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리앵에 지다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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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소설.
 
  매그레 반장은 벨기에에 출장을 갔다가 거액을 소포로 부치는 초라한 행색의 남자를 본다. 매그레 반장은 호기심이 들어 남자의 뒤를 밟고, 그가 가지고 다니는 낡은 가방을 바꿔치기한다. 남자는 자신이 가방을 잃어버렸음을 알고 자살한다. 매그레 반장은 루이 죄네라는 그의 이름이 가짜이고, 아주 오랫동안 가명으로 살았으며, 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자살하게 만든 가방 안에서는 한 벌의 피묻고 찢어진 낡은 양복 한 벌만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알고 미스터리를 쫓기 시작한다. 루이 죄네의 시신을 보러 온 의문의 사업가 조제프 반 담, 그리고 그의 친구인 부유한 은행원 모리스 벨루아르와 친구들..... 사건의 단서는 자꾸만 사라지고, 매그레 반장은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위협을 받는데.....
 
  3만 벨기에 프랑은 어디서 났을까? -> 루이 죄네(가명)은 왜 양복을 잃어버렸다고 죽었을까? -> 조제프 반 담은 어떻게 루이 죄네를 알고 있는 것일까? -> 등등으로 자꾸만 의문이 깊어진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굉장히 이상해 보이던 사건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확 풀린다. 단서는 '생폴리앵'. 이번 사건이 벨기에, 독일, 프랑스를 넘나들며 일어나서 제목의 생폴리앵도 지명인가 했는데 교회 이름이었다.
 
  나는 범죄의 공소시효라는 게 없어지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왠지 범인이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다. 십 년이든 백 년이든, 죄를 지었으면 죄를 갚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을 보고서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한 달 남긴 공소시효 전에 기소되는 건 여러모로 잔인하다 싶긴 한데 루이 죄네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과연 범죄를 기억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을까 생각도 든다. 그래도 또 생각해보면, 그들도 기억하고 있었던 듯 하다. 사진인화가가 목 매달린 사람의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린 걸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생각이 복잡해지는 소설이었다. 매그레의 인간적인 면도 많이 부각이 된 듯 하고^^ 지금까지 읽은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는 <누런 개>가 제일 인상 깊었었는데 이번에 <생폴리앵에 지다>로 바뀌었다.
 
 
** 이번 이야기 읽고 든 엉뚱한 생각
1. 매그레 차비 많이 나왔겠다
2. 매그레 부인 외롭겠다... 남편이 만날 나가 ㅠㅠ 
  
   

201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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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피라미드 에단 게이지 모험 시리즈 1
윌리엄 디트리히 지음, 이창식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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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에 구입했다가 100p 읽고 내버려뒀었다. 다른 책에 치여 잊고 있다가 이번에 기억이 나서 꺼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재미가 있지도 않은 묘한 책.
 
  모험물이니 속도와 긴장감이 중요할 것 같은데 250p가 넘어서야 뭔가 좀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전에 200페이지가 매우 재미있어야 할 텐데 소소한 재미는 있어도 큰 긴장감도 없고 큰 재미도 등장인물의 매력도 없어서 좀 힘들다. (그래서 2008년에 100p 읽고 내버려둔 듯 하다). 애초에 메달의 비밀에 별 흥미가 안 생긴다...... 사실 에단도 처음에 메달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건 오기이니 내가 흥미가 안 생긴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에단이 제 입으로 "정중하게 메달 달라고 하면 줄 수도 있는데. 그런 요청을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라고 투덜거릴 정도니까.  

  책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300p~500p 사이였다. 장면을 꼽자면 에단이 모두에게 쫓기면서 아슈라프와 함께 시라노 백작을 추격하는 부분. 조마조마 두근두근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이 부분 정도. 

  게다가 이 책, 600페이지 가량 나를 끌고와 놓고 "헛짓했다 ㅋㅋ"라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사건이 끝나려면 <로제타의 키>까지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어휴 얼른 2부를 읽어야지 두근두근 하기에는 600페이지가 너무 길었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 역사적 설명은 과감히 쳐내고, "이 사람이 나를 앞으로 피라미드로 인도할 사람 블라블라"라는 식의 미리니름을 없앴다면 500p까지 양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반전에 반전과 신비함을 추구하느라 꼬인 부분을 명쾌하게 만들면 400p도 가능했을지도. 400p 정도였다면 훨씬 사건이 농밀해지고 속도감도 있을 테니까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0대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는 에단 게이지는 명랑하긴 한데 능력 없으면서 허세와 자존심 쩔고 상당히 철이 없어서 15~18세의 소년이라는 느낌이 들어 가끔 한숨이 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뒤통수를 계속 맞는 걸 보면 묘하게 순진한 부분도 있고. 미국인 전기기사라고 하지만 에단이 전기를 다루는 모습은 전혀 네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말 잘하고 운빨 좋은 걸 보면 가끔 귀엽기도 하고... 

  여주인공인 아스티자는 처음에는 봐도 별 생각이 안 드는 무매력을 자랑했는데, 이시스 신전 부분에서부터 확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아스티자의 정체가 2번 반전까지는 그렇다고 치는데, 3번 4번 반전되니까 그냥 가증스러워보인다. 에단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이 다 들켜서야 변명하면서 이해해달라고 하다니, 나로서는 이해불가다. 게다가 아스티자가 활약한 것은 1. 메달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이집트 신에 대해서 말해준 것. 2. 에단의 침실에 온 뱀 퇴치. 이 정도 뿐이다. 도통 이 여자가 메달의 비밀을 푸는데 활약한 것도 없으면서 사람 뒤통수만 치고 그러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에단의 태도를 비난하고(그렇다고 에단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메달의 비밀을 풀 만한 대세를 가늠하며 여기 협력 저기 협력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아스티자는 자기 능력이 안 되는데 메달의 비밀을 풀고 중요한 걸 자기 손에 넣고 싶으니 이 남자 저 남자 이용하는 걸로 보인다. 여사제니까 최소한 이시스 신전 위치 정도는 얘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시라노 백작이 알아낸 거라니... ㄱ-;; 차라리 아스티자가 이시스 신전에서부터 메달을 손에 넣으려는 제 3 세력으로 부각해 시라노 백작과 대립, 일시적으로 에단과 협력하거나 혹은 에단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다면 매력적이었을 거다. 하지만 전후사정 거짓말 다 밝혀진 후에도 에단의 조력자이며 조언자인 신비하고 청초한 여인의 위치를 고수하려 하니 그냥 비호감일 뿐. 

  제일 좋았던 건 아슈라프. 이집트 출신 맘루크 전사인 아슈라프의 캐릭터는 단순명쾌해서 마음에 들었다. 에단보다 철이 들었는데 묘하게 강직한 소년같은 느낌이다. 제일 캐릭터에 맞는 역할과 성격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에단과 있으면 사고뭉치 친구 두 명이 모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하지만 아슈라프는 등장인물 소개에도 나오지 않고...
  
  600페이지가 나를 너무 지치게 하고 아스티자가 싫어서 그렇지, 기본 줄거리는 꽤 흥미롭다. 

  파리의 도박판에서 우연히 조잡한 메달을 딴 에단 게이지는 괴한에게 습격당하고 살인 누명까지 쓴다. 에단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리메이슨에 찾아가고, 그들은 이집트 원정을 떠나는 나폴레옹 학자팀에 합류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한다. 선상에서도 에단의 메달은 위협받는다.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 에단은 거기서 아스티자를 만나 메달과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폴레옹은 단숨에 카이로까지 정복하고, 에단은 맘루크 전사 아슈라프를 포로로 잡고 그의 형 에녹을 소개받는다.  에단은 선상에서 학자들이 보여준 원판이 어떤 의미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알렉산드리아로 떠나고, 때마침 넬슨의 함대가 공격을 해 와 죽을 뻔하다 살아난다. 돌아온 카이로에는 시라노 백작이 와 있고, 나폴레옹은 에단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대충 이런 줄거리.
 
  2부인 <로제타의 키>를 읽어야 할까 고민중이다. 그것도 만만찮은 페이지던데... o-<-< 
  
   


201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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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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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삶의 주인공일까?
 
  <구경꾼들>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 책에서는 8명(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 나)이 함께 사는 이층집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씩 가족이 사라지고, 그 때마다 가족들은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나'의 가족 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이 겪는 소소한 일들 혹은 거창한 일들에서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이야기 끝에 있는 사람들 또한 삶의 주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이한,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그런 일들을 겪는다. 그러니 <구경꾼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삶의 주인공일까, 하고 의문을 가진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 같다.
 
  p.236. 독자들을 만나면서 부모님은 여행을 하는 동안 보았던 기적같은 일들이 실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에는 너무 많은 사고와 갑작스런 죽음이 있고 너무 많은 기적이 있다. 같은 사고를 당해도 살아나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다. <구경꾼들>에서 큰삼촌은 39중 추돌사고에서 다리 하나 부러지고 살아났지만, 병원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혀 죽었다. 그러나 바다 건넌편에서의 어떤 남자는 투신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혔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이처럼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만약, 어쩌면, 그랬다면.
 
  살다가 갑작스런 일을 하나도 안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무난하게 살아온 나도 네 번 정도의 경험이 있다. 사고는 항상 예기치 못했을 때 찾아온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내일 인사를 건네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친구와 만나느라 집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있을 때, 하늘을 보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섬뜩한 예감이 든다더니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고를 떠올리면서, 내가 이랬다면, 내가 저랬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내가 그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데 죄책감이 들곤 한다. 그 사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일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내 옆에서 한 사람을 빼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냥 지켜보아야 한다. 그 중요한 순간에 내 의지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나는 내 삶의 주인일 수 있을까. 그냥 구경꾼은 아닐까.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의 주사위 속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88.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큰삼촌이 얼마나 늦게 걸음을 걷기 시작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늦게까지 젖을 먹엇는지에 대해.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기 전에 외할머니가 말했다.
 
  p.237. 부모님은 아들의 카메라에 당신들의 모습이 어떻게 담길지 궁금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볼 것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신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구경할 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구경꾼이라는 말에, 나는 맨 처음 제노비스 신드롬을 떠올렸다. 범인이 제노비스를 찌르고, 제노비스가 비명을 지르고, 다시 범인이 돌아와 제노비스를 살해할 때가지 신고하지 않았던 인근 주민들. <구경꾼들>의 구도도 일견 같다. 죽음이 소중한 사람을 끌고가도 그저 볼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구경꾼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해서 못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 통곡하지 않는다. 그건 칼로 길게 찢은 얕고 긴 상처라기보다는 송곳으로 깊게 찌른 상처에 가깝다. 그 상처는 아주 오래가서 시들시들하게 사람을 말라 죽이거나, 아니면 천천히 모습을 바꾸게 만든다. 사람은 갔지만 기억은 남아있다. 삶의 구경꾼인 우리가 죽음에 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일지도 모르겠다.
 
  p.269. 나는 햇볕에 그을린 작은삼촌의 얼굴을 보았다. "작은삼촌!" 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작은 삼촌이 왜?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작은삼촌, 작은삼촌, 하고 두 번을 더 불러보았다. 영원히 작은삼촌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또 고모가 막내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어떻게 견뎠을까? 내겐 이제 삼촌이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삼촌, 오빠, 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일이,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증거이고,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위안한다고 해도, 갈비뼈가 붙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구경꾼으로 남아야 하는 상처도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1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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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가 간다
조혁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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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자체는 잘 쓰여졌다. 하지만 도통 내가 좋아하지 않는 류의 이야기이고 이런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나는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점수가 낮다.
 
  나는 블랙코메디를 꽤 좋아한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웃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뒤에 있는 광고, '트로트풍 코믹 액션 러브로망'이라는 단어에 꽂혀서였다. 나는 애초에 이 책에 웃음을 기대하며 출정했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같은 사물 같은 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니 누군가에게는 코메디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도통 이 책을 코메디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감정소모가 유독 큰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읽다 보면 뭔가에 잔뜩 시달린 것처럼 축 늘어진다. <삼류가 간다>를 읽고 나는 그런 경험을 했다. 굉장한 비극, 굉장한 슬픔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인상은 무기력함이었다. 우울한 일상, 벗어날 수 없는 우울, 그런 것. 마치 장마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날이 갤 수는 있겠지만 내일 당장 날이 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마 말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생의 희극과 비극을 섞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비극에 치중한 것 같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분명 웃을 만한 포인트는 곳곳에 있다. 정의를 위해서라고 잔뜩 거들먹거리지만 사실 신고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중요한 남자, 개를 죽이러 갔다가 개에게 반격당해 도망치는 사람들, 9평짜리 빌라 지하방에 가득찬 세 대의 냉장고, 화염병에 불붙일 라이터가 없어 허둥거리고 자신이 공격한 영업점 여직원이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학생...... 하지만 전체적으로 글에 깔린 분위기가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같은 유머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불러오는 웃음의 정도가 다른 법. 작가는 유머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다.
 
  이 책의 태반에는 연애 얘기가 깔려있다. '달려라 자전거', '고물 냉장고' 두 편을 빼고 전부 나온다. 이 책에 나오는 연애가 연애일까. 연애는 연애인데 활활 타오르는 연애가 아니라 모진 바람에 휩쓸려 거의 다 사그라진 깜부기불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연애조차 열정 없이 흘러간다. 잔뜩 얻어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복서처럼.
 
  <삼류가 간다>를 읽고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
  장마는 끝나고 열정은 다시 타오를 수 있을 것인가? 
  
   

 201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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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2 펭귄클래식 102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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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쯤, 갑자기 <작은 아씨들>의 뒷 이야기가 읽고 싶어져서 찾아다녔다. 그런데 절판이 된 상태였다. 그냥저냥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펭귄클래식에서 <작은 아씨들 2>를 2011년 2월 출간한 모양이다.
 
  작은 아씨들 2부는 개인적으로 <조와 에이미>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조&에이미의 위주로 전개된다. 1부에서의 비중은 조>메그>베스>에이미라면 2부는 조>>에이미>>>>>메그>베스다.
 
  알콩달콩 가족드라마의 성격이 짙었던 1부와 달리 2부는 연애 얘기에 가깝다. 1부에서 거의 비중이 없어 철없는 막내공주의 이미지만 있었던 에이미는 2부에서는 거의 인격이 바뀐 것 같다. 다정하고 신중하고 남에게 쓴소리도 할 줄 알고 인내심도 있고 야망도 있고...... 허영끼는 아직 있지만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안다. 게다가 그림 잘 그리고 얼굴 예쁘고 사교적. 한 마디로 거의 엄친딸이다. 그에 비해 조는 확실히 1부의 연장선에 있다. 활발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고집세고 자기애가 강하다. 조와 에이미의 대립이 선명해서 재미있었다.
 
  "말싸움하고 싶지 않아. 다만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란 거야. 그 이치를 어기는 사람은 비웃음만 당할 뿐이야. 난 혁명가를 싫어하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아."
  "난 혁명가를 좋아해. 될 수 있다면 되고도 싶고. 비웃음에 굴하지 않는 혁명가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결코 잘 돌아가지 못할 걸. 너는 오래된 세상에 묻혀 있고 난 새 세상을 갈망하니까 생각이 다를 수밖에. 넌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 난 가장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살 테니. 난 돌멩이와 야유소리가 난무하는 세상이 더 좋아."
(작은 아씨들 2, p.102에서 조와 에이미의 대화)
 
  결국 조의 말처럼 됐다.
 
  2부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면 조가 로리를 찬 사건&로리와 에이미의 결혼이다. 1부에서 조와 로리의 시끌벅적 장난질을 본 사람이면 "얘네 둘이 곧 사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는 로리를 찼다. 로리는 조를 사랑하지만 조가 로리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고, 성격이 너무 비슷하여 로리가 불행해질 거라고 조가 생각한 게 비극의 끝이다. 하기야 부자에다 귀부인인 조는 상상이 안 가기는 한다.... 어쨌든 로리는 상심하고 유럽에 가는데, 숙모 가족과 함께 유럽에 가 있던 에이미와 니스에서 만나고, 에이미에게서 "난 로리를 경멸해."라는 엄청난 쓴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 로리의 취향은 자신에게 잔소리&쓴소리 하는 여자인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조의 사랑은 참 조 답다. 조는 잠시 가정교사 일을 하기 위해 머물던 뉴욕에서 가난한 독일어 교수 프레드리히 바에르를 만나 친구가 된다. 로리를 차고, 베스가 죽고, 집 근처에 머물게 된 바에르 교수와 교류하면서 조는 사랑이 싹튼다(바에르 교수의 경우 뉴욕에서부터 이미 조를 좋아하고 있었다). 조는 마치 숙모할머니에게서 플럼필드 저택을 물려받고, 바에르 교수와 결혼하여 함께 학교를 세운다. 조는 네 자매 중에서 가장 가족에 대한 애착이 심하니까 아버지를 닮은 바에르 씨와 결혼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메그는 존 브룩 씨와의 결혼생활의 해프닝(돈 문제/육아 문제)이 주로 조명된다. 보고 있으면 존 브룩 씨가 메그를 참 귀여워하는구나 싶다.
  베스는 거의 공기같다. 죽음조차도 조용하다. 나는 1부의 수줍음 많은 소녀 베스가 좋아서, 베스가 그렇게 조용히 간 게 슬펐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브룩 부인, 바에르 부인, 로렌스 부인이 마치 부인과 함께 있는 모습에서 특히.
 
  1부와 2부를 합쳐서 조가 자매들에게 가지는 인식은 대충 이런 것 같다.
  메그 - 언니는 멋져! 좋아! 내 자랑!
  베스 - 사랑스러운 동생. 지켜줘야 함.
  에이미 - 라이벌!  

  "네가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 내 소원은 결코 안 이뤄지지만 네 소원은 항상 이뤄지니까."
(p.122에서 조가 에이미에게 한 말)  

  사실 에이미는 메그와 닮은 구석이 많은데(메그보다 조금 더 대차긴 하지만), 조는 메그를 따르는 반면 에이미랑은 싸운다. 언니와 동생의 차이인가?
 
 
  1부만큼 2부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작가의 도덕적 설교는 거북하다. 게다가 남자가 여자보다 당연히 우위라는 게 보여서 불편했다. 여자의 재능과 직업적 성공보다 가정을 이끌어가는 미덕이 더 중요하다는 논조도 그렇고. 그런데 올콧 여사는 19세기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나. 
  
   


201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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