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읽는 기술 - 비즈니스맨과 트렌드세터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트렌드 입문서
헨릭 베일가드 지음, 이진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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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게 앞으로 유행할 것인가? 경마에서 어느 말이 1등으로 들어올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만큼, 야구게임에서 A팀이 B팀을 몇 점 차로 이길지 예측하는 것만큼  알기 힘들다. 신문과 잡지가 부단히 내 놓은 기사들에서도, 그것이 Fad로 끝날지 Trend가 될지 짐작하긴 쉽지 않다. 

  <트렌드를 읽는 기술>은 "무엇이 어떻게 트렌드가 되는가?"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트렌드가 어떻게 생기고, 받아들여지고, 확산되고, 소멸되는지. 새로운 트렌드가 떠오를 때마다 특정 패턴을 따른다는 것에 착안, 그 '특정 패턴'을 설명한다. "거미가 활발히 집을 지으면 날이 갤 신호다"와 같은 류랄까. 여러 사례들을 훑어보며 일반적 트렌드 모델을 설명하는 식이다.

  다분히 학술적인 내용임에도 딱딱한 느낌이 없는 것은, 사례가 내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 꽤 재미있다.

  유행은 다방면에 걸쳐서 일어나는 만큼 사례도 다방면에 걸쳐있으면 좋겠지만, 다루는 사례는 대체로 '패션'이다. 다른 여러 분야는 트렌드가 생기고 소멸하는 기간이 긴 데다가 변화가 확 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유행이라고 하면 즉각 생각나는 '옷'을 주 예로 들어 설명하지 않았나 싶다.

  유행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콱콱 찔러준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좀 아쉽다. 이 책은 통찰학습이라기보다 관찰학습이다. 하지만, 관찰을 기본으로 한 만큼 탄탄하다. 트렌드에 관한 것을 한데에 묶어 잘 정리해 놓았다. 트렌드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이 좋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에 요약-정리 부분이 따로 있는데, 핵심 내용을 다시 한 번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책은 트렌드를 읽는 '기술'에 대해 귀띔해 주는 것 뿐이다. 실제로 유행을 알기 위해서는 자료를 모으고 대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그래도 실마리는 주어졌으니 상황은 나아진 걸까?

2008.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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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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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에는 약속장소에 나갔을 때 "나 10분 정도 늦을 거 같아 ㅜㅜ"라는 문자를 심심찮게 받는다. 혹은 그런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약속장소는 Xx역이라고 두루뭉실해졌다. 도착하면 상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상생활이 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도 잘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핸드폰이 없었던 그 때는,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지 않고는 상대를 만날 수 없었다. 한 사람이 늦거나 장소를 잘못 알고 있으면 서로 답답함에 가슴을 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엔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호한 약속장소와 모호한 약속시간이 통하기 시작했다. 뭔가가 변한 것이다.

  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십 년 전에는 혀를 내둘렀을 일들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여기 넘어가면 저기~'라는 식으로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언제부터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웹 2.0 시대에 벌어진 변화를 찬찬히 살펴보고 설명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왔을 때 무엇이 변했을까?

  저자는 이바나의 핸드폰 찾기에서부터 벨로루시의 정치적 플래시 몹, 위키티피아와 리눅스의 성공까지 다방면의 예를 들어보이고, 전혀 달라보이는 것들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가,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이 어떤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는 것보다 빠르게 조직의 관리비용이 증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힘들었고, 단체 행동에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따라서, 한 뉴요커의 핸드폰을 되찾기 위해서 수많은 대중이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났다'.

  예전에 소통의 방식엔 두 종류가 있었다. 1대 1 방식(전화기)과 1대 다수 방식(라디오나 TV)가 그것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새로운 도구들(블로그 등)이 등장하면서 다수 대 다수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사자생(손으로 글씨를 베껴 책을 만드는 사람)의 역할을 인쇄기가 대신하면서 일어났던 변화만큼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구조는 같은 선상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으로 올라섰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깊이있는 통찰을 제공하면서도 어렵지가 않다.

  다양한 사례-그중 대다수는 내가 보고 겪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것이다-를 들면서 우리에게 변화를 알려주고 그 변화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변화를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책을 만드는 일이 사자생에게서 인쇄기로 넘어갔을 때 일어났던 혼란스런 사회와 엄청난 변화처럼, 우리 사회가 새롭게 포맷되는 과정임을 알려주고 이것이 '일시적인'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구조를 슬쩍 들여다보면서, 내가 있는 위치와 가능성을 가늠해 보게 한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너무 익숙해서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실은 굉장히 특별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2008.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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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업 -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한스 바이스.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이상호 감수 / 프로메테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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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디다스 사의 광고 카피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국적 기업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많은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이 비판받을 시 둘러댈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고, 처벌을 최소한도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에게 불가능이란 아무 것도 아니다.

  <나쁜 기업>은 법과 정의와 도덕이 세상에서 얼마나 개무시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전과 전쟁에 허덕이는 지역이 대부분 풍푸한 지하자원을 가진 '보물창고'다. 왜 보물창고가 전쟁터로 전락했을까? 독재정부 때문에? 반군 때문에? 그들이 '못살고 의식수준도 낮아서'? 사실은 다국적 기업이 헐값으로 지하자원을 사들이면서, 독재정부와 반군 등과 거래하고 때때로 그들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석유는 검은 황금이라 불린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산유국들은 지지리도 못산다. 왜? 첫째, 전쟁 때문에(전쟁에 관한 다국적기업의 책임은 위와 같다). 둘째, 낡아빠진 송유관을 갈지 않아서 새어나간 원유가 환경을 파괴시켜서. (원유의 무서움은 태안기름유출사건으로 충분히 알 것이라 생각한다)

  21C에 노예가 있다. 식료품을 다루는 다국적기업이 가격을 압박해서. 농장에는 유해한 (공식적으로 유해하다는 판명이 나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들이 살포된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온갖 질환에 시달린다.

  우리가 구입한 브랜드티셔츠 가격의 0.25%만을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받는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당을 받고 초과근무를 하며 일한다. 세계의 거대은행과 신자유주의를 수호하는 국제협약과 단체들이 배후에서 이들의 불행한 생황(생계비에 못미치는 최저임금이라던가)를 조장한다.

  실험용 쥐가 있는 것처럼, 의약품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용 인간도 있다. 일부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신약을 처방받고, 신약의 효능을 알기 위해서 일련의 환자들은 아무런 처방도 받지 못한다. 그러면 '일부 지역'의 못사는 나라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가? 유럽연합의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다국적기업은 각종 로비와 압력을 통해 유전자조작식품을 자유롭게 유통시키려 한다.

  <나쁜 기업>의 마지막 장 '민주주의의 대가로 생긴 이익'을 보면, 다국적 기업으로 인한 피해는 사실상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것 같다.
 

  'Nike, We made you, We will break you!'
  불가능한 것이 없는 다국적 기업에게, 불가능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소비자다. 소비자의 힘. 나쁜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 뿐. 소비자인 내가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쁜 기업>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인간은 선하고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명제에 홀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을 <나쁜 기업>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과,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알려준다. 한 번 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이 더이상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나오지 '못하는'이 아니라, 나오지 '않아도 되는'!!)

2008.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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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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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놈들의 제국주의 :
  식민지 경영의 경험도 없고 식민지를 만들어낸 능력도 없으면서, 식민지가 요구되는 제국주의화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 자본주의를 비유한 말.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뉴스를 보면 일이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생각은 들지만, 정확히 어디로 흘러흘러 가는지는 모르겠다. 막연한 불안감만이 있을 뿐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저기가 목적지다!"라고 하면서 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인 우석훈 씨는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을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명명한다. 제국주의. 18~19세기에나 있었을 법한 단어가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적용되다니. 더구나 파시즘이라던가 쇼비니즘, 혹은 전쟁같은 단어들, 나와 함께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저 멀리에 있는 단어들이 곁에 있다니. 읽는 내내 머리를 두들겨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흐름이 어디를 향하는지- 다시 말해서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결과가 어떨지, 우석훈씨의 예측대로 일이 모두 흘러가라는 법이 없긴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석훈 씨의 예측이 근거 없지 않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었다.

  "자본주의는 잉여자본의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제국은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잉여자본을 생산할 식민지를 찾았고, 대공황 후의 미국은 금융이라는 허구적 시장을 통하여 잉여자본을 축적했다. 지금 다시 잉여자본 축적의 위기가 오고 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읽으며 위의 문구가 계속 떠올랐다. 한국이 '잉여자본의 축적의 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어떤 대안으로 잉여자본을 계속 쌓으려 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기형적 경제 구조와, 얄팍한 사회-문화적인 기반(빈말로라도 우리 사회가 철학적 풍부함 위에 세워져 있다고는 못할 것이다), 강력한 민족주의 등 일련의 흐름을 봤을 때 우리는 제국주의로, 식민지로, 나아가서 동북아 3국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기분 좋은 예측은 아니다. 읽으면서 몇 번이고 눈을 돌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 책의 논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슬프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그것이 유일한 대안인가?

  이 책은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하나의 분석과 그에 따른 하나의 담론을 던져줄 뿐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알아라, 네 머리로 생각해라, 움직여라.'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것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시작이다. 그런 점에서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한 번 쯤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덧)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단점 : 행간이 너무 넓어서 읽기 힘들다.

 

2008.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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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론 -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
윌리스 고스 리기어 외 지음 / 이마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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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첨은 부정적인 말이다.

* 아첨 :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것.

  <아첨론>은 아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아첨 : 즉석으로든 준비해서든, 노력한 사람에게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든, 대가를 기대하는 칭찬.

  <아첨론>은 아첨의 긍정적인 면을 주목하는 책이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저자는 역사, 인물, 책을 수없이 많이 인용한다. 아첨의 성질, 아첨의 긍정적인 힘, 아첨의 방법 등을 읽어가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아첨'은 극히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금전, 권력만이 아니라 상대의 호감이나 우정을 바라면서 하는 칭찬도 아첨이라고 보면, 아첨은 칭찬과 거의 동급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첨을 할 대상은 널려 있다. 나를 뺀 모든 사람에게 아첨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아첨론>에서 말하는 아첨은 하나의 사교술이다. 그래서인지 아첨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정치, 사회, 예술, 연애, 종교.......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아첨을 받기를 원하니 아첨을 해 줄 수밖에. 수준 높은 아첨은 나의 수준을 높여주고 동시에 삶을 부드럽게 해 준다. (수준 낮은 아첨과 아첨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뒷부분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아첨론>의 내용 중에서 특히 2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나에게 아첨하라.'
  '나에게 아첨한다'를 세 글자로 줄이면 '자신감'이 된다. 자신감은 모든 일에 동력원이 되는 법, 나에게 아첨해서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누구에게 돈을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아첨하는 것에는 보너스도 붙는다. '무슨 말을 들으면 내가 기뻐하는가'를 보면서, 남에게 어떻게 아첨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또한 '누가 나에게 아첨하고 있는가'를 알아챌 수도 있다. 나는 아첨의 실험장이다.

  무척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용이 약간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있고, 신선한 맛이 부족하다. 아첨을 우리가 생각하는 아첨의 정의에 놓지 않고, 무척 포괄적인 의미로 정의했기 때문에 제목이 '아첨론'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엔 '사교론' 정도가 적당하겠다.
 


  덧붙임.

  책이 참 예쁘다. 그런데 여백이 넓고 행간이 너무 떨어져 있어 가독성이 떨어진다. 굳이 순서를 지키면서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멋대로 뒤적거리며 마음에 드는 부분을 읽어도 되는 게 편해서 좋았다.
 


 2008.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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