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북클럽
커렌 조이 파울러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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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우리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오스틴이 있다. ]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은 것은 2007년 초의 일이다. 시작은 오만과 편견이었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영화로 봤으며, 엠마를 대충 읽었다. 거기에서 제인 오스틴에 대한 흥미가 끝났다. 그래도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집어든 것을 보면, 그녀의 인생이 꽤 강렬했던 모양이다.

  <제인 오스틴 북클럽>은 제인 오스틴이 남긴 6편의 글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소설 여섯 편을 숙지하지 않고 이 소설을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소설이 뭘 쓰고 있는지도 헛갈린다. 토론이나 그들 사이의 교류가 아니라, 인물 각자를 온전히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슬린, 실비아, 알레그라, 버나데트, 프루디, 그리그. 이들 여섯 명은 작가가 제인 오스틴의 6편의 소설을 변주해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오스틴이 있다."

  말 그대로다. 6명의 인물들 속에 6편의 소설이 있다.
  (누가 어떤 소설에 대응하는지는 차례를 보라.)

  제인 오스틴의 소설 6편을 다 읽지도 않았고, 완전히 파고들지도 않은 나는 즐기기 힘들었다. 읽으면서 반쯤은 아리송한 상태였으니까. 뒤에 있는 <독자를 위한 페이지>에 가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줄거리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제인 오스틴의 팬이라면, 읽으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겠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을 잘 모르고, 그녀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고, 소설 내의 상징이나 구조보다는 스토리 중심의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다지 재미가 없을 테니까.

  맨 뒤에 있는 제인 오스틴의 글에 대한 반응이 하나의 묘미다. 어쩜 평이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지. 실은 소설보다 뒤의 서평이 더 신나고 즐거웠다.
 

2008.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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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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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꼭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책이 뭔가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난 주저없이 이 책을 꼽는다. 좋아해서? 그건 아닌 것 같다. 무딘 칼로 속을 후비고 난도질하는 내용을 좋아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구입해서 곁에 끼고 있고, 때로 들춰보고 읽어본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나면,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무섭다. 나는 지금까지 이 책처럼 끔찍하게 무서운 내용을 만난 적이 없다.

  작가가 제시한 상황은 어쩌면 흔하다. 도시에 눈이 멀어버리는 전염병이 돈다. 눈 먼 자와 접촉을 하면 그 사람도 눈이 먼다. 병을 막으려고 초기 감염자를 감금하지만 전염병은 도시 전체로 퍼진다. 그 가운데에서 딱 한 사람, 안과의사의 아내만 멀쩡히 눈을 뜨고 있다. 작가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들과 도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안과의사의 아내의 눈을 통해 천천히 보여준다.

  <눈 먼 자들의 도시>의 특이한 점은 고유명사가 안 나온다는 사실이다. 등장인물은 이름이 없다. 배경이 되는 도시도 이름이 없다. 그래서 읽다보면 점점 더 섬뜩해진다. '특정한 소설속의 인물'이나 '특정한 소설 속의 배경'이 아니라 바로 내가 있는 곳, 나의 상황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에 <눈 먼 자들의 도시>의 배경은 대한민국 서울로, 그 속에 사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혹은 나로 변한다.

  눈이 먼 사람들은 비참하다. 보지 못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만들어낸 비참함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라며 시설에 가두고, 시설 내에서 약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것을 가로채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소설 속에서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가만 보면 눈이 보이는 사회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분명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보기 싫어서 시선을 피하는 것을 굳이 파헤쳐서 눈앞에 들이민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주변 사람은 당연히 도와준다는 건 개소리고, 국가는 모든 국민을 지켜준다는 것이 거짓말이고, 내가 앉아있는 한 뼘 옆에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정의와 인간다움은 껍데기다. 그래서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다보면 속이 불편하고, 끝까지 읽고 나면 무서워진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보고 있지만 볼 수 없는, 보지 않는, 보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해 말한다.

  나는 눈을 뜨고 있나? 보여주는 것만 보고 있지 않은가?

  책을 덮고 질문해 본다.

  여기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때가,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도 더 이상 무서워지지 않는 시기일 것이다.

 

  덧붙임.

  디자인이 별 네 개인 것은 책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문체 때문이다. 문단이 무지 길고, 따옴표도 없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없어서 읽으면 눈이 피곤하고 때로 헛갈린다.
 


 
2008.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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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일은 너무 멀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96
해리 케멜먼 지음, 이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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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마일이나 되는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빗속이라면 더욱 힘들다." 

  이상의 열 한 마디에서 어떤 것을 추리할 수 있을까? <9마일은 너무 멀다>는 친구의 몇 마디로 범죄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안락의자 탐정, '니콜라스 웰트'가 나온다. 쉬이 넘길 수 있는 문장에서 그가 끌어낸 논리는 입이 떡 벌어진다. 정말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웰트의 직업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이다. 그는 직접 시체를 본 적이 없다. 사건 현장에 가지도 않는다. 남이 물어온 사건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방법을 가리켜 직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비웃는 사람의 현장검증을 뛰어넘어 진짜 범인을 잡아낸다.

  닉 웰트가 등장하는 단편은 단편치고도 짤막하다. 페이지가 휙휙 잘도 넘어간다. 일상적인 사건이고 범인을 지목하기는 쉬우나(추리소설의 범인이란 대체로 경찰이 지목한 범인 혹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을 피해 존재하지 않던가), 혹여 얘기가 예상대로 흘러가더라도 닉 웰트의 명쾌한 논리적 설명만으로 재미있어진다. 사건을 서술하는 1인칭 관찰자인 '나'(군검사이자 닉 웰트의 친구)와 닉의 상호작용도 꽤나 볼만하다.

  범죄를 논리로 재구성하는 언어학자 니콜라스 웰트의 다른 추리장면도 보고 싶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온 건 <9마일은 너무 멀다> 뿐인 듯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 <금요일 랍비는 늦잠을 잤다>나 읽어볼까 싶다.


  덧붙임.
  뒤에 있는 '살인의 소리' '다이아몬드 살인'은 취향이 아니었다.
 

200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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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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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세 개 반. 

  머릿글자가 A, B로 시작하는 피해자가 차례로 살해당한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머릿글자 외에 찾을 수 없고, 범인은 그저 살인을 즐기는 듯 하다. 애르큘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대령은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나서고, 살인은 또 다시 일어나는데......

  헤이스팅스 대령과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범인을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두근두근하다. 그런데 뒤에서 나타나는 의외의 반전! 그런데 이게 좀 너무 의외라서 포와로의 설명이 조금은 억지 같았다. 암시가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다. 

  전체적으로 신나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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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90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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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까닭으로 그리모 교수 집안의 스튜어트 밀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략하거나 덧붙이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본 대로 정확하게 얘기했다고 말해두는 바이다. 그리고 카리오스트로 거리의 세 명의 목격자 또한 틀림없이 진실을 얘기했다는 것도.>

  12p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심상치않은 느낌을 받았다.

  보통, 추리소설에서 목격자의 말이 신빙성이 있는지 의심쩍은지 판단하는 것은 탐정이다. 이렇게 턱하니 '전제'를 놓아두는 소설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이건 마치, "자, 우리 추리대결을 펼쳐보자!"라는 느낌이지 않은가. 추리소설은 작가와 독자의 두뇌싸움이라고들 하는데, 존 딕슨 카는 아예 대놓고 "나와 함께 추리를 해 보지 않으시려오?"라고 제안하고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그러니 추리는 탐정만 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세 개의 관>이 다루고 있는 것은 두 건의 밀실살인이다. 살해당한 샤를 그리모 교수의 과거와 얽힌 살인. 그런데 그리모 교수 살해의 유력한 용의자 피에르 프레이도 죽었다. 둘을 살해한 유령과도 같은 살인자- 흔적을 남기지 않은 범인을 밝혀내야 한다.

  펠 박사의 설명에서 머리가 탁 트이는 느낌! 의문을 남기지 않은 명쾌한 해답. 훌륭한 근거. 잘 짜인 미스터리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등장인물이나 탐정보다는 스토리 자체에 열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덧붙임.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소년탐정 김전일>이 생각난 것은 나 뿐일까. 왜 공범이 죽는 거야! 그 장면을 보고 텁텁한 느낌이 남았다. 진실을 밝혀내면 범인은 죽는다, 라는 느낌? 이래서야 오히려 탐정이 살인자 같다. 더구나 펠 박사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어보면 한두 번 있던 일도 아닌 듯 하다.

 

200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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