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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p.15)
-“사람을 믿는 게 잘못은 아니야. 네 말대로 그렇게 혼자라면 믿어야 살 수 있으셨겠지.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누군가를 믿기도 해.” (p.100)
-창경궁은 밤에 봐야 정말 사람이 살았던 곳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말 사람이 사는 집처럼 적당히 비밀스러워진다고. (p.111)
-이후 원서동을 떠나오고 나서도 그 대화만은 잊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우리가 주고받은 당연하고 다행인 구원에 대해서만은. (p.156)
-몇 줄로 남은 할머니의 회상은 이렇게 다른 증언들로 사실의 두께를 얻어갔다. 수리를 통해 보강되어가는 대온실처럼. 기억은 시간과 공간으로 완성하는 하나의 건축물이나 마찬가지였다. (p.298)
-“아니란다, 영두야. 그건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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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제목부터 너무 흥미로워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 수리 공사의 백서 기록담당자가 되면서부터 시작한다. 영두는 중학생 때 창덕궁 근처의 원서동 ‘낙원하숙’에서 산 적이 있다. 영두에게는 그때의 일이 지워야 했을 만큼 괴로운 일로 보였다. 소설은 여러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쓰기 위한 영두의 현재와, 낙원하숙에서 벌어졌던 영두의 과거, 그리고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행적이다. 영두의 과거에는 하숙집 할머니인 문자 할머니와 손녀 리사, 남자친구였던 순신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꽤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당연하게도 나는 주인공 영두와 문자 할머니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중학생 영두는 고향 석모도를 떠나와 서울에서 이방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문자 할머니 역시 일본인이지만 조선에 남게 된 잔류 일본인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문자 할머니가 영두를 유난히 아끼고 신경 썼던 것도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두가 어른이 되어 문자 할머니의 글을 찾아주고 많은 것을 돌려주게 되는 서사가 좋았다. 거기에 창경궁 대온실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장소가 묘한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 계속 다음 장을 궁금하게 했다. 한국인으로서 책에 나오는 일본인을 바라보는 데 불편한 지점이 존재하지만, 문자 할머니 개인의 삶을 놓고 보면 전쟁에서 여성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는 게 안타까웠다. 소설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진실일지 궁금했는데 책의 일러두기에서 의문이 풀렸다.
대온실 수리가 끝나면서 영두의 마음도 함께 수리된 듯했다. 마지막에 영두도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서 다행이었다. 모두에게 공평히 흘러가는 시간이 가슴 아픈 일도 따뜻하게 감싸안아 준 것 같았다. 무척 재밌는 소설이고 위로받는 부분도 있어서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좋은 문장들이 아주 많다.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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