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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교고쿠 나쓰히코의 단편집 <백기도연대 雨>에 이은 <백기도연대 風>. 이 책에는 <백기도연대 雨>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1) 마네키네코에 얽힌 사건
2) 모토시마의 누명 사건
3) 마사시의 누명 사건
<백기도연대 雨>가 각기 떨어져있는 사건들이었다면, <백기도연대 風>은 묘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그리고 <백기도연대 雨>에서는 어떤 인물인지 모호하던 서술자 '나', 다시 말해서 모토시마의 개성이랄지 독특함이랄지가 잘 구축되어 있다.
"이 멍청아, 너희들은 정말 구제할 길이 없는 바보 멍청이로구나! 나가서 죽어버려라!"라고 폭언을 마구 내뱉는 방약무인한 탐정, 에노키즈 레이지로의 활약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조사하지도 않고 단지 사건을 격파하는 그의 스타일도 여전하다.
<백기도연대 風>은 분명히 재미있는 일화들이었으나, 읽으면서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에노키즈가 조금 덜 날뛴 것 같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백기도연대> 시리즈는 탐정소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모험활극 쪽에 가깝다. 소설 속 교고쿠도가 하는 말처럼, 추리는 트릭과 범인을 밝혀내면 끝이지만 <백기도연대>는 과정을 밝혀재는 과정보다는 대체 어떻게 악당을 물리치느냐가 관건이다. 다시 말해서 악당을 재기불능하게 밟아주는 것이 <백기도연대>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기 불능하게 밟아주었다. 악을 섬멸하였다. 이 과정에서 에노키즈는 상대의 사정따위 봐 주지 않는다. 이 쪽이 도리어 악당으로 여겨질 정도로 밟아준다. 그런데 <백기도연대 風>은 에노키즈가 날뛰는 강도가 확실히 약하다. 모든 것을 격파하고 분쇄해 버리는 에노키즈는 자신이 맡은 사건 뿐만이 아니라 더 뿌리 깊숙이 있는 사건까지 끌어내서 없애 버린다. <백기도연대 雨>의 어처구니없는 사건해결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딱 제시된 사건만 해결해 주는 <백기도연대 風>은 시시한 감이 있었다.
또, <백기도연대 雨>와는 다르게 각각의 사건이 개별적이지가 않다. 하타 제철을 매개로 서로 엮여 있는 사건들이다. 게다가 뒤의 둘은 에노키즈 레이지로를 타겟으로 삼아 모의한 사건이다.
따라서 에노키즈의 하인들이 주인공이 된다. 하인들이 얽힌 사건은 아무래도 제 3자가 되어 악당을 해치운다는 느낌보다는, 한 방 얻어맞은 동료를 지키고 설욕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에노키즈는 복수니 설욕이니는 하지 않고 도리어 재미있어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제 3자가 되어 사건에 들어간 게 아닌 이상, '사건을 격파한다'는 것에 통쾌함은 줄어든다.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느낌이 미묘하게 들기 때문일까.) 마지막 사건은 에노키즈 레이지로의 인간다움을 언뜻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앗하하하 바보들아."라고 비웃으면서 "나는 탐정이야, 탐정은 신이야."라고 말하는 에노키즈가 더 좋다. 방약무인하고 오만방자한 탐정, 대책이 없는 탐정, 악을 격파하고 자신의 정의를 세우는, 세간의 시선이야 아랑곳 않는 에노키즈가 조금 더 좋다.
덧붙임.
그나저나 이 시리즈, 에노키즈 레이지로의 비중이 묘하게 적어진다. 주젠지 아키히코, 다시 말해서 교고쿠도가 더 많이 나온다.
2008.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