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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ㅣ 땐 시리즈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지음, 김정훈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과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공교롭게도 제목 속에 내게 꼭 필요한 지침과, 반대로 두려움을 갖게 하는 단어가 함께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랬다. 하루하루가 권태로웠고 정해둔 목표와는 어느새 다른 방향으로 자꾸만 엇나가며 시간을 물쓰듯 사용하며 빈둥거렸다. 그랬기에 ‘무력할 때’ 어떻게 이 반복된 고리를 끊어내야 할 지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다.
하지만 맙소사, 그 조언자가 아리스토텔레스라니! 그는 유명한 철학자가 아닌가. 길지 않은 인생에서 철학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나는 그 이름만 봐도 눈 앞이 캄캄했다. 그만큼 내게 ‘철학’이란 어려운 것, 모호한 것, 골치 아픈 것 뭐 이런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내가 큰 맘 먹고 이 책을 읽어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솔직히 첫 장을 넘기면서 혼자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이 책을 반이나 읽을 수 있을까. 한 열 페이지 읽고 때려치우는 것이 아닐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무력할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는 마음이 철학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빈말로라도 이 책은 쉽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끊임이 사유하고 내 삶을 돌이켜보아야 하는, 완독에 꽤 긴 시간이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서 철학이라는 게 겁을 덥썩 집어먹고 멀리할 정도로 어려운 것만은 아니며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철학 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나인데 말이다. 책을 읽기 전 철학을 책 속의 고루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생각했던 것보다 실용적인, 우리 삶에 적용할 것이 아주 많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철학을 난생 처음 접하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움직일 수 있는 거리 수준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처음 걸음을 뗀 아이는 걷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들보다 걷는 행위에 재미를 느끼며 보다 많은 걸음을 떼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처럼 나도 책을 읽으면서 처음 접한 철학에 대해 흥미가 생기고 재미가 붙는 것을 느꼈다. 내가 책에 재미를 느끼게 한 요소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각 장의 내용을 읽다 살짝 지치려고 할 때마다 나와주는 ‘짚어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리, 추론, 탁월성, 절도... 조금은 낯선 단어들에 뒷장을 넘기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때 짚어보기를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고 본문의 내용을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머리말에서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은 일반적인 철학책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것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일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은 철학의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구나 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삶의 문제가 우리의 무지로부터 비롯된다는 흔한 착각처럼 나 또한 그랬다. 걸어가던 길이 삐끗할 때마다 나에게 정보가 없기에 지식이 부족하기에 발을 헛디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앎’은 그 자체로는 목적이 아닌 도구일 뿐이었다. 우리가 매순간 앞일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은 앎을 도구로 활용하여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앎’이 아닌 욕망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뜨끔했던 부분은 진단하기의 첫 번째 짚고 넘어가기 중 2번 질문을 마주했을 때였다. 누군가 “오늘 저녁에 뭐하고 싶어?”라고 혹은 “오늘 저녁으로는 뭐 먹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마 “아무거나.”라든지 “넌 뭐하고 싶은데?” 혹은 “넌 뭐 먹고 싶은데?”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생활방식을 그대로 집약한 대답인 것 같아서 나는 아연해졌다. 남들만큼 욕구가 있고 남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욕심스러운 욕망을 안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건만 사실 내 욕망의 수준이란 이다지도 미미한 것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욕심없고 소탈하니 좋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안고 살아가고 이러한 욕망은 인간이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그리고 행동하도록 하는 기제가 된다. 그런데 나는 이처럼 젊은 나이에!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에! 욕망에 초연(?)해져 버리고 만 것인가?
그리고 이 뜨끔한 마음은 다음 질문에서 철렁했다. 다음 질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적게 할수록 적게 하고 싶어진다.> 무기력한 상황이 계속되면 응집되어 있던 욕망은 스물스물 풀려 흩어지게 되고 이것은 또 다시 무기력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막연한 욕구와 목표를 가지고 설렁설렁 아무렇게나 지내던 지금 내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기에 이 부분은 읽는 순간 뒤통수가 화끈해졌다. 생각해 보니 요즘은 '~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막연한 욕망 이외에 내가 바라는 것도 딱히 없었다. '~해야만 한다'라는 강한 욕망이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별다른 욕망도 없이 무기력한 상황이 이어지면 나는 내가 꿈꾸던 활짝 핀 미래 대신 남들보다 일찍 시들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오싹해졌다.
책은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의 네 단계를 거쳐 삶의 성찰과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많은 문장 하나하나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세 가지를 얻었다. 첫 번째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대로 무기력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것. 욕망을 위해 아니 보다 윤택한 내 삶을 위해서는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따뜻한 냄비 속에서 자신이 익혀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던 개구리에게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따끔한 일침이 되는 깨달음이었다.
두 번째는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행동을 즐거움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책에서는 ‘포이에시스’와 ‘프락시스’를 통해 이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포이에시스’의 도식에 따라 목적과 행동을 별개의 선상에 두고 나아가는 경우에는 항상 패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노력하고 힘쓴다고 해서 그 길이 항상 성공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운 나쁘게도 성공이 아닌 패배와 만나는 경우 사람은 절망과 회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프락시스’의 도식에 따라 목적과 행동을 동일선상에 두고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경우는 행위의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이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행위를 하는 동안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즐거운 행위는 결과적으로 패배보다는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다만, 내 진로를 틀어버릴 수 없는 경우 그 행위를 어떻게 즐거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얻은 것은 철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다. 리뷰를 시작하면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철학은 골치 아픈 것, 어려운 것으로만 여기고 멀리해 왔다. 아마 내 무력한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이 책의 제목에 흥미를 느끼고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삶과 멀리 떨어져 관조하고만 있는 학문이 아니었고 오히려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학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책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 자신은 없다. 하지만 어려우니까 관두자 라는 마음보다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떻게 살아라!'하고 삶의 방향성을 짚어주고 떠먹여주기(?)보다는 판단과 방향은 독자가 온전히 자신을 이해하고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각성 정도의 도움만을 주는 책이었다.
따라서 나처럼 만성적인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현재 살아가는 인생에서 불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아마 대다수가 조금씩은 불만족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시중에 흔히 나와있는 힐링서들이니 자기계발서이니 하는 서적들보다는 이 책을 꼼꼼히 읽는 것을 더 추천하고 싶다. 어렵게만 보이는 철학 속에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삶의 진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