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재탄생 - 공간으로 보는 지식의 역사
이언 F. 맥닐리 & 리사 울버턴 지음, 채세진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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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는 '공간으로 보는 지식의 역사 : 지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보존되는가'이다.

  인류가 현재의 문명을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지식의 전승'이 필수적이다. 글자가 발명되면서 지식의 수명은 길어지게 되었다. <지식의 재탄생>은 지식을 만들고 보존했던 여섯 가지 공간을 탐색한다. 곧 '도서관', '수도원', '대학', '서신공화국', '전문학교', '연구소'이다. 이 각 기관은 곧 한 시대의 지식 생산/보관을 특정한 기관이다.  현대에도 도서관과 수도원, 대학과 서신공화국, 전문학교가 있지만 저자는 '현대의 지식을 생산하고 보존'하는 기관으로 연구소를 꼽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실험 과학의 영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연구의 대상으로 탐구되고, 비교할 만한 다른 문화의 기관이 없다고 한다. 

  각 시대를 풍미한 공간들로 나누고, 그 시대의 지식 생산과 보존을 설명하고, 그리고 그 공간이 어떻게 쇠퇴했으며 어떻게 다른 기관이 그 위치를 대체하게 되었는지 상세하게 설명이 나온다. 지식기관의 변천을 설명할 뿐인데도 역사의 흐름을 대충 아우르게 된다(아쉽다면 유럽에 철저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간간히 다른 문화(중국/이슬람)과의 비교가 있긴 하다). 종교가 어떻게 과학에게 밀려났는지, 독일에서 왜 유명한 철학자가 다수 등장했는지, 현대적 학교는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은 현대 책의 형태인 '코덱스'가 발명된 시기인 '수도원' 부분과(그 전에는 두루마기 형태여서 처음부터 쭉 읽어나가는 것이었다), 완전히 색다른 지식기관인 '서신 공화국'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슬람의 '이자자'라는 자격증에 관한 얘기도 신기했다.

  책을 읽으면서, 권력이 얼마나 지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시대 권력이 몸담은 분야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권력의 주체가 바뀌면 필연적으로 지식 공간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시대에 구술문화가 흥하기도 하고 서술문화가 흥하기도 했다. 나는 구술문화가 끝나고 -> (글자의 발명 이후) 서술문화로 이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둘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구술문화가 중시되기도 하고 서술문화가 중시되기도 했다. 

  지식이 아닌 '지식 공간'의 역사가 이렇게 흥미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사는 세계는 이전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지식의 탄생/보존의 역할은 다른 기관으로 이전되어 왔으나 그 이전의 기관들 또한 한 걸음 뒤에 물러났을지라도, 세상에 자리잡고 사람들의 방문을 받지 않는가. 

 

2010.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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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스팟 - 내가 못 보는 내 사고의 10가지 맹점
매들린 L.반 헤케 지음, 임옥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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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가을 쯤 산 책이다. 서점에 가서 직접 보고 산 책인데, 막상 읽어보니 영 아니어서 앞부분만 좀 읽다 덮은 기억이 난다. 지금 꺼내니까 책 표지가 바래있다. 

  이 책은 너무나 일반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람은 맹점이 있다.' 그리고 육체의 맹점이 아니라 정신의 맹점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너무 일반론으로 풀어나가서(나는 다소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것을 기대했었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사람은 맹점이 있으므로 자신의 맹점을 파악하고 남의 맹점을 관대히 봐야 한다.'는 설교 정도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라 -> 관점을 바꿔서 생각하라   

  미처 못 봤다고 해서 (맹점에 빠졌다고 해서) 멍청이는 아니다. 

  사람은 세상을 분류하고, 자극에 익숙해지며, 일관성을 강하게 유지하는 존재다.  

  나름 내용을 정리하자면 위의 세 줄일까. 

  책의 반을 읽을 때까지 계속 짜증이 났다. 저자의 자아가 너무 강해서 가끔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든다. 내 친구, 내 남편, 내 손녀, 내 친구의 딸, 내 동료, 내가 아는 중역....... 게다가 단락단락을 나누어 정리를 해 놓았는데도 읽고 나면 정신이 혼란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한 건지 핵심이 확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세부적인 예는 꽤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논지에 녹아들지 않아 묻혀버린 감이 들지만). 일상+실험으로 다양하게 현실을 끌어들이려 한 것 같다.
 

덧붙임. 

책 본문에 나오는 '쿠루병'이 뭘까 인터넷의 바다에서 찾아보았다. 

*포 부족의 쿠루병* 

: 변형크로이츠펠터야콥병(인간 광우병)과 유사한 뇌질환. 식인습관을 지닌 포 부족, 그 중에서 죽은 이의 뇌를 주로 여자와 어린이들이 먹었기 때문에 포 부족의 여자와 어린이들에게서 발병했다. 가이두섹 박사는 쿠루병으로 죽은 사람의 뇌조직을 침팬치에게 주사하여 발병을 확인했다. 병의 원인은 프리온이라는 변형 단백질이다.

 

201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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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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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이 책에서 영화 리뷰를 기대했다. 캐릭터 말해주고, 줄거리 말해주고, 말하자면 주말에 TV에서 방영해 주는 영화소개프로그램처럼 말이다. 기대는 첫장처럼 파사삭 깨졌다. 말하자면 이 책에서 나오는 것은 줄거리읊기가 아니라 감상문이었다. 줄거리는 같아도 사람의 감상은 제각각이다. 이 책에서 다른 사람이 같은 영화를 간혹 꼽기도 하는데, 느낌이나 포인트가 참 다르다. 

  '내 인생의 영화'를 쓰는 사람들의 어조와, '내 인생의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이 제각각이라 재미있었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느낌이고 왠지 그 사람의 인생을(성격도 포함하여) 엿본 기분이었다. 세상이 그렇듯 정말 싫은 사람도 있었다. '내 이름은 튜니티'와 홍금보 영화를 꼽은 그 사람. 

  내 인생의 영화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봤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기 때문인지 꼽기가 힘들엇다. 아직 내 인생의 영화는 만나지 못한 걸까. 현재로써는 어머니와 같이 본 If only가 떠오른다. 다른 영화를 보려다 시간이 안 맞아 본 영화였는데, 어머니 취향에 안 맞을까 조마조마하며 본 기억이 난다. 다행히 어머니 취향에 맞아 기뻤다. 

  감상문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샘플을 본 기분이다. 감상은 느낌이지 생각이 아니다. 

 

2010.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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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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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맑은지 되짚게 하는, 이야기

  내 어머니는 잔소리를 하신다. 큰소리는 절대 내지 않고 도란도란 잔소리를 하시는데, 나는 그 잔소리를 들으면서 잔소리 속에 어머니의 삶이 알알이 엮여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잔소리란 아무리 옳은 소리가 담겨 있다 해도 듣기 싫은 것이지만, 어머니의 삶이 스며있다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어머니의 잔소리를 싫어할 수가 없다. 가끔은 다정한 넋두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 머리가 굵어질수록 어머니의 잔소리도 길고 깊어지는 것을 들어보면, 내가 클수록 어머니의 삶의 양도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 무렵 어머니가 살았던 30년 전과 내가 사는 현재는 많이 다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자면 그건 아니잖아요,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크게 어긋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사는 이치는 삼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옛날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해오다가 옛날과 지금이 얼마나 같은가를 생각하게 되면 파드득 놀라고야 만다. 3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바뀐 것도 없는 것처럼, 18세기와 21세기도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18세기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이 21세기의 나에게 곰팡내 풍기는 옛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오히려 놀랍도록, 21세기의 세상을 꿰뚫고 있는 느낌을 준다.




  무릇 직책은 보잘 것 없는데 재주가 넘치면 간사해진다. 지위는 낮은데 아는 것이 많으면 간사해진다. 노력은 조금 들였는데 효과가 신속하면 간사해진다. 나는 홀로 능히 오래 있는데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자꾸 바뀌면 간사해진다. 나를 감독하는 사람 또한 반드시 바름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간사해진다. 아랫사람의 무리가 많은데도 윗사람이 혼자 어두우면 간사해진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보다 약한지라 이를 두려워해서 고발하지 못하면 간사해진다. 내가 꺼리는 자가 모두 범한 것을 붙들어 고발하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형벌에 원칙이 없고 염치가 확립되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어떤 이는 간사해서 망하고, 어떤 이는 꼭 간사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간사하다 말하며 망하게 되면 간사해진다. 간사함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 이와 같다.

- <다산어록 청상> 18p, ‘간사함의 원인’ 중에서




  예를 들어, 위의 글을 보자마자 나는 누군가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세상은 특히 간사하다. 옛날은 이보다는 순박했을 것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세상살이는 언제 어디서나 같다는 깨달음이 왔다. 분노나 냉소가 아니라 차분한 어조로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글이,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 없는 다산 선생의 됨됨이를 느끼게 했다. 산 같은 분이라기보다는 숲 같은 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사람을 드러내는 거울이라 하더니, 어떤 위인전이나 역사서를 본 것보다도 정약용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다.

  겉멋에 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닌, 오래 생각하고 마음을 담아 쓴 말이기 때문일까.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하는 말은 어딘지 내 어머니의 잔소리를 닮았다. 단지,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기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의 말을 엮어놓은 것을 잔소리라고 하면 웃길까? 하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은 하나같이 자신의 삶과 그에서 얻은 생각을 다시 자신에게 곱씹어주는 느낌이라서, 역시 나에게는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잔소리 같은 느낌이다. 애정이 없으면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잔소리에는 애정이 있다.

  엮은이가 <다산어록 청상>에 정약용 선생의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옆에 풀어놓은 것처럼, 나도 책을 읽으며 메모지에 내 생각을 적어보았다. 다 읽은 후 보니 책이 빵빵해졌다. 메모를 쭉 훑어보니, 문답의 느낌이 났다. 옳다, 맞다, 그렇다, 라는 말이 제일 많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그만큼 많이 공감했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만큼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하셨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고전이란, 어렵고 고리타분하며 지루한 글이라는 느낌을 막연하게 준다. <다산어록 청상>을 읽으면서 처음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그건 어머니의 잔소리를 되도록 듣고 싶지 않아하는 내 심리와 맞닿아 있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 좋든 싫든 현재의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건 굉장히 하기 싫은 일이다. 현재의 나에게 만족하며 살아가면 편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잔소리는 자꾸 현재의 나를 점검하게 만든다. 나의 문제점을 생각하고,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게 만든다. <다산어록 청상>도 그러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는 메모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슬프지만, “되새기고 곱씹어도 잘 되지 않는다.”라는 메모는 있었다는 게 기뻤다. 그 메모가,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치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올곧게 살기 위해 고심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모습처럼,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 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런 욕심이 생겼다. 다시 한 번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을 읽을 때에는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는 메모가 끼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든, 모름지기 모든 것은 나를 다스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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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틀렸다 패러독스 4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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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바야르의 추리비평 3부작 중 세 번째 책, <셜록홈즈가 틀렸다>. 1편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이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내는 구성이다. 2편은 <햄릿 : 귀머거리들의 수사>인데 아직 국내 번역이 안 되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극작 '햄릿'에서 아버지 햄릿의 살인범을 찾아내는 구성이다. 그리고 3편이 바로 <셜록 홈즈가 틀렸다>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서 범행을 저지른 진범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6개월에 한 권씩 번역되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순서가 좀 아스트랄해서 아쉽다. 최소한 시리즈라도 집필순서대로 펴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 <햄릿 : 귀머거리들의 수사>를 참고하라는 부분이 꽤 있어서 더욱 아쉽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서 피에르 바야르가 주목하는 것은, 아서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의 미묘한 관계이다. 작품이 작가를 잡아먹은, 혹은 작가에게 미움받는 주인공 셜록 홈즈. 피에르 바야르는 도일이 홈즈를 너무 미워한 나머지 진범을 놓쳤다고 말한다. 

  도일과 홈즈의 관계는 흥미로웠으나 어쩐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보다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너무 막바지에서 급하게 범인을 잡아낸 느낌이다. 덕분에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는 논리에서 미진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록 홈즈가 틀렸다> 또한 재미있었다. 작가는 자신이 어떤 괴물을 만들어냈는지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른다(이 문장을 어디서 봤더라?). 이미 완결된 추리소설에서 '숨겨진 범인'을 나름의 논리로 잡아내는 건 언제나 즐겁다.
    

  추리비평 시리즈의 나머지 한권, <햄릿 : 귀머거리들의 수사>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201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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