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A. M. 파인스 지음, 윤영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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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지독하게 길다 싶더니 어느 새 가을이 왔다. 감 몇 개 까먹다 보니, 시큼한 귤이 지배하는 겨울이 코끝을 내밀었다. 덕분에 감기에 걸려서 골골대다가 모처럼 집어든 책이 <러브: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할리퀸 소설부터 '그이를 사로잡는 법' 같은 실전실용서, 학술적으로 사랑을 분석해 놓은 인문사회과학 책까지, 사랑에 관한 책은 참 많다. <러브: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는 도서관 책장을 뒤지다가 발견한 책이다.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어', 라고 주장하는 듯한 핑크색 표지와 크게 박혀 있는 LOVE라는 단어에 홀려서 집어들었다. 그런데 만약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 홀려 집어들었다면 실망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낭만적인 사랑과 심리학에 철저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낭만적 사랑에 대해 심리학이 알려주는 많은 것들"이라는 쪽이 정확하다. 

  <러브: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크게 세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와 사랑에 빠지는가?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가? 

   어떻게 하면 성숙한 관계가 될까?

 
  <러브 :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심리학 이론을 들이대어 사랑의 부분부분을 설명한다. 세상에 있는 학문이 심리학 만은 아니니까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어가고 보면 꽤나 정교하게 사랑을 분해하고 설명해 놓은 느낌이 든다. 특히 의 1장이 그렇다. A동에 사는 B가 네 짝이다 라는 말은 안 적혀 있지만, 1장을 꼼꼼이 훑어보면 '어디서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에 관해 어렴풋이 느낌이 온다. 

  1장을 읽고 꽤 만족스럽게 2장을 읽기 시작하면, 호기심은 들지만 녹록치 않은 주제가 대뇌 주름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의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질문 때문에 가지각색 심리학 이론이 끌려나온다. 애착이론, 프로이트, 융...... 심리학 이론에 대한 학술적 설명은,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군가 왜 이 책을 읽는가"라는 회의가 살살 들기 시작할 무렵 끝이 난다.

  연애 얘기는 재밌다. 내 연애 얘기도 재밌고 남의 연애 얘기를 듣는 것도 재밌다. 에는 곳곳에 연애에 관한 인터뷰('사랑에 빠진 순간')가 나오는데, 적당히 긴장도 풀어주고 흥미도 다시 돌게 해 주는 역할을 하며, 책이 말하는 내용을 다시 되새기게도 해 준다. 그래서인지 꽤나 쉽게 마지막 까지 읽을 수 있었다(남의 연애 얘기 듣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4인의 심층 인터뷰 내용이 읽으면서 제일 즐거웠다).

  보통 책을 읽으면 좋은 부분은 처음 혹은 중간부분일 경우가 많다. 대개 마지막 부분은 앞부분에 비해 집중도도 떨어지고, 전에 했던 얘기를 마무리하는 단계라서 내용이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는 이례적으로 3장이 가장 인상깊었다. 치명적 이끌림 혹은 무의식의 현명한 선택이라 부르는 현상은, 지금까지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고 따라서 상당히 신기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진 바로 그 이유로 인해서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자는 그 남자가 과묵해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여자는 그 남자가 너무 무뚝뚝하고 표현을 안 하는 점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내 반쪽"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나의 상처받은 경험을 뛰어넘기 위해 그 사람에게 끌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갖고 나의 상처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부딪힌다. 이 '벽'을 뛰어넘으면 한 단계 더 높은 인격적 성숙을 가지게 되지만 쉽지 않다.

  사랑이 이 책에 나오는 심리학적 기제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사랑이란 감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사람의 뇌는 한계가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이 책의 내용도 다소 잊어버리겠지만 그래도 단 하나의 명제는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예 사랑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행복한 사랑'을 하긴 힘들단다. 그러니까 파이팅이다.

  (그런데, 아예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것보다 '불안한 사랑'을 겪는다는 게 더 무섭지 않은가?)

 

 

2008.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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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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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유리병.

  나는 '위험하니까 빨리 치워야 하는 쓰레기'로밖에 안 보이는 것.

  <하악하악>에는 깨진 유리병을 사용할 1364개 정도의 가능성이 들어있다.

  실제로 깨진 유리병 사용법을 1364개 진지하게 늘어놓았다는 것은 아니고,

  앞에 놓인 것은 같은 사물인데 그 사물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감성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악하악>은 햇빛을 반사하는 유리구슬처럼 다채롭고 유쾌하다.

 

  내가 A로밖에 안 보는 걸, 다른 사람은 B, C, D 에서 Z까지 보고 있다는 것은 참 가슴 떨리는 일이다.

  Z까지는 아니어도, 언젠가 나도 B와 C정도는 가뿐하게 보고 싶다.

 

  

 2008.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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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탄생 - 세계의 신화와 설화로 풀어본 죽음의 비밀
실비아 쇼프 지음, 임영은 옮김, 요셉 프란츠 틸 감수 / 말글빛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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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관한 신화와 설화를 모아놓은 책이다. 아프리카나 이누잇족, 마오리 족, 오세아니아, 브라질 등의 설화 등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인데도 죽음에 관한 생각이나 내용이 비슷해서 재미가 있다. "죽음에 대한 표징"이라고 저자가 죽음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도 있는데, 신화도 신화지만 이 부분도 꽤나 재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덜 정리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죽음의 탄생>은 7개 정도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야기들을 나눈 구분도 보호하고 각 장의 이름도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첫째 장에서는 죽음을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런데도 제목이 '인간에게 찾아온 죽음'이다. 각 장의 제목을 보고 안에 실린 설화를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전체적으로 관련이 없는 듯한 설화(다른 장에 들어가는 게 더 좋을 듯한 이야기)가 섞여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죽음의 탄생>은 정리중인 책장 같다. 책장에 책이 엉망진창으로 섞여서 꽂혔다고 해서, 책들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책장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질 뿐이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조금 난잡한 느낌이 드는데.'

  짧고 쉬운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놓여 있어서 그런 걸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의 상징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꽤나 기대를 하고 본 책이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더 크게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200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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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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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책을 펴들고, <건강에 대하여> 부분을 읽었다. 잠시 책을 덮고 생각을 하다가, 책 날개에 있는 저자 약력을 보았다. 저자는 1834년에 태어났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읽으면서 왠지 콧수염을 기르고 외알 안경을 쓰고 모자와 지팡이를 꼭 챙겨 다니는 18~19세기 신사가 떠올랐던 게 근거없는 발상이 아니었구나.

  저자가 19세기의 사람이다보니,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살짝 웃음이 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저자의 진지한 어조가 더 웃음을 짙게 만든다.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신분과 직업, 성별에 대한 편견도 언뜻 드러나 보이고. 딱 19세기에 지적인 삶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아마도 상류층이겠지)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생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G.H.해머튼 씨보다 더한 사람도 있고 덜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를 살아간 저자가 쓴 <지적 즐거움>이 말하고 있는 것은, 21세기에는 지루할 정도로 몸이 배배 꼬이는 점잖은 표현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할지라도, 21세기에 와 닿는 부분이 있다.

  건강이 없으면 지적인 생활도 즐기지 못한다.
  지적인 삶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공평무사한 태도다.
  지적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여러 가지를 배우면 좋지만 여러 가지를 다 잘할 수는 없다. 한 두 가지의 잘하는 것에 전념하라.
  기타 등등.

  저자는 유명한 지적인 인물들을 들어가면서, 지적인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말해준다. 보통 생각하고 있던 '지적인 삶'과 동떨어진 조언도 있다. 만물박사가 될 필요는 없다(잘하는 걸 해라). 술도 때로 필요하다. 지적인 삶만 산다고 책상에 붙어있지 말고 적절한 운동을 해라. 금전은 지적 생활에 중요하다. 여러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설정하고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을 띄고 있는 <지적 즐거움>은, 지적인 삶을 위한 상당히 귀담아 들을 만한 지침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19세기 영국인의 감성을 적절히 빼고 읽는다면. 나는 그 19세기적 감성이라는 것은 과거에 통용되던 '지적 즐거움'의 영역에 빠뜨릴 수 없다는 느낌이라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감정이 불쑥 치솟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었다. 여성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성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성에 대한 부분과 같은. 과연 19세기엔 여성이 아직 저 정도 위치였지 되새겨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적 즐거움>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통용되는 '지적인 삶을 위한 목록'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과거에 통했던 지적인 삶과 우리가 생각하는 지적인 삶에 적잖이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19세기의 지적인 삶을 위한 권고에서 걸러내고 읽어야 할 부분이 있듯이, 21세기의 <지적 즐거움>을 위해서는 어떤 요소를 더 덧붙여야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치 않는 부분도 많지만, 변하는 부분도 그만큼 많은 것 같다. 그걸 실감할 수 있어서일까, <지적 즐거움>은 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만약 21세기의 사람이 썼다면 이렇게 유쾌하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저 잘났다 말하는 잔소리로 들렸을 테니까. 나와 저자가 생각이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당신은 옛날 사람이군요."라거나 "이런 생각은 고리타분해요."라고 농담 지껄이듯이 생각하며 술술 읽어나가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이 책은 마치, 점잖은 할아버지가 난롯가에서 손에 불을 쬐면서 손자 혹은 손녀에게 "이렇게 살면 좋아.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충고하는 느낌이다. 지적인 삶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서 19세기의 생활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200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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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
양비 엮음, 노은정 옮김 / 천지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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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하면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그리고 두보와 이백, 공자와 맹자- 이 정도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나마 두보와 이백의 시는 제대로 본 적도 없고 <논어>와 <맹자>도 귀띔으로 들었을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참 얄팍하다.

  관심 없는 쪽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 그러려니 다른 책만 뒤적이고 있던 내가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을 집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문득 들춰본 페이지 속 시 한 수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이몸은 북극성이라,

  천년이라도 움직이지 않는데.

  그대는 태양과 같아,

  아침엔 동쪽 저물녘엔 서쪽에 있구려.

                                                         - 남조 민가 <자야가>

  북극성과 태양에 사랑을 비유한 이 시가 너무 예뻐서, 한동안 잊히지가 않았다. 단지 저 시 한 수 때문에 굳이굳이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을 빼어든 것이다. 저 시를 다시 한 번 읽고 수첩 한 구석에 베낄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애초에 품은 가벼운 마음이 미안하게도, 이 책이 너무나도 좋았다. 인문 책은 오랜만에 읽는데, 모처럼 좋은 게 걸려서 신이 났다.

  고전이라는 것은 한 때의 재미로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읽혀서 고전이다. 몰라서 재미없는 것이지 잘 들어보면 지금도 진득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에만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것이 왜 고전이 되었는가?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은 짧은 페이지 안에 설득력 있게 고전이 왜 고전인지 전달한다. 그래서, 수많은 중국 고전을 설명하고 때로 인용하고 저자에 관한 뒷이야기도 들려주는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을 읽다 보면, 절로 중국 고전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시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불쑥불쑥 '이거 원문 보고 싶다'라는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워낙 많은 걸 다루다보니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는 못하지만, 슬쩍 맛을 보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고전 읽고 싶다'라는 생각을 부채질한다. 


  쉬엄쉬엄 내키는 페이지 펴 가며 읽다 보니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간다. 곁들여져 있는 그림들은 눈을 쉬어가기 좋고, 인용된 시와 문구들은 보석처럼 빛나고, 하여튼 정신없이 읽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무척이나 배가 부른 느낌이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더 설명해도 외려 거치적거릴 뿐 나를 만족시켜줄 것 같진 않다. 애초에 '고전이란~'이라고 맛뵈기로 써 놓은 책이니 궁금하면 원문을 구해 보는 게 가장 좋을 테니까.

2008.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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