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열여덟 어른 - 자립준비청년이 마주한 현실과 남겨진 과제
김성식 지음 / 파지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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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많은데’라는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립준비청년이 있었습니다. 만 18세가 되어 보육원을 퇴소하고 받은 지원금 700만원을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비로 쓰고 난 뒤 금전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던 청년이었습니다.

아동복지시설에 사는 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시설에서 나와 소액의 지원금을 가지고 자립을 해야만 합니다. <안녕, 열여덟 어른>은 그 돈으로 거주지를 마련하고 직장이나 대학교에 들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열여덟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거쳐가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힘든 아동기, 혹여나 복지시설에 사는 것이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청소년 시절을 거쳐 힘들게 자립을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재정이나 진로를 상담할 가족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미디어에서 악하거나 약하게 다뤄지는 ‘고아’ 캐릭터를 포함해 사회에서 받는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요.

“자립준비청년은 실수하면 혼나고, 말을 잘 듣고 성취를 해내야 칭찬받는, 실패에 엄격한 환경에서 자랐다. 잘하든 못하든 칭찬하고 감싸 주는 세상에서 살았다면 좀 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p.224)"

열여덟 어른 프로젝트는 매년 2500명 정도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세지를 줍니다. 벌써 시즌3을 맞이한 ‘열여덟 어른’ 시즌3에서는 자립준비청년 캠페이너들이 여러 문제들을 탐구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오를 일반화하여 아동보호시설 전체의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오랜 시간 정부는 물론 얼론, 대중들까지 지원은커녕 관심과 응원도 많지 않았다. 특히 정부는 이제 와서 책임을 현장 시설에 미뤄서는 안된다. 누구보다 먼저 들여다보고 지원을 강화하고 정책을 마련했어야 했단 정부가 남 일처럼 문제를 지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p.187)"

사회로부터 필요한 지원을 받는 것인 당연한 권리임에도 ‘고밍아웃(고아+커밍아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립준비청년들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리뷰로 다시 전달해 드립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여러 캠페인을 살펴보고 소액이나마 기부를 하며 책장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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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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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의 라 마토사에서 부패된 시체가 발견됩니다. 목덜미에 깊숙이 찔린 상처가 있는 일명 ‘마녀’의 시신.. 마을 사람들은 마녀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면서도 아프거나 고민이 생기면 그를 찾아가 주술을 의뢰하고, 약을 받고, 돈을 빌렸습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녀가 치료와 주술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새끼 마녀라 불렸고, 그러다 산사태가 나던 해에 홀로 남게 된 뒤부터는 그냥 마녀가 되었다. (p.16)”

마녀의 동네에는 극빈층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고 입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속어와 폭력이 난무해서 마치 스너프 필름을 책으로 읽는 듯 불쾌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생각 없이 저지르는 악행들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휘몰아쳐서 독자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기도 합니다.

각 장마다 다른 사람들이 등장해 자신의 입장에서 마녀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 놓습니다. 아들이 버리고 간 손주를 애지중지 알콜과 마약 중독으로 길러낸 할머니는 손주와 손녀에게 배신당한 채 분노하며 죽어갑니다. 새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어린 여자아이는 마녀에게 받아온 약을 먹고 피를 쏟고, 청년들은 동성애자와 잠자리를 하며 돈을 법니다.

“항간에는 조만간 이 지역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해병대를 파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람들은 그 비정상적인 더위가 그곳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고 말핬다. 다가올 태풍철은 만만치 않을 듯했다. 불길한 징조가 보이더니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p.346)"

이 책의 사건들은 작가가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작가는 절대로 순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폭력성을 그려냈습니다. <태풍의 계절>이2020년에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에 다소 논란이 있았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을 정도로요.

선하고 훌륭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하는 작품에서만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악한 현실과 이야기에서 우리는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인간이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하고요. 이 작품 또한 저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강렬한 어두움을 느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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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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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애 선생을 비롯한 많은 여성 작가들이 앞서서 글을 써주었기에, 지금도 함께 쓰고 있기에, 나도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분노할 수 있다. 희망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소설을 쓸 수 있다. (p.240)”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는 활발한 창작활동에도 충분히 회자되지 못한 근대 여성 작가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시리즈다.

‘소설, 잇다’의 첫 번째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식민지 조선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 백신애와 제 13회 백신애문학상 수상자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최진영이라는 한 세기를 소설로 잇는다.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은 아들을 시댁의 핏줄을 잇기 위해 아이가 없는 형님에게 빼앗긴 32살의 과부 순희의 이야기다. 강제로 재가를 해야하는 순희는 마음에 없는 상대인 성규의 어린 남동생인 19살 소년 정규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1930년대의 <아름다운 노을>을 2020년대로 옮겨온다. 순희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우며, 순희의 사랑이자 뮤즈인 정규는 취준생 여성이 되어 여성들의 연대를 이룬다.

“백신애 선생과 나 사이에는 거의 백 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선생의 분노와 나의 분노에는 별 차이가 없난 것 같다. 백년을 사이에 두고 선생과 나는 같은 생각을 품고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여성을 비롯하여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공포. (p.240)"

백신애의 소설 <광인수기>,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에 이어 최진영의 소설을 읽고 나서야 이 시리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과거와 현대의 여성들을 잇는 멋진 기획이다. 순희와 정규를 2020년에 데려오려는 시도에서 여성과 남성의 로맨스를 생각해보았으나 이내 폭력과 착취만이 떠올랐다는 최진영 작가의 말에 마음이 아파온다. 여성뿐 아니라 소수자와 다수까지도 모두의 연대가 절실한 시대다. 한 세기 후에는 더 풍요롭고 따스한 미래의 작가와 독자가 우리를 되돌아보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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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엔딩
이진영 지음 / 파지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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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나고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사고를 쳤다.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그 사고는 여전히 수습 중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p.9)"

서른 여덟 여자와 서른 여섯의 남자가 만나 6개월 만에 부부가 된다. 남편의 잦은 외근,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호주 출장 겸 여행 등의 위기가 있었지만 부부는 서로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맞춰나가며 사랑한다.

아내는 가족 모두가 달려들어 일군 가게를 정리한다. 그 시기에 남편 또한 번아웃으로 퇴사를 하고, 부부는 백수가 된 기념으로 여행을 떠난다. 제주도에서 남편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숨겨온 비밀이자 남편이 오랫동안 고칠 수 없었던 문제를 알게 되는데...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다면 상대가 ‘내 눈에만 잘생겨 보이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남편의 외모를 가꿔주면서 한층 나아진 배우자를 사랑스럽게 묘사한 ‘내 남편은 비밀미남’을 공감하며 읽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배우자가 어느 날 엄청난 비밀을 고백한다면.. 그리고 그 일이 우리의 관계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사실이라면 부부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결혼 전이었다면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뱉었을 것이다. 결혼 3년차인 지금은 결혼이 힘든 만큼 이혼은 더 힘든 결심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힘으로 부부에게 찾아온 문제를 견디고 있을텐데, 누가 그들을 바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미혼이었을 때엔 보이지 않았던 단단하고 따뜻한 사랑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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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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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삶으로 채워 넣는 일이고, 삶을 감각하는 일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풍경과 느낌을 아는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독자를 안아주는 일이다. (p.122, 정소현)”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작가정신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소설가 23인(김사과, 김엄지, 김이설, 박민정, 박솔뫼, 백민석, 손보미, 오한기, 임현, 전성태, 정소현,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천희란, 최수철, 최정나, 최진영, 하성란, 한유주, 한은형, 한정현, 함정임)의 ‘작가 정신’을 담은 에세이다.

김사과에게 글쓰기는 ‘여행’이다. 박민정에게 소설은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는 노동’이고, 함정임에게는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천희란에게 작가란 ‘스스로의 상투성과 씨름하는 직업’이다. 손보미는 한때 쓰는 행위를 ‘동력’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잠시 쉬어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다시 소설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물론 이런 일이 늘 일어나진 않지만 가끔 일어나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문학은 포기라는 사실을, 모든 것을 시도하고 모든 것에 실패했을 때에야 비로소 문학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내 능력 너머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문학이 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p.144, 정지돈)”

소설과 작가, 소설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쓰는 행위’, 그리고 문학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밑줄을 그어가며 읽게 될 책이다. 글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다. 또한 소설가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을 통해 그들의 서재와 작업실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쓰는 사람이자 읽는 사람의 서재는 더욱 궁금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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