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 게임 -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2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3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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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2탄, <보르 게임>. 전작 <마일즈의 전쟁>을 읽고 무진장 무진장 마음에 들어서, 2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책장에 사 모셨다. 

  하지만 선뜻 손이 안 갔던 것은, <마일즈의 전쟁>이 너무 재미있었던 탓이다. 시리즈란 미묘하다. 전작과 너무 같으면 '재탕'이라는 느낌을 받고, 전작과 너무 다르면 '이거 싫어'라는 거부감이 든다.

  오늘 마음 먹고 집어든 <보르 게임>은 정말 좋았다.

  <마일즈의 전쟁>은 상승의 미학이다. 마일즈는 사기를 치고, 사람을 후리고, 사람을 말려들게 해서 점점 일을 크게 벌인다. 일이 커지는 것은 마일즈가 벌이는 '설마... 이게 먹힐까?'하는 일들이 모두 성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지를 보자면 <마일즈의 전쟁>은 점점 위로 솟구치는 느낌이다.

  그렇게 보자면, <보르 게임>은 상승이 아닌 하강이다. <마일즈의 전쟁>에서 마일즈 보르코시건이 보인 신기에 가까운 사람 후리기는, <보르 게임>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마일즈가 택한 선택지는 점점 나쁜 답을 낸다. 마일즈는 뚝-뚝--뚝---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점점 사건이 커진다. 마일즈의 재기넘치는 행동, 위기를 구렁이같이 은근슬쩍 벗어나는 그 솜씨를 기대하고 있다가 '어? 어? 어?'라고 멍하니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은 큰 공통점이 있다. 점-점--점---점----점----- 커지다가 한순간 빵! 하고 터지는 그 느낌이 정말이지 같다. 위로 솟아오르는지 아래로 떨어지는지 방향만 틀릴 뿐이지.

  무엇보다, 한 번 잡으면 앞으로 어찌될까 궁금해서 눈이 책장에서 안 떨어진다는 점이 똑같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정리가 잘 안된다. 그렇다기보다는 내용을 미리 언급하지 않고 자세하게 글을 남길 자신이 없다. 이 책에서 미리니름을 하는 건 왠지 다른 독자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 끝.


2008.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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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카니발
안 소피 브라슴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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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을 크게 사건중심 / 인물중심으로 나눠서 살펴보면, <몬스터 카니발>은 분명히 인물중심적인 이야기이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건은 없고 인물의 심리묘사가 주로 펼쳐진다.

  나는 전자 쪽이 읽기 편하다. 역시 심리묘사가 중심일 경우 공감이 안 되면 굉장히 먹먹하기 때문이다. <몬스터 카니발>은 읽으면서 자꾸 엇도는 느낌이었다. 아마 내가 마리카와 조아섕에게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꽤 술술 읽혔으니 신기한 느낌이다.

  조아섕은 인간 괴물들의 사진을 수집한다. 그는 마리카라는 추한 여자를 만나 모델로 삼는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사건은 아주 간단하고 단조롭지만 그에 얽히는 감정은 평범하지가 않다. 태풍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자칫 쉽게 넘어가면 왜 감정이 이렇게 반전되는지 알기 힘들기도 하다.

  마리카는 자신이 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계속 인정하지 못한다.

  조아섕은 자기가 마리카에게 이끌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들이 그것을 '인정' 하게 되는 계기(결과가 아니라 계기라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인 둘 간의 섹스는, 둘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천천히 '파괴'시킨다.

  섹스 전후를 보면 둘이 자신과 자신의 몸과 상대방에게 갖는 감정이 전혀 틀려진다.

  읽으면서 속이 점점 답답해졌다. 추함이란 어느 것인가- 라는 질문을 받은 느낌이다. 마리카가 추한 것은 그녀의 입 때문인가, 아니면 그녀의 몸에 배여있는 어떤 '태도(혹은 정신)' 때문인가?

  추함에도 과연 아름다움이 있을 수가 있는가? 신화 속에는 꼭 괴물이 등장하고, 괴물들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어 많은 작품을 낳았다. 조아섕은 마리카에게 매혹당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움이 낳은 매혹과는 본질적으로 틀리다. 조아섕은 마리카로 인해 예술 작품을 낳지만 그 예술작품은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아름다움. 추함. 사랑받음. 거기에 얽혀 있는 것은 인간의 '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인 안 소피 브라슴은 인간의 몸, 인간의 체취, 기타등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몸을 보고 일어나는 심리묘사, 몸에 관련된 심리묘사, 기타등등을 읽고 있자면 가끔 거북스럽기도 하다. 보고 싶지 않은 부분(말하자면 추한 부분?)을 집요하게 까발려 내미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그 행위는, 조아섕이 마리카의 추함을 낱낱이 드러내고 마리카가 조아섕의 추함을 들추어 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의 반전은 꽤 괜찮았다. 마리카만이 괴물이 아니라 조아섕 또한 괴물이었음을 드러낸 것. 인간의 추함은 모두에게 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추함을 못 보는 대신 남의 추함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는 것. 어쩌면 저급한 자기위로일 수도 있는 그것을 거부감 들지 않게 눈 앞에 들이밀어 주었다.

  읽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읽고 나니 막 여러가지가 떠오르는 책이다. 주제도, 인물도, 상황도 반전도 묘사도 괜찮은 책이지만, 역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0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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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홈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98
크레이그 라이스 지음, 백길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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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금없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나홀로 집에(1990년)>를 기억하시는지? 말썽꾸러기 소년 케빈이 가족의 실수로 집에 덜렁 혼자 남겨졌다가 빈집털이범들을 물리치고 영웅이 된다는 내용의 영화다. 

  '저렇게 멍청한 도둑은 없다' '케빈처럼 행동하면 정당방위를 넘어서 범죄자 취급 받는다' '저거 반만 당해도 범죄자는 이미 죽었다' 등등 수많은 딴지거리가 있지만, <나홀로 집에>를 즐기려면 그냥 약자가 강자를 골탕먹이는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게 최선이다. 세세한 건 넘어가는 아량을 보여야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스위트홈 살인사건>도 그런 눈으로 봐야 한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두 가지 목표를 가진 카스테어즈 삼남매의 좌충우돌 모험기(?)에 가깝다. 


  1. 범죄를 해결하여 어머니를 유명하게 하자.

  2. 어머니를 결혼시키자.


  옆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추리소설작가인 어머니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삼남매는 범죄를 해결하려 한다. 동시에 수사를 위해 나타난 형사 빌 스미스와 어머니를 연결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냉정한 눈으로 보자면) 카스테어즈 삼남매는 가택 침입에 범죄증거말소에다가 위증죄까지 저지른다. 한 마디로 범죄를 수사한다는 명목 하에 수사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나홀로 집에>의 케빈이 한 짓이 정당방위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한 폭력임을 생각하면 상영 내내 인상을 써야 하는 것처럼, <스위트홈 살인사건>도 삼남매의 행동을 아이들의 깜찍한 노력에 초점을 두고 보지 않는 한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아이들이 해결하는' 컨셉이라 그런지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나 특이점은 없다. (어떤 점에서 보면 디저트 살인 시리즈와 비슷하다) 따라서 추리 과정에 신경쓰기보다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즐기는 쪽이 <스위트 홈 살인사건>을 백배 즐기는 방법이다.

  추리 쪽에 너무 신경쓰면 끝에서 맥이 빠질 것이다.

  얌전한 맏이 디아나, 영악한 에이프릴, 활발한 막내 아치. 삼남매의 감정교류나 위계질서를 보는 거 재밌다. 나야 애들이 데굴데굴 실수하고 장난치고 소 뒷걸음치다 쥐밟는 식으로 해결하는 걸 꽤 좋아해서, <스위트 홈 살인사건>을 읽으면서 꽤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별 두 개 반에서 별 세 개 사이를 주고 싶다.

 
덧)

  저자가 1950년대에 타계했으니, <스위트 홈 살인사건>은 아마 1940년대~1950년대 사이에 쓰였을 것이다. 참 옛날 얘기다 싶은 사건들도 보인다. 그것도 뭐 하나의 재미겠다.

 

2008.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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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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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고쿠 나쓰히코의 단편집 <백기도연대 雨>에 이은 <백기도연대 風>. 이 책에는 <백기도연대 雨>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1) 마네키네코에 얽힌 사건

  2) 모토시마의 누명 사건

  3) 마사시의 누명 사건

 
  <백기도연대 雨>가 각기 떨어져있는 사건들이었다면, <백기도연대 風>은 묘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그리고 <백기도연대 雨>에서는 어떤 인물인지 모호하던 서술자 '나', 다시 말해서 모토시마의 개성이랄지 독특함이랄지가 잘 구축되어 있다.

  "이 멍청아, 너희들은 정말 구제할 길이 없는 바보 멍청이로구나! 나가서 죽어버려라!"라고 폭언을 마구 내뱉는 방약무인한 탐정, 에노키즈 레이지로의 활약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조사하지도 않고 단지 사건을 격파하는 그의 스타일도 여전하다.

  <백기도연대 風>은 분명히 재미있는 일화들이었으나, 읽으면서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에노키즈가 조금 덜 날뛴 것 같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백기도연대> 시리즈는 탐정소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모험활극 쪽에 가깝다. 소설 속 교고쿠도가 하는 말처럼, 추리는 트릭과 범인을 밝혀내면 끝이지만 <백기도연대>는 과정을 밝혀재는 과정보다는 대체 어떻게 악당을 물리치느냐가 관건이다.  다시 말해서 악당을 재기불능하게 밟아주는 것이 <백기도연대>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기 불능하게 밟아주었다. 악을 섬멸하였다. 이 과정에서 에노키즈는 상대의 사정따위 봐 주지 않는다. 이 쪽이 도리어 악당으로 여겨질 정도로 밟아준다. 그런데 <백기도연대 風>은 에노키즈가 날뛰는 강도가 확실히 약하다. 모든 것을 격파하고 분쇄해 버리는 에노키즈는 자신이 맡은 사건 뿐만이 아니라 더 뿌리 깊숙이 있는 사건까지 끌어내서 없애 버린다. <백기도연대 雨>의 어처구니없는 사건해결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딱 제시된 사건만 해결해 주는 <백기도연대 風>은 시시한 감이 있었다.

  또, <백기도연대 雨>와는 다르게 각각의 사건이 개별적이지가 않다. 하타 제철을 매개로 서로 엮여 있는 사건들이다. 게다가 뒤의 둘은 에노키즈 레이지로를 타겟으로 삼아 모의한 사건이다.

  따라서 에노키즈의 하인들이 주인공이 된다. 하인들이 얽힌 사건은 아무래도 제 3자가 되어 악당을 해치운다는 느낌보다는, 한 방 얻어맞은 동료를 지키고 설욕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에노키즈는 복수니 설욕이니는 하지 않고 도리어 재미있어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제 3자가 되어 사건에 들어간 게 아닌 이상, '사건을 격파한다'는 것에 통쾌함은 줄어든다.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느낌이 미묘하게 들기 때문일까.) 마지막 사건은 에노키즈 레이지로의 인간다움을 언뜻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앗하하하 바보들아."라고 비웃으면서 "나는 탐정이야, 탐정은 신이야."라고 말하는 에노키즈가 더 좋다. 방약무인하고 오만방자한 탐정, 대책이 없는 탐정, 악을 격파하고 자신의 정의를 세우는, 세간의 시선이야 아랑곳 않는 에노키즈가 조금 더 좋다.

 

  덧붙임.
  그나저나 이 시리즈, 에노키즈 레이지로의 비중이 묘하게 적어진다. 주젠지 아키히코, 다시 말해서 교고쿠도가 더 많이 나온다.


2008.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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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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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부메의 여름>으로 유명한 교고쿠 나쓰히코의 이름을 들은 것은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요괴의 이름을 딴 제목부터 시작해서 왠지 공포와 가까울 것 같은 추리소설은 꺼려져서이다. 친구가 무척 좋아해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지만, <우부메의 여름> 첫 장을 펼쳐서 우부메 삽화를 본 순간 나는 당당히 "안 읽어!"를 외치며 외면해 버렸다.

  (내 편견일지도 모르는데) 단편은 장편보다 읽기가 덜 괴롭다. 잔인한 장면이나 복잡한 심리가 질질 끌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단편이니까 긴장도 짧게 끝난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에 관심은 있는데, 장편은 아무래도 엄두가 안나고, 그냥저냥 있던 중에 <백기도연대 雨>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라 할 만하다. 

  <백기도연대 雨>는 교고쿠 나쓰히코의 단편집이다. 총 세 편의 소설을 수록했다. 아마도 <우부메의 여름>을 비롯한 장편소설과 같은 등장인물을 공유하는 모양이다(읽어본적이 없으므로 잘 모르겠지만 일련의 책 설명과 서평들을 조합하여 본 결과 그런 것 같다). 

  배경은 1950년대, 에노키즈 레이지로라는 탐정이 주인공이다. 화자인 '나'는 처음에는 의뢰인으로, 나머지는 왜인지도 모르게 휘말린다.

  에노키즈가 주인공이기는 하고, 사건을 해결- 아니 격파하는 것도 에노키즈인데 등장은 별로 없다. 증요한 부분에 툭 나타나서 "와하하핫! 너희는 정말 바보 멍청이로구나!"라고 외치거나 "너희는 내 하인이다!"라고 외치거나 "나는 탐정이야, 탐정은 신이야! 나는 신이다!"라고 외쳐 주시기 때문에, 얼굴을 굳이 들이밀지 않아도 작품 전반에 강렬한 존재감을 미치고 있다.

  나는 그가 첫 등장을 해서,

  "뭐가 터무니없다는 거냐. 공적인 기준 따위는 아무런 값어치도 없어. 모두의 의견을 골평하게 듣는다면 나는 잠이나 자는 수밖에 없고. 그저 잠만 잔다면 불만이 폭발해. 절대적인 판단기준은 개인에게만 있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내 기준이야말로 이 세계의 기준에 걸맞은 거야. 탐정은 신이고, 신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절대로 상대화될 수 없는 거야!" (p.84) 라는 대사를 읊었을 때부터 꽤나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한, "나는 신이다!"라는 개념 하에 에노키즈는 완전 제멋대로 사건을 격파해 주신다. 그 격파 방법이 참으로 속이 통쾌하여 이 탐정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백기도연대 雨>에서 에노키즈가 격파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사나에의 강간 사건  2. 항아리 저택 사건  3. 야쿠세키사료 사건
 

  항아리 저택 사건과 야쿠세키사료 사건도 나름의 맛은 있지만, 에노키즈의 개성과 사건 해결의 통쾌함이 가장 큰 것은 단연 첫 번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단 강간당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 줘야지!"라고 말하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기치를 내걸은 에노키즈는 사방이 막혀있는 사건의 답답함과 어울려서 잊지 못할 강렬함과 통쾌함을 준다. 

  "이 바보들아! 재미있으면 그만이야! 와하핫!"이라고 거들먹거리며 말하지만, 역시 정의가 구현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이 책은 탐정소설이긴 하지만,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보다는 사건을 어떻게 깨부수는가에 중점을 둔다. 과정은 아무래도 좋은 결과주의적 소설이 된 것은 역시 장미십자탐정 에노키즈의 특기와 연관이 있다.

  에노키즈의 개성이 가장 두드러지긴 하지만, <백기도연대 雨>는 '탐정 일당'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조연이 나와 함께 어우러진다. 에노키즈는 수사를 하지 않는 탐정이니 그럴 수밖에. 일단 교고쿠도를 운영하는 주젠지가 있고, 추리소설을 쓰는 소설가 선생 세키구치가 있고, 그 외 기타등등 에노키즈의 하인들이 포진해 있다. 얼굴은 한 번도 들이밀지 않으나 에노키즈 레이지로의 아버지인 에노키즈 자작도 상당한 개성을 자랑하는 분이다. 

  어쨌건 답답한 사건과, 수많은 등장인물과, 천상천하 유아독존 탐정(이라고는 하지만 수사는 하지 않는)이 어우러지는 <백기도연대 雨>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다음 <백기도 연대 風>에서는 장미십자탐정님과 그의 하인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 주실지 기대가 된다.

 

덧)

  정말 여기는 일본이 배경이구나라는 생각이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콱콱 와서 박힐 정도로 <백기도연대 雨>는 일본색이 아주 진하게 묻어나온다. 착각의 여지가 없는 일본이다. 일본의 요괴, 일본의 종교, 일본의 생활상, 일본의 예술, 일본의 정치, 일본의 역사...... 어쨌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흠칫!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나의 경우는 읽으면서 조금 감정이입이 안 될 때가 있었다.

200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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