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0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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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바야르의 글은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국내에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는데, 추리비평 3부작이 완간된 후 한동안 소식이 없어 좀 걱정했었다. 더 이상 번역되어 들어오지 않는 건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 나왔을 때 기뻤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 책 자체에는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는데,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 비슷한 논리로 흘러갈 것 같은 느낌이라 별로 신선한 느낌은 아니겠다 하는 생각에서였다.

 

  내 생각처럼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 논리적으로 비슷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비독서를 독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독서담론을 논했다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은 꼭 여행을 떠나야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르코폴로 등의 '방콕 여행자'의 예시를 들어 말해준다.

 

  피에르 바야르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과연 여행이란 무엇인가?"이다.

 

p.39.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험가들 중 한 사람의 고난이 있은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중세 전문가들이 그가 실제로 극동지방에 방문을 했는지 아니면 그냥 집에 얌전히 머물러 있었는지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여행과 비여행을 구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여행 개념을 좀 더 엄밀하게 파악해보려고 할 경우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일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피에르 바야르는 여행과 여행하지 않음의 경계가 모호함을 지적하면서, 여행이 몰랐던 장소를 알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여행이 매우 어리석은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p14.

  일부 공상가들이 꿈꾸는 것과는 달리 이 세계는 결코 예전보다 더 안전하지 않으며,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서 살 수 있는 행운을 지녔는데 무엇때문에 내가 그런 장소를 떠나 적대적인 땅에서 생고생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피에르 바야르는 '방콕 여행'이 어쩌면 진짜 여행보다 현명할 수 있다고 말하며 수많은 '방콕 여행자'들을 글 속으로 데려오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마르코 폴로,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 에두아르 글리상, 샤토 브리앙, 마가렛 미드, 제이슨 블레어, 로시 루이스, 장 클로드 로망, 조지 살마나자르, 카를 마이, 블레르 상들라르...... 이 풍부한 예시들은 피에르 바야르의 어쩌면 엉뚱하기까지 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예시들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는 다른 매력을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에 부여한다. 목적지(결과, 논리)가 같더라도 가는 길이 여러 갈래임을 보여준다고 할까.

 

  여행을 간다고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장소의 일면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어쩌면 진짜 여행이 방콕 여행보다 그 장소에 대해 모를 수 있다고 말한다. 하기야 그 장소를 제대로 보았다고 하기 위해서는 어디를, 얼마나, 어떻게 돌아다녀야 하는가? 피에르 바야르는 '방콕 여행'에 대해 말하면서, 사실은 '진짜로 여행을 즐기는' 팁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은 '방콕 여행'을 여행의 한 종류로 편입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여행'의 영역을 무한히 늘려놓는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있지만 경시했던 비여행(이 책을 통해 여행의 한 종류로 편입된)의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여행하지 않은 곳을 여행하기' 위해서 방콕 여행자들이 가져야 한다고 알려준 미덕들은 다음과 같다.

 

1. 풍부한 상상력을 갖는 것

2. 쓸데없이 도중에 멈추지 않을 줄 아는 것

3. 믿을 만한 정보원을 옆에 두는 것

 

  이번 책에서 피에르 바야르 글의 번역자가 다시 바뀌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번역했던 김병욱 씨다. 그 후의 세 권, <예상표절>, <셜록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는 백선희 씨가 번역했는데, 백선희 씨의 번역은 읽기가 까다로웠던지라(직역투라 자꾸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문장이 꼬였다) 번역자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차에, 이번에 번역자가 바뀐 것을 알고 반가웠다. 이번 책은 확실히 번역자가 달랐던 책보다 잘 읽힌다.

 

  마지막으로, 메모해놓은 문장 하나 더.

 

  p.149.

  한데 이 '알리바이'라는 말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연구하는 문제 전체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어떻든 모든 방콕 여행자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실제로 체류한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상정함으로써 살인자들의 그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니 말이다.

 

201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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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단편집 바벨의 도서관 29
훌리오 코르타사르 외 지음, 조구호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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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헤스가 기획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하나. <아르헨티나 단편집>. 이 시리즈는 표지가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눈이 간다. 그리고 좀 독특한 구성이라 마음에 든다.

 

  <아르헨티나 단편집>은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이야기들은 제각각이면서도 책 하나로 묶을 수 있을 만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분위기가 적당히 어둡다는 것과 '환상(현실에서는 보통 일어나지 않는 현상들)'이 글에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건 판타지와 SF보다는 좀 다른 느낌인데, 어디까지나 현실의 이야기를 하려고 잠깐 현실이 아닌 것을 끌어와서 붙였다는 느낌이다.

 

  '이수르',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 '물건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선택받은 자'는 재미있었고, '운명은 어리석다',' 점거당한 집'은 별 감흥이 없었다. '역마차', '체스선생'은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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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르  -레오폴도 루고네스-

 

  원숭이가 말을 잊어버린 인간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원숭이 이수르에게 차근차근 조음을 가르치는 '나'의 이야기.

 

p.19. 

그 때 나는, 자바 원주민들은 자바 원숭이들이 사람처럼 조음을 하지 않는 이유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읽고 있었는데, 그게 어디에 실려 있었는지는 지금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자바 원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일을 시킬까봐 사람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숭이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발상도 발상이지만, 원숭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과정의 세밀한 묘사가 좋았다. 글은 '나'의 실험일지이며 회고록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전체적으로 딱딱한 어조인데도 글 안에서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 같다. 화자는 미친 것 같기도 하고, 냉정한 과학자 같기도 하고, 광신도 같기도 하다. 사람이 하나에 맹목적이 되면 그렇게 보이게 되는 걸까. 화자에 비해 이수르는 안개 낀 듯 상당히 모호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건 화자의 시선을 통해 이수르의 모습이 드러나는데다가 그가 말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수르는 진짜 말을 한 걸까? 읽을 때마다 이수르가 말한 것 같기도 하고 화자가 꿈을 꾼 것 같기도 한데, 그 명확하지 않은 점이 이 글의 매력인 것 같다.

 

 

*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  -아돌프 비오이 카사레스-

 

  p.41.

  사건은 모든 사람이 결부된 것은 아닌 두 가지 상황 때문에 알려졌다. 내가 말하는 두 가지 상황이란 책을 주문한 것과 살수기를 철거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위와 같은 두 가지 사건을 알아보기 위해 돈 후안 카마르고의 대자 돈 타테이토를 스파이로 보낸다. 시골마을에서 심심한 사람들이 '조금 별난 상황'을 가지고 시시덕거리는, 유쾌한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은데, 돈 후안이 책을 주문하고 살수기를 철거한 이유 때문이다.

 

  만약 어떤 외계인이 이 세계의 불합리함을 없애기 위해서 "해방자"로 나타났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외계인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제거해야 하는가?

 

p.64.

   "나는 우리의 호기심이 부족한 것을 저주해." 그러고서 하늘의 별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는 오늘 밤 수많은 아메리카와 무한하게 넓은 새로운 땅들을 잃어버렸어."

  "돈 후안은 유한한 인간의 법칙에 따라 살기를 원했어. 나는 그의 용기에 감탄하고 있어. 우리 두 사람은 이곳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잖아."

  내가 말했다.

  "이젠 늦었어."

  "이젠 늦었어." 그가 따라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건 사실 쓸데없는 게, 그들이 우왕좌왕하기 전에 기실 사건은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돈 후안은 살수차를 지하실에서 빼내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돈 후안이 결정을 내리기 전이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면 이 가벼운 소동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고 약간의 씁쓸함을 안고 다가온다.

 

  그건 그렇고 제목이 왜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속담인가?

 

 

* 운명은 어리석다  -아르투로 칸셀라 / 필라르 데 루사레타-

 

  간단히 말하자면, 후안 페드로 레아르테라는 궤도마차회사 소속 마부인 크리오요 노인이 어떻게 30년을 뛰어넘어 왼쪽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중간에 맥락을 놓쳐서 다시 한 번 읽어야 했다.

 

p. 94.

"그러니까 운명은 미국인들처럼 교활하고 어리석다는 거지요.... 내가 마차에 탄 뒤부터 운명을 신이 결정해주셨기 때문에 내 왼쪽다리가 부러져 버린 거예요. 이미 30년 전에 부러졌어야 했지만, 기적같이 무사했지요. 90년대에 혁명이 발발한 첫째 날 라바예와 파라나에서 총알 세 발이 내 무릎 높이의 플랫폼을 관통했는데, 총알은 내 바지를 스치듯 살짝 비켜갔어요. 나중에 내가 이륜마차와 부딪혔을 때 운명이 착각을 하고서 내 오른쪽 다리를 부러뜨려버린 거예요. 그리고 현재, 운명은 내가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런 함정을 파놓은 거지요. 운명은 진짜 악마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사실 아직도 좀 어리둥절하다. 결말이 급작스런 느낌도 있고.......

 

 

* 점거당한 집  -훌리오 코르타사르-

 

  대대로 살아온 커다란 집에서 사촌누이와 살던 화자. 어느 날 집의 한쪽 날개를 누군가 점거했다는 걸 알아내고 복도를 폐쇄한다. 화자는 사촌누이와 집의 다른쪽에서 삶을 이어가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본채마저 점거당한다. 그는 집을 잠그고 열쇠를 버린 뒤 사촌누이와 떠난다.

 

  꽤 묘한 글이다. 집을 점거한 건 무엇이었는지, 그는 왜 기척이 들리자마자 도망쳤는지, 한 번 큰 소리 내보지도 않고 집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그들'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지만, 사실 그들의 정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중요해보이는 것을 포기하면서도 일상은 이어진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역마차  -마누엘 무히카 라이네스-

 

  역마차에 탄 나이든 숙녀 카탈리나를 묘사한 짧은 글. 카탈리나의 성격과 심리를 주촉으로 역마차의 풍경을 묘사한다. 카탈리나가 역마차에서 자신과 같은 차림의 여성을 발견하고, 그 여성이 이 역마차에 탈 기회가 있었는가 의심한 순간 바퀴축이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잠시 후 다친 카탈리나 대신 의문의 여성을 태운 채 역마차가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마치 범죄소설이나 괴담처럼 느껴진다. 묘사가 잘 되어있다는 것 빼고는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줄거리라서 인상에 깊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다.

 

 

* 물건들  -실비나 오캄포-

 

  카밀라 에르스키가 잃어버렸던 물건들이 갑자기 그녀에게 나타나며 벌어진 이야기. 짧고 간략하며 별다른 얘기는 없는데 은근히 기괴한 느낌이 든다. 물건들이 돌아왔다는 서술 이후, 그녀의 가족(남편과 아이들)의 묘사가 사라진다. 어떤 수단으로 물건들이 돌아왔으며, 가족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p.130.

  카밀라 에르스키는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버렸다.

 

  이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소설은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물건들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녀가 무슨 수단으로 물건들을 구한 건지, 가족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가 왜 지옥에 갔는지). 그래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구체성이 결여가 환상적 기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편이다.

 

  다만 쉽게 생각해보자면, 물질에 대한 탐닉을 경고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그 이유는 애초에 카밀라 에르스키는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그다지 마음에 두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카밀라가 물건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는 일어난다. 일단 나는 이렇게 해석했지만 이 글도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글을 읽을 때에는 그냥 어리둥절한 느낌이 강했다. 좀 곱씹어봐야 재미가 느껴지는 소설인 듯하다.

 

 

* 체스 선생  -페데리코 펠체르-

 

  탈무드나 이솝우화 같은 느낌. 구체적 배경보다 보편적인 어떤 교훈을 에둘러 말해주는 듯 하다.

 

p.135.

"절묘하군요." 제자가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는데요. 졌군요......."

"그렇죠. 겉으로 보기에는." 선생이 지적했다.

남자는 이제 체념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과신은 나쁘죠. 그렇지 않나요? 이게 바로 마지막 강의군요....... 선생님 이름이 뭐라 하셨던가요?"

"신입니다."

 

 

*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마누엘 페이로우-

 

  어느날 거리를 걷다 어떤 남자를 차례로 세 번 마주친 화자. 한날 잠깐 사이 본 건데도 남자의 옷차림은 각기 다르다. 그 때부터 남자를 관찰한 화자는 그것이 한 남자의 과거들과 현재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는다. 화자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보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남자의 사무실로 찾아가지만 거절당한다. 그날 꿈에서 그는 남자를 본다. 그 다음날 남자의 사무실에 가지만, 남자는 원래 없었다는 설명이 돌아온다.

 

  꿈 속에서 주인공은 그 남자를 (p.151.) 그 얼굴은 내게 엄청한 해를 끼쳤으나 내가 결코 가면을 벗길 수 없었던 누구였다. 내가 항상 등만 보았던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 내게 상처를 주었고, 내가 그 얼굴을 보려고 다가갈 때면 상항 창을 닫고 숨어버렸다. 라고 표현했다. 이로 미루어보아 남자는 시간의 의인화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시간에 관한 우화가 될 터이다.

 

  발상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으나 끝이 다소 모호하고 난해하다. 한순간에 현실과 환상, 시간을 뒤섞은 느낌이랄까.

 

 

* 선택받은 자  -마리아 에스테르 바스케스-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를 재해석한 이야기. 성경을 알고 있다면 끝이 나오기 전에 이야기의 모티브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경이 나사로가 살아난 것까지만 적고 있는 데에 힘입어, 작가는 그 이후의 나사로를 묘사한다. 죽음에서 돌아온 나사로는 그 이후 늙지도 다치지도 않고 살아간다. 그 불로불사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p.162.

예수, 빛의 왕이여! 왜 나를 이 끔찍한 땅에 버려둔 채 변하지도 늙지도 죽지도 못하게 하는가....... 나는 당신에게 묻고 내 자신에게 묻노라. 왜, 무슨 목적으로 나, 나사로를 선택했고, 잊어버렸는가.

 

  불멸에 대한 짧고 강렬한 단상. 굉장히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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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으로 좀 난해한 기미가 보이는 단편들이 많다. 하지만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단편이 섞여 있어서 읽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일단 힘들다고 여기기에는 글들이 몹시 짧다.) 이전에 읽었던 글들과 스타일이 좀 달라서 재미있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를 계속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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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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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토 가나에의 글은 인상적이다. 재미있다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스타일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글을 읽다보면 감정적(혹은 이성적) 동요가 느껴지는데, 그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느낌의, 뭐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질문이 소설에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왕복서간>의 뒷표지에 실린 글도 느낌이 비슷하다.

 

  스무해 전 어느 가을날, 남편과 제자가 강물에 빠졌습니다.

  남편은 수영을 못 합니다. 제자는 고작 열 살이었습니다.

  생채기 가득한 소풍의 추억......

  "그 때 나는 누구를 살려야 했을까요?"'

 

  뭐라고 선뜻 대답하기가 꺼려진다. 정말, 누구를 구해야 했을까?

 

  책을 처음 펼쳤을 때는 위의 이야기가 책 한 권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세 편의 단편으로 되어 있다. 각각 "십년 뒤의 졸업문집", "이십년 뒤의 숙제", "십오년 뒤의 보충수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제목처럼, 십 년 전 같은 동아리 멤버였던 두 명이 결혼한 것을 계기로 같은 멤버였던 아이들이 실종된 동창생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 학교 선생님이 은퇴한 뒤 이십년 전의 사고를 목격한 아이 여섯이 잘 사는지 살펴봐달라고 다른 제자에게 부탁하여 그 경과를 편지로 받아보는 이야기, 남자 쪽의 해외자원봉사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 연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전에 묻어둔 사건을 기억해내는 이야기이다.

 

  세 단편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편지"와 "숨겨진 속사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한 권으로 묶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고받은 편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닌 이야기 속에도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본질적으로 상대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만 적혀 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추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간체는 상당히 매력적인 기법이고, 미나토 가나에는 그 매력을 한껏 살려서 몰입도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다만 숨겨진 이야기 혹은 반전을 추측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결말을 알면서도 중간을 짜맞춰가는 것이 이 글의 묘미이다(같은 사건이어도 각자 보는 시각이 다르고 각자가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다).

 

  미나토 가나에의 이전작에서 느껴지던 끈적끈적한 감정은 <왕복서간>에서는 다소 사그라져 있다. 그러나 그건 글의 스타일이 완전히 변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좋게끔 불씨를 재로 한 겹 덮어놓았다는 느낌이다. "십년 뒤의 졸업문집" 같은 경우에는 살짝 얼버무려놓은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십년 뒤의 졸업문집"을 제외한 두 편의 단편을 생각해보면, 묘하게 피해자(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기엔 모호하지만, 일단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십년 뒤의 숙제"에서 선생님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흐릿하다. 책의 뒤표지에서 언뜻 느껴지는 그 갈등은 사실 "이십년 뒤의 숙제"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고를 목격한 학생들이 그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그래서 선생님이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십오년 뒤의 보충수업"에서는 십오년 이야기에 연루된 두 친구가 사망했기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없다. 두 연인의 편지 속에서는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 추측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왕복서간>에서 서간체라는 형식을 통해 같은 것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여준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추측은 썩 믿기는 것이 아니다. 연인들은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음을 암시하지만, 죽은 두 친구를 생각하면 저 좋을대로 해석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왕복서간>은 하나같이 희망적으로 끝나지만,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사실 희망적이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숨겨놓은 그 이야기, 반쯤 드러나고 반쯤 덮여 있는 것 같은 그 이야기들에 끊임없이 신경이 쓰인다.

 

  미나토 가나에의 글을 읽을 때면 묘하게 히가시노 게이고가 생각난다. 글을 쓰는 스타일은 많이 다르지만, 재미있지만 왠지 좋아할 수는 없는 그 분위기가 비슷하다.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을 대답해보라고 질문하는 것 같아서 그럴까.

 

 

 

201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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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원맨쇼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2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검은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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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02. 그런데 시리즈 01호인 <마지막 형사>는 아직 읽지 않았다. 읽을까 말까 망설인 이유는 간단하다. 뭐랄까, 표지와 제목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분위기를 잡으면서 하드보일드한 작품일 거라는 선입견이 생겨서다. 피터 러브시라는 이름은 <가짜경감 듀>라는 책 제목과 함께 많이 들었는데, 국내에 작품이 많이 번역되어 들어온 것이 아니라(동서문화사의 <가짜경감 듀> 외에는 2011년 검은숲에서 출간한 <마지막 형사>와 이 <다이아몬드 원맨쇼>가 전부인 듯) 생소해서, 그의 작풍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런데 대뜸 시리즈 02 <다이아몬드 원맨쇼>부터 읽게 된 것은, 작품소개 때문이다.

 

  잘나가던 전직 경정 피터 다이아몬드. 경찰서를 뛰쳐나온 지금은 한갓 백화점의 야간 경비원 신세다. 하지만 하필 다이아몬드의 근무시간에 여자아이 하나가 몰래 숨어드는 바람에
또 한 번 해고되고 만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일본인 소녀. 졸지에 또다시 실직자 신세가 된 다이아몬드는 이 소녀(나오미)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애쓰는데.......

 

  은퇴해서 야간경비원으로 취직했다가 현재는 백수인 피터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더구나 <다이아몬드 원맨쇼>라는 절묘한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품소개를 읽고 상상한 피터 다이아몬드는 왠지 느긋하고 점잖은 성격을 지닌 오지랖 넓은 전직 경찰 할아버지였다. 그러니 실제 피터 다이아몬드는 만나고 받은 충격이란! 다이아몬드는 거구를 지닌 중년이고, 뭔가 성질 급하고 행동파면서 대하기 까다로울 것 같은 남자다. 항상 가만히 있지 않고 무언가 하려 하지만, 손재주가 정말X100000 안 좋다.

 

  52p-53p 中 인용

  다른 사람들의 아내들이 보면 다 부러워했을 이러한 열정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다이아몬드가 솜씨 좋은 수리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신발 바닥에 묻은 기름과 페인트가 집 안 곳곳을 더럽혔고, 수도꼭지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물이 똑독 떨어지는 데다가, 문짝들은 절반만 닫히다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을음이 거실로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렸고, 고양이는 텅 비다시피 한 벽장을 피난처로 삼아 틀어박혔다.

  스테파니 다이아몬드도 할 수만 있었다면 고양이와 행동을 함께 했을 것이다.

 

  357p 中 인용

  "영국경찰은 무장을 하지 않는다던데, 그 말이 맞아요?"

  "대부분은 그렇소."

  "총이 필요했던 적은 없나요?"

  "지금까지는 없었소."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손재주가 없기로 악명이 높아서 권총을 소지했다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오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말해줄까 했으나 하지 않았다.

 

  피터 다이아몬드의 이런 단점들은 작품 곳곳에서 부각된다. 그러나 이런 단점 때문에 더욱 다이아몬드가 돋보이는 것 같다. 그는 척 보기에 다정한 사람은 아니지만(오히려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처음엔 좀 꺼리게 될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문득 그가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적으로, 그가 수상쩍은 일본 여자와 함께 사라진 나오미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오미의 부모를 찾아봤자 다이아몬드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처음에 다이아몬드는 그저, 여자애의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어서(백수라서 시간도 많이 남겠다 겸사겸사) 나오미를 관찰한다. 그러나 그가 수수께끼 풀이라는 이유 만으로 옆구리가 채이고 강에 수장되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또 일본으로 가는 여정을 감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나오미를 걱정하고, 나오미를 찾길 바란다. 그 대가로 그가 얻은 것은, 나오미의 손을 다시 한 번 잡는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원맨쇼>는 처음에는 추리의 양상을 띠지만("나오미는 왜 해로즈 백화점에 홀로 발견되었는가?"), 중간에 나오미의 엄마라 주장하며 나오미를 데려간 정체불명의 일본여성이 등장한 이후에는 모험의 양상을 띤다("나오미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까?"). 전체적인 느낌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스릴러 쪽에 가까웠다. 다만, 긴박하긴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지는 긴박감이 아니라, 가볍고 시원한 긴박감이랄까.

 

  그건 <다이아몬드 원맨쇼>의 미스터리가 독자가 풀기에 그리 어려운 미스터리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초반에 나를 같은 페이지에서 맴돌게 만들었던 제약회사 부분을 눈여겨 보았다면, 나오미와 그들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지, 범인이 누구일지 어렵지 않게 짐작을 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나오미가 결국 무사히 다이아몬드의 손에 구출될지 그 과정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중간중간의 위트, 그리고 마지막 결말까지, 읽으면서 매우 즐거운 글이었다. 가끔 "이거 좀 너무 쉽게 풀리는데?" 싶은 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이 글의 단점을 꼽자면, 피터 다이아몬드가 등장하기 전의 초반부에서 책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갔다는 점 정도일까.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총 11권이 있다고 하는데, 다른 시리즈도 얼른 들어왔으면 좋겠다. 책날개의 작가소개를 보니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시리즈(크리브 경사 시리즈?)도 있는 모양이던데, 이 작품도 보고 싶다. 국내출간된 피터 러브시의 책 두 권을 읽으며 기다려 봐야겠다.

 

 

201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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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식민지 조선의 탐정소설사
최애순 지음 / 소명출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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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는 '식민지 조선의 탐정소설사'라는 부제처럼, 식민시 시대 탐정소설을 조명한 논문집(단행본이지만, 형식을 보면 논문을 묶어놓은 것 같으니 논문집으로 칭한다)이다. 이 논문집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느 정도 <계간 미스터리>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계간 미스터리>에 실린 식민지 시대 탐정소설에 관한 기사를 재미있게 읽은 덕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에 뚜렷한 탐정소설사(세간에는 추리소설로 통용되지만 저자가 탐정소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므로 거기에 따른다)가 형성되지 않고 희미하게 이어져 내려온 연유를 알아보고 싶으며 그래서 탐정소설이랄 법한 것이 소개되기 시작한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가 조선에서 탐정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탐정소설은 어떻게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 등을 찾아본다.

 

  이 책은 하나의 큰 줄기를 가지고 써나갔다기보다, 개별적인 여덟 편의 논문을 엮어놓은 모양새다.

 

- 1930년대 탐정의 의미규명과 탐정소설의 특성 연구

- 방정환의 소년탐정소설 연구

- 채만식의 유정한(soft-boiled) 탐정소설 <염마>

- 1930년의 모험탐정소설과 김내성 <백가면>의 관계

- 식민지 시기 탐정소설의 번역과 수용양상 및 장편 번역 탐정소설 서지 연구

- 식민지 시기부터 1950년대까지 모리스 르블랑 번역의 역사

- 최서해 번안 탐정소설 <사랑의 원수>와 김내성 <마인>의 관계연구

- 식민지 조선의 여성범죄와 한국 팜므파탈의 탄생

 

  제목만 보기에는 정말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한 편씩 읽어나가다보면 식민지 조선에서 탐정소설의 위치를 차근히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그건 현재 한국에서 한국산 탐정소설이 부진한 이유를 알려준다. 그 이유 중 일부는 식민지 시대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인 탐정소설이 논리성과 추리력을 중시하는 두뇌형 탐정, 다시 말해서 '고전적 탐정유형'과 달랐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탐정소설'은 외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 것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변화와 가공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식민지 상태였고, 셜록 홈즈 식의 법보다는 아르센 루팡 식의 무법 쪽이 친근감이 있었던 듯 하다. 나아가 '탐정은 연애하면 안 된다'는 가정과 달리 탐정의 연애를 환영했으며, 탐정은 희생자와 감정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탐정소석은 고전적 탐정소설의 유형보다는 모험탐정소설 쪽이 인기있었다. 그리고 당시 독자들이 논리적으로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논리적 서사에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 범인을 잡고 피해자를 구할 것인가?"라는 감정적 서사에 익숙했기에 고전적 탐정소설 유형이 자리잡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대중이 선호하는 양식이 모험-유정有情-대결 양상이었던 것에 반해, 비평가들은 고전적 추리소설 유형을 선호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괴리가 한국식 탐정소설 유형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으며, 현재 빈약한 기반을 형성하는데 일조하였노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식민지 시대에 작가들이 쓴 탐정소설을 보면 "과연 이게 탐정소설인가?"하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은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를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과도 맞닿아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탐정소설의 도식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탐정소설"의 정의를 기존보다 넓혀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탐정(을 하는) 소설"을 탐정소설로 본다. 탐정이라는 직업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는 탐정하다라는 서술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식민지 시대 작가들이 쓴 탐정소설도, 고전적 탐정소설 유형에 맞지 않기는 하지만, 역시 탐정소설이다. 저자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해 '한국식 탐정소설 유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그 유형을 찾아야 비로소 서구의 고전적 탐정소설 유형을 답습하기 바빠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탐정소설계가 발전할 수 있겠노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은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 정도 갈피가 잡히며 저자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나라마다 특색이 있고, 문화는 그 나라 사람들과 떼어 생각할 수 없으며, 밖에서 어떤 새로운 것이 들어올 때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변형이 되기 때문이다. 그 변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문화가 발붙일 곳이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렇게 감상을 말하고 보니 굉장히 딱딱한 책 같지만,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으며 꽤나 쉽게 읽힌다. 논문 속에 언급되어 있는 소설의 줄거리와 캐릭터의 분석, 그리고 당대의 시대장을 짚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정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언젠가 이 책의 후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201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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