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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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


-용희! 나는 용희를 정말로 사랑하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 때가 많소. (p.54) <하수도 공사>


-천리를 말하고 운수에 맡기면서 다시 가난이 원수라는 것을 역설하는 그 아버지의 모순된 말소리에 하염없는 쓴 탄식이 나왔다.

‘우리 아버지도 멀지 않어서 모순을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p.105) <홍수전후>


-자기의 신념과 사상에 평생을 바친 남성이 스스로의 철없음을 반성하며 자기의 유일한 구원이었고 이상향이었던 여성을 성역화하는 이야기, 연출, 해석 따위가 옳지가 않다고, 림 자신의 개인적 기준을 떠나 그냥 요즘 시대상에 맞지가 않다고 림은 생각했다. (p.192)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어요.

정세에 합하지 않는 연애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p.202)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 두 작가가 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소설로 연결되는 ‘소설, 잇다’ 시리즈.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라는 제목은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에 등장하는 ‘정세에 합당하지 못한 연애’라는 문장에서 따온 듯하다. 


박화성의 소설은 전반적 흐름이 시대적 한계로 인해 가부장성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여성작가가 쓴 여성들은 읽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그 시대에 걸맞은 여성성이나 여성의 행복을 다루는데, 팔십 년 전의 사회라고 생각하면 이해된다. 더구나 여성작가로서 글을 발표하는 것에 맞춰 타협한 것으로도 보인다. 해설에 따르면 실제로 이 당시에 여성작가는 작품보다 결혼과 이혼 등의 가십에 더 관심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세태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하수도 공사>만 처음 읽었을 때는 동권과 용희의 사랑보다 노동자들의 처우에 더 방점을 두고 읽었다. 석 달째 거의 무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규탄으로 소설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공녀 강주룡」을 쓰신 박서련 작가님과 이어졌구나 생각하면서 읽었다. <하수도 공사>의 동권은 사회주의 성향이고, 용희는 당차고 똑똑한 여성이다. <호박>의 음전도 진취적으로 행동한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등장인물을 통해 박화성이 추구하고자 했던 세계가 드러난 것 같다.


<홍수전후>는 여러모로 비극이 큰 작품이다. ‘가족의 운명이 바로 명칠이라는 한 사람의 결정에서 기인한다는 매우 엄격한 가부장성이다.’(p.225) 작품 해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이 부분인데, 이 문장으로 이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을 전부 설명할 수 있다. 그나마 마지막에 아들의 뜻을 따라 계몽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희망차게 끝나긴 한다. 이 시대에도 부모 세대의 가부장성을 자식 세대가 깨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읽는 내내 가장의 고집이 너무 세서 답답하고 힘들긴 했다. 한국 사회에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숨 막히는 경험. 그래서 한층 더 비극적으로 느낀 게 아닐까 싶다.


박서련의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정말 재밌고 이야기적 완결성이 너무 좋았다. 해체된 총여학생회의 재건을 위해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 동아리에서 읽은 책이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다. 독서 토론 장면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박서련 작가님의 시각에서 감상문을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과 소설이 이어져 있다는, ‘소설, 잇다’의 취지에 딱 맞는 장면이었다. 연인인 진과 림은 <하수도 공사>의 동권과 용희와 비슷하다. 진은 총여학생회 재건을 대의로 삼고 있고, 림은 그래서 우리 연애가 정세에 합당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림이 그 소설을 용희의 시점에서 쓰인 것을 상상하는 장면이 좋았다. 아마도 박화성 역시 지금 그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런 부분이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30년대와 지금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노동자들의 처우, 가부장적인 가정, 정세에 합당한지 고민하게 하는 연애 등등. 시대가 달라도 시대의 한계가 있어도, 같은 뜻을 품은 두 작가의 만남이 반가웠다. 


-이 게시물은 작가정신 작정단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정세에합당한우리연애 #박화성과박서련 #박화성 #박서련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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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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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 김성중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p.39)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신기루는 똑똑히 지켜보려면 그때부터 흩어진다. 꿈을 기억하려 들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p.61)


-논리적으로 나는 인간을 증오한다. 그러나 번번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내 마음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빼버릴 수 있다면 이토록 이상한 꼴로 영생하지도 않았으리라. (p.91)


-그러나 저 애틋한 존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우주의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었다. (p.112)


-모든 것은 증가한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고 책장을 덮은 다음에도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처럼. (p.229)


-

“화성으로 쏘아 보낸 열두 마리의 실험동물 중 오직 나만 살아남았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 삼백 년 후의 화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SF 소설은 아니라고 해서 더 궁금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화성의 아이 ‘마야’의 엄마인 ‘루’다. 루는 실험실에서 탄생한 신인류로, 손에 물갈퀴가 있고 귀 뒤에는 아가미가 있다. 딸인 마야도 고스란히 그걸 물려받는다. 1957년 스푸트니크 2호에 실린 개 ‘라이카’(유령으로 존재한다), 탐사 로봇 ‘데이모스’가 화성에서 마야를 키우게 된다. 마야는 그렇게 두 사람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셋의 다정하고 유쾌하지만, 필사적으로 분투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유사 가족이 돼,, 화성에서 새로운 창세기를 여는 태고 수프와 우물을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이 과정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유머가 넘치는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풍자가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유대감과 사랑으로 뭉쳐 있는 유사 가족이라 이들의 평화가 영원하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때마다 나도 이들처럼 경계하면서 읽은 것 같다. 눈꺼풀이 없는 소녀 키나의 이야기는 안타까웠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억지로 광고를 보게 하고, 보는 광고마저 공개하게 만드는 지구가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소설은 남자와 알리체의 등장으로 급변화를 맞게 된다. 새를 잡아먹은 남자의 행동에서 나는 이 여성들의 평화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동물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된다면 지구 같아질 테니까. 마지막 마야의 선택에 라이카가 함께 있어서 든든하고 좋았다. 상실 속에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연대와 가족애가 애틋한 소설이었다. 



-이 게시물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화성의아이 #김성중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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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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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p.15)


-“사람을 믿는 게 잘못은 아니야. 네 말대로 그렇게 혼자라면 믿어야 살 수 있으셨겠지.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누군가를 믿기도 해.” (p.100)


-창경궁은 밤에 봐야 정말 사람이 살았던 곳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말 사람이 사는 집처럼 적당히 비밀스러워진다고. (p.111)


-이후 원서동을 떠나오고 나서도 그 대화만은 잊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가 주고받은 당연하고 다행인 구원에 대해서만은. (p.156)


-몇 줄로 남은 할머니의 회상은 이렇게 다른 증언들로 사실의 두께를 얻어갔다. 수리를 통해 보강되어가는 대온실처럼. 기억은 시간과 공간으로 완성하는 하나의 건축물이나 마찬가지였다. (p.298)


-“아니란다, 영두야. 그건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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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제목부터 너무 흥미로워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 수리 공사의 백서 기록담당자가 되면서부터 시작한다. 영두는 중학생 때 창덕궁 근처의 원서동 ‘낙원하숙’에서 산 적이 있다. 영두에게는 그때의 일이 지워야 했을 만큼 괴로운 일로 보였다. 소설은 여러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쓰기 위한 영두의 현재와, 낙원하숙에서 벌어졌던 영두의 과거, 그리고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행적이다. 영두의 과거에는 하숙집 할머니인 문자 할머니와 손녀 리사, 남자친구였던 순신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꽤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당연하게도 나는 주인공 영두와 문자 할머니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중학생 영두는 고향 석모도를 떠나와 서울에서 이방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문자 할머니 역시 일본인이지만 조선에 남게 된 잔류 일본인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문자 할머니가 영두를 유난히 아끼고 신경 썼던 것도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두가 어른이 되어 문자 할머니의 글을 찾아주고 많은 것을 돌려주게 되는 서사가 좋았다. 거기에 창경궁 대온실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장소가 묘한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 계속 다음 장을 궁금하게 했다. 한국인으로서 책에 나오는 일본인을 바라보는 데 불편한 지점이 존재하지만, 문자 할머니 개인의 삶을 놓고 보면 전쟁에서 여성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는 게 안타까웠다. 소설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진실일지 궁금했는데 책의 일러두기에서 의문이 풀렸다.


대온실 수리가 끝나면서 영두의 마음도 함께 수리된 듯했다. 마지막에 영두도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서 다행이었다. 모두에게 공평히 흘러가는 시간이 가슴 아픈 일도 따뜻하게 감싸안아 준 것 같았다. 무척 재밌는 소설이고 위로받는 부분도 있어서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좋은 문장들이 아주 많다.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광고 #협찬 #대온실수리보고서 #김금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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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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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때까지 기다려


-어떻게 초콜릿 하나 드시면서 이야기해 주실래요? (p.43)

<민트 초코 브라우니> 오한기


-우연히 연속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실은 뭔가 필연적인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p.74)

<세계의 절반> 한유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이런 태도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p.92)

<모든 당신의 젤리> 박소희


-녹을 때까지 기다리자. (p.170)

<박하사탕> 장희원


-어떤 십 년은 인생의 전부에 가깝지만 또 어떤 십 년은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걸 그날 어머니와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알아버렸다. (p.199)

<라이프 피버> 이지


-

비채에서 출간한 디저트를 주제로 한 앤솔러지. 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 초콜릿, 이스파한, 젤리, 사탕, 슈톨렌을 소설에서 달곰씁쓸하게 풀어냈다. 다섯 가지의 디저트 모두 연상하면 입 안에 침이 고이는 단맛이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냥 달지만은 않았다.


<민트 초코 브라우니>는 오한기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담긴 것 같은 소설이다. 작가가 운영하는 공부방을 인수하려다 실패하자 그를 비방하기 시작하는 장원장과의 전쟁이 현실감 있게 펼쳐진다. 소설 속 작가이자 현실 작가인 작가님이 쓰고 싶은 초콜릿을 싸는 작가 이야기(...)가 브라우니로 나온다. 읽으면서 이게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를 생각했다. 진실을 차치하고서도 이야기 구성만으로는 가장 흥미진진해서 왜 맨앞에 배치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세계의 절반>은 어느 날 정민이 주운 안구가 민형의 이마에 박히며 전생을 보게 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민형보다는 민형이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작가 노트에 이르기를 이스파한이라는 이국적이고 낯선 조합처럼, 삶에서 보는 다양한 낯선 조합을 쓰고 싶으셨다고. 개인적으로 어린이 퀴즈대회에 출전한 진주가 인생 몇 회차처럼 느껴져서 기묘했다. 삶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희한하게 지속된다.


<모든 당신의 젤리>는 젤리 사백 개로 분열 작업을 거친 어느 여성이 나온다. 어째서 젤리였는가 하면,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라고 대답하는 게 인상 깊었다. 사과와 용서, 즉 용서하는 것과 용서받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 자기 자신이 항상 좋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결말은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곰돌이 모양의 젤리를 먹는 인간으로서.


<박하사탕>은 정말 박하사탕처럼 화하고 씁쓸했다. 멀어진 사람과 장례식에서 재회하고, 다시 멀어질 것을 알면서도 잠시 머무르는 이야기다.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상대가 왜 나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지 나도 누군가에게 이유 모를 나쁜 사람인 건 아닌지, 그런 것들. 인간관계에 관해 곱씹어 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라이프 피버>는 조금 희한한 가족 이야기 같으면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녀 관계를 담은 소설이다. 어머니와 십 년만의 재회, 슬로베니아에 사는 딸을 슬로바키아에 산다고 말하는 엄마, 조카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나 등등... 평범하진 않지만 실패한 인생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행운의 상징이라는 마지막 슈톨렌을 함께 먹었으니, 이들 가족에게도 작은 평화와 행운이 깃들지 않았을까.


귀엽고 아기자기한 표지와 달리, 소설들은 무겁고 진중하기도 했고, 그 안에 등장하는 달디단 디저트들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반전이 있는 책이었다. 인생은 이렇듯 씁쓸한 면이 있지만, 가끔 달콤한 디저트만으로도 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듯하다.


-비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녹을때까지기다려 #비채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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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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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 김멜라


-그런데도 버들은 자기를 열고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믿음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증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 세상을 향한 버들의 사랑이었다. (p.90)


-그것이 버들이 미움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호랑은 버들의 그런 방식을 사랑했다.

자연으로 돌아가!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p.107)


-비생식 암컷 엄지는 무엇을 위하여 함께하는가. 번식을 향한 유전자 메커니즘이 아닌 그 무엇이, 그들의 관계를 추동하고 지탱하는가. (p.115)


-그래, 이제 나도 괜찮아. 죽음이든 삶이든. 그러니 나에게 무너져 내려.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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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마리의 곤충(톡토기, 모기, 거미)의 두 인간 여성 관찰기이다. 책 소재를 처음 접했을 때, 같은 작가님의 「저녁놀」이 떠올랐다. 저녁놀이 무생물의 관찰기라면 이건 생물인데 곤충이다. 한점털보톡토기(닉네임 티끌트윙클), 빨간집모기(모필자), 집유령거미(아무런 이름으로도 불리고 싶지 않음)는 버들과 호랑이라는 두 레즈비언 여성을 관찰하게 된다. 그들에게 생식을 하지 않는 두 여성은 비생식 암컷 두발이엄지(인간을 부르는 그들의 별칭)이자 상당히 신기한 관찰 대상이다.


버들과 호랑에게는 각자 유년기의 상처가 있다. 그 상처로 한 사람은 오래 우울증을, 또 한 사람은 충동적으로 죽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버들과 호랑은 서로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곤충들의 관찰기를 통해, 두 사람은 번식하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버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요정 같은 마음을 지녔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인상 깊었는데. 미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직설적이면서 간접적인 느낌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이라도 그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꽤 살만한 곳이라는 메시지 역시 좋았다.


곤충의 시선에서 보는 인간 관찰기라 재밌고 톡톡 튀는 문장들이 많다. 반면 버들과 호랑의 사랑과 사연은 결코 가볍지 않은데, 분위기를 조절하는 것이 바로 세 곤충 저자의 서술이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는 곤충들이 이제 평범하게 보이지 않게 됐다(!) 비생식 연구를 통해 이런 세상에서도 번식하고 흘러가는 생명을 만들어 갈 거라는 교훈은 아주 묘하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섭리는 인간과 곤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인간이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세상 안에서 공존하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곤충들을 보며 느껴지는 환희는 매우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도서지원 @hdmhbook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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