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뒤늦게 눈길을 끈 뉴스가 있었다. 어느 말기 암 환자의 생전 장례식에 관한 것이었다. 환자는 고령이었고 자신의 죽음은 자신이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명치료계획서에 서명을 했다. 임종 상황이 오면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과 같은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부고장을 보내 생전 장례식을 열었다. ‘조문객’들에게는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을 입고 오라고 했다. 풍선과 꽃으로 장식된 장례식장에서 그는 조문객들과 추억을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장례식보다는 조촐한 파티 같은 분위기였을 것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지인들과 충분한 작별의 시간을 가진 그의 일화를 보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어느 논설위원의 말을 빌리자면) ‘존엄한 이별’이었다. 그의 생전 장례식은, 떠날 이에게도 남겨질 이에게도 오래도록 반짝일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스다 미리의 신작은, 소중한 두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했던 시간들을 기록한 에세이였다. 짧지만, 남겨진 이들에게는 긴 이별. 삼촌과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처럼 언뜻 잔잔했고 차분해 보였다. 그게 더 슬퍼서, 나는 그녀의 글이 하얀 쌀밥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지만 꾹꾹 힘주어 씹을수록 달콤하고 진한 슬픔이 배어났다. 두 죽음을 겪어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녀의 모습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어 내려갔다. 그녀의 모습 곳곳에, 지나간 죽음과 다가올 죽음을 떠올리는 내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병을 받아들이고 죽음이 드리운 아버지와 어묵을 사러 편의점에 가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취재하면서 그녀는 조금씩 아버지에 대해 더 알아간다. 대충 다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취재를 핑계로 나눈 아버지와의 이야기는 메모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많다. 첫 번째 취재 일주일 후, 아버지는 말끔한 차림으로 얘기할 준비를 한다. 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시간보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알게 된 아버지의 모습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나는 아빠의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옛날이야기 뿐 아니라 요즘 이야기도 잘 모른다. 엄마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아빠와는 그런 적이 별로 없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평소의 아빠는 수줍음이 많고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졌다. 두서없이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했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어 아빠가 술에 취한 것 같다 싶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 아빠는 엄마를 붙들고 이야기하다가 잔소리를 듣곤 비척비척 이불로 들어가 쿨쿨 술냄새를 풍기며 잠을 잤다. 다음날이 되면 아빠는 다시 과묵한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수줍음이 많고 표현이 서툴러, 술의 힘을 빌어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 뿐인데 아빠는 우리에게 ‘과묵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릴 적 ‘엄마 아빠’라는 존재는 어린 시절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냥 원래부터 나의 엄마 아빠로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옛날 앨범을 보다가 아빠의 20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덥수룩한 장발머리의 앳된 젊은이가 나팔바지를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아빠, 이거 아빠야?”하며 보여주니 “그럼 아빠지 누구야, 임마~”하며 사진을 가져갔다. “멋쟁이였네.”라는 말에 별 대꾸 없이 아빠는 부신 듯 그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런 아빠의 새까맣던 머리에는 드문드문 흰 빛이 반짝였다. 아빠에게도 꿈 많은 청춘이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올해는 아직 벚꽃을 못 봤네.”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결국 같이 가잔 말을 하지 않았고 “켄터키, 먹고 싶네.”라고 했던 아버지를 떠올렸지만 결국 귀찮아져 깎은 감을 들고 갔다던 일화를 읽으며,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잊을 만하면 마음을 쿡, 찌르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의 기억이었다.


나는 다정한 외할머니는 무척 좋아했지만, 외할아버지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외갓집에 놀러 가면 환하게 맞아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옛날분이라 장손인 오빠나 남동생을 더 예뻐했다. 손자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듯 뿌듯하고 대견해 보였다. 손녀인 내게는 그 정도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다. 때때로 우리가 큰소리로 떠들면 혼을 내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주긴 했지만 식사 시간 외에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별로 볼 수 없었다. 내게는 좀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며 점차 혼자 거동이 힘들어졌다. 점점 누워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와 둘이 집을 보던 날, 누워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참외가 먹고 싶지 않니.”라고 했다. 다른 방에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또렷이 들렸다. 당시 할아버지의 손은 구부러져 혼자 참외의 껍질을 깔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얘기가 ‘참외를 하나 까 다오’라는 신호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한창 놀고 있던 것을 방해받기 싫고 귀찮아서 못 들은 척 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한 번 “참외가 먹고 싶지 않니”라고 하셨지만 내가 대답이 없자 체념한 듯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게 할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요청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 참외 생각이 나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 미안해, 엄마 미안해, 하며 마구 울었다. 울어도 이제 할아버지에게 이 마음의 빚을 갚을 길이 없다는 게 더 슬퍼져 자꾸 울었다.


20여년이 되어가는 일이지만 아직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다른 무엇보다 참외가 먼저 불쑥 마음속에 떠오른다. 별 것도 아닌 것조차 못 해드렸다는 죄책감과 후회가 뒤섞여 가슴을 지그시 누른다. 순수하게 마음을 전하고 귀찮아하지 않는 것도, 살아계실 때 해 드릴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탓이다.


죽음은 삶의 파트너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생(人生)의 마지막 단계. 삶은 죽음으로 흐른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다가오는 죽음도 피해갈 수 없다. 내 가족의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아마 미쳐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다시 웃고 얘기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슬픔에 푹 잠겨 내 인생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 그런 나에게 마스다 미리는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또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어. 밥을 먹고 구두를 사고 계절이 바뀌면 옷을 사면서. 그 사람이 곁에 없더라도 ‘있었던’ 것을 너는 알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 바닥도 보이지 않는 슬프고 깊은 구멍 속에서도 점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게 돼ㅡ 라고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다가올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접어두고, 함께 있는 지금을 소중하게 살자고. 조금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귀 기울이고 이야기하면서, 그러면서 조금 더 많이 행복하자고. 할아버지의 참외 같은 후회는 이제 남기지 말자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그 순간’이 다가오면 물론 아주 많이 슬플 것이다. 한동안은 슬픔과 상실감에 푹 잠겨 아무 것도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수없이 교차하는 여정 중 하나. 죽음을 생각할 때에 우리 삶은 더 생생해진다. 누군가의 죽음 끝에는 또 각자의 삶이 있을 것이다. 그가 곁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또,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묵묵히 차오르는 슬픔을 조금씩 희석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책 속에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할아버지. 만난 적도 없고, 그걸 쓸쓸하게 느낀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에 존재했다. 존재해서 어린 ‘내 아버지’와 함께 툇마루에서 아내에게 혼났다.

p.58-59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없다. 오래 살면 누구나 언젠가 노인이 된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그걸 실제로 피부로 느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 시절에는 엄마도 아버지도 젊었지, 라고 생각하는 일이 늘어나며 나도 겨우 실감하게 되었다.

p.63


오늘 밤, 내가 집에 갈 때까지 살아서 기다려주길 바랐다. 엄마와의 전화를 끊은 직후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칸센에 흔들릴 무렵에는 그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것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누구를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 개인의 아주 고귀한 시간이다. 날 기다려주길 바라는 것은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었다.

p.73


아버지 방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 손에 내 손을 포갰다. 아버지 손을 잡은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 처음이다. 

살짝 미소 짓는 것처럼 보였다.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걸어 다닐 것 같았다. “아빠.”하고 불러본다. 익숙한 내 목소리인 “아빠”였다. “아빠!” 큰 소리로도 불렀다. 이것이 아버지의 죽음을 순수하게 슬퍼할 마지막 시간이었다.

p.74


소중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잃었다고 해도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 그것이 흰나비를 대신하는 나의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힌트는 바깥에, 사람 수만큼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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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굳이 어느 쪽이냐고 하면예민한 편이다

티를 내는 편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는 언제나 일말의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다.

보여지는 나를 벗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오직 몇 평짜리 내 방 뿐.

 

워낙 갈등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데다 '남이 나에게 불친절한 것도 싫으니 나는 친절해야 해'

하는 강박이 있는덕분에 한꺼풀 벽이 있는 타인들 앞에서는 상냥하고 친절한 인물인 척(!) 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금세 그 일을 소재로 꿈을 꾸고 마는 예민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친절한 가면을 벗고 나면 어딘가 지치고 심통한 얼굴이 드러나

'오늘도 울퉁불퉁 가시를 숨기느라 고생 많았어.' 스스로를 치하하는 그런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다정하고 온화한 성격인 줄 알지만 사실 진짜 뾰족한 나는 나만 안다.

 

이런 나의 '민감함'은 갓 걸음마를 시작할 때쯤인 19xx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청소를 한답시고

온 방안을 헤집다 발견한 엄마의 일기에는 대충 이렇게 쓰여 있었다.

 

'OO이는 예민한 아기이다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몸이 닿으면 싫은 기색을 하고 끙끙거린다.

게다가 어찌나 깔끔을 떠는지 과일을 먹다 과일물이 배자 옷을 갈아입혀달라고 징징 운다.'

 

...새삼 이런 나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 키워낸 엄마에게 감사하다.


어쨌든그래서였을 것이다. 5월에 읽을 책으로 이 책을 선택한 건.

 

예민한 것은 성격이니 어쩔 수 없다 치지만취업을 하고 보니 만만하지 않은 게 사회생활이었다.

때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해야만 하고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질책을 받기도 한다.

예측하지 못한 업무들이 밀어닥치고 가끔은 상사 눈치를 보며 초조하게 상대방의 답신을 기다린다.

딱딱한 텍스트의 나열인 메신저와 메일 뒤로발신자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굳이(그래굳이)

추측하며 수명을 바작바작 깎아먹는다무신경한 조크에애써 웃는 입꼬리가 부들거리기도 한다.

그런 생활들을 하다 보니 지친 것이다주변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예민한 나에게.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더 와 닿았다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ㅡ 이라는 부제가.

그래이제는 초조해하지 않고 작은 일에 안절부절하지 않고 싫은 일과 말들에 스위치를 딸깍,

내리는 법을 배우고 싶었고조금 더 완만하게 내 마음을 도닥이고 싶었던 거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앞표지


편안한 느낌을 주는 녹색의 식물과 여유로운 여백의 표지를 지나,

저자의 간략한 이력이 담겨 있는 책날개를 슬쩍 보고 페이지를 넘기자 들어가는 말에 이어

재미로 체크하는 둔감력 체크리스트가 나온다.

 

어디 보자화들짝 놀란다고민하는 경우가 많다체크체크체크...

아니나 다를까나는 예민 경보 발령 진단을 받고 말았다.

 

저자는 무려 열 일곱개의 챕터를 통해 둔감함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둔감함을 처방한다

재능의 토대가 되기도 하는 둔감하고 단단한 마음정신 건강을 위해 잔소리를 흘려듣는 둔감함

자극에도 평온하게 기능을 다 하는 자율신경둔감한 신체의 장점그리고 여자와 남자남녀관계

연애와 결혼아기 울음소리에 둔감해지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둔감함을 예찬한다. 사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어 오히려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둔감함의 의미가 좀 퇴색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마다 다를 것 같다. 

 

누가 이 구역의 예민보스 아니랄까봐(?) 처음에는 다소 뾰로통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고 마지막 챕터와 나가는 말을 읽을 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유로운 행간과 쉽고 짧은 문장그리고 나름의 유머코드 덕에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챕터마다 해시태그처럼 붙어 있는 부제들이 (: #근거없는 자신감근자감)

뒤이어 나올 내용들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좋았던 것 같다.


#책 속 해시테그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챕터는 <여섯누가 뭐래도나를 사랑하는 게 먼저다>였다.

이 챕터는 마치 스스로 주문을 걸 듯이 몇 번이나 읽으며 마음에도 머리에도 찬찬히 새겨넣었다.

저자는 여섯 번째 챕터에서그리고 칭찬을 유도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계속 말한다.

칭찬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라고어떠한 의심도 없이그저 받아들이고 우쭐해하면 된다고.

칭찬은 노력을 부르고노력이 다시 칭찬을 부르며 좋은 방향으로 톱니바퀴가 굴러간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 시절에 그랬다어떤 과목이나 과제에서 칭찬을 받으면 더 신이 나

그 일에 열심히 달려들곤 했다. ‘잘했구나’ 한 마디 말이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이걸 잘 하는 아이니까’ 더 잘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쭉 잘하고 싶었다그런 마음으로

즐겁게 하다 보면 노력에 맞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또 기분 좋은 칭찬이,

눈깔사탕처럼 달콤하게 다가왔다그때는 그런 칭찬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일을 하면서 사회적 언어(=일명 빈말)’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늘 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받아들이는 칭찬의 농도가 옅어졌다. ‘예뻐졌구나’, ‘예뻐요라는 말을 들으면

수줍게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지금 이것보다 더 못생겼었구나하며 괜히 스스로를 깎아내렸고

프로젝트를 마치고 이번에 정말 잘했어고생했다!’라는 말을 들어도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지 뭐하며 흘려들었다그런 태도들은 당연스럽게도 그다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레 겁 먹고 위축되고 난 못해’, ‘난 아니야라며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 짓는 족쇄가 되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스스로를 지치고 힘들 게 하는 게 바로 나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빈말이라 할지라도 칭찬에는 늘 1% 이상의 진실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80%, 아니 순도 100%의 칭찬이었을 수도 있다그런 칭찬들을 바보 같은 생각으로

흘려보내다니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그 칭찬들에 더 귀기울였다면 거울 속의 나는 좀 더

예뻐보이고 일하면서 얻는 것들은 훨씬 많았을텐데 말이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둔감함이, 단순히 민감함이나 까칠함과의 대척점에 있는 의미는 아닐거라 생각한다.

필요할 때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현명함,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력할 수 있는 순수함과 용기, 뭐 그런 것들이 모여 건강한 둔감함을

이루는 것일테다. 내가 가진 예민함 또한 그럴 것이다. 때로는 꼼꼼하고 센스있는 민감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때문에 예민함도 둔감함도 모두 살아가는 데 골고루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이제 나는 경직된 내 마음과 생각을 조금씩 풀어보려 한다.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몸을 단련하듯이. '건강한 둔감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소의 노력이 필요할 테니.

기분 좋은 칭찬은 종합 비타민처럼 꿀꺽 받아 삼키고 잘 소화해서 내 걸로 만들어야지.

다른 사람에게도 사소하지만 순도 높은 칭찬을 돌려줘야지다른 사람의 재능을 발견해 줘야지!

나를 괴롭게 하는 사소하고 기분 나쁜 일들하지만 일주일이면 잊어버릴 그런 일들을 좀 더

빨리 머리와 가슴에서 놓아주어야지. 섬세하고 예민해야 할 때와 둔감해야 할 때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훈련이 당분간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예민러(?)였던 나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아무려면!!’하는 낙천적 태도야말로 건강한 둔감력으로 가는 첫 걸음일 테니까.

 

***책 속 텍스트

제가 이 책에서 말하는 둔감력이란 긴긴 인생을 살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일이나 관계에 실패해서 상심했을 때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그런 강한 힘을 뜻합니다.

/ ‘들어가는 말’ 

 

재능 있는 사람은 주변에 반드시 그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고보인도 그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우쭐해 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상대방의 말을 듣고 우쭐해 하며 자신감을 갖는 것은 경박하고 꼴사나운 게 아닙니다오히려 미래를 향해 더 크게 날갯짓할 수 있는 멋진 둔감력을 가진 것이죠.

/ p.103

 

이 일은 내 생각대로 단호히 밀고 나가겠어!’

이렇게 결정했을 때 주위의 시선이나 사소한 소문쯤은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자세

누군가가 빈정대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는 태도로 씩씩하게 나아가는 자세

이런 둔감력이야말로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일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 p.204


다른 사람의 습관이나 행동이 못 견디게 거슬리는 사람도 있고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이렇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 하나는 불쾌한 말이나 행동도 무시하고 넘길 수 있는 둔감한 사람만이 

집단 속에서 밝고 느긋하게 일하며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p.232

 

민감하거나 날카로운 것만이 재능은 아닙니다.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둔감함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재능이죠.

예민함이나 순수함도 밑바탕에 둔 둔감력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재능으로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p.260

 

이런 좋은 의미의 낙천주의가 긍정적인 마음과 강인한 둔감력을 키워줍니다

요즘 같이 극심한 취업난과 불경기가 계속될수록 둔감력은 꼭 필요합니다

지금은 강력한 둔감력 없이는 살아가기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 ‘나가는 말’ 


#좋은 것은 한번 더!


/ 인터넷서점 예스24(Yes24)에도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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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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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향한 유쾌하고 엉뚱한 정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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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밤 (4쇄) The Collection 3
바주 샴 외 지음 / 보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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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무들의 밤 그림책을 봤을 땐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 두께가 있는 책도 아닌데 가격이 4만원이 넘는다. 아이들 책이 이렇게 비쌌던가... 그 의문은 표지 뒷면의 설명을 보고서야 풀렸다. 여느 그림책과는 달리 대량으로 찍어내는 그림책이 아니라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실크스크린을 한 공판화 그림책이었다.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입었던 빤짝이 트레이닝복처럼 한땀한땀, 이태리 장인은 아니지만 곤드족 예술가들 셋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었기에 그 가치가 높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의깊게 살펴보니 가격표 위에 넘버링이 따로 되어 있었다. 내가 읽은 책은 3,100권의 스페셜 에디션 중 2,145번 책.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괜히 책 표지를 한 번 쓸어보게 되었다.



표지부터 어쩐지 이국적인 인상을 풍기는 나무들의 밤. 정말 밤처럼 새까만 바탕 위로 풍성한 가지를 뻗어나간 나무 한 그루가 표지를 꽉 채우며 서 있다. 마치 그 밤 속에서 혼자 빛을 발하는 것처럼 나무는 불타는 듯한 온 가지를 사방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어쩐지 독특하고 신비로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책 속에서 펼쳐질 나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표지를 여니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듯한 형상으로 얽혀 있는 그림이 나왔다. 꼭 실타래가 얽혀 있는 것도 같고 커다란 뱀이 구불구불 저희들끼리 몸을 맞대고 있는 것도 같은 그림. 알록달록하게 색채감 있는 그림은 아니지만, 이 그림만으로도 아이들이 많은 상상력을 키워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아이들의 상상력은 오히려 더 빛을 발하니까 말이다. 어른인 나는 실타래와 뱀을 연상했지만 아이들은 어떤 엉뚱한 상상으로 이 그림을 바라볼까.



어듬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셈바르 나무 이야기. 곤드족의 민담인 모양이었다. 구불구불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조그만 반딧불이가 하나씩 앉아 목동의 잃었던 암소를 비춰준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구원자, 곤드족에게 있어 셈바르 나무는 그런 의미인 셈이다. 곤드족에게 있어 숲 속의 나무가 영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인도 사람들이 조물주의 집으로 여긴다는 보리수 나무. 보리수 나무는 사실 다른 동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던 터라 익숙한 이름의 나무였다. 그러나 생김새는 전혀 알지 못했다. 보리수 전체의 모습이 잎사귀 하나의 모습과 꼭 닮았다는 이야기를 읽고 문득 진짜 보리수 나무의 모습이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보리수 전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찾기가 어려웠지만 보리수 잎사귀의 사진을 보니 정말 길쭉하면서도 둥근 그림 속 보리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이야기들 속의 보리수는 휴식, 쉼터, 안식을 제공하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인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보리수는 안식과 평안을 제공하는 조물주의 보금자리였다.



이솝우화를 연상시켰던 다람쥐의 꿈 이야기. 다람쥐가 아니라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바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다가 결국 다람쥐로 사는 것이 가장 좋겠다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다람쥐의 모습이 짧지만 잔잔한 교훈을 준다. 누구나 자기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아봤으면, 하는 상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내가 더 예뻤으면 내가 더 키가 컸으면 내가 더 돈이 많았으면 내가 더 공부를 잘했으면...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도 역시 삶의 고충은 있다. 그 사람으로 살아보지 않아서 몰랐을 뿐. 결국 이룰 수 없는 꿈보다는 현재의 자신을 더 사랑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걸 이 작은 다람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취하는 나무 마후아 나무 꽃 이야기. 앞서 다람쥐의 이야기에서 이솝우화가 연상되었다면 이 이야기는 탈무드가 연상되었다. 술을 처음 마실 땐 양처럼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졌다가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까불고 더 많이 마시면 돼지처럼 추해진다는 유명한 탈무드의 가르침. 아예 모습이 달라진다는 무시무시한(!) 점이 다르지만 곤드족에게도 역시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 많이 마시면 독인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가장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생쥐, 호랑이, 돼지와 비둘기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마후아 나무의 일러스트도 익살맞은 듯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이 밖에도 열매가 작은 새처럼 생겼다는 두마르 나무, 뱀 여신의 나무, 노래하는 사자 나무, 잔인한 오빠들의 화살을 맞고 죽은 소녀가 자라난 나무, 잎사귀가 뱀머리처럼 생긴 나그파니 나무 등 다양한 나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나무라는 소재만을 가지고 이렇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음이 신기했는데 책 말미에 설명된 곤드족 미술 이야기를 보니 숲과 나무는 곤드족 사람들의 삶과 미술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끝없이 꿈틀거리는 나무의 그림 속에 곤드족은 기도를 담고 행운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왔던 것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이 독특한 나무들은 인도의 이국적인 이미지를 담은 동시에 끝없는 우주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그림책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많이 지워주었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아름다운 나무들과 함께 하는 여정 속에서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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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라 - G20 글로벌 청년창업가들의 기업가 정신
송정현 지음 / 영진미디어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평소에 경영, 창업, 기업 같은 말들이 나와는 별 관련이 없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했고 내가 앞으로 할 일은 기업을 차려 금전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은 가치 창출에 이바지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테지만, 뭐랄까... ‘창업’을 해서 회사를 ‘경영’해나가는 것은 뭔가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자금을 굴리는 일을 하는 것처럼 여겼던 것 같다.


보통 자기 사업체를 차리고 경영자 자리에 있다고 하면 사장님인 셈이고 사장님들은 강한 스킨 냄새를 풍기며 손목에는 번쩍이는 금시계를 차고... 사업 이라는 것에 대해 대충 이런 식의 빈약한 상상을 해왔던 나였다. 그래서 TV에 나오는 성공한 기업인들이 그냥 다른 세계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할 성 싶지도 않고 나와 별다른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말이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셨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커다란 재앙이라도 닥친 듯 부들부들 떨며 아버지를 만류했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질 것이 두려웠고 사업의 성공보다는 사업에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이 두려웠다. 나에게 있어 사업은 ‘남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창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꼭 어마어마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쉽게 ‘해보자’하고 나설 수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었지만.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시작해야 하는 일인 만큼 여전히 두려웠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처럼 ‘창업? 사업? 나와는 별 상관 없는 단어인데.’하며 멀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이 책의 저자 송정현씨와 그와 함께한 팀, 그리고 그가 세계 각국을 돌며 만나본 젊은 청년창업가들의 이야기가 그리 별세계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청년창업가들은 대부분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정도였고 거창한 자본금을 갖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part1에 담겨있는, 저자와 팀원들이 후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만 보아도 그랬다. 내가 대학생 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기업가 정신을 확산시킴으로서 세상에 기여하리라는 저자의 포부를 보며 창업은 일단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 목표와 계획이 분명하고 또 조밀하게 짜여있다면 마냥 두려워만 할 일은 아니었다.


part1에서는 저자가 G20국들을 돌며 청년창업가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의 계기가 된 에피소드들과 프로젝트를 떠나기 전까지의 과정이 짤막하게 그려진다. part1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의 실행력과 결단력에 놀랐다. 대전역에서 무심코 본 노숙자들을 보고 ‘노숙자들의 삶은 어떨까?’라는 궁금함을 품은 후 몇 달이 지나고 그것을 진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 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을 탐구하기 위해 진짜 행동에 나선 적은 별로 없었다. 나중에 알아봐야지, 하다가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지금은 귀찮으니까 하는 핑계로 궁금증을 미뤄두었다가 역시 기억 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때로는 직접 뛰어들어 알아볼 기회가 생겨도 ‘에이, 뭘 그렇게까지-’하며 물러서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있어 저자의 적극적인 행동력은 부럽기도 했고 갖고 싶기도 한 강점이었다.


이후 전개된 part2에서는 저자가 인터뷰한 글로벌 청년창업가들 20명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이 중 나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었다. 먼저 사업아이템을 성공시킨 전략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스티커처럼 붙여서 사용하는 화이트보드인 ‘화이티 보드’를 만든 사치 스윈스키와 고객들의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쿠라미 서비스를 런칭한 마놀로 아브릭냐니였다. 먼저 사치 스윈스키는 앞서 소개된 두 사람과는 달리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매우 보편적이고 평범한 제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사진과 짧은 에필로그가 실린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나는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화이트 보드를 뭘 어떻게 했길래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을까. 뭐 어떻게 개조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물건인데다 이미 시장을 점유한 대형사업체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어서야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가 성공을 거둔 방법이 너무나 간단해서 놀랐다. 이제껏 보지못한 신기술을 도입해 만든 것도 아니었고 기존의 제품과 용도가 상이하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독창적이었다. 간단하지만 조금 시선을 틀어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자 길이 열린 것이었다.


>익숙한 제품시장에 뛰어들어 화이티 보드를 만든 사치 스윈스키


한편 쿠라미 서비스를 런칭한 마놀로 아브릭냐니 역시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으로부터 사업 아이템을 착안해냈다. 며칠 전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갔다가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대기시간으로 날려버린 기억과 함께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은행 의자에 앉아 마냥 잡지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가 생각났다. 마놀로는 은행이나 영화관에 방문한 고객들이 지루하고 번잡스러운 시간을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며 흘려보내는 대신 간단한 서비스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누구나 겪는 불편함이기에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었지만 누구도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과 흔히 접할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참신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한 사치 스윈스키와 마놀로 아브릭냐니의 사례는 사업이 꼭 거창하고 어려운 것, 남들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동떨어진 것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나머지 두 사람은 여성창업가들이었다. 바로 아이티포유의 창업가 줄리아 아노첸코와 영국에서 예술제본가로 활동중인 김영신씨가 그들이었다. 사실 줄리아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등장한 청년창업가들의 모습은 대부분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기가 죽었다. 당장 창업을 해볼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창업하는 사람들은 인맥도 중요하고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니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겠지’ 싶으면서 다소 정적인 내 성격과 비교가 되었다. 그러다 줄리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소녀, 자신이 이룬 성과조차 부끄러워하며 말을 하는 평범하고 조용한 여인. 그런 그녀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고 이제는 가장자리가 아닌 삶의 중심에 우뚝 선 과정을 보며 나는 대리만족과도 같은 통쾌함과 더불어 나도 이제는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더 이상 내성적인 성격을 핑계 삼아 변명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수줍은 아이였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해나감으로써 인생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경험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해냈다. 그렇다면 내도 하지 못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여성 프로그래머 리더가 된 줄리아 아노첸코


마지막 인물 김영신씨의 예술제본가 라는 직업은 다소 낯설었지만 매력적이었다. 나도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왠지 더 눈길이 갔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면서도 사실 요즘 인터넷과 휴대폰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전자책들이 출판되면서 점점 더 종이책들은 사양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책과 관련된 산업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책을 다루는 걸 직업으로 삼기에는 미래가 불투명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엘리트의 삶을 내던지고 먼 이국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잡았다. 예술 제본가와 실내 인테리어 전문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당차게 영국으로 떠나 그 곳에서 무보수로 일을 하고 또 다른 관심분야에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그 누구보다 술을 즐기면서 주류회사의 브랜드 대표를 맡은 천닝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심장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라.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명을 하며 내 자신을 멈춰두었는지 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이래서 좀 곤란해, 저래서 좀 힘들어 하며 망설이던 내 변명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신명나게 뛰어든 청년사업가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핸디캡을 기회로 삼았고 가장 어려운 시기가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여기며 더욱 자신을 독려했다. 이 책이 다른 책들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바로 그런 청춘의 패기와 열정이 책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기존에 유명세를 타며 이미 성공한 사업가들이 아닌, 여전히 도전 중이며 현재진행중인- 이룰 게 앞으로도 많은 사업가들을 소개했고 그들의 눈빛은 흑백의 사진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앞으로의 삶을 지금까지처럼 마냥 흘러가게 둘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의지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독자는 꼭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나처럼 현실에 찌들어가고 꿈을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아니 꿈을 뒷전으로 잠시 미뤄둔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극제이자 영양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상깊었던 구절


71-72p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내 손에서 화살은 과녁을 향해 떠났다. 몇 점에 꽂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단, 과녁을 쐈다는 것이 그때는 중요했다. 과녁에 맞지 않고, 엉뚱한 곳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녁을 향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그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85p.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면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 시기라는 것이다.


95p.

안락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찾아 떠나자. 지금은 어제의 나를 죽이고, 매일 새로운 나로 거듭나야할 찬란한 아침인 것이다.


182p.

“자신의 삶에 미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행복뿐만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까지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는, 풍요로운 삶이 되었으면 해요. 그 모든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거든요.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더 재미있고 설레죠. 어차피 알 수 없다면 희망을 한번 가져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193p.

매 순간 진심을 담아서 노력하는 과정이 보다 큰 기회를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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