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극장
온다 리쿠 지음, 김은하 옮김 / 망고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4년 4월 29일, 40대의 두 여성이 잇달아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동반 자살을 했다. 두 사람은 대학 동기였고 한 맨션에서 동거 중이었다.>

작가 온다 리쿠가 20대였을 때 읽었던 이 짧은 기사는 오랜 세월 작가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두 사람에게 T와 M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들의 마지막을 그려본다.

소설 속에는 0, (1), 1이라는 소제목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작가 온다 리쿠의 입장에서 신문 기사를 소설로 써가는 0, 작가가 소설을 연극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해나가는 (1), T와 M의 입장에서 그들이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인 1.

작가는 T와 M의 이야기를 90년대의 사회 속에서 상상해본다.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혼자 살아가기 쉽지 않기에 결혼을 서둘렀으나 다시 돌아온 일, 나이 탓에 연하 남자친구의 부모님 마음에 들지 못한 일, 동거를 하다가 누군가 애인이 생기면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때로는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을 괜히 소설로 불러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죄책감도 느끼고, 때로는 절망에서 삶을 끝내기로 한 익명의 두 여성을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고픈 욕망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두 입장 사이에서 흔들렸으나 작가가 상상한 T와 M의 마지막 모습에서 서로가 큰 위안이 되어주는 따뜻함, 그리고 삶의 마지막 날에 함께 길을 떠나는 둘의 모습에서 '이 정도면 그럭저럭 되었다'싶은 만족감도 느꼈다. 슬픔만을 예상한 소설에서 작은 슬픔과 소소한 행복을 동시에 느끼며 마무리되어 나의 마음도 참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모든 색 인생그림책 14
리사 아이사토 지음, 김지은 옮김 / 길벗어린이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르웨이 예술가 리사 아이사토의 95컷의 일러스트에 담긴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아이가 노인이 되어가는 삶의 과정을 눈 앞에 보여준다. 커다랗고 묵직한 양장에 꽉 차있는 다채로운 그림들, 간결하지만 삶의 순간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는 글들을 감상하며 200쪽에 달하는 책장을 넘기다보면 '나도 삶의 끝에서 이렇게 사랑을 느끼기를..'하고 바라게 된다.

<삶의 모든 색>은 제목처럼 예쁘고 밝은 색만이 아닌, 힘들고 어두운 색도 담고 있다. 우리는 불공평함과 싸우기도 하고 내가 찾았던 것을 잃기도 한다. 사람들은 떠나가고 스스로 자초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고 기억은 점차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되돌아보며 삶의 순간마다 '나는 사랑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삶을 담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형하지 마라 - 논문 읽어주는 유튜버, 품격있는 성형(成形)에 대해 말하다.
이원 지음 / 엔파인더스 / 2021년 11월
평점 :
품절


저자는 15년째 성형외과를 운영하며, 끊임 없는 연구로 과학적 근거를 전달하는 유튜버(논문공장)이기도 하다. 40여편의 논문을 쓰며 연구하는 성형외과 의사인 그는 현혹되기 쉬운 광고와 낮은 가격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기에 성형에 대한 올바른 정의와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썼다. 의학적인 용어가 난무하는, 또는 무조건 성형을 금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000처럼 해주세요'와 같이 주관적이지 못한 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고 본인에게 어울리는, 최소한의 성형을 권라는 의사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의사로서 하지 않기를 바라는 성형이나 시술에 대한 이야기가 실제로 들어있다. 오랫동안 한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해주지 않는 것이 있고, 언제나 환자 앞에서 '앞에 앉은 환자가 내 딸이라면 이 성형을 권할까?(p.201)'를 생각하며 결정을 내린다는 말이 참 좋았다.

성형을 앞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끝부분에 있는 'Tip. 성형외과 pick 하기'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성형을 이미 했는데 재수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형 재수술, 이렇게 하라'가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성형외과에 가보지 못한 자연인으로서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성형외과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는데, 책의 후반에 40대, 5-60대에 추천하는 시술들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성형에 대한 정보 외에도 환자를 위해, 자신을 위해 시간을 쪼개서 연구실을 찾는 저자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또한한 '의사는 돈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라고 끊임없는 경계하는 삶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성형'보다 '성형외과의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읽기에도 좋은 책으로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라피스트
B. A. 패리스 지음, 박설영 옮김 / 모모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에만 만나는 연애를 해오던 앨리스는 연인 레오가 '보안이 철저해서 마음에 든다'는 고급 주택 단지로 이사를 한다. 앨리스는 주민들에게 다가가기도 힘들고 자꾸 이상한 느낌을 주는 새 집이 영 별로지만 집들이 파티를 열고 이웃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한다.

이웃을 가장해 파티에 들른 남자의 알 수 없는 정체에 혼란스러운 와중에 앨리스는 남자친구 레오가 이 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숨기고 집을 계약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집의 2층에서 테라피스트 니나 맥스웰이 남편 올리버에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잘못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도슨 씨. 여기가 니나 맥스웰이 살던 집입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리고 죽은 곳이죠." (p.75)

이웃 주민들은 모두 자살해버린 니나의 남편 올리버가 범인이라고 믿지만 앨리스에게 찾아온 사립 탐정은 이 사건의 진범을 찾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사건을 조사할수록 앨리스는 이웃들이 의심스럽고, 숨기는 것이 많은 남자친구 레오마저 믿을 수 없게 된다.

'당신 정체가 뭐야, 레오? 왜 당신이 거짓말할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왜 서랍 아래에 열쇠를 붙여놓은 거야? 내가 숨기고 있는 게 뭐야?' (p.159)

B. A. 패리스의 #비하인드도어 읽을 때에는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악당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을 스릴 넘치게 지켜보았다. 이번 소설에서는 '누가 범인인지' 찾아내는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소설 속에서 단서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머릿속에서 용의자를 계속 바꾸게 되는데, 소설이 끝나갈 무렵에 범인이 등장할 때에는 작가가 준 힌트들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추리한 내 자신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바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사건을 스스로 추리하는 앨리스의 입장이 되어보는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서늘함과 배신감,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모모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도 포기한 다운증후군 동생을 돌보느라 삶에 지친 여자 그레이스는 동생 밀리와 공원에 나갔다가 동생과 왈츠를 함께 춰준 남자 잭 에인절과 만나 갑자기 결혼하게 된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내들을 변호하는 변호사인 잭은 잘생긴 외모에 훌륭한 직업, 사랑하는 아내의 동생 밀리까지 평생 책임 지겠다고 약속한 완벽한 남자다.

결혼식 당일, 들러리를 서기로 했던 동생이 계단에서 구르는 일이 일어난다. 그레이스는 동생을 병원에 보내고 울며 결혼식을 마친 후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간다. 그런데 첫날 밤에 남편이 사라지고.. 연락이 끊겼던 남편에게서 도착한 문자는..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굴지 마. 당신한테 안 어울려. 일이 좀 생겼어. 아침에 봐.' (p.79)

잔인하고 냉정한 말투에 놀란 그레이스의 앞에 나타난 남편은 더이상 결혼식 전에 그녀가 알던 사람이 아닌,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정폭력을 가해 어머니를 죽게 만든 사이코패스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정신병으로 헛소리 하는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변호사 남편'이라는 잭의 거짓말에 보탬이 될 뿐.

남편이 진정 괴롭히고 싶어하는 대상이 여동생 밀리라는 것을 알게 된 그레이스. 하지만 남편의 치밀한 계획으로 수중에 돈도, 휴대전화조차 없는 그녀는 남편이 선물한 아름다운 집의 창살과 지하실에 갇혀서 남편이 요구하는 것들을 수행하지 못할 때마다 굶거나 기숙학교에 있는 동생과 주말에 만나지 못하는 벌을 받는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해지는 그레이스에게 탈출의 가능성을 열어준 건 그녀가 삶을 바쳐 돌봤던 동생 밀리. 추리소설 읽는 취미를 가진 밀리는 결혼식 당일 잭이 계단에서 밀었던 사건을 계기로 언니와 자신을 악마로부터 구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준비한 계획을 털어놓고, 그레이스는 한 번 뿐인 그 기회를 잡아야만 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몇 번이고 좌절했던 그레이스가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텨서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에서 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여성들의 연대도. 남편은 정말 재미있게 읽고 식사 때마다 영화로 얼른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이미 영화 및 드라마화 확정) 흥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