱하게 만드는 밥도둑이다. 가지볶음의 재료를 살펴보니 가지, 붉은 고추, 참깨 등으로 아주 단촐했다. 게다가 양념도 아무때나 집에 있는 기본적인 것들. 집 뒷마당의 바질이나 낯선 소스들이 아닌 간장, 마늘, 파 등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반찬의 주양념들이다. 가장 만만하면서도 별다른 솜씨없이 조물조물 양념을 버무려 내면 최상의 결과물을 낼 것 같은 반찬이다^^



연근전)

우리 집에서는 연근을 주로 간장과 물엿에 졸여 쫀득쫀득하고 짭짤한 반찬으로 먹는다. 밖에서도 주로 연근은 이렇게 밥과 함께 먹는 반찬 형태로 많이 접해왔는데 이건 특이하게도 연근을 전으로 부쳤다. 언제나 옳은 소고기를 연근에 뽕뽕 뚫린 구멍에 쏙쏙 집어넣어서. 크게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손님상에 내어놓을 수 있을만큼 갖춰진 느낌이어서 좋다. 연근전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일본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의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라는 책을 읽다가 그녀가 연근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근의 구멍은 이상하게도 그 구멍이 메꿔질 때에야 비로소 거기에 구멍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지금 딱 그런 느낌이다. 연근에 구멍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막상 채워놓고 나니 '어? 연근에 구멍이 있었어?'하는 느낌. 이러나 저러나 맛나 보인다.


 

매운 홍합볶음)

TV에서 한 연예인이 해 먹는 걸 보고 한 번쯤 해 먹어보고 싶었던 홍합볶음. 그러나 왠지 도전하려면 용기가 스물스물 사라져서 홍합이 있을 땐 안전하게 홍합탕만 해 먹어보곤 했었다. 물론 홍합탕으로 끓여 홍합 본연의 담백하고 야들한 맛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매콤하게 볶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행히 양념장도 크게 거창하지 않고 하니.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보고 있노라니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잔이 자꾸만 떠오르는 요리이다.



쇠고기 오절판)

월남쌈, 상추쌈, 깻잎쌈, 무쌈 등등 '싸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눈이 번쩍 뜨인 요리. 고기가 있으면 보통은 쌈 안의 내용물로 넣어 먹는데 이 요리는 특이하게 쇠고기가 바깥을 감싸는 쌈 역할을 한다. 그럭저럭 후라이팬 사용법은 익힌(;) 나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 요리이다. 책에서는 쇠고기에 대추, 밤, 당근과 깻잎을 싸 먹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기호에 따라서 버섯이나 숙주나물 같은 길쭉하고 얇은 채소들을 곁들여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월남쌈처럼 크게 어렵지는 않아도 특별하거나 중요한 날에 '요리'로서 당당히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이었다^^ 



갈비탕)

의외로 '도전해볼 만 한데?'라는 인상을 주었던 갈비탕.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의기양양해하는 건가? 라고 살짝 기가 죽으려는 찰나 갈비탕 글씨 아래의 짧은 코멘트가 보인다. '생각보다 쉽고 간단한 과정에 한 번 놀라고'... 그렇다. 간단하다. 필수 재료도 선택 재료도 간략한, 간단하면서도 인스턴트가 아닌 갈비탕! 양념은 미역국 끓이듯이 국간장 하나다. 아직은 열의만 앞선 요리초보인 탓에 실제로 해 보면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 속의 요리법을 따라가다 보면 흔히 어렵게 생각하곤 하는 갈비탕을 좀 더 친숙하게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로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두부 해물찜)

김수진 선생님께서 시어머니를 위해 자주 만드셨다는 찜. 해산물을 잘게 다져서 넣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이가 약한 어르신들이나 교정, 치과치료를 받는 사람에게도 맛있고 영양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이었다. 얼마 전 엄마께서 치과치료를 받고 계실 때 드실 만한 만만하고 부드러운 음식이 국이나 두부나 죽, 밥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때 이 요리법를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부로는 두부부침이나 국에 넣어먹는 두부, 또 두부김치 정도? 아무튼 두부가 부수적인 재료로 들어가는 요리 정도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부를 주재료로도 얼마든지 근사하고 보기에도 좋은 요리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어묵곤약조림)

최근에 궁금해 했던 것에 대한 해답을 얻은 요리법. 곤약은 나에게 있어 미지의 음식이었다. 분명히 먹어보긴 했는데, 쫀득쫀득하고 맛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집에서 해 먹자니 비리고 냄새가 난다는 말에 선뜻 도전하지 못했던 음식이었던 것이다. 음식의 냄새에 민감한 편이라 혹시 무턱대고 샀다가 먹지도 못하고 엄마한테 등짝만 두드려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망설이고만 있었는데 책에서 친절하게도 곤약 특유의 맛? 향?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실 나는 조리하지 않은 (혹은 제대로 향을 없애지 않은) 곤약은 먹어본 적이 없어서 곤약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뭣 때문에 곤약을 싫어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요리법대로 따라하면 밖에서 먹었던 쫄깃한 곤약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에 당장 시도해 볼 요리 1순위.


그동안 어쩌다 들춰본 요리책들은 '이 재료를 다 어디서 구해', '우리 집에는 오븐이 없어'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하며 다시 내려놓게 되곤 했는데 소문난 요리법은 앞서 소개한 요리들처럼 집에서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도전의식과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하면서. 평범하지만 가장 맛있고 따뜻한 가정식 요리법 이라는 뒷표지의 소개에 과연,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것저것 지지고 볶고 무치고 삶다 보면 거창한 요리들에도 도전해보고 싶겠지만 지금 막 한 발자국을 내딛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맛들을 다루는 것이 우선과제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여러 모로 구매하길 잘했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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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 - 하루 60끼, 몸무게 27kg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녀가 전해 주는 삶의 메시지!
리지 벨라스케스 지음, 김정우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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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

리지 벨라스케스 지음, 김정우 옮김


>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 표지. 웃고 있는 리지.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요구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살아왔다 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사람들은 항상 추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더 높이 평가해왔고 아름다워지고자 했고 아름다운 것에 휘둘려 왔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는 바뀌었을 거라는 말처럼 빼어난 미인들은 역사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지체 높은 귀족들은 더욱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가채를 높이 올리고 허리는 한껏 조이고 가슴을 한껏 부풀려 자신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더욱 극대화(혹은 탈피)하려고 했다.

 

현대에도 이런 경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을 맡는 것은 거의 항상 미끈하게 잘생긴 남자와 그림처럼 예쁜 여자이다. 이들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배역 또한 ‘훈훈’한 이목구비의 소유자들이다. TV에서는 뷰티 팁을 전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이고 여배우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이 몸매와 얼굴을 가꿔왔는지 알려준다. 인터넷에선 연예인이 바른 화장품이나 입은 옷이 예뻐 보인다며 어디 제품인지를 묻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등학생들은 이미 대학생 못지않게 출중한 메이크업 실력을 자랑하고 졸업 선물로 성형을 한다. 낮으면 높이면 되고, 작으면 키우면 되고, 넓으면 깎으면 된다. 성형으로 되지 않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병원에 다녀오면 얼굴이 확확들 바뀐다. 물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못생긴 사람의 외모를 개그소재 삼아 희화화하고 마치 외모가 아름다운 것이 그 밖의 모든 가치 위에 있는 것 마냥 칭송하는 현실은 사실 좀 아름다움에 대한 병적인 집착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쓴 리지는 바로 이러한 시대의 한가운데 있었다. 평범하고 흔한 외모인 사람들마저도 때때로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며 우울해하는 시대, 예쁜 것은 추앙받고 추한 것은 손가락질 받는 그런 시대에 말이다. 나도 책 표지의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좀 놀랐다. 가시처럼 앙상한 팔과 살이 없어 홀쭉한 얼굴이 24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빈말로라도 예쁘다곤 할 수 없는 그녀가 슈퍼모델처럼 허리에 손을 얹고 멋지게 포즈를 취한 모습과 우울하고 찡그린 얼굴이 아닌 화사하게 웃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노라니 책을 읽기도 전부터 리지의 강한 의지가 전해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볼테면 보세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지만, 웃는 얼굴은 다른 사람 못지않답니다.’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책을 읽다가 리지의 이모가 붙여주었다는 ‘햇살’이라는 별명을 보았을 때 그 별명이 리지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0.9kg의 작은 아기로 태어난 리지.   

 

사실 인형처럼 작은 0.9kg의 아기로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의 삶이 남들과 다르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양수가 하나도 없는 자궁 속에서,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위치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난, 그러나 의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 아기. 겨우 생명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외모 때문에 성장 과정 속에서 많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작고 마른 그녀를 향한 아이들의 솔직한, 그러나 잔인한 말들이 조그만 가슴에 얼마나 아프게 와 닿았을지 나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리지는 지난 일들을 차분하게 돌이켜보며 그때의 아픔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몇 줄의 글로는 도저히 리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이 대신해줄 수도 없던, 오롯이 리지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학교에서의 따가운 시선들... 다행히 리지의 곁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눈물을 닦고 힘을 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마 그때의 상처들은 아문 흉터를 남긴 채 평생 리지의 마음 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리지의 태도는 너무나 차분하고 성숙해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리지가 24살의 풋풋한 아가씨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24살 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를 생각하니 온통 철부지 같은 모습들 뿐이어서 그녀가 더 성숙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리지가 마치 성인(聖人)처럼 처음부터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좌절했고 분노했고 자기를 부정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야만 했던 현실을 원망했고 앞으로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절망했다. 그런 고통 속에서 그녀가 하나님을 대했던 방식은 나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공감도 갔다. 자신이 원하는 일들만 이뤄지길 바라며, 원하는 것에 대해 기도를 하며 일방적으로 소통하려 했다고 자신은 하나님을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로 여겼다고 하는 리지를 보면서 나 또한 하나님과 소통하려는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언제나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갈구하며 내 주위의 곤란한 상황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길 바라며 또 산타처럼 나에게 선물을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했기에 리지의 ‘산타클로스’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했던 것이다.


> 하나님을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로 생각했었다는 리지의 이야기.


그러나 남들이 좌절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뼈아픈 과정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털어놓고,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애쓰며, 자신을 조롱한 사람들에게 같은 적대감과 혐오를 그대로 돌려주기 보다는 ‘용서’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인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리지의 태도는 20대 아가씨라기보다는 오랜 인생을 살고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의 것 같아보였다. 어쩌면 그녀의 24살 인생은, 평범한 사람들의 24살보다 정말 길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 한 번 들을까 말까한 모욕적인 말들을 수없이 읽고 들어야 했던 그녀이기에... 그런 날의 하루는 아마도 무척 길었을 것이다.

 

한편 리지가 이렇게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그녀의 신앙과 신념 뿐 아니라 부모님과 친구들의 사랑과 격려도 많은 역할을 했다. 리지의 부모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의사들을 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리지의 기록이 될 일기를 쓰면서 그 누구보다 커다란 사랑을 쏟았다. ‘만약에’라는 부정적인 가정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어머니와 리지를 웃겨주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리지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했던 아버지. 이 두 사람이 리지의 인생을 보다 긍정적이고 반짝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리지의 모습에 개의치 않고 든든하게 맞잡은 손이 되어주던 친구들- 리지가 이들을 3F라고 언급하며 인생의 귀한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면도날과도 같은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로 자신을 찔러대고 있을 때에도 슬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리지는 특별히 좋은 친구를 만드는 법에 대해 언급하며 좋은 친구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친구에게 기대하는 것을 먼저 갖추라고 말한다.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면 상대방도 역시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 누군가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해보라던 리지의 말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말이어서 세상을 대하는 그녀의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리지는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타인이 결정하도록 두지 말라고. 타인이 마음껏 휘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그녀 스스로도 아직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시인하며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하지 않을수록 점점 더 행복해졌음을 강조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것을 권한다. 외모와는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며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동안 걸핏하면 환경을 탓하고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불평하던 나에게 큰 부끄러움과 깨달음, 그리고 감사를 주었다. 결국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지레 겁먹고 주눅들기도 하고 때로는 실체없는 망상에 빠져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 별명과 꼭 어울리는 '햇살' 같은 리지의 미소.

  

리지는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자신의 소망을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다. 나도 리지의 책을 읽고 나에게 주어진 감사한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복에 겨웠던 욕심 많은 사람인가를 느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리지를 따라서 내가 감사한 것들의 목록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 어쩐지 우울해지거나 남과 비교해 초라한 내가 보일 때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화나고 짜증날 때 리지처럼 한 번씩 읽어볼 생각이다. 나에게 2014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책으로 다가온 리지의 작은 선물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없는 축복과 희망으로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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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한줄 카피 : 시대를 뛰어넘는 이정표가 되어줄 참된 멘토, 공자와의 만남


 

나는 천성이 비뚤어진 청개구리인지 무조건 가르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 드는 책이 조금싫었다.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하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날 줄 알아 하며 으름장을 놓는 듯한 몇몇 책에 기가 질려서이기도 했고 책 속에서 과연 길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원론적인 의문 때문이었다. 책이 제시하는 길을 누구나 갈 수 있다면 실패한 인생을 살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물론 책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다 옳다. 맞는 소리이고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괜찮은 인생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책이 말하는 대로만 살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인 셈인데,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살 수 없을까? 그건 바로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마음을 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을 울리지 않는가? 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구구절절 옳을 말을 하는 책 선생님인데 왜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까. 나는 그 중의 하나가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그저 '옳은 소리'만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옳은 소리.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옳은 소리. 우리 나라에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는다 는 속담이 있다. 이는 부지런하면 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근면함을 권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결국 일찍 일어나는 벌레이다. 그렇다면 벌레에게도 이 속담이 근면함을 권장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을까. 예시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새와 벌레처럼 인간은 모두 다 같지 않고 제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지닌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데서 자며 같은 생활방식을 영위하는 가족 조차도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다 같을 수는 없다. 하물며 나고 자라온 환경과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는 것이 맞는 사람도 있고 한낮에는 잠을 청하고 밤에 많은 것들을 창작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면 때로 이런 다양성을 간과하고 그저 누구나 다 아는 옳은 소리만을 (그것도 아주 독선적으로) 나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책은 마음을 울리지 못했고 그저 한 번 읽고 제목마저 희미하게 잊혀지는 책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많은 자기계발서가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생의 멘토를 자처하고 나선 책들 중 재미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앞에서 했던 소리를 단어와 문장만 바꿔서 또 한번, 그리고 또 한번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이 책을 꼭 다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가 없다 보니 읽다가 책장을 덮는다. 혹은 한 두어장 읽어보다가 그대로 덮고는 펼쳐보지도 않는다.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 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일은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하니 결국 재미가 없고 얻는 것이 없어서일 거다. 아무리 가치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도 지나치게 계몽적이어서 책을 읽으면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애초에 읽지를 않는데 그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쓰다 보니 내 리뷰 또한 길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서 '너 또한 그렇지 않느냐'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ㅠㅠ)

 

어쨌든 이렇게 자기계발서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에 가득찬(?)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제목은 그럴싸한데 이 책은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재미가 있을까? 나는 이 책으로부터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수많은 물음을 던지며 책 표지를 들여다보니 '공자'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공자라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그 공자님, 유교 사상가인 그 공자님,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종종 성어로 만나보았던 그 공자님이 아닌가. 솔직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 공자님의 말씀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고교시절 들었던 성어들은 시험공부할 때에만 달달 외웠기 때문인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고 공자의 <논어>는 들어봤지만 읽지는 않았다. 고전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건 고전도 너무 고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책을 읽기도 전부터 고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글쓴이의 머리말을 읽고, 총 10장으로 나뉜 책의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기면서 공자에 대한 나의 <고루하고 재미없다>라는 인식은 완전 틀렸음을 가슴 깊이 느꼈다. 그것은, 한 번도 제대로 공자를 접해 보지 못한 나의 주제넘은 편견이었고, 더 알려고 하지 않은 오만과 무지함이었다. 

 

일단 본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며 느낀 소감을 정리하고 싶다. 난 예전에는 머리말을 읽지 않고 곧장 본문으로 넘어가는 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머리말을 주의깊게 읽게 되었다. 그것은 머리말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응축되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난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저자는 공자의 지혜를 통해 원하는 삶을 사는 비결을 제시하기 위해 마음 먹은 후 공자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기법을 택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옛사람과 현대인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닌 공자를 새로운 모습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동안 내가 공자에 대해 갖고 있던 '오래된 성인'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주었다. 그것도 제3자의 눈을 통해 본 공자가 아니라 공자의 가장 오래된 제자였던 자공의 눈을 빌려옴으로써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처럼 그의 가르침을 좀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국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나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공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고 또 어렵지 않게, 쉽고 재미있게 공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수많은 공자의 가르침이 나온다. 그의 가르침은 여겨 보지 않았기에 죽은 지식에 불과했던 이전과는 다른 감회로 내게 다가왔다. 자공을 서술자로 하여 많은 예화들과 함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공자의 삶과 지혜를 조명했기 때문에 소설책을 읽듯이 내가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공자 라는 한 인간에 대해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 마음에 파문을 던져준 구절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뜨끔했던 것 같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눌러앉아 엉덩이를 문대며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하며 마음 속으로만 애타하던 내 자신을 따끔하게 꼬집는 말이었기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하고 그 상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건만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외부로만 탓을 돌리고 있었다는 걸, 변해야 할 것은 내 주변보다는 나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 이야기였다. 너를 둘러싼 상황은 그리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상황을 바꾸기보다는, 내 주변에서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섭섭해하고 원망하며 속절없이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듯한 공자의 목소리가 마음 속에 들려오는 듯 했다. 덕분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인간의 다양성을 떠나 누구에게도 통용되는 당연한 진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에는 옮기지 않았던 내 자신을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치욕을 당해도 그것에 마냥 분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삼아 자기자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은 젊은 날의 공자가, 또 스승의 가르침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제자 안회와 자공이 괜히 후대에까지 이름을 떨치는 인물들이 된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편 공자는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인생의 아름다움을 둘러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일에 바빠 정작 자신이 사는 주변의 아름다움에 무감해진 자공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사는 동안의 '행복'을 누릴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 그리고 너희 삶을 서정적으로 만들어 가거라 하며 제자들에게 가르친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 또한 과거에 당장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리느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을 뒷전으로만 미루고 또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놓쳤던 것이 아닌가 하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올가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보내지 못했던 시간. 그러나 마음을 먹고 세상으로 나서보니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가을의 온갖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공자의 말을 듣고 '삶이 이토록 아름다운가'하며 새삼 즐거움을 느꼈던 자공과 마찬가지로 '가을이라는 계절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생각하며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하나에서도 계절의 얼굴을 발견하며 즐거워했던 것 같다. 또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기에 더 그랬고. 그 가을이 지나고 이제 겨울이 왔지만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던 것 같다. 올 가을은 정말 잊지 못할 즐거운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고. 눈에 들어왔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소중했었다고. 그리고 이때의 재충전을 발판으로 삼아 이런 즐거운 기분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하며 공자가 자공에게 주고자 한 것을 이미 느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공자는 그저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일 뿐만 아니라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는 풍부한 감성의 예술가이기도 했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여유를 잃지 말라, 는 말도 지금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조바심내며 앞으로의 내 삶이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불안한 의구심에 사로잡혀 조금씩 조금씩 나를 좀먹던 나에게 매우 위급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던 공자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깊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떨며 상대에게 맞서려 들었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지 않았을까. 공자의 이런 모습은 요즈음 화두가 되는 '긍정적인 인간상, 긍정의 심리학'과도 일맥상통하며 공자의 가르침이 현재에까지도 충분히 유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매사 걱정이 많고 고민이 많은 나로서는 어려운 상황이 닥쳐올 때마다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구절이 아닌가 싶어 얼른 수첩에 적어두었다. 물론 책을 한 번 읽었다고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짜증부터 내고 '왜 나에게만!'하며 불평불만을 하기 이전에 이 가르침을 한 번 더 읽어본다면 조금씩 조금씩 다른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고.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공자의 가르침이 앞서 말했던, '단순히 옳은 소리, 누구나 할 수 있는 옳은 소리'라고만 여기지 않았던 것은 제자들의 성격에 따라 또 맞이하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발휘했던 공자의 융통성과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때문이었다. 공자는 두 제자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으나 충동적인 성향의 자로에게는 조금만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라는 답을, 큰일을 앞에 두고 위축되는 성향의 염구에게는 곧바로 일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답을 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묻는 자공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통일된 기준으로 가르치는 것이 꼭 좋은 교육은 아니며 오히려 학생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고(p.86). 또한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같은 방식의 대처를 고집하지 않았고 일의 경중과 급박함에 따라 그동안 고수해왔던 대응과는 다른 대응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자는 많은 군주들이 위계를 중시하고 절대군주로 군림하고자 하는 와중에도 아랫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섬김의 리더십(서번트 리더십)'과도 같다. 고루하고 오래된 옛사람으로만 여겨졌던 공자가 몇세기 이후에나 주목받게 된 섬김의 리더십을 그 시대에 이미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공자는 이처럼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상황의 다양성을 이해할 줄 알며 리더임에도 자신을 낮출 줄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공자의 가르침은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지금에 와서도 진정한 멘토의 말씀으로 여러 사람에게 본이 되고 지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제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공자의 여러 가르침을 받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책 속의 공자는 내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공자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던 공자는 어떤 일에도 허허허 웃으며 사상을 설파하고 인과 예를 주장하고 법도를 중시하며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말 그대로 4대 성인의 이미지였다. 그 어떠한 상태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는 완벽한 인간, 그것이 내가 가진 공자 이미지의 전부였다. 그러나 요 며칠간 알게 된 공자는 달랐다. 제자들이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때면 크게 화를 내기도 했고 (책을 읽다 보면 서술자인 자공이 '선생님이 화를 내시지는 않을까 걱정하였다'라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때로는 간악한 이의 꾐에 빠져 궁지에 몰리기도 하였고(양화와의 불편한 만남, p.80), 예의에 어긋나는 대우를 받고 한탄하며 제자 앞에서 그 대상(을 향한 저주의 말("하늘이 그녀를 미워하리라. 하늘이 미워하리라." p.381)을 퍼붓기도 하였다.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인과 예의 길로, 또 현재를 사는 나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던 공자와 화내고 궁지에 빠지고 때론 저주를 퍼붓는 공자가 같은 사람이라니. 공자는 군자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공자가 좋은 멘토로서, 좋은 스승으로서 훌륭한 점은 바로 여기에서 그의 완벽하지 않음에서 빛을 발한다.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또한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많은 제자들이 거리감 없이 더 그를 사랑하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공자의 이런 비범하고도 평범한 면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불멸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게 바로 선생님의 훌륭하신 점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의 위대함은 그분이 신이 아니라 평범한 분이라는 데 있습니다.

선생님은 꿈이 원대하고 학식이 비범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평범함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토록 친밀하실 수 있었고,

우리도 더욱 기쁘고 즐겁게 선생님을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p.382, 담대자우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구절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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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땐 시리즈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지음, 김정훈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과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공교롭게도 제목 속에 내게 꼭 필요한 지침과, 반대로 두려움을 갖게 하는 단어가 함께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랬다. 하루하루가 권태로웠고 정해둔 목표와는 어느새 다른 방향으로 자꾸만 엇나가며 시간을 물쓰듯 사용하며 빈둥거렸다. 그랬기에 ‘무력할 때’ 어떻게 이 반복된 고리를 끊어내야 할 지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다.

 

하지만 맙소사, 그 조언자가 아리스토텔레스라니! 그는 유명한 철학자가 아닌가. 길지 않은 인생에서 철학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나는 그 이름만 봐도 눈 앞이 캄캄했다. 그만큼 내게 ‘철학’이란 어려운 것, 모호한 것, 골치 아픈 것 뭐 이런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내가 큰 맘 먹고 이 책을 읽어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솔직히 첫 장을 넘기면서 혼자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이 책을 반이나 읽을 수 있을까. 한 열 페이지 읽고 때려치우는 것이 아닐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무력할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는 마음이 철학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빈말로라도 이 책은 쉽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끊임이 사유하고 내 삶을 돌이켜보아야 하는, 완독에 꽤 긴 시간이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서 철학이라는 게 겁을 덥썩 집어먹고 멀리할 정도로 어려운 것만은 아니며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철학 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나인데 말이다. 책을 읽기 전 철학을 책 속의 고루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생각했던 것보다 실용적인, 우리 삶에 적용할 것이 아주 많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철학을 난생 처음 접하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움직일 수 있는 거리 수준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처음 걸음을 뗀 아이는 걷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들보다 걷는 행위에 재미를 느끼며 보다 많은 걸음을 떼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처럼 나도 책을 읽으면서 처음 접한 철학에 대해 흥미가 생기고 재미가 붙는 것을 느꼈다. 내가 책에 재미를 느끼게 한 요소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각 장의 내용을 읽다 살짝 지치려고 할 때마다 나와주는 ‘짚어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리, 추론, 탁월성, 절도... 조금은 낯선 단어들에 뒷장을 넘기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때 짚어보기를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고 본문의 내용을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머리말에서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은 일반적인 철학책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것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일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은 철학의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구나 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삶의 문제가 우리의 무지로부터 비롯된다는 흔한 착각처럼 나 또한 그랬다. 걸어가던 길이 삐끗할 때마다 나에게 정보가 없기에 지식이 부족하기에 발을 헛디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앎’은 그 자체로는 목적이 아닌 도구일 뿐이었다. 우리가 매순간 앞일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은 앎을 도구로 활용하여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앎’이 아닌 욕망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뜨끔했던 부분은 진단하기의 첫 번째 짚고 넘어가기 중 2번 질문을 마주했을 때였다. 누군가 “오늘 저녁에 뭐하고 싶어?”라고 혹은 “오늘 저녁으로는 뭐 먹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마 “아무거나.”라든지 “넌 뭐하고 싶은데?” 혹은 “넌 뭐 먹고 싶은데?”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생활방식을 그대로 집약한 대답인 것 같아서 나는 아연해졌다. 남들만큼 욕구가 있고 남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욕심스러운 욕망을 안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건만 사실 내 욕망의 수준이란 이다지도 미미한 것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욕심없고 소탈하니 좋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안고 살아가고 이러한 욕망은 인간이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그리고 행동하도록 하는 기제가 된다. 그런데 나는 이처럼 젊은 나이에!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에! 욕망에 초연(?)해져 버리고 만 것인가?

 

그리고 이 뜨끔한 마음은 다음 질문에서 철렁했다. 다음 질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적게 할수록 적게 하고 싶어진다.> 무기력한 상황이 계속되면 응집되어 있던 욕망은 스물스물 풀려 흩어지게 되고 이것은 또 다시 무기력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막연한 욕구와 목표를 가지고 설렁설렁 아무렇게나 지내던 지금 내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기에 이 부분은 읽는 순간 뒤통수가 화끈해졌다. 생각해 보니 요즘은 '~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막연한 욕망 이외에 내가 바라는 것도 딱히 없었다. '~해야만 한다'라는 강한 욕망이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별다른 욕망도 없이 무기력한 상황이 이어지면 나는 내가 꿈꾸던 활짝 핀 미래 대신 남들보다 일찍 시들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오싹해졌다.

 

책은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의 네 단계를 거쳐 삶의 성찰과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많은 문장 하나하나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세 가지를 얻었다. 첫 번째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대로 무기력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것. 욕망을 위해 아니 보다 윤택한 내 삶을 위해서는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따뜻한 냄비 속에서 자신이 익혀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던 개구리에게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따끔한 일침이 되는 깨달음이었다.

 

두 번째는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행동을 즐거움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책에서는 ‘포이에시스’와 ‘프락시스’를 통해 이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포이에시스’의 도식에 따라 목적과 행동을 별개의 선상에 두고 나아가는 경우에는 항상 패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노력하고 힘쓴다고 해서 그 길이 항상 성공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운 나쁘게도 성공이 아닌 패배와 만나는 경우 사람은 절망과 회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프락시스’의 도식에 따라 목적과 행동을 동일선상에 두고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경우는 행위의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이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행위를 하는 동안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즐거운 행위는 결과적으로 패배보다는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다만, 내 진로를 틀어버릴 수 없는 경우 그 행위를 어떻게 즐거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얻은 것은 철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다. 리뷰를 시작하면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철학은 골치 아픈 것, 어려운 것으로만 여기고 멀리해 왔다. 아마 내 무력한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이 책의 제목에 흥미를 느끼고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삶과 멀리 떨어져 관조하고만 있는 학문이 아니었고 오히려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학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책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 자신은 없다. 하지만 어려우니까 관두자 라는 마음보다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떻게 살아라!'하고 삶의 방향성을 짚어주고 떠먹여주기(?)보다는 판단과 방향은 독자가 온전히 자신을 이해하고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각성 정도의 도움만을 주는 책이었다.

 

따라서 나처럼 만성적인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현재 살아가는 인생에서 불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아마 대다수가 조금씩은 불만족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시중에 흔히 나와있는 힐링서들이니 자기계발서이니 하는 서적들보다는 이 책을 꼼꼼히 읽는 것을 더 추천하고 싶다. 어렵게만 보이는 철학 속에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삶의 진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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