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펜터의 위대한 여행
김호경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카펜터의 위대한 여행, 이라는 제목을 읽고 처음에는 두 가지 착각을 했다. 하나는 이 책이 외국저자의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카펜터 라는 이국적인 이름 때문이었다. 그러나 웬걸, 실은 얼마 전 영화관에서 눈물콧물을 줄줄 흘리며 보았던 <국제시장>의 원작자 김호경 작가의 신작이었다. 제목의 이름이 외국 사람 이름이라고 외국작품이라고 생각하다니. 고정관념이 무섭다. 그리고 또 다른 착각은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알라딘에서 분류를 보니 자기계발서로 적혀 있었다. 이 두 가지 착각이 책을 읽는 데 있어 크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의외다'라고 느끼게 한 부분이기도 했다. 평소에 서양식 소설도 좋아하지 않고 자기계발서도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는데 '의외로'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다. 아마 한국 작가가 쓴 소설 같은 자기계발서였기에 기존 자기계발서들과는 달리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데이비트 카펜터를 기리는 카펜터 기념관이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카펜터의 유품들을 파는 자선 바자회에서 존은 <야망의 계절>이라는 책 한 권을 구입하지만, 이 책이 실수로 바자회에 출품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존과 친구 마이클은 사례금을 두둑히 받을 생각에 들떠 헨리 카펜터와 만나게 된다. 헨리 카펜터는 책 속에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낡은 메모지 한 장을 꺼내고 그로부터 카펜터 부자의 특별했던 여행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도유망한 농구스타 헨리 카펜터는 경기 중 상대편의 반칙에 분개하여 주먹을 휘두른다. 그 일로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팀은 패배에 농구 출전 금지까지 당하고 헨리는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유명인사인 아버지 데이비드는 그에게 있어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되려 아들 일로 사업이 어려워질까 걱정할 뿐 헨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작은 위로의 말 조차 건네지 않는다. 헨리 또한 바깥 일에 바빠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거리감을 느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시작된 아버지와의 여행. 헨리는 그 여행이 기껍지 않으면서도 그동안 사고 싶던 차를 사준다는 말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데이비드를 따라나선다.


어디로, 왜,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 건지도 잘 알지 못한 채 따라나선 여행에서 헨리는 아버지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그가 과거의 고마웠던 사람, 그리고 미안했던 사람을 찾아 감사와 사과를 전하기 위해 이 여행을 시작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들로서 가족으로서 아버지의 그 결정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헨리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계속하고 그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과거에 얽혀 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밝혀준 고마운 사람을, 때로는 비겁하게 약속을 어겨 상처를 준 사람을... 그리고 때로는 과거의 과오를 생각나게 하는 첫사랑을. 


데이비드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사람은 데이비드가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상관이었던 더글라스 미치너 상사와 월남전에 돌아온 직후 다툼을 벌였던 벤슨 매그너스였다. '미시시피의 보물을 찾겠다'는 데이비드의, 남들은 허황된 꿈이라며 웃어넘겼던 바로 그 꿈을 지지해준 은사 알렉산더도 그렇지만 더글라스 미치너는 보다 구체적으로 데이비드의 인생을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아마 데이비드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그가 좌절해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준 가장 큰 은인일 것이다. 비록 데이비드는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에게 은혜를 갚고 이미 고인이 된 더글라스를 기리며 추억에 잠긴다. 한편 데이비드의 메달을 업신여기는 발언으로 크게 다툼을 벌였던 벤슨 매그너스... 사과해야 할 사람이라며 데이비드가 그를 만났을 때 벤슨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데이비드의 메달을 꺼내 돌려준다. 언젠가는 꼭 돌려주려고 보관하고 있었다면서. 젊은 날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 메달을 데이비드가 오랜 친구로부터 돌려받는 순간은 독자인 나 마저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헨리는 아버지와 보낸 이러한 여정들을 따라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가깝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가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여행의 시작은 아버지가 사준 자동차 때문이었지만 여행이 중반으로 접어들며 헨리에게 더 이상 그 차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책에서 데이비드의 여정은 끝내 끝을 맺지 못하고 알래스카에서 중단된다. 배에서 쓰러져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가 눈을 감은 데이비드. 그는 금고의 비밀번호에 대해 헨리에게 유언을 하고 장례식 후 데이비드의 금고 비밀번호를 맞춰보던 헨리는 어머니도 알지 못했던 비밀번호의 부분이 자신의 생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카펜터의 위대한 여행은 그 자신이 스스로 끝맺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들인 헨리가 그 뜻을 이어 나머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어쩌면 고마운 사람과 미안한 사람을 찾아 떠나는 그 여정이 데이비드가 헨리에게 남겨준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순간 순간들, 그 페이지를 장식한 주변 사람들을 찾아 미처 전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과를 전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마침내 헨리가 깨달았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데이비드와 헨리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고맙고 미안한, 또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다. 나는 인생의 어디쯤에서 이들을 만나 짧지만 전하기 어려웠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의 무엇을 움직이게 만들까... 어찌보면 데이비드의 여행은 무모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는 동안 언제나 갑작스러운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고 마지막 순간을 전혀 연고도 없는 타향에서 맞이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며 떠난 여정에서 데이비드는 가슴 속에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것들을 일부에게나마 전할 수 있었고 때문에 다 전하지 못했어도 아마 안심하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여행의 동반자로 택했던 맏아들이 자신의 뜻을 이어 대신이나마 마음을 전할 거라고 믿었을 것이기에...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단 5음절로 되어 있는 이 말들은 어찌 보면 매우 쉽고 어찌 보면 너무 하기 어려운 말이다. 입 밖으로 내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런 말들을 사람들이 잘 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 속에 담긴 무게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그때그때 감사하고 미안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굳이 긴긴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인생에서 행복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 속의 한 마디.


48p.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은 힘든 시기를 겪는다. 모든 게 맘대로 안 되고, 꿈꿨던 것이 무너지는 그런 때 말이야. 그 시기는 어렵지만 한 번 겪고 나면 그전과는 다르게 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단다.


92p.

저는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떤 꿈을 꾸든 어떤 미래를 갖든 그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을요.


123p.

데이비드. 평생 고기를 잡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네. 우선 눈앞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보게. 그걸 발판으로 다음 일을 해 보고 또 시도해보고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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