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
김리나.차광호.박지인.남지우 지음 / 지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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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커피를 마시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나의 커피 역사'였다. (아, 뭘 마시지, 생각하기 귀찮아, 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만만한 음료니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커피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어떤 카페에서 '커피류'는 팔지 않는다고 하자 항의하는 손님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곳은 홍차전문카페였다.)

  나의 커피 역사를 간단히 서술해보자면 이렇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인스턴트커피를 2:2:2 비율로 타드실 때 나는 옆에서 프리마를 타마셨다. 커피가 필수라는 수능생 시절에는 커피를 조금 마시기도 했는데 카페인이 요상하게 작용했는지 마시고 곧잘 자 버렸다. 대학에 들어가자 사람들과 어울리다 카페를 들락거리게 됐는데 쓴 맛이 너무 싫어서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카페모카를 주로 시켜먹었다. 생크림이 올라가고 양이 많다는 것 이외에 자판기 인스턴트 커피와 뭐가 다른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원두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블랜드커피, 아메리카노 혹은 에스프레소로 즐기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여기서 마시는 커피와 저기서 마시는 커피 맛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안 된다. 걸음마 하는 아이가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나는 서서히 커피에 빠져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은 '커피를 통해 삶의 성공을 이끌어낸 15명의 커피인'이 들려주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말하기보다는 그들이 커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과 노력을 말하고 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에서 인생이 묻어나오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에서 커피가 묻어나온다. 쭉 읽다보면 책에서 갓 내린 향긋한 커피향이 배어나올 것 같다. 15명의 커피인에게 있어서 커피는 장사도구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기는 커녕, 스스로 커피를 내려본 적도 없는 내가 이 책에서 공감을 느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더구나 읽는 내내 짧디 짧은 나의 커피 역사가 알알이 떠올랐다는 것도 신기하다. 앞으로 내가 얼마만큼 더 커피를 즐기게 될까?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순간에는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근질했다. 불행히도 한밤중이라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이 책을 따라 커피 순례라도 가 봐야겠다. 무척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다. 



200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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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창비시선 292
고은 지음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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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쓰는 사람의 눈과 소설을 쓰는 사람의 눈은 다르다는 소리를 언뜻 들은 적이 있다. 눈 뿐이랴, 뇌도 다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누군가의 잡담이었을 거다. 나는 그 때,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시보다는 소설을 선호한다. 시는 한 번 읽어서 잘 와닿지 않는다. 몇 번 곱씹어야 알 듯 말 듯, 페이지 한 장이 몇 번이고 읽는데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일종의 고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시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들 이외에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시는 시이고 시는 결코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일종의 붉은 딱지를 시에 붙여놓고 있었다.

  고은 시인의 <허공>은 시집이다. 시집이니 그 안에는 시가 담겨있어야 하는데, 어쩐지 나는 여기에서 여행담을 읽고 푸념이 담긴 수필을 읽고 그리고 신문에나 실릴 법한 사설과 또 두꺼운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과거의 이야기를 읽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혼잣말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에 느껴지는 묵직함과 편안함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허공>을 시집이 아니라 마치 옛날 이야기 모음 혹은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보는 마냥 후딱 읽어치워 버렸다.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왠지 졸음이 오기도 하고 정신이 번쩍 깨이기도 했다.

  어린애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여도 그럭저럭 느낄 수는 있는 것처럼, 나의 시 읽기는 딱 고만한 수준인 것 같다. 책장을 후딱 넘기고 싶어서 안달이 나면 넘겨버리고, 그러다가 앞으로 가서 다시 읽으며 히죽대고, 그리고 뭐 이해 못하면 말지 하는 기분으로 헤헤거리다가도 이해못함이 미안해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를 쓰는 사람의 눈과 소설을 쓰는 사람의 눈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르고서야, 시에서 그렇게 다양한 장르가 흘러 흘러 와 닿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허공>에 있는 시를 하나하나 곱씹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지만, 꼭 다 이해해야만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09.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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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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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는 없다. 노예라는 단어가 야기하는 끔찍함 때문인지, 이 단어는 진작 잊혀졌다. 직유법이나 비유법으로 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노예'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노예라는 단어로 불리지 않는다. '일회용 사람들'이라거나 '현대판 노예제' 같이 두루뭉실한 단어들로 불린다. 입 밖으로 '노예'라고 한 번 말하고, 그 뒤 '일회용 사람들'이나 '현대판 노예제' 혹은 '더부살이'나 '인신매매'라고 불러보라. 후자의 호칭은 전자에서 주는 거부감을 많이 희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노예라는 단어를 쓰기 꺼린다. 그리하여 21C에 존재하는 노예들은 인식 밖의 대상이 되고, 노예제는 더더욱 교묘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C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는 현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노예들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현대의 노예들을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인터뷰한다. 또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보며 노예제의 기원을 서술한다. 한 사람이 노예가 되는 과정, 노예로써의 삶, 간혹 노예에서 해방된 과정이나 모습이 순차적으로 보여지는데 세밀하게 그려진 그 과정을 보자면 토기가 올라온다. 그것은 노예다. 다른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노예 개개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그 몇몇 사람들의 일이야'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노예제 폐지 노력의 총책임자 존 밀러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미국 정치에서 노예제를 근절하기 위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다. 전자가 줌-인을 해서 노예제 안을 침투해 노예 개개인의 사연과 배경을 파고들었다면 후자는 줌-아웃으로 미국에서 벌어지는 노예제 폐지를 위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낸다. 노예제 근절을 위한 싸움은 처참하다. 연전연패다. 가끔, 작은 전투에서의 소소한 승리가 있을 뿐이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세계는 마냥 정의롭지 않고 정의는 다면적이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하나의 국가인 이상, 인신매매라는 전인류 공통의 의제보다 국익이 우선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저자는 그런 현실(국익에 의해 정의가 뒤로 밀리는 것)도 똑바로 적어낸다.

  노예의 현실이 통계의 숫자가 되는 모습은 섬뜩하다. 본문에서 나왔듯 노예들이 자신의 머릿수를 세어달라고 줄서 있지 않은 이상 노예의 숫자는 순전히 추정치에 불과하다(더구나 노예라는 단어 자체의 정의가 제각각이라서 때로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진짜' 노예들이 저임금노동자와 혼돈될 여지가 있고 때로는 너무 협소해서 다른 종류의 노예는 간과할 가능성이 있다). 숫자는 어딘지 현실감이 없고, 혐오감도 분노도 위기감도 없다. 하지만 많은 숫자 속에 일부의 삶을 들여다 보았을 때 비로소 그 숫자는 의미를 가진다. 노예는 사회의 비극에서 비롯된 개인의 비극이다.

  읽다 보면 정말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저 거대한 노예제에 대항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돈과 이익이 인권과 정의를 압도한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노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노예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뽑거나, 더 나아가 그들을 돕는 시민단체들에게 소소한 도움을 주면 그것이 노예제 폐지를 위한 일보가 되는 것이라고. 빤히 있는 그들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지만 않는다면 희망이 있다고.

  책의 첫 장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굉장히 치밀한 자료조사와 함께 씌여졌다는 것은, 굳이 뒤에 있는 한 무더기의 참고자료목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보며 가슴아팠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 담은 이야기는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더 많은 이야기를 수록하지 못해 아쉽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 같은데 가슴이 무거워진다.


* 미국색이 굉장히 강하다. 그래서 가끔 거북스럽기도 하다.

2009.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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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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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복잡하다.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학문을 한다. 철학, 종교, 수학, 문학, 사회학, 경제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기술하고 설명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 중에서 현재 세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 학문은 과학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과학은 나에게는 그리 가깝지 않다. 딱딱하고 어렵고 예민한 학문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탓이다. 그 중에서 물리학은 더하다.

  물리학도 재미있을 수 있을까?

  < 과학 콘서트 >는 물리학자가 쓴 책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간 딱딱한 물리 교과서에서 보던 것 같은 지리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 과학 콘서트 >는 음악을 듣듯 편안하게 글이 흘러간다. 거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재미있는 세상의 모습이고, 그 세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과학의 모습이다. 프랙탈 패턴, 지프의 법칙, 작은세상네트워크, 수확체증의 법칙, 브라질땅콩효과 그런 것들이 음악과 미술, 언어, 사회관계, 부익부빈익빈 등등에서 쏙쏙 빠져나온다. 너무 무겁지 않고, 너무 어렵지 않게.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부분, 아 좀 이상하네-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과학으로 설명이 될 때 알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간지러웠던 부분 남이 긁어줬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254p라는, 요즘 나오는 책에 비하면 다소 얇은 두께이지만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를 포만감이 느껴진다. 참 좋다. 2003년에 써진 책이라서 경제 부분은 2009년 현재에 볼 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적혀 있지만(미국식 자유주의 경제학이 누리는 호황과 그것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는 점), 호황기라 생각했던 그 시점에 적힌 글에서 불황과 폭락이 얼마든지 올 수 있음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외려 더 신뢰가 가기도 한다.

  가볍게 집어든 책이었지만 한 편의 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즐겁게 책장을 넘겼고, 깊은 여운을 가지고 책을 덮었다. 실험실에 처박혀 있다고 생각했던 과학이 세상에 나와서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눈을 만들어내고 있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다른 과학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은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어렵기만 한 게 아니었나보다. 왠지 신기한 기분이다.


p.s.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각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마련되어 있는 '좀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은 분들께'라는 부분이다. 책, 논문, 사이트가 적혀있어 흥미를 느낀 부분을 더 찾아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맨 뒤 끝맺는 말에는 여기 적힌 것은 현재의 연구결과일 뿐이라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는 이야기까지 적혀있다. 그것은 마치 "기대해도 좋아요. 물리학자가 찾아낼 결과들을 지켜봅시다. 당신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관심을 가져보라고, 과학이 주는 재미를 일회용으로 끝내지는 말라고 권하는 것 같다.

 

2009.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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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패러독스 2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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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고, 저자에게 흥미가 생겨서 찾아본 책이다. 위에 조그맣게 '패러독스02'라고 숫자가 달려있다(패러독스01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패러독스03도 있을까 궁금했는데 불행히도 국내에 소개된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이 두 권 뿐인 것 같다. 아쉽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비독서를 독서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논하고 있다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는 저자가 그어놓은 선을 넘은 텍스트 읽기- 독서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기저에 두고 또다른 진실(왜냐하면 저자가 범인이라 지목한 그가 진정한 범인인가 의혹을 가지고 재수사를 하는 책이므로)을 파헤치는 책이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화자인 셰퍼드 의사가 범인이라는 파격적인 구성을 가진 추리소설이다. 이것은 추리소설의 암묵적인 룰(탐정과 화자는 범인이 아니다)을 깬 것이며, 그로 인해서 미미한 의혹들을 남긴다.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인 사람이 과연 셰퍼드 의사인가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들-,<끝없는 밤>,<커튼> 등-을 언급하면서 사건의 재수사를 위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진다. 믿을 수 없는 화자에게서 나온 말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탐정 애르큘 포와로가 실수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만약 셰퍼드 의사가 범인이 아니라면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이 책은 그 자체로 잘 짜인 하나의 추리소설이다. 피에르 바야르가 대는 근거는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그만큼 충격적이다. 그는 탐정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나아가 작가의 절대성마저 부정한다(탐정과 작가가 동시에 내놓은 범인을 납득하고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기존 읽기의 한계를 넘어선 새롭고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읽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독서로 분류되었던 일련의 행위마저 독서로 편입시키기를 주장했던 <읽지 않는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못지 않은 파격적인 제안이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라는 질문이 "누가 셰퍼드 의사를 죽였는가?"로 전환되는 순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전혀 다른 새로운 범죄 이야기로 변신한다(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또 다른 소설 <0시를 향하여>처럼 말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능동적인, 그것도 아주 능동적이고 색다른 읽기를 자신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으며 그가 시범으로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읽기의 방식은 아주 매력적이다. 또한 그로 인하여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및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도 기존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품게 된다. 재독하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 바야르의 글은 흥미가 가는 소재를 유쾌한 필치로 풀어나가며 새로운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박학하게 여러 책을 끌어들이면서도 결코 그것이 어렵게 와 닿지를 않는다. 나는 그것이 몹시도 마음에 든다. 피에르 바야르의 다른 책들이 어서 빨리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9.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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