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애 선생을 비롯한 많은 여성 작가들이 앞서서 글을 써주었기에, 지금도 함께 쓰고 있기에, 나도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분노할 수 있다. 희망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소설을 쓸 수 있다. (p.240)”⠀작가정신의 ‘소설, 잇다’는 활발한 창작활동에도 충분히 회자되지 못한 근대 여성 작가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시리즈다.⠀‘소설, 잇다’의 첫 번째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식민지 조선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 백신애와 제 13회 백신애문학상 수상자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최진영이라는 한 세기를 소설로 잇는다.⠀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은 아들을 시댁의 핏줄을 잇기 위해 아이가 없는 형님에게 빼앗긴 32살의 과부 순희의 이야기다. 강제로 재가를 해야하는 순희는 마음에 없는 상대인 성규의 어린 남동생인 19살 소년 정규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1930년대의 <아름다운 노을>을 2020년대로 옮겨온다. 순희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우며, 순희의 사랑이자 뮤즈인 정규는 취준생 여성이 되어 여성들의 연대를 이룬다.⠀“백신애 선생과 나 사이에는 거의 백 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선생의 분노와 나의 분노에는 별 차이가 없난 것 같다. 백년을 사이에 두고 선생과 나는 같은 생각을 품고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여성을 비롯하여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공포. (p.240)"⠀백신애의 소설 <광인수기>,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에 이어 최진영의 소설을 읽고 나서야 이 시리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과거와 현대의 여성들을 잇는 멋진 기획이다. 순희와 정규를 2020년에 데려오려는 시도에서 여성과 남성의 로맨스를 생각해보았으나 이내 폭력과 착취만이 떠올랐다는 최진영 작가의 말에 마음이 아파온다. 여성뿐 아니라 소수자와 다수까지도 모두의 연대가 절실한 시대다. 한 세기 후에는 더 풍요롭고 따스한 미래의 작가와 독자가 우리를 되돌아보아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