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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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완동물 밀매에서 구조된 야생동물을 돌보고 있어요. 원숭이, 새, 돼지, 맥, 고양이······.“ ”고양이요?” "네, 총 열여섯 마리예요. 재규어와 오실롯 그리고 퓨마도 있죠." 나는 말없이 밀라를 쳐다본다. 그렇다, 집고양이가 아니었다. (p.36)

2007년, 스물 네 살의 저자 로라 콜먼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볼리비아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동물 복지 자선단체의 자원봉사자 모집 홍보물을 본 그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자원봉사자가 됩니다.

로라는 불법 밀매로 학대 당하던 퓨마 와이라를 담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그림자에도 놀라는 겁 많은 퓨마와 직장을 그만두고 정글 속으로 도망친 저자. 서로를 믿어야만 함께 살 수 있는 관계가 된 둘은 힘겹고 눈물 나는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와이라는 하고많은 장소 가운데 나의 곁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와이라는 나와 같은 말을 쓰지 않아도 생각을 밝힐 줄 안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별것 아닌 일로 야단법석 떨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와이라는 별꼴이라는 듯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켜 저 멀리 걸어간다.” (p.143)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며 봉사하는 일은 생각처럼 아름답지 않습니다. 열악한 환경과 재정적 상황으로 많은 봉사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떠나버리곤 했습니다. 로라 또한 어느 순간 무너져내리고, 결국 볼리비아를 떠나지요.

하지만 그는 생추어리를 잊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되돌아와 동물들을 돕습니다. 와이라가 로라와 믿음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한 끝에 넒은 방사장에서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순간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와이라가 우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오고 있다. 나의 심장이 아드레날린으로 고동친다. 그런데 몇 미터 앞에서 속도를 늦추더니 내 다리에 머리를 들이민다. 와이라는 그저 나를 핥기 시작한다. 와이라가 내 팔과 손을 핥으며 가슴에 몸을 기대온다. 그러더니 가르랑거린다.” (p.429)

저자는 퓨마와의 교감뿐 아니라 생추어리의 다른 동물들, 개간을 위해 벌목하고 태워지는 아마존의 열대우림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오염시키는 자연을 지구 반대편 동물들의 고통으로 마주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주 돌아오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주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아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곳에서 찾은 사랑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p.439)


•푸른숲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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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속의 유령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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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21세기에 쓰였다. 얼마나 늦었는지. 얼마나 많은 게 변했는지. 얼마나 변한 게 없는지.” (p.14)

21세기의 아일랜드 시인 데리언 니 그리파는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며 넷째 아이를 임신한 가정주부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연히 10대 시절 읽었던 시를 떠올린 그는 17세기의 시인 아일린 더브에게서 세 아이의 엄마이자 시인이라는 동질감을 느낀다.

아일린 더브는 단 한 편의 시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를 남겼는데 이 시에는 갑자기 살해당한 남편의 마지막 순간과 그를 향한 그리움, 남편을 살해한 자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데리언은 넷째를 출산하는 와중에 이 시를 번역하고 시인의 삶을 추적해나간다.

“나는 내가 아일린 더브의 작품에서 가장 소중하 게 여기는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오랜 시간을 두고 숙고했던 그 많은 방 안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요소는 텍스트 너머에서, 연과 연 사이의 공백에서, 번역할 수 없는 곳에서 맴돌았다. 그 공백에 난 계단 위에 서면 한 여자의 숨결을,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숨결을 느낄 수 있다.” (p.61)

남편이 말릴 정도로 아이를 좋아하여 네 아이를 낳은 어머니로서 데리언은 끊임 없이 출산과 모유 수유를 하며 자녀를 돌본다. 한편 시인으로서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에 시를 쓰고, 자신과 비슷한 시인인 아일린 더브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데리언은 아일린이 살던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역사 속에 묻힌 시인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젖과 피, 잉크가 흐르며 두 여인을 이어준다. 집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 여정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책에 담겨있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을유문화사(@eulyoo)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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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과자
이시이 무쓰미 지음, 구라하시 레이 그림, 고향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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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트 데 루아에는 먹는 것 이외에도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파이 속에는 페브라고 불리는 도자기 장식품이 들어있고, 그것이 든 파이 조각을 고른 사람은 종이오 만든 금관을 쓰고 왕이나 여왕이 되어 1년 동안의 행복을 약속 받아요."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파티시에 블랑 씨가 만든 갈레트 데 루아 속에는 새끼 손가락만한 도자기 인형 밀리가 들어 있어요. 밀리는 황금빛 종이 왕관과 함께 상자 안에서 기다리며 주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생각에 설렙니다.

밀리가 든 파이를 사간 사람은 아델 씨예요. 심한 감기에 걸린 친구의 딸아이 벨을 데리고 있는 아델 씨의 말을 들은 밀리는 벨이 자신을 뽑기를 간절히 바라요. 하지만 밀리가 든 조각은 남자아이에게로 향하고 마는데...

‘제발 나를 뽑아줘!’

프랑스의 전통 과자인 ‘갈레트 데 루아’는 ‘왕의 과자’라는 뜻이에요. <왕의 과자>는 마음이 쓰이는 소녀에게 자신이 들어 있는 파이 조각이 선택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도자기 인형 밀리의 이야기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그려진 그림책입니다.

간절히 바란다고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양보하고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어요. 게다가 책의 띠지를 테이프로 고정하면 왕관 모양이 되어서 책 속의 이야기처럼 왕이 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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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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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시청 수사 1과 가부라기 데쓰오 님에게.. 데드맨이라고 합니다. 저는 죽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수사 중인 연속살인사건의 여섯 시체에서 잘라낸 부분으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당신이 우리 여섯 명을 죽인 범인을 잡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p.205)

한 남자의 머리가 잘린 몸통만이 장기보존액이 담긴 욕조 안에서 발견된다. 머리를 깨끗하게 잘라서 가져간 범인은 이후 연쇄 살인을 저지른 뒤 시신에서 각각 몸통, 오른팔, 왼팔,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를 가져간다.

가부라기 데쓰오는 이 연쇄살인의 특별수사본부를 맡게 된다. 수사에 열심인 후배들과 범죄 프로파일링에 머리를 써가며 수사를 하지만 범인은 변태, 정신이상자도 아니고 피해자들과 원한관계가 있는 사이도 아니다. 어째서 그는 신체를 훼손해서 가져간 것일까?

<데드맨>은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이다. 형사 가부라기가 기괴한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파트와 데드맨(피해자들의 신체를 모아 소생시킨 새로운 인간이자 피해자)이 눈을 뜨고 재활 훈련 끝에 인간의 모습을 갖춰나가는 파트가 번갈아 나와서 독자의 추리를 더 재미있게 해준다.

포기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사건을 손에서 놓지 않는 수사본부의 이야기도,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나름의 수사를 해나가는 데드맨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나에겐 스릴있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이 모든 사건을 불러일으킨 슬픈 사연과 형사 가부라기의 직업관이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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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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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를 다 쓰고 지하련 작가의 리라이팅 작업이 수록된 책이 출간되고 나면, 나는 지하련 작가의 원고를 원래의 자리로 옮겨놓을 것이다. 임시로 두는 내 책상이 아닌, 영구히 둘 어느 자리. 그곳이 어디든, 지하련 작가가 더는 어느 ‘그늘’에 가려딘 곳에 있지 않기를 바란다.” (p.269)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는 활발한 창작활동에도 충분히 회자되지 못한 근대 여성 작가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시리즈다.

시리즈 첫 번째인 백신애와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 이어 두 번째 <제법 엄숙한 얼굴>이 출간되었다. 1940년대에 활동한 지하련은 한 사람의 작가라기 보다 시인 임화의 아내로 알려졌고, 월북을 하며 잊혀지고 말았다.

지하련의 소설에는 말보다는 생각이 많고 어딘지 쓸쓸한 인물들이 나온다. <체향초>에서 삼희는 고향 산호리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 어려서 헤어졌던 오라버니와 오랜만에 재회한 그는 오라버니를 지켜보지만, 오라버니는 자기혐오가 가득한 우울한 지식인이다. 무기력한 오라버니가 훌륭한 사나이라며 자랑하는 친구 태일은 학교를 졸업한 뒤 별반 하는 일이 없을 뿐이다.

임솔아가 <지향초>에서 빌려온 제목이 붙은 <제법 엄숙한 얼굴>은 조선족 영애의 이야기다. 에어비앤비와 카페에서 일하는 영애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한국 사람처럼 표준말을 쓴다. 카페 사장인 제이는 자신이 외국에서 겪은 인종 차별 경험으로 영애에게 자신의 말을 쓰며 당당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영애로 하여금 오히려 연변말(+이상한 사투리들의 조합)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낳는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자랑도 시대에 맞춰 변화를 했구나. 그 시대의 남성들이 그 시대의 남성답게 깨어 있었듯, 지금의 남성들도 지금의 남성답게 깨어 있구나.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소설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p.267)

•작가정신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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