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녹을 때까지 기다려


-어떻게 초콜릿 하나 드시면서 이야기해 주실래요? (p.43)

<민트 초코 브라우니> 오한기


-우연히 연속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실은 뭔가 필연적인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p.74)

<세계의 절반> 한유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이런 태도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p.92)

<모든 당신의 젤리> 박소희


-녹을 때까지 기다리자. (p.170)

<박하사탕> 장희원


-어떤 십 년은 인생의 전부에 가깝지만 또 어떤 십 년은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걸 그날 어머니와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알아버렸다. (p.199)

<라이프 피버> 이지


-

비채에서 출간한 디저트를 주제로 한 앤솔러지. 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 초콜릿, 이스파한, 젤리, 사탕, 슈톨렌을 소설에서 달곰씁쓸하게 풀어냈다. 다섯 가지의 디저트 모두 연상하면 입 안에 침이 고이는 단맛이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냥 달지만은 않았다.


<민트 초코 브라우니>는 오한기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담긴 것 같은 소설이다. 작가가 운영하는 공부방을 인수하려다 실패하자 그를 비방하기 시작하는 장원장과의 전쟁이 현실감 있게 펼쳐진다. 소설 속 작가이자 현실 작가인 작가님이 쓰고 싶은 초콜릿을 싸는 작가 이야기(...)가 브라우니로 나온다. 읽으면서 이게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를 생각했다. 진실을 차치하고서도 이야기 구성만으로는 가장 흥미진진해서 왜 맨앞에 배치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세계의 절반>은 어느 날 정민이 주운 안구가 민형의 이마에 박히며 전생을 보게 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민형보다는 민형이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작가 노트에 이르기를 이스파한이라는 이국적이고 낯선 조합처럼, 삶에서 보는 다양한 낯선 조합을 쓰고 싶으셨다고. 개인적으로 어린이 퀴즈대회에 출전한 진주가 인생 몇 회차처럼 느껴져서 기묘했다. 삶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희한하게 지속된다.


<모든 당신의 젤리>는 젤리 사백 개로 분열 작업을 거친 어느 여성이 나온다. 어째서 젤리였는가 하면,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라고 대답하는 게 인상 깊었다. 사과와 용서, 즉 용서하는 것과 용서받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 자기 자신이 항상 좋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결말은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곰돌이 모양의 젤리를 먹는 인간으로서.


<박하사탕>은 정말 박하사탕처럼 화하고 씁쓸했다. 멀어진 사람과 장례식에서 재회하고, 다시 멀어질 것을 알면서도 잠시 머무르는 이야기다.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상대가 왜 나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지 나도 누군가에게 이유 모를 나쁜 사람인 건 아닌지, 그런 것들. 인간관계에 관해 곱씹어 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라이프 피버>는 조금 희한한 가족 이야기 같으면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녀 관계를 담은 소설이다. 어머니와 십 년만의 재회, 슬로베니아에 사는 딸을 슬로바키아에 산다고 말하는 엄마, 조카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나 등등... 평범하진 않지만 실패한 인생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행운의 상징이라는 마지막 슈톨렌을 함께 먹었으니, 이들 가족에게도 작은 평화와 행운이 깃들지 않았을까.


귀엽고 아기자기한 표지와 달리, 소설들은 무겁고 진중하기도 했고, 그 안에 등장하는 달디단 디저트들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반전이 있는 책이었다. 인생은 이렇듯 씁쓸한 면이 있지만, 가끔 달콤한 디저트만으로도 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듯하다.


-비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녹을때까지기다려 #비채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