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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평점 :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제 2탄.
장편인 줄 알았는데 단편집이었다. 신비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풀어낸다는 기본 방침은 그대로지만 신비>과학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단편 다섯 편을 수록했다. 반전이 꽤 강하다.
꿈에서 본 소녀
: 사카기 노부히코라는 남자가 저택에 무단침입 후 들켜서 달아나다 한 사람을 치여 죽였다. 그는 17년 전부터 저택 주인의 외동딸인 '모리사키 레이미(16세)'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를 운명의 연인으로 믿고 있었다. 그리고 초대를 받아 저택에 갔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떻게 모리사키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걸까?
-> 실험 등장 안 하고 추리만 등장. 탐문수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한 편이다. 단서는 아주 사소하다. 뭔가 음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음모의 이유가 내가 생각한 이유와 좀 달라서 놀라웠다.
영을 보다
: 호소다니는 친구 고스기의 집에서 기요미의 유령을 본다. 그 시각, 기요미는 고스기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진짜 기요미의 유령을 본 걸까?
-> 연애에서 살인으로 가는 이야기. 어김없이 치정사건인 것 같지만 기요미가 언급한 '사진'이 마음에 걸려서 뭔가 있을까 짐작했는데 이런 방식이었을 줄은 몰랐다. 차근차근 생각하면 풀 수 있지만 숨겨진 단서를 찾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단서가 잡음이 나는 오디오라니!
떠드는 유령
: 구사나기는 누나로부터 한 여성을 소개받는다. 그녀의 남편은 실종되었으며, 남편이 방문한 시설 근처에 있어 친해진 다카노 히데가 공교롭게도 그날 사망했다. 그녀는 다카노의 조카와 친구 부부가 그 집에 살면서 8시가 되면 항상 외출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구사나기는 그녀와 함께 잠복하다 빈집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몰래 집에 잠입한 구사나기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목격하는데......
-> 시체와 추리소설에 관한 유가와의 논평이 인상깊었다. '가장 큰 증거물은 시체'라는 범죄사회학 교수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시체가 없으면 수사도 하지 않는다... 확실히 맹점이다.
소설의 내용은 씁쓸했다. 돈이 뭐길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악당의 정체도 사건의 개요도 짐작한 대로지만, 폴터가이스트의 원인은 의외였다. 그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좀 신기하다. 그 타이밍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게.
그녀의 알리바이
: 한 공장의 사장이 돈을 갚는다고 한 사람을 만나러 나가서 다음날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만나기로 한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그가 최근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용의자로 유력한 사람은 알리바이가 모호한 사장의 부인. 그러나 그녀는 며칠 뒤,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하는데......
-> 신비한 현상이 가장 약했던 단편. 피해자의 딸이 목격한 도깨비불이 나오는데, 그게 단서이긴 하지만 중심 의문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갈레 씨 홀로 죽다>가 생각났다. 하지만 씁쓸하고 슬펐던 갈레 씨에 비해서 이 소설은 좀 메마른 느낌을 준다. 사장의 부인이 그 계획을 과연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하기에 그녀의 행동은 매우 치밀하니까. 나도 사장 부인에게 깜빡 속았다.
예지몽
: 나오키는 후배 미네무라와 부인 세이코와 있는 자리에서 애인 후유코의 협박전화를 받는다. 부인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밝히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목을 매고, 그 모습을 세 사람 다 목격한다. 통상의 자살사건으로 보이는데 이웃의 여성이 묘한 증언을 한다. 자신의 딸이 전날 밤 후유코가 자살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
-> 끈적끈적한 치정사건. 처음에 미네무라가 세이코의 취향에 맞춰 와인을 가져왔다는 걸 보고 얘네 뭐가 있겠군 했는데 뭐가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학을 내세워 신비한 현상을 파헤치지만, 사실 좀 오컬트를 좋아하지 않나 싶다. 신비한 현상을 부정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니까 굳이 생각하지 말자'는 투의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번에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가 또 다른 예지몽을 얘기하면서 끝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관심이 있는 건 범인이 아니라 범행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탐정 비중이 작은 건 여전하고 범인이나 목격자 시점을 넣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정체보다 다른 걸 더 궁금하게 만든다. 이번 책은 수수께끼가 돋보였다. 갈릴레오 시리즈의 독특함(과학적 범죄/과학적 수사)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재미났다. 일단 히가시노 게이고는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하는 듯. 좀 껄끄러운 구석은 없잖아 있지만.
이걸로 갈릴레오 시리즈 2권 남았다.
2011.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