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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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세 개 반.
  중간 부분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조금 지루했다. 장편보다는 중편이나 단편으로 갔으면 더 임팩트가 있었을 듯 하다. 이 책 또한 범인찾기가 아닌 트릭밝히기다.
 
  줄거리.
  IT회사 사장인 마시바 요시다카가 자택에서 사망한다. 사망은 아비산 중독. 커피/ 커피찌꺼기/ 주전자에서 아비산이 검출된다. 최초 발견자는 요시다카의 애인인 와카야마 히로미이고, 유력한 용의자는 요시다키의 부인 아야네이다. 그러나 아야네는 그 때 홋카이도의 친정에 있었다. 부인의 알리바이는 완벽하고 독의 투입경로는 모호하다.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는 여형사 우쓰미 가오루의 의뢰를 받고 부인이 범행을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데 그게 허수해(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방법)였다!
 
  트릭은 진짜로 있음직하지 않다. 그 트릭을 쓰려면 다른 생활을 포기하고 긴 시간동안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대체 아야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언제든 요시다카를 죽일 수 있다는 만족감을 얻은 건가? 요시다카의 진심을 알았을 때 한 대 갈기고 결별하는 게 나았을 거 같은데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면서 할 만큼 그 복수가 가치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확실히 많은 수다. 그래도 확실히 영리하고 끈기있는 여자다. 아야네의 행동은 처음에는 '잡히면 할 수 없지' 식의 자포자기 같았는데 보면 볼수록 '날 잡을 수는 없을 거야'의 자신감으로 보인다. 히로미에게 취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너는 내 발끝에 못 미쳐.'라고 은근히 자랑하는 듯한..... 어쨌든 대단히 자존심이 높아 보인다. 그래서 자신에게 상처준 요시다카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어보면 '완벽한 피해자'가 없다. 아야네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였다. 그 부분을 보면서 왠지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의 피해자가 떠올랐다. 애인과 옛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둘 중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기까지 해서 가엾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그들을 협박했다는 뜻밖의 면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덕분에 이번엔 별로 놀라지 않은 듯.
 
  요시다카로 말하자면 아주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면 그의 연애는 항상 '양다리 시즌'이 있다. 사귀는 사람이 바뀌기 전에, 꼭 '시험 기간'처럼 전 여자와 새 여자를 사귀는 시간이 겹치는 기간이 있는 것이다. 여자보는 눈이 까다로운 만큼, '아이를 낳아줄 적당한 여자'를 찾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일까?  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헤어진 뒤 다른 여자를 찾는 성의라도 보여야지. 자신은 리스크를 하나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여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상대에 대한 존중은 하나도 없는 새끼다. 과연 아이가 생겼다고 그가 현재 애인에게 정착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이 든다.
 
  이 글에서 처음으로 여형사 우쓰미 가오루가 나온다. <용의자 X의 헌신>이후 구사나기와 유가와 사이가 소원해졌기 때문에, 유가와를 수사에 끌어들일 방편으로 만든 캐릭터인 듯 한데 나는 얘가 참 싫다. 직감 수사 좋다. 좋은데, 너무 직감에 집착하니까 무섭다. 자기가 틀릴 거라는 생각을 한 톨도 하지 않고 있는 거 같다. 만약 그 직감이 틀렸으면?? 이번 사건은 맞았으니 다행이고, 소설이니까 아마 그녀가 가진 직감이 맞아 떨어지겠지만, 현실에서 이런 형사가 내 사건을 맡는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 '직감이 발동하면' 우쓰미는 모든 단서를 자신이 지목한 범인에게 꿰어맞추고 싶어하는 느낌이 든다. 매우 강경하게. 그리고 여자는 운운하면서 '모두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거북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역시 읽으면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캐릭터보다는 사건이 두드러진다. 재미있긴 하지만 사랑스럽진 않다. 인간에 대한 경멸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고 할까;;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읽는다. 이 책으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다 읽었다~. 
  
   


2011.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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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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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세 번째. 가장 먼저 출간됐고, 출판사가 다른 시리즈와 다르다. 내가 이 책을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기야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을 때는 일본 추리소설도 하나도 안 읽었었지. 어쨌든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는 알 것 같다. 대체 이시가미의 수법이 뭔지, 경찰(유가와 포함)이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줄거리.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는 이웃에 사는 야스코 모녀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묻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완벽한 논리를 세워놓고 야스코 모녀에게 지침을 내린다. 공터에서 얼굴과 지문이 뭉개진 시체(나중에 도시가미로 추정된)를 발견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야스코를 지목하지만 그녀의 알리바이는 허점이 있는 듯 하면서도 없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구사나기는 조사차 방문한 방에서 이시가미의 출신 대학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고 유가와에게 말하고, 유가와는 옛 친구 이시가미를 찾아왔다가 수상한 징후를 포착하는데.......
 
  <용의자 X의 헌신>은 이시가미와 야스코 위주로 얘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범죄극 같은 느낌을 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 맞추기 놀이와 탐정보다 범죄의 과정에 주목하는 것 같다. 도구, 수법 뿐만이 아니라 동기나 범인의 인간성, 성격 같은 것 말이다.
이시가미의 논리는 완벽했다. 증거가 없으니 아무리 유가와가 옳은 해답을 찾았어도 진실은 묻혔겠지. 야스코가 마지막까지 이시가미의 지시에 따랐다면 결코 '야스코 모녀의 살인'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수많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에 이시가미의 논리는 무너졌다.
 
  선입견을 찌르는 허점이 대단하다. 트릭이 그거였을 줄은... 시간상 불가능한 알리바이가 모녀에게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미사토가 도시가미 손목을 잡아누른 자국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과감한 트릭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기야 보통 사람은 쓸 수 없는 수법이기는 하다.
 
  범죄가 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면 다른 한 축은 연애일 것이다.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좋아한다. 그래서 야스코 모녀를 돕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야스코는 이시가미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하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렇게 말랑말랑하지 않다. 야스코는 이시가미를 부담스러워하고, 그가 이 일을 빌미로 자신을 붙잡을까 걱정한다. 그녀는 이기적이다. 시간이 갈 수록 그녀는 '(도시가미가 없는) 본래의 삶'을 돌려받기를 원하는 것 같다. 범죄의 사실도 없고, 범죄의 은폐를 도운 이시가미도 없는 삶 말이다. 책의 뒷부분에서 그녀가 모든 것을 안 후에 구도의 청혼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이시가미도 그걸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조금 소름이 끼친다.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편의적으로 생각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자기합리화는 편리하지만 무섭다.
 
  그에 비해 딸 미사토는 이시가미에 대한 고마움과 부채의식, 그리고 죄책감을 보다 '정석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우리에게 해 준 만큼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랄까. 그래서 야스코가 구도를 만날 때 불편해하고, '그 사람을 배신해서는 안 될 거 같아.'와 같은 말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모녀의 태도는 다르지만 기본 발상은 비슷하다. 기브 앤 테이크. 받은 만큼 뭔가 줘야 한다는, 저 사람이 준 만큼 뭔가 받으려 할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이시가미는 야스코 모녀의 생각보다 한 단계 위에 있었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말 그대로 헌신했던 것이다. 유가와가 이시가미를 가리켜 순수한 사람이라고 한 게 떠오른다. 이시가미가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일을 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여기가 아마도 감동받을 포인트겠지만 나는 메마른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야스코의 행동이 미심쩍어서 그런지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이시가미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모녀의 두 눈이 누구보다 깨끗했다고 한다. 그런 눈은 본 적이 없다고. 그러나 글에서 묘사된 모녀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양심이 있고 어느정도 세상에 찌들고....... 야스코 모녀는 자신의 기준으로 이시가미의 행동을 재단하고 판단했지만 이시가미 또한 자신의 머리 속에서 그들을 미화시킨 것 같다. 첫 눈에 반했다는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으면 왜 이렇게 찜찜한지 모르겠다. 그의 세계는 가만히 보면 토머스 홉스의 세계관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 <용의자 X의 헌신>은 그걸 뛰어넘는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데, 사실 그 행동조차도 잘 파고들어서 보면 이기적이다. 노숙자는 무슨 죄일까. 미사토의 자살 시도는 왜 일어났을까. 이시가미 또한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재단한 듯 하다. 그 주축에 자기가 아니라 야스코 모녀가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이 복잡해져서 이만 생각을 줄여야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은 뒤에 찜찜하든 말든, 확실히 그의 글은 재미있다. 
  
   

201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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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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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제 2탄. 

  장편인 줄 알았는데 단편집이었다. 신비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풀어낸다는 기본 방침은 그대로지만 신비>과학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단편 다섯 편을 수록했다. 반전이 꽤 강하다.
 
 
  꿈에서 본 소녀
: 사카기 노부히코라는 남자가 저택에 무단침입 후 들켜서 달아나다 한 사람을 치여 죽였다. 그는 17년 전부터 저택 주인의 외동딸인 '모리사키 레이미(16세)'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를 운명의 연인으로 믿고 있었다. 그리고 초대를 받아 저택에 갔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떻게 모리사키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걸까?
-> 실험 등장 안 하고 추리만 등장. 탐문수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한 편이다. 단서는 아주 사소하다. 뭔가 음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음모의 이유가 내가 생각한 이유와 좀 달라서 놀라웠다.
 
  영을 보다
: 호소다니는 친구 고스기의 집에서 기요미의 유령을 본다. 그 시각, 기요미는 고스기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진짜 기요미의 유령을 본 걸까?
-> 연애에서 살인으로 가는 이야기. 어김없이 치정사건인 것 같지만 기요미가 언급한 '사진'이 마음에 걸려서 뭔가 있을까 짐작했는데 이런 방식이었을 줄은 몰랐다. 차근차근 생각하면 풀 수 있지만 숨겨진 단서를 찾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단서가 잡음이 나는 오디오라니!
 
  떠드는 유령
: 구사나기는 누나로부터 한 여성을 소개받는다. 그녀의 남편은 실종되었으며, 남편이 방문한 시설 근처에 있어 친해진 다카노 히데가 공교롭게도 그날 사망했다. 그녀는 다카노의 조카와 친구 부부가 그 집에 살면서 8시가 되면 항상 외출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구사나기는 그녀와 함께 잠복하다 빈집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몰래 집에 잠입한 구사나기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목격하는데......
-> 시체와 추리소설에 관한 유가와의 논평이 인상깊었다. '가장 큰 증거물은 시체'라는 범죄사회학 교수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시체가 없으면 수사도 하지 않는다... 확실히 맹점이다.
  소설의 내용은 씁쓸했다. 돈이 뭐길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악당의 정체도 사건의 개요도 짐작한 대로지만, 폴터가이스트의 원인은 의외였다. 그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좀 신기하다. 그 타이밍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게.
 
  그녀의 알리바이
: 한 공장의 사장이 돈을 갚는다고 한 사람을 만나러 나가서 다음날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만나기로 한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그가 최근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용의자로 유력한 사람은 알리바이가 모호한 사장의 부인. 그러나 그녀는 며칠 뒤,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하는데......
-> 신비한 현상이 가장 약했던 단편. 피해자의 딸이 목격한 도깨비불이 나오는데, 그게 단서이긴 하지만 중심 의문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갈레 씨 홀로 죽다>가 생각났다. 하지만 씁쓸하고 슬펐던 갈레 씨에 비해서 이 소설은 좀 메마른 느낌을 준다. 사장의 부인이 그 계획을 과연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하기에 그녀의 행동은 매우 치밀하니까. 나도 사장 부인에게 깜빡 속았다.
 
  예지몽
: 나오키는 후배 미네무라와 부인 세이코와 있는 자리에서 애인 후유코의 협박전화를 받는다. 부인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밝히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목을 매고, 그 모습을 세 사람 다 목격한다. 통상의 자살사건으로 보이는데 이웃의 여성이 묘한 증언을 한다. 자신의 딸이 전날 밤 후유코가 자살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
-> 끈적끈적한 치정사건. 처음에 미네무라가 세이코의 취향에 맞춰 와인을 가져왔다는 걸 보고 얘네 뭐가 있겠군 했는데 뭐가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학을 내세워 신비한 현상을 파헤치지만, 사실 좀 오컬트를 좋아하지 않나 싶다. 신비한 현상을 부정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니까 굳이 생각하지 말자'는 투의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번에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가 또 다른 예지몽을 얘기하면서 끝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관심이 있는 건 범인이 아니라 범행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탐정 비중이 작은 건 여전하고 범인이나 목격자 시점을 넣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정체보다 다른 걸 더 궁금하게 만든다. 이번 책은 수수께끼가 돋보였다. 갈릴레오 시리즈의 독특함(과학적 범죄/과학적 수사)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재미났다. 일단 히가시노 게이고는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하는 듯. 좀 껄끄러운 구석은 없잖아 있지만.
  이걸로 갈릴레오 시리즈 2권 남았다. 
  
   

201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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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의 키 에단 게이지 모험 시리즈 2
윌리엄 디트리히 지음, 이창식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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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 이은 에단 게이지 두 번째 시리즈, <로제타의 키>. 

  전작보다 재미있다. 책장이 휙휙 넘어가고 흥미도 있다. 인디애나 존스나 007시리즈를 보는 듯한 속도감이 있고, 전쟁 묘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에단 게이지가 전작보다는 적극적으로 토트의 서를 찾아다니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에단이 '전기 기사'라는 특기를 십분 발휘해서, 주인공 활약을 보는 것도 쏠쏠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껄적지근했다. 

  에단은 껄덕대는데다가 거들먹거린다. 보고 있자면 얘가 아스티자를 좋아하는 건지, 아스티자가 튕겨서 오기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상식으로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사랑을 말하지 못한달까. 아스티자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에단은 미리암을 만나는데, 아스티자의 생사를 모를 때부터 미리암에게 껄덕거린다. 그리고 미리암과 마음이 통해 잔 날 저녁, 아스티자의 쪽지를 받고 미리암에게 아무 말 없이 나간다. 에단 나름으로는 이런저런 변명을 하지만 도통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냥 개자식이다. 

  작가는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서는 아스티자, <로제타의 키>에서는 미리암을 영리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용감한 미인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작가는 그녀들이 활약할 공간을 책에서 조금도 남겨주지 않는다. 

  미리암이 한 일은 히암 파리를 소개한 것, 그리고 성전 산 지하에서 잠긴 문을 연 것 정도다. 그 외에 그녀의 지식을 발휘할 곳은 없다. 그나마 성전 산에서도 수확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미리암은 아스티자가 없을 때 여자가 없으면 팍팍하니까 등장시킨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아스티자의 쪽지를 받고 갔던 에단이 토트의 서를 들고 돌아왔을 때, 다시 말해서 에단이 아스티자냐 미리암이냐의 선택에 직면했을 때 미리암은 다른 남자랑 이미 약혼한 뒤였다. 교활한 방법으로 여주인공 역할에서 제거했다고 해야하나. 

  아스티자의 경우는 더 고약하다. 아스티자는 에단을 꼬여내고 백작에게 협력하게 만드는 수단 이상의 일을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여성관은 아주 고루하다. 보고 있자면 기분이 묘해지고 조금 더 지나면 불쾌해진다.
 
  모험물에서 여자는 그냥 감초 역할만 맞는 게 정석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고 생각해 봐도 이 책은 껄적지근하다.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서 에단 게이지는 이상한 메달 때문에 사건에 휘말려서 책을 찾아다녔다. 아스티자는 토트의 서를 실라노 백작을 비롯한 다른 이에게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유해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들의 책을 찾아다닌 이유는, 가만 두면 실라노가 찾아낼 거 같아서였다. 

  <로제타의 키>에서 이들의 행동은 좀 이상하다. 에단은 그 책을 조용히 지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라노 백작의 아가리로 들어간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아스티자는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해 백작과 협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그 책을 지키려고 하고 숨기려고 한다면 굳이 그 책의 내용을 알 필요가 있을까? 로제타 석을 깨면서 왜 베껴뒀을까? 그 내용을 꼭 알아야 그들이 말한 목적(실라노의 야욕을 저지하고 안전하게 지식을 지키는 것)이 지켜진단 말인가?? 그 시점에서 나는 에단과 아스티자가 실라노 백작과 다른 이유를 모르게 되었다. 실라노 백작이 에단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에단은 계속 거기 붙어있었을 테고, 실라노 백작을 없애는 과정에서 휘말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토트의 서를 없애지 않았을 거다.
 
  일단 인물에 대한 의문은 이 정도다. 사건에 대한 의문으로 들어가면 한층 고약하다.
 
  에단은 전작에서 그레이트 피라미드에 들어가서 '모세의 지팡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순금으로 된 천사장식물을 떼어냈다. <로제타의 키>에서는 천사장식물이, 템플 기사단이 토트의 서를 숨겨둔 곳을 가리키는 단서가 된다(에단의 피보나치 수열도 그걸 기준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러려면 1. 템플 기사단이 이집트에 가서 그레이트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그 단서를 놓고 나왔다 / 2. 모세가 몇천년 전 놓고 나온 것과 똑같은 장식물을 그들은 만들었고 그걸 이용할 방법을 찾다가 열쇠로 이용하기로 했다 / 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없고, 솔직히 있음직하지도 않다. 천사장식물이 해답이 될 유일한 길은 성전산 지하에서 그걸 발견해서 가지고 나왔다는 것인데, 그건 명명백백하게 그레이트 피라미드에서 나왔으며 성전산 지하에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왜 나폴레옹은 마지막 순간 에단과 아스티자를 총살에서 구해냈을까? 그가 그렇게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 솔직히 있음직하지 않다. 토트의 서를 이용해 사람 마음을 바꿨으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다. 아슈라프는 어떻게 그렇게 기막힌 타이밍으로 나타났을까? 그가 에단을 찾아다닌 이유는 뭐란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개미굴에 빠지는 느낌이다.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실라노는 로제타 석을 어디서 발견했을까? 우연히? 

  이건 사건이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보물을 찾는 두뇌싸움이 아니라, 그냥 보이는 사건을 생각없이 즐기는 것에 가깝다. 작가도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몰아가는 것만 생각하지, 글 자체의 짜임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1부에서는 토트의 서를 실라노 백작에게 뺏기고 / 2부에서는 실라노 백작이 해석할 수 없게 로제타 석을 파괴하고 토트의 서를 되찾아 숨기는 내용이 나왔으면 짜임새가 있어 보였을 듯 하다. 이 시리즈는 모든 이야기가 너무 작가 편의적으로 돌아간다. 왜 그렇게 예전에는 단서도 없었던 얘기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건지. 게다가 600페이지에 걸쳐 얘기를 쫓아갔더니 토트의 서는 없었다, 는 급한 결말의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토트의 서가 사실 42권이고 그들이 찾아낸 건 1권 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변심으로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처음에 차근차근 진행한 얘기가 끝에 가면 설명도 없이 반전만 틱틱틱틱 빠른 속도로 던져진다.
 
  이런 이유들로 이 글은 재미있지만 짜증나고 허무하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읽는 자세가 처음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드라마 보듯이 아무 생각 없이, 작가가 주는 떡밥을 물고 쫓아갔다면 그냥 스트레스 확 날리는 재미있는 오락책으로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별은 세 개다.
 
 
p.s. 전작의 지루하고 쓸데없어보이는 설명이 줄은 건 다행인데, 그 대신 곳곳에 전작 홍보가 들어가 있다. 1인칭 주인공 주제에 '전작 <나폴레옹의 피라미드>를 보면 다 나와있다.' 식의 이야기를 하다니... 조금만 있으면 자신이 책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자각할지도. 
  
   

201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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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성 샘터 외국소설선 6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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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노인의 전쟁>과 <유령여단>의 명성을 듣고 잔뜩 호기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읽었다는 사람마다 극찬에다가 평점 또한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책에 치여서 잊고 있다가 이번에 나온 <마지막 행성>을 먼저 읽게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허클베리라는 행성에 정착하여 살던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 그리고 그들의 양녀 조이. 어느 날 리비키 장군이 존 페리에게 새로운 행성 개척민의 대표가 되어주기를 요청한다. 기존의 개척행성처럼 지구에서 개척민을 받는 게 아니라, 이미 개척된 10개의 행성에서 250명씩 모은 개척민 집단이라서 전혀 새로운 사람을 총대표로 삼는 수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존은 수락한다. 그러나 2500명의 개척민들이 막상 도착한 행성은 미리 보았던 행성이 아닌 전혀 모르는 미지의 행성. 우주개척연맹은 개척민들에게 콘클라베에게 이 개척지를 들키면 모두 살해당한다고 설명하고, 무선장비를 끄고 숨어서 이 행성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건은 단순하지 않게 흘러가고 행성 로아노크는 콘클라베와 우주개척연맹의 대립의 중심이 되는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휙휙 반전이 일어난다. 다음 일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우주 개척에 관한 전우주적인 이야기인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로아노크라는 행성에서 벌어진다. 어떻게 이 변두리 행성을 중심으로 이 거대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지 신기한 솜씨다. 억지 없이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게 더 신기하다.
 
  우주적인 음모도 재미있지만 로아노크의 개척 이야기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사회의 형성과 의사소통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마냥 합리적이지도 않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그들 사이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뭘까? 가끔 로아노크를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존과 제인이 조금 독단적일지라도 '현명한 방향'으로 끌고 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다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행하려고 정보를 통제하고 강제로 끌어가는 우주개척연맹과 다를 게 뭘까? 그들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동했을 것이다.
 
  우주개척연맹이 로아노크를 가지고 노는 모습은 비열해보였다. 로아노크 개척민들은 그저 '포기해도 되는' 숫자일 뿐이고 그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이 로아노크를 걸고 사용한 방법은 사실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그들이 그 결과를 의도하지 않고 그저 콘클라베의 해체를 의도했을 뿐이더라도 말이다. 행성들과 우주개척연맹의 관계, 그리고 로아노크 사람들의 사회를 보면서 개인과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무엇이 최선일까?
 
  생각할수록 복잡해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되는 게임 같다. 그래도 존과 제인은 룰 안에서 잘 헤쳐나왔다고 생각한다. 로아노크는 파괴되지 않았고 인류는 멸절되지 않았고 존과 제인도 반역죄에서 벗어났고 지구도 우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멋진 해피엔딩이다. 읽을 때는 이 사태가 어떻게 해결은 되나 좀 깜깜한 기분이었는데 내 걱정이 무색했다.
 
  나는 전작을 읽지 않았지만 <마지막 행성>은 그 자체만으로 위화감 없이 훌륭했다.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데 살펴보니 이 책은 전작이 뿌려놓은 떡밥을 훌륭하게 회수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렇다는 건 전작을 읽고 읽으면 더 재밌다는 뜻인데, <노인의 전쟁>과 <유령여단>을 안 읽고 이 책을 읽은 게 조금 아쉽다. 전작을 읽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이다.
 
 

p.s.
  책에서 오류가 좀 눈에 띄었다. 단어가 빠진다거나 따옴표가 빠진다거나 달라야 할 숫자가 똑같다거나... 좀 아쉬웠다.  

 

 201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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